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2024/04/08'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24.04.08 좇좇소 감상과 관련 기억들

좇좇소 감상과 관련 기억들

단상 Vorstelltung 2024. 4. 8. 20:16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유트브에서 이 이해할 수 없는 제목의 드라마를 요며칠 즐겨 보면서 처음 직장생활을 할 때와 급식관련 일을 할 때의 기억이 밀려왔다. 첫직장은 금융 솔루션 중심의 벤처기업이었는데, 그 전에 나는 6개월간 개발자 교육을 받고 이곳에 기술영업직으로 입사했다. 이 업체는 이름난 대기업에서 상임이사까지 오른 사장이 퇴사 후 인수한 기업이었다.

6개월간 개발자 교육을 두 군데 교육기관에서 받았는데, 첫번째 기관에서 거의 태반 이상의 수업을 쫓아가지 못하고 수수방관한 터라 제대로 기술을 연마하지 못했다.  컴퓨터는 문서, 그것도 아래 한글의 문서작업 용도로만 활용했을 뿐, 오피스 프로그램도 사용해 본 적 없고 윈도우 탐색기라는 것도 몰랐던 컴맹인 내가 면접까지 본 첫번째 교육기관에서 수강생으로 뽑힌 것은 지금 기억해보면 "디제라티"라는 IT 관련 책을 보고 이 업계에서 꿈을 펼쳐 보겠다는 자신감의 표출이 전공과도 무관하지만 면접관에게 통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것이 합격한 수강생들은 대부분 이공계 출신이었고 나와 마찬가지로 몇몇에 불과한 인문대 출신들은 프로그래밍 관련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심지어 이 기관의 수강기간 동안 수업을 빼먹고 피서여행을 가기도 했고 한 출판사에 입사지원해 합격했지만 단 하루 출근하고 그만 둔 후 교육장에 복귀하기도 했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수업담당 실무자는 가까스로 의무 수업일수를 채운 나를 안스럽게 보면서 수료장을 건네 줬다. 이후 나는 일단 본격적으로 IT 업종 개발직으로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나는 거의 100 여 곳의 관련 기업에 이력서를 보냈고 두 곳에서 면접이 잡혔다. 제대로 된 기술증빙이 안되는 나를 그나마 면접기회라도 준 것으로 고마워 해야 했다. 취업이 안되자 나는 다시 두 번째 교육을 받기로 한 것이었는데, 첫번째는 비주얼 베이직 과정이었었고 두 번째는 자바 과정이었다. 이천년도 초반, 업계의 프로그래밍 언어의 대세는 로컬 기반의 비주얼 베이직이었고 웹 기반의 자바는 아직 생소한 시절이었다.    

아무튼 겨울기간 동안 두번째 교육을 마치고 아르바이이트를 하면서 계속 이력서를 넣다가 초여름에 두 군데서 면접이 들어왔다. 더이상 개발 쪽에서는 면접기회가
없어서 기술영업 쪽으로 방향을 튼 직후였다. 먼저 면접 본 회사는 용산에 있는 네트워크 관련 벤처였고 두번째는 포이동에 있는 금융관련 벤처였다. 면접 후 두곳 모두에서 합격했는데, 벤처라도 중소기업이기에 그래도 좀 안정적으로 보이는 두번째 회사에 입사하기로 했다.

회사는 벤처기업의 요건을 갖추기 위해 부설 연구소도 있었지만 실상은 창고에 불과했다. 그래도 15명 가량의 직원 중 총무 파트 3명과 나, 그리고 사장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은 전부 개발직이었고, 사장도 직접 코딩은 안해도 개발과 관련해 업계의 니즈와 트랜드에 정통해 있는 기민하고 끈덕진 기업가였다.

나한테는 이곳이 사회생활의 첫 시작인 셈이었는데 한달의 적응기 동안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사무실에서 감시의 눈은 사장 말고도 또 있었다. 오피스 프로그램에 익숙하지 않아 사장이 내게 일주일 내로 엑셀에 통달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고, 내가 만든 엑셀 양식의 기안서 틀을 놓고 그야말로 열댓번 퇴짜를 되풀이 했다. 그때는 그렇게 물러설 수 없다는 심정으로 사장의 요구에 맞추어 갔다. 그렇게 수습기간이 지나고 옹기종기한 규모의 회사임에도 업무적으로 다양한 일들을 치고 나갔고, 직장 선후배 동료들과 즐거운 술자리도 갖으며 1년이 되어갈 때 쯤, 회사는 정부과제사업으로도 눈을 돌렸고, 나는 이를 위한 문서작업을 맡았다. 이 일을 완료하고 난 후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그때는 그 일이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로 여겨졌고 개발쪽으로 일을 하고 싶었다. 잘못된 판단이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