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구일섭의 서신2

서술 Beschreibung 2013. 8. 23. 23:19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구일섭과 하버마스의 서신 2 :
『의사소통행위이론2 : 기능주의적 이성 비판을 위하여』 중
V장 <미드와 뒤르켐에서의 패러다임 전환>

 

*이 글은 가상의 서신이며 텍스트 소개를 주목적으로 합니다. 인용된 텍스트의 쪽수는 문장 끝의 [ ] 안에 수자로 표기하며, 직접 인용한 텍스트의 문장은 ‘ ’사이로 넣습니다. 또한 『의사소통행위이론 1권』은 [1권, ] 으로 표기하며, 다른 인용문헌도 [ ] 로 표기합니다.
**주텍스트 : 위르겐 하버마스, 『의사소통행위이론』 2, 장춘익 역(나남, 2006).
***원문 대조본 : Jürgen Habermas, Theorie des kommunikativen Handelns band 2 Zur Kritik der funktionalistischen Vernunft (Suhrkamp, 1982).


 

루카치 (2013.08.17.月 : 구일섭이 하버마스에게)

 

편지가 많이 늦었다. 1차 서신을 마친 후,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 중 1967년 저자 서론을 지난 6월에 읽었다. 자신의 40여 년 전의 논문집을 유토피아적 관념론이라고 스스로 비판하는 루카치에 대해, 당신은 물화 개념을 통해 재차 비판을 가했다. 루카치와 아도르노는 미학을 포함한 사회철학적 주제의식의 공통성과 서술 방식의 복잡성에서 유사하기도 하지만, 아도르노는 루카치를 의식철학의 유산을 극복하지 못한 실패한 이론가로 신랄하게 비판했는데, 이 비판을 당신은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그러나 루카치는 당신들처럼 단지 이론의 전당에서 현실을 관찰하며 관조만 했던 인물이 아니다. 그는 국내적이며 국제적인 혁명의 과정에 깊이 개입하면서도 이론과 현실 해석을 통합하려고 했던, 비록 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을 지라도, 실천을 사유로 매개하려고 했던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성명이나 발표하고 각종 상을 수상하며 한가한 노년을 보내는 당신과는 첨예하게 다른 역사적 조건에서 분투했던 인물이다. 미국으로 망명해 천박한 대중문화에 아연실색하며 비판에 급급해 있던 비판이론가들과도. 당신이 루카치에게 가한 비판이 과연 얼마나 타당성이 있는지 언제 기회가 되면 좀 더 면밀히 검토해 보기로 하겠다. 여기서 내가 문제 삼는 것은, 『역사와 계급의식』에 관한 루카치 자신의 1967년 자아비판이 아도르노에겐 읽히지 않았을지라도, 분명 당신은 접했을 것인데, 이를 알면서도 재차 비판을 가하는 것은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하버마스가 참고한 루카치 전집 2권 『역사와 계급의식』의 출판 연도는 1968년임).

 

지난 4월 9일 편지의 말미에서 당신은 사회합리화의 문제를 의사소통행위의 개념과 조절매체를 통한 체계형성의 개념으로 전개하기에 앞서, 이 기본개념들을 미드와 뒤르켐의 이론에서 재구성해 보자고 했다. 이들에게서 이론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하는 이유와 앞으로의 논의 방향에 대해 설명해 달라.

 

반응형
반응형

구일섭과 하버마스의 서신 1 : 『의사소통행위이론1 : 행위합리성과 사회합리화』에 관해

 

*이 글은 가상의 서신이며 텍스트 소개를 주목적으로 합니다. 인용된 문헌은 일부 요약도 있으나 그대로 본문을 옮겨온 경우도 있습니다. 텍스트 출처를 확인하고 싶은 분은 댓글이나 메일로 메일주소를 알려 주시면 각주가 포함된 PDF 파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streetphila@naver.com

**텍스트 : 위르겐 하버마스, 『의사소통행위이론1:행위합리성과 사회합리화』장춘익 역(나남, 2006).

 

**이 글은 2013년 5월 18일 웹진 미르 http://www.themir.net에 먼저 공개된 것이다.

 

 

2013.04.01.月 : 구일섭이 하버마스에게

 

1990년대 한국사회에서 당신의 사상은 많은 파급을 미쳤다. 특히 철학, 사회학 분야에서 심했는데, 어떤 대학원 철학과에서는 대학원생 모두가 당신을 공부했어야 했다는, 다소 과장된 증언마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이런 광범위한 관심들이 오로지 당신의 독자적인 영향력 때문이라기보다는, 당신이 80년대에 ‘재기발랄한 자극’이라고 치부한 파리발(發) 포스트모던 급진 철학에 대한 당신의 대결구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80년대 초반 당신의 미국 강의에 기초한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은 이런 대결구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흥미로운 저작이었다. 여기서 보여주는 비판은 수용적 비판이라는 방식을 취한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텍스트의 전반을 아우르면서 평가를 위한 핵심을 드러내고 판정을 내리는 방식이다. 여기서 판정은 인본주의와 반인본주의의 사이에서 그 강도가 달라진다. 같은 포스트모던 사상가라도 로티에 대해서는 관대한 반면 푸코나 데리다에 대해선 가히 비정한 비판을 당신은 가한다. 여기서 비정한 비판이란 경멸의 의식에까지 이를 수 있는 비호감을 말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신의 이런 비판의식이 비단 포스트모던 사상가에게 뿐만 아니라, 위대한 철학적, 사회학적 전통상에 있는 사유의 선배들에게도 예외가 없다는 점을 『의사소통행위이론』이 보여준다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비호감이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의사소통행위론의 구축을 위한 단서들은 모두 그들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

 

당신의 사상의 궤적을 추력하려면 『공론장의 구조 변동』과 같은 초기 저작을 기점으로 삼아야 하지만, 현재 나의 관심은 당신의 전기(傳記)적 사상이 아니라 당신이 주도적으로 해명하고자 한 문제의식을 살펴보는 데 있다. 주석가에게는 불성실한 이런 태도는 적어도 현대의 마지막 사유의 거장이면서 열린 사유의 여유와 겸손함을 견지하는 학자에게는 그리 불공정한 접근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리고 특히 『의사소통행위이론』은 당신의 대표작이면서 그러한 문제의식을 포괄적이고 심층적으로 드러낸 노작이다. 먼저 이 책의 전반적 기획과 의도에 관해 설명을 부탁한다.

 

 

반응형

박경리 선생께

서술 Beschreibung 2012. 9. 12. 23:19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힘겹게 작가 생활의 절반을 기울여 탈고하신 님의 소설을 한창의 유행이 지나고, 그리고 피안으로 가신 지 4년이 넘은 이제야 읽고 이런 편지를 씁니다. 독서는 죽은 작가와 살아 남은 독자의 대화라고도 하는데 죽은 작가와 살아 남은 독자 간에 편지를 못 쓸 것도 없겠지요. 그리고 6년 전인가, 개인적으로 님이 거주하고 계셨던 원주의 토지 문학관에서 우연찮게 주말을 보냈지만 미쳐 뵙지 못한 아쉬움에서 이런 형식의 글을 쓰게 됐는지도 모릅니다.

 

소설을 다 읽고 우선 드는 생각은, 웬지 소설이 서둘러 종결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이미 이 작품을 쓰실 때 어느 시기까지 나갈지 어느 정도 방향은 정하셨겠지만, 그리고 구한말과 해방 시점 사이의 40여 년의 기간이 소설의 서사적 기간으로 그리 길다고 할 수 없더라도, 3 세대로 연결된 시간이 집단과 개인의 생생한 생활사와 시대의 굴곡 사이에서 유유히 흘러간 모습을 보여주는 대하 소설임에 분명하지만, 해방후 또 다르게  험악해지는 한반도의 살풍경을 애써 외면하고 싶어하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소설 말미에서 명희의 막대한 기부로 산채에 모인 사내들의 논쟁 중에 그런 조짐이 이미 드러나죠). 시대의 폭정에 가족의 삶이 당신의 대를 이어 유린되는 상황에서 그 정도의 선을 지키는 것이 나름의 선이겠으나, 저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이병주의  『지리산』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암울한 이 한반도의 역사를 총체적인 시점이 아닌 특정 인물들의 군락과 특정 공간을 통해 가장 은밀하면서도 구체적인 서사를 통해 구한말에서부터 꿰뚫어 보고 싶은 유혹을 님께서 너무도 강렬히 남기셨기 때문입니다.

 

후반부에 비교적 자주 등장하는 상의의 기숙사 얘기는 상당히 자전적인 기억을 옮긴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소설을 극적으로 이끌어가는 긴장과 해소의 힘은 최치수의 몰락과 음모의 발각 부분에서 고조되고 이후의 얘기들은 이 초반부의 극적 구성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딴에는 그 험준한 폭발로 고원이 생기지 않았다면 이 소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밋밋하게 전개될 소지가 있겠습니다.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하동 평사리 마을 사람들을 통해서 님은 소설의 재미가 아니라 시대에 짓눌린 이 땅의 민초들의 애환과 도전의 과정을 보여주려는 것이겠죠. 그러면서도 전염병과 불의의 사고, 전쟁, 노쇠로 일어나는 세대의 교체를 통해 생의 허망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극랄하고 악독한 처신에 대한 분명한 응징을 담담히 보여 줍니다.

   

이 소설을 탈고하시고 노년을 보내신 원주에는 멀지 않은 시기에 가볼듯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제 조준구의 아들 병수를 비롯해 아름다운 영혼들이 살았다는 통영에 내려가 보겠습니다. 

반응형

한 노숙인의 죽음

서술 Beschreibung 2011. 12. 7. 13:42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어제 PD수첩은  이 사회가 38살 노숙인 홍씨의 삶을 어떻게 뭉개버리는지 보여줬다.  빈농의 홍씨 가족이 화전에서 밀려나 도시로 뿔뿔히 흩어져 어떻게든 살아보려 애를 쓰는 과정에서, 초등학교 졸업 후 가난으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한 홍씨는 청소년기를 갖은 노동으로 혹사하다가 청년기에 도시의 공장에서 어느정도 자리를 잡지만, 공장이 부도나고 사장이 홍씨의 명의를 도용해 카드빚 2천만원을 물리게 하자 홍씨의 삶은 벼랑끝으로 몰린다. 서민에게도 부담되겠지만, 삶의 기반이 극도로 취약한 사람에게 카드빚 2천만원은 극복할 수 없는 수렁이었다. 장기간 노숙으로 병을 짊어진 홍씨가, 고향 인근의 도시에서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월 30만원의 수입과 폐지수집으로 근근히 혼자서 생활을 이어나가는 아버지를 찾아 갔을 때, 이 부자의 만남은 오래 가지 못했다. 미혼의 부양 의무자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아버지가 기초수급권자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아들을 보면서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해준 것은 치킨 주문이었다. 서울에서 홍씨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려고 했으나 근로능력이 없음을 증명할 수 없었다. 이것은 사회가 공모해 한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닐까? 젊은 시절 갖은 유랑으로 떠돌아 다니다가 폐병으로 죽어가는 크눌프는 그래도 고향으로 가서 죽을 수 있었으나, 이 노숙인을 맞이한 마지막 안식처는 차디찬 서울 도심의 공중 화장실 맨바닥이었다.   
반응형
반응형
금요일 저녁에 생각치 않게 술을 많이 마셔 토요일 오전 내내 몸이 찌뿌등했다. 같이 술을 마신 친구는 괴산에 자리잡은 한 대안적 문화기획공간에 내려간다고 한다. 아예 내려가는 건 아니고, 장기간 머물며 다큐작업을 한다고 하는데, 당분간 만나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종로의 골목에서 갈매기살로 시작해 서울역으로 옮겨 선지 해장국으로 3차까지 술을 마셨다. 전철을 타고 집에 오며 졸다가 세 정거장을 지나쳐 운길산역에서 자정이 훨 넘은 시간에 나서야 했다. 되돌아가는 전철은 없고, 버스도 끊겼으며, 히치 하이킹도 통할리 없다. 경찰에 전화해 양수리에 있는 택시를 소개받았다. 기사는 예순 가까이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인데, 팔당의 4대강 사업에 대해 물어보니, 너무 반대만 하는건 문제가 아니냐고 했다. 4대강 정비에 결사 반대하는 팔당대책위와 인근 주민의 온도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운길산역에서 덕소까지 가는데 10분 채 안걸렸는데, 거리 때문에 요금은 2만원 가까이 들었다.

다음날 오전에 천호동으로 인형극을 보러가는 가족과 이웃을 차로 태워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 구리의 한살림 매장에서 장을 본 후 오랜만에 예봉산에 올라갔다. 남아 있는 알콜 기운을 달구어진 땀으로 기화시켜 버리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전철을 타고 팔당역으로 가서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따금 소나기와 가랑비가 와서 산에는 평소 주말과 달리 인파가 적었다. 가파른 코스의 산길 4부 능선에 오르자 거친 숨에 헉헉 거렸다. 중간에 힘이 들어 3번 정도 쉬다가 7부 능선 정도에 오르니 더이상 힘들지 않아서 한번에 올라갔다. 거친 맥박에 헐떡이며 갈증이 일던 몸이 안정을 찾아가는 느낌 때문에 산에 오르거나 축구를 하는 맛이 있다. 언제가 내가 농사를 짓고 살고 싶은 것도 이런 욕구와 관련이 있다. 물론 농사에도 머리를 써야하는 일이 있지만, 농사의 기본은 몸으로 땅을 일구는 몸의 노동이다. 그러나 농사를 이런 욕구 때문에 하고 싶은 거라면 동기가 너무 취약하다. 귀촌, 귀농은 세계관의 변화와 아울러  이제까지 삶의 전면적 전환이기 때문이다.

산을 내려오면서 신발을 개울에 빨고 버스를 타고 집에 갔다. 도서관에 들러 책을 반납하고 새 책을 대출하려고 책 두 권을 가방에 넣었는데 피로와 허기 때문에 그냥 집으로 가고 만 것이다. 저녁과 다음날에 에드먼드 윌슨의 『핀란드 역으로』의 레닌 부분과 트로츠키 부분을 읽었다. 이들은 모두 망명 전에 시베리아로 유형을 갔다 왔는데, 차르 치하의 유형수 관리가 허술해서 이 혁명가들이 시베리아에서 공부하고 여행하면서 재충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시베리아 벌판의 거리, 사람이 사는 동네에서 1,600km나 떨어진 엄청난 거리가,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창살 역할을 한 것이만, 혁명가들의 호연지기만 키워준 셈이다. 반면, 스탈린 치하의 시베리아 유형은 차르 치하의 유형과 전혀 다른듯 하다.

일요일 오후엔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갔다. 또다른 농사 관련 서적을  빌리고, 못다 읽은 토마스 만의 『브덴브로크 가의 사람들』2권을 다시 빌렸다. 농사 관련 서적은 유기 텃밭 농사에 관한 것인데,  인간의 똥이 가장 좋은 거름인 것은, 인간의 장기가 거름 제조기의 역할을 한다는데 있다. 다종 다양한 음식을 이로 잘게 부수고 위에서 반죽을 만들고 영양분의 30%와 수분을 흡수한 후 배출한 똥을 밭에 뿌리고 풀과 건초를 뿌리면 저절로 땅이 떼알구조의 유기 토양으로 된다고 한다. 물론 음식은 인스턴트나 방부제, 고기류 등의 도시 음식을 주로 먹어서는 양질의 거름이 되지 않는다. 썩지 않기 때문이다. 떼알 구조의 토양이란,  물과 공기가 들어갈 수 있는 빈 공간이 50%가 되는 토양을 말한다. 이런 공간이 있어야 미생물과 각종 벌레가 살아갈 수 있는데, 이런 흙에 로타리를 치면 땅이 망간진다고 한다. 

책을 빌리고 2층의 어린이 도서관에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면서 내 책도 읽었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책도 읽어주고 내 책도 보는게, 집보다 괜찮았다. 늦은 밤에는 EBS에서 윤정희가 나오는 영화『만무방』(1994)를 봤는데, 그냥 진부한 반공 전쟁영화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재미있고 의미심장한 영화였다. 해방 후 한반도에 대한 지독한 메타포라고 할까.  함석헌은 한국이 세계의 쓰레기가 집결된 곳이며, 바로 이런 세계의 하수구에서 새로운 세계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반도 전국 각지에 펼쳐진 농촌이 20세기 초의 시베리아처럼 혁명가들의 산실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겠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