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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6.30 4대의 흥왕과 몰락 :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1901)
  2. 2010.05.16 참다운 지(Wissen)의 도정
  3. 2010.05.10 바다에 빠진 날
  4. 2010.05.07 바다에 갈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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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는 망해도 3대가 간다는 속담은 부자의 한계를 노정한다. 삼성의 가문은 얼마나 갈까? 이 소설은 19세기 초반에 군수물자의 납품으로 크게 성공을 거둬 가문을 일으킨 요한 부덴브로크 가의 4대기를 서술한 작품으로 1929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다. 『타락』, 『행복에의 의지』, 『키작은 프레드만 씨』와 같은 단편으로 이미 등단을 한 토마스 만이 25살의 나이에 발표한 이 소설은, 새파란 청년이 썼다고 보기 힘들 정도의 노련함이 보인다. 아무래도 뤼벡의 부유한 상인 가문이라는 그의 출신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은 한창 사업의 발흥기를 구가하던 1대의 부덴브로크 가  사람들이 새로 구입한 멩가의 대저택에서 잔치를 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시작부터 어떤 균열이 일어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북부의 뤼벡이라는 소도시에서 선두를 달리는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맏딸 안토니와 사기꾼 그륀리히의 정략 결혼을 시작으로 가문은 점차 몰락의 길을 가다가 3대의 토마스에 이르러 다시 가문의 사업이 반짝 일어나지만,  결국은 급격히 몰락한다. 쉰 살도 안된 시의원 토마스 브덴브로크는 병약한 아들의 미래와 자신의 불안한 건강을 이유로 극단의 유언을 남긴다. 

시골 도시의 조그만 가족 기업의 소소한 연대기로 볼 수도 있으나, 신분의 질서를 벗어나 공적으로 이룩한 브르조아 질서의 흥망성쇠를 몰락의 관점에서 전개시켜 나가는 소설이다. 인생이 결국 몰락을 향해 가고, 대대 손손 이어지는 가문에도 종점이 있기 마련이라는 어두운 미래에 대해 유교적 세계관은 제례의 양식을 답습해 오고 있다. 조상의 정신은 후대에 연속된다는 믿음. 종교적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믿음에 토마스 만은 회의적이다. 이 소설에서 공적으로 이룩된 브르조아 질서에 다시 신분의 양식인 가문을 심는 것에 대해 토마스 만은 비판적인 관점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를 간다는 것은, 3대 이상 지속하기 힘든 자연의 한계이다. 북조선은 3대까지 갈 수 있을까? 3대를 준비하는 삼성은 어떻게 될까? 남성중심의 계보만을 적통으로 보는 가문중심주의의 시대착오성을 감지한 토마스 만의 선견이 돋보인다.

만약 이 소설의 속편이 가능하다면, 부덴부르크 영사의 맏딸 토니가 그 중심에 설 것이다. 왜냐하면 토니는, 말괄량이 소녀에서 자의식을 갖춘 자아로 성장했으며, 자신의 결혼에서 비롯된 가문의 실추 속에서도 가문의 영예를 고수했던 강인한 생명력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이다. 만약 토니가 자신이 원했던 대로, 부덴브로크 가 보다 상당히 낮은 계급에 속하지만 전도유망한 교육과정을 밟고 있던 모르텐과 결혼했다면 이야기는 다르게 흘렀을지 모른다. 혹시 토마스 만은 토니 부덴브로크를 염두하고 3년 후 『토니오 크뢰거』를 내놓은 것이 아닐까?


텍스트 :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Buddenbrooks : Verfall einer Familie, 홍성광 역(민음사, 2008, 1판 17쇄).

주요등장 인물 : 요한 부덴브로크 1세, 장 부덴브로크 영사(2세), 토니 부덴브로크, 토마스 브덴브로크 시의원(3세), 하노 부덴브로크(4세), 크리스찬 부덴브로크, 게르다 아놀트선

그외 등장 인물 : 엘리자베트 영사 부인, 크뢰거 가 사람들(엘리자베트 영사 부인의 시댁), 벤딘스 그륀리히, 모르텐 슈바르츠코프, 알로이스 페르마네더, 세세미 바이히브로크, 클로틸데(부덴브로크 가의 빈곤한 방계 친척),클라라(요한 2세의 막내딸), 마르쿠스(요한 상사의 동업자이자 전문 경영인), 카이 묄른 백작(하노의 단짝 친구), 고트홀트 부덴브로크(요한 브덴브로크 1세의 첫째 아들), 고트홀트의 세 딸들, 안토아네트 노부인(1세의 둘째 부인), 에리카 그륀리히, 티부르치우스 목사, 바인센크(에리카의 남편), 프링스 하임 목사, 그라보 박사, 랑할스 박사, 레안드리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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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지(Wissen)의 도정

헤겔 Hegel 2010. 5. 16. 00:0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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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정도에 걸쳐 읽은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1권과 『경영학원론을 아침에 반납하고 『정신현상학』1권과 또다른 경영서를 대출했다. 토마스 만이 20대 중반의 새파란 시절에 낸 이 장편은, 『타락』이나 『트리스탄』과 같은 주옥같은 그의 단편들에 비해 사실 지루하기 짝이 없다. 사업과 신망, 명예로 번영하던 브덴브로크 가문이 이제 급격히 몰락해 갈 것을 예고하는 2권을 읽는 의무감에 충실하기 보다는, 끊기고 있는 『정신현상학』독해를 일단 번역본으로라도 흝고 지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내용도 없이 불쑥 단언만 하는 것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참다운 인식이 아닌 것에도 눈여겨볼 만한 것이 있으니 그로부터 학문으로 통하는 길도 열릴 수 있다는 식의 안이한 생각을 품는다는 것은 더더욱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왜냐하면 이런 안이한 생각을 하게 되면 존재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참다운 인식이 아닌 것에 안주하는 학문의 존재에, 즉 학문의 그릇된 양식과 그의 외양에 가치가 두어짐으로써 학문이 진정으로 갖추어야 할 참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여기에 논술된 것은 순차적으로 현상화하는 지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이 논술 자체도 제대로의 형태를 갖추고 움직여나가는 자유로운 학문의 체재를 지닌 것은 아니고, 그 나름의 입장에서 자연적인 인식이 참다운 지를 추구해나가는 도정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마음[임석진은 Seele를 "혼"이라고 번역했는데, 다소 의아스럽다. 영혼이란 말이 더 낫겠지만, 나는 이하 "혼"이라는 역어를 "마음"으로 고쳤다]이 그의 본성에 따라서 미리 지정된 정류장과도 같은 갖가지 마음의 형태를 두루 거치고 난 뒤에 마침내 정신으로 순화되어가는 그런 도정을 그려낸 것이다. 이렇듯 자기 자신이 편력해온 경험의 도정을 완벽하게 마무리지을 때, 마음은 본래 그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가를 깨우치게 된다."

헤겔, 『정신현상학』1권, 임석진 역(한길사, 2007 1판 4쇄), 서론,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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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빠진 날

단상 Vorstelltung 2010. 5. 10. 22:30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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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에 가족과 동해에 도착했다. 오후 7시가 넘었지만 초여름의 초저녁은 얼마나 발랄한가. 11시부터 무려 8시간을 운전했다. 서울시내의 얼마 안되는 거리에 있는 결혼식장에 가려던 것을 극심한 정체로 포기하고  기수를 동쪽으로 선회해 국도로 가려고 했지만, 이미 팔당 인근부터 밀리는 것을 보고,  춘천-서울간 고속도로로 갔다.
 
저녁을 먹고 방파제까지 걸어갔다. 이미 날은 어두워 지고, 작은 부두에 걷어 올려져 차근차근 말아 올려 쌓아올린 백색의 그물망은 마치 노파의 머리처럼 새어버린 은물결이다. 방파제 너머 움푹 들어간 만 사이로 파도가 잔잔히 밀려가고 저 멀리에는 불빛들이 반짝인다. 마치 큰 배를 타고 부두 저멀리 정박해 있는 뱃머리에서 그리운 육지를 바라보는 심정이 이런걸까. 

방파제를 나와 모래사장으로 걸어간다. 바다 앞에서 서서 밀려오는 파도를 보다가 눈을 감아본다. 눈을 감고 듣는 파도소리에는 약간의 공포감도 밀려온다. 눈을 떠 보면 부드러운 파도가 어둠에 섞여 집채 만한 크기로 내 앞에 닥쳐 온다. 다시 눈을 감는다. 바다로 점점 떠 빠져들기 전에 해변가를 벗어난다.    

그륀리히와 결과적으로 사기 결혼을 하고 만 토니는 아버지의 사업가적 판단과 보살핌으로 친정에 딸 에리카를 데리고 와 살게 되며 남편과는 이혼한다. 그륀리히는 계획적으로 작당을 하고 8만 마르크의 지참금을 들고 온 토니와, 아니 명망있는 부덴브로크 가와 엮어짐으로써 몰락하던 사업의 파산을 에리카의 나이만큼 연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문의 위용을 위해 토니는 신망있게 보이도록 연출된 사업가와 결혼한 것이지만, 그녀의 직관이 처음부터 옮았음을 브덴브로크 영사는 뒤늦게 그륀리히의 돌려막기식 장부를 살펴 보며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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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갈 일

책들 Bücher 2010. 5. 7. 16:1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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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에는 토마스 만의 『브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읽고 있다. 요한 브덴브로크 영사의 19살 맏딸 안토니는 부덴브로크 상사의 함부르크 거래선인 그륀리히의 끈질긴 청혼에 곤혹스러워 하며 트라베뮌데의 해변가에 있는 수로 안내인 슈바르츠코프의 집에 휴양을 간다. 여기서 안토니는 방학차 집에 들른 슈바르츠코프의 아들 모르텐과 자주 산책을 다니면서 서로 좋은 감정을 갖게 된다. 귀족 가문의 파티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토니와 모르텐의 만남으로 갑자기 계급 갈등의 양상으로 나아간다. 괴팅엔에서 의학을 공부하며 박사과정을 준비하는 모르텐은 평등한 기회와 공적을 중시하는 브르조아 계급의 양심을 안토니에게 토로하는데, 이들의 대화장면은 토마스 만의 유명한 중편 소설 『토니오 크뢰거』에서 토니오가 애인인 듯한 화가에게 예술가의 사회적 양심을 토로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상대를 공격하는듯한 주장에는 은근한 구애도 담겨 있다.

무심하게 바라보던 바다를 관심있게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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