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곡: 애니멀스(1964)
편곡: 지미 헨드릭스&제니스 조플린(1969, 우드스탁)
링크: AI 버전
There is a house in New Orleans
They call the Rising Sun
And it's been the ruin of many a poor boy
Dear God, I know I was one
My mother was a tailor
She sewed my new blue jeans
And my father was a gamblin' man
Way down in New Orleans
And the only thing a gambler needs
Is a suitcase and a trunk
And the only time he's satisfied
Is when he's a drunk
Oh, mother, tell your children
Not to do what I have done
To spend your lives in sin and misery
In the house of the rising sun
I got one foot on the platform
And another on the train
And I'm going back to New Orleans
To wear that ball and chain
There is a house in New Orleans
They call the Rising Sun
And it's been the ruin of many a poor boy
Dear God, I know I was one
Dear God, I know I was the one
https://youtu.be/52nWPXoO6mw?is=1EHKe41t8wfuzLgy
집권 나치에 저항한 행동하는 지식인의 전형이었던 법학자 볼프강 아벤트로트는 전후 마부르크 대학에 자리를 잡는다. 그는 호르크하이머에게 교수자격논문심사를 거부당한 하버마스를 받아들였고, 그의 교수자격논문인 '공론의 구조변동'(1961)은 그에게 헌정됐다. 이 논문은 서구 부르조아 사회에서 여론의 변화과정을 추적하는 사회사적 주제 전개방식을 취하는데, 이런 역사 저널리즘적 방식은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에게 익숙한 철학적 주제이자 그 전개방식으로 수용될 수 없었다.
하버마스의 초기 대표작인 '이론과 실천'(1963)은 그가 이 시기에 주로 발표한 몇몇 대학의 취임 강연문들을 바탕으로 하는데, 사회정치적 주제가 전면에 나타난다. 여기서 그는 마르크스가 부르조아 국가를 공격하면서 그 안에 내재된 정당성의 유산을 폐기처분할 것을 비판하는데, 이 결과 혁명의 유산은 2차 세계대전 후 공산진영으로, 정당성의 유산은 자본주의 진영으로 양분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버마스에게 혁명과 정당성은 양분될 수 없는 사회공동체의 유산이었고, 이런 문제의식에서 그가 하나의 실천이상의 대안으로 고안한 것이 의사소통행위이론이었다. 이 이론의 근저에 놓인 사실성과 타당성을 매개하는 사회적 범주를 그는 법으로 보고, '의사소통행위이론' 출간 10여 년이 지난 후, 이에 대해 누적된 다양한 비판을 반박하면서도 의사소통행위이론의 시험적 적용을 위해 '사실성과 타당성'을 발표하는데, 이 노작은 그의 실천적 학문사의 공식적 마침표였다.
https://youtu.be/kEN2k06fCBI?is=mXrDSpbTjieHusQl
'정신현상학' 1차 강독이 정신 장 깊슥히 들어가고 있다. 칸트의 의무론에 대한 헤겔의 비틀기는 이후 '법철학 강요'(1820)를 위한 준비운동의 성격도 있으나, 핀카드에 따르면 헤겔은 이미 프랑크푸르트 시절에 칸트의 '도덕형이상학'에 관한 주석을 달 정도로 그의 사회철학적 관심사는 이미 청년 시절부터 달아올라 있었다.(이 주석은 소실됨) 형벌에 관한 헤겔의 법철학적 사유를 비판적으로 개괄하는 한 문헌은 그의 이런 문제 의식을 헤겔의 신학적 저술로까지 쫏아 가지만, 엥겔스의 지적대로 헤겔을 결국 응보형론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형벌을 신비화시키는 구시대의 유산으로 평가한다. 보펀적 인권에 기반한 현대의 형사사법에 관해 저자는 사형제도는 물론 교정시설까지 폐지하는 주장으로 나아가는데, 이 책의 출판연도는 1970년대 중뱐이다. 교도소 수용시설의 포화로 심각한 인권문제로까지 비화되는 한국의 실정으로는 아직 먼나라 이야기다.
참고문헌: Ossip K. Flechtheim, Hegels Strafrechtstheorie(BERLIN : DUNCKER&HUMBLOT, 1975) Zweite Auflage
'정신현상학'의 발원지 예나 2차 방문기(26.09.01)
아침 7시 출발 기차부터 1시간 연착이었다. 시작부터 이러하니 1박 2일 여정의 태반은 기차에서 보낼 것이 예상되었고 결과는 예상 이상이었다. 직선거리로 약 200km 떨어진 소도시 예나를 가는데 5시간, 돌아올 때는 8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갈 때는 오랜만의 여행이라는 기분에 경유지로 아이제나흐와 바이마르의 역주변을 잠시 둘러볼 만한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구동독 지역인 튜링겐주의 아이제나흐는 바흐의 출생지이고 그 유명한 바이마르 공화국의 헌법이 설계된 곳이 괴테가 살았던 바이마르다. 하지만 소소한 소도시라고해도 역전 주변만 보고 마는 것은 그 도시를 피상적으로 흝고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다. 한 도시를 제대로 느끼려면 최소한 하루밤은 보내야 한다.
작년 이맘 때 보다 보름 늦게 다시 온 예나는 좀
더 익숙한 동네로 다가왔다. 이런 느낌을 애써 피하려는 순간적 충동에 시내에서 동떨어진 예나 남부의 고슈비츠 역에서 내렸다. 시내까지 걸어간다면 1시간 이상은 걸릴 것인데 짧은 시간 간격으로 오는 트램을 피할 수 없었다. 숙소에 무거운 소지품을 풀고 일단 나와서 맥주 한 병을 까고 작년에 놓쳤던 사진을 찍으며 바그너 거리 초입의 인도 음식점으로 직행했다. 작년에 너무 더워서 음식은 안시키고 인도산 맥주만 마셨던 곳이었는데, 그 맛과 주변의 풍광이 금단증상처럼 끌어 당긴 것 같다. 이번엔 음식과 맥주를 함께 하며 우락부락한 인상과는 달리 다정다감한 식당주인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다음날 아침엔 프롬만의 집 옆의 튜링겐주 문서보관소이자 예나 대학의 중앙도서관에 가서 헤겔 관련 서가를 둘러보고 예나 대학 본관 주변을 간격을 두고 배치된 흉상들을 따라 시내 중심부로 걸어갔다. 어제 트램을 타고 지나갈 때 이 흉상들의 최좌측에 있던 헤겔의 흉상이 안보였는데, 거기엔 바로 옆에 건립 중인 커뮤니케이션 센터의 공사를 위해 고정식 소형 타워 크레인이 헤겔의 흉상 자리에 설치되어 있었다. 물론 대학 당국에서 헤겔 흉상을 철거하지 않고 어딘가에 임시 보관 중인 것이겠지만, 굳이 알아볼 생각은 안들었다.

안녕하세요
근 2년 가까이 작업해온 헤겔의 '정신현상학' 강독 자료를 저작권 문제 소지로 모두 비공개 처리했습니다. 판본은 100년도 넘은 것이라 문제가 없다고 봤고, 상업적 목적이 없는 공유의 의도였으나, 향후 제기될 수 있는 저작권 침해에 관한 블로그 운영진의 권고를 보고, 비공개 하기로 했습니다. 자료가 필요하신 분에게는 상업적 목적이 없는 비공개 원칙 하에 자료를 메일로 공유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메일 : streetphila@naver.com
* 이런 저런 시사문제와 연계한 '정신현상학' 관련 방송은 아래 채널에서 계속 진행중입니다. 참고와 성원 부탁드립니다!
https://youtu.be/KvXBHPIlx68?is=DpAW8a77kczBXfD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