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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 Beschreibung'에 해당되는 글 26건

  1. 2024.01.19 사울과 다윗
  2. 2021.05.01 간선 포설
  3. 2021.04.25 등기구 사전 작업
  4. 2021.02.12 4 3
  5. 2021.02.11 3

사울과 다윗

서술 Beschreibung 2024. 1. 19. 07:0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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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고대왕국의 탄생

역사서 사무엘 상하는 유대왕국의 성립과정을 보여준다. 출애굽 후 모세와 여호수아의 인도를 받으며 광야에서 40년간 방랑하던 이스라엘의 12지파 백성들은 약속의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갖은 전쟁 이후 분산 정착하게 된다. 출애굽 세대와 모세도 밟아보지 못할 땅에 후손들이 들어선 것이다. 이후 제사장 겸 영도자인 사사들의 통치를 받던 이스라엘인들은 다른 민족들의 왕국처럼 자신들도 왕이 필요하다고 제사장 사무엘에게 요청함에 따라, 그는 야훼께 이를 물어보고 승낙을 받는다. 야훼는 그들의 요구에 자신의 전지전능함을 불신하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지만 마치 필요악처럼 왕을 세워줄 것을 약속한다. 그들은 이제 야훼와 제사장들에게 뿐만 아니라 왕과 그의 궁전, 궁신들에게도 공납의 의무를 져야 한다.

사무엘에게 기름부음 받아 이스라엘 최초의 왕이 된 사울은 초기에 이민족들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존앙받는 군주로 등극했지만 야훼는 그의 후계자로 그의 적통이 아닌 다른 지파의 목동 다윗을 지명한다. 왕의 두통을 하프연주로 달래도록 궁전에 불려갔던 소년 다윗이 무릿매로 골리앗을 쓰러 뜨리고 이후 수많은 전장에서 전쟁영웅으로 백성의 인기를 휩쓸자 사울은 시기심으로 다윗을 죽이고자 했다. 사울은 그가 자신의 후계자로 낙점된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부정하고자 했던 것이다.

사울의 추격을 피해 자신을 따르는 600 여명의 무리와 함께 도망을 거듭하던 다윗은 심지어 이스라엘의 주적이다시피한 블래셋 족속에게까지 가서 신세를 지게 되며,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까지 동원될 뻔 했다. 이후 계속되는 사울의 추격을 따돌리던 다윗은 두번이나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가 기름부음받은 왕이기에, 아무리 자신이 그 왕위를 이어받는다 해도 그럴 수 없었다.

사울이 블래셋과의 전쟁에서 치명상을 입고 도주하는 중 그의 심복은 이미 생명이 경각에 달한 사울이 자신을 치라고 명했다면서 그를 죽이고 다윗의 진영에 이를 알리러 갔다. 새로 왕이 될 이에게 공로를 인정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갔던 그를 다윗은 죽인다. 이후 기름부음 받은 왕으로서 다윗은 이스라엘과 유다 통합왕국을 세우는 과정에서, 사울의 잔당들이 그의 살아남은 자식들과 함께 다윗에 항거하는 중 한 잔당에서 내부 반란이 일어난다. 사울의 아들을 죽이고 역시 공로를 위해 다윗에게 간 반란자 역시 처단된다.

고대 왕국의 형성과정을 보여주는 단면인데, 다윗이 사울과 그 아들들에 대해 보이는 태도는 이중적인 면이 있다. 명분상 다윗이 그들을 직접 처리하지 못하더라도 고대 왕국의 안정적 왕권을 위해 그들은 정리되어야할 걸림돌이다. 하지만 다윗은 그들을 배척하지 않는다는 진정성을 반역자 처단으로 보여줌으로써 그에 대한 백성들의 신망을 더욱 두텁게 했다. 통합의 정치력을 보여준 것이다. 그 아무리 야훼의 뜻에 따랐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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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선 포설

서술 Beschreibung 2021. 5. 1. 09:20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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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 앙카와 찬넬과 같은 지지대가 설치되고 여기에 걸쳐지는 트레이가 고정되면 입선작업 준비가 완료됨에 따라 포설팀이 투입된다. 하지만 4SQ와 6SQ와 같은 얇은 전선으로 부분적으로 전선을 치는 작업을 우리 팀에서 요즘 하고 있다. 마키 파이프라고 불리는 입선용 돌파 막대기를 트레이에 쑤셔 넣는 것으로 전선을 끌어 당기는데, 각종 배관과 구조물이 설치된 천장 공간은 경우에 따라 작업에 용이하지만 너무도 협소해서 기어 다니면서 작업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방진복을 입은 상태에서 첫째날은 높이가 500도 되지 않는 곳에서  누워서 선을 끌어당기고 타이를 치는 작업을 해야 했다. 누운 상태라 잠시 쉴 수 있는 것도 좋지만 3시간 내내 꼼짝 못하고 그 상태로 있는 것은 고문과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감시의 눈길이 작동중이기도 하거니와 위험한 높이에서 일하는 것이므로 안전에도 유의하면서 작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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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구 사전 작업

서술 Beschreibung 2021. 4. 25. 14:06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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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를 하는 팀에 왔지만 정작 P2 현장은 마감단계라 펀치라고 불리는 트레이 보정작업을 위주로 작업을 하던 중 요 며칠은 화장실 등기구 공사를 하면서 오랜만에 전선을 만지는 일을 하는가 했는데 역시 암초가 있었다. 사내화 구역에 들어서는 화장실인데, 천장은 석고가 아니라 이중 강판 사이에 알루미늄 보강재가 채워진 것이라 타공하는 작업이 고난도였다. 지름이 무려 200에 달하는 홀쏘는 무게만 족히 10kg는 나갈 정도라 드릴까지 합쳐 20kg에 달하는 공구로 천장을 뚫는 일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강판을 긁어내면서 나오는 쇠가루 파편이 마치 비처럼 작업자들에게 쏟아졌다. 2명이 16개의 구멍을 뚫는데만 이틀이 소요될 정도다. 전기일이 그나마 신사적이라는 말은 이런 경우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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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 Beschreibung 2021. 2. 12. 04:00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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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으로 대학원에 다니는 것은 1, 2학기에 해당하는 1년이었고, 나머지 3,4학기는 논문준비 때문에 굳이 학교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수업시간이 없는 만큼 논문준비에 매진해야 하지만, 나는 어떤 사정 때문에(지금 생각하면 이건 핑계같다) 논문을 완성 못하고 수료만 한 채 공부 외의 길을 찾아 나섰다. 공부의 길을 벗어나면서도 메일로 장선생님과 소통하면서 진로에 관해 이런저런 조언을 구했었는데, 이후 내가 제약회사에 입사하자 메일상으로 아주 기뻐하시던 선생님의 문구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 직장은 얼마 다니지 않고 그만둔 후, 이런저런 일을 거친 후 나는 장기간 다닐 직장에 입사하게 됐고, 입사 후 며칠 후 어떻게 동문들과 자리가 마련되어 선생님과 신촌에서 축배의 맥주를 마셨다. 

 

직장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7년 근무 후 생기는 안식월이라는 1개월 유급휴가를 나는 미완의 석사논문을 완전히 다른 주제로 다시 쓰는 시간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칸트를 열심히 읽었고 관련 논문들도 여기저기서 찾아 봤다. 그리고 아마도 어느때 보다 빈번히 논문에 관해 장선생님과 메일로 소통하면서 2009년 여름에 나는 마지막으로 선생님을 춘천에서 뵈었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 완역 출간 이후 한창 루만의 <사회의 사회>를 번역하시던 시기였다. 에스프레소 커피를 드시며 루만의 사회이론을 아주 흥미로운 표정으로 설명해 주셨다. 이후 나는 논문을 어느 정도 진척시켜 나갔지만, 잡혀진 일정 대로 논문을 완성시켜 나가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고, 이런 어려움과 향후 진로에 관한 메일 이후 더이상 소통이 없게 됐다. 

 

이후 힘든 수술을 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나는 선뜻 연락할 생각은 접어둔 채 선생님이 내놓으신 번역물을 읽어 나갔다. 나는 그때 몇몇 매체에 서평을 게재하는 일이 이따금 있었는데 이때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을 하버마스와 독자가 나누는 가상의 대화 형식으로 3회에 걸쳐 다룬 적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는 루만의 <사회의 사회>를 읽으면서 이런 완벽한 번역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고가 투여됐을지 가늠이 안된다. 빗나가고 잃어버린 소통은 가상의 대화로나 복원시킬 수 있을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다시 빌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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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 Beschreibung 2021. 2. 11. 02:26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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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졸업 후 토요일마다 양선생님의 세미나팀에 참석하면서 주중엔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는 나에게 한번은 양선생님이 뭐하러 그런 시험준비를 하냐고 하면서 오히려 장선생님한테 가서 석사과정을 마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하셨다. 하지만 대학원을 다른 학교로 옮기는 일은 오래 전부터 작정한 일이라 나는 쉽게 마음을 바꾸지 못했지만, 다시 다니던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다른 학교에 일단 시험은 보되, 만약에 떨어지면 그 학교에 재수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장선생님을 찾아 갔다. 이때 어떤 상담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면접시험에서 이런 얘기를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사전에 내 의도를 밝히는게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분명한 것은, 장선생님은 나를 기꺼이 지도학생으로 받아줄 수 있다는 용의였다. 

 

결국 나는 가려고 했던 학교의 대학원 시험에 탈락하고 다니던 학교로 돌아가 면접시험을 봤다. 이때 면접 자리에 있던 철학과 교수님들은 뭐하러 여기에 다시 왔냐고 타박하진 않고 잘해 보라는 덕담을 주는 정도였다. 이때 한 교수님이 이런 취지의 조언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대학원에서 공부는 학생이 교수 보다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아무튼 면접은 통과했고 대학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코스웍에 들어가기 전, 장선생님의 지도학생으로 등록한 나와 두 명의 대학원생이 첫 학기에 읽을 텍스트에 관해 상의하기 위해 장선생님을 만났다.

 

사전에 나는 환경철학에 관한 세미나가 될 것이란 얘기를 듣고 다소 실망스러웠다. 당시에나 지금에나 중요한 주제이기는 하나 나는 좀더 전통적인 텍스트를 접해보고 싶었다. 이때 선생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철학적 주제의식을 밝히면서 왜 환경철학을 이번 학기에 해야하는지 설명을 하면서도 다른 의견이 있으면 제시해 보라고 했다. 사실 대학원에서 수업의 주제에 관해 사전에 학생과 교수가 협의하는 일은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좀더 강하게 우리의 의견을 모아서 설득력있게 제시했다면 수업의 주제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선생님의 제안에 따르기로 했고, 동양철학을 하는 대학원생과 함께 4명이 장선생님의 지도 아래 환경철학에 관한 텍스트를 분담 발제하고 토의하는 수업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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