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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콘래드'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4.04.17 유사한 재난
  2. 2011.07.06 제노사이드
  3. 2011.06.28 이야기의 힘
  4. 2011.06.21 해양소설
  5. 2010.07.24 조셉 콘래드, 『어둠의 속』(1899)

유사한 재난

단상 Vorstelltung 2014. 4. 17. 17:36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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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고를 보며 조셉 콘래드의 소설 <로드 짐>이 떠오른다. 이민족을 가득 실은 화물선 파트나 호가 좌초 일보 직전에 몰리자 선장과 선원들은 이 승객들과 배를 버리고 도망친다. 진도의 재난이 이 소설의 불길함을 닮아가는 것일까. 구조선들이 이미 도착한 1시간 동안 승객들에게 선실에 머물도록 5차례 이상 방송하고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 일부가 먼저 배를 빠져 나갔다는 보도는 불길함을 더해간다. 소설에서 버려진 승객들은 다행히 배가 침몰하지 않아서 인근을 지나던 프랑스 군함에 의해 구조된다. 지하세계 또는 요나를 삼킨 물고기 뱃속의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스올'을 연상시키는 저 배의 어둠 속에서 희망의 빛이 나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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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문학 Literatur 2011. 7. 6. 09:18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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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투산에서 도라민과 함께 지도자의 권위를 획득한 짐은 바다에서 해적질을 하는 브라운 패들의 침입으로 위기에 봉착한다. 파투산으로 들어가는 강의 하구에서 브라운은 노략질한 스쿠너 범선으로부터 보트를 띄어 13명의 부하들과 함께 강 상류로 진입하다가, 밀림의 원주민으로부터 격렬한 저항사격에 보트를 버리고 방어용으로 쓸만한 구릉으로 부하들과 도망친다. 여기에 목책을 구축하고 불안하게 목숨을 연명하다가  짐과 적대관계에 있던 라자 진영에서 온 밀사 카심과 비밀 접촉을 하게 된다. 다음은 브라운의 악랄한 본성을 보여주는 대목. 

"그[브라운]가 거짓 동맹 관계를 계획하고, 마음속으 그 백인[짐]의 운명에 대해 이미 결정을 내리는가 하면, 고자세로 당돌하게 카심과 음모를 꾸미면서, 그 자신도 거의 모르는 가운데 실제로 원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자기를 거역했던 그 밀림의 고을을 파괴하여 온통 시신으로 덮이고 불길에 휩싸이게 하자는 것이었음을 누구나 감지할 수 있었다."

조셉 콘래드,『로드 짐』2, 227.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이 작품의 후반부로 가면 콘래드는 서술을 말로의 이야기 방식에서 말로의 편지 방식으로 바꿈으로써, 이 작품에서  드물게 나오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의 형식을 본격적으로 도입한다.   

그리고 짐의 최후. 스타인이 짐을 가리켜 '로맨틱'하다고 규정한 것은 역자의 해설처럼 역설적이게도 자기 파괴적인 이기주의를 포함한 다중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 백인은 좌우로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향해 자랑스럽게 굽힘 없는 눈길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고 난 후 그는 손을 입술에 대고 앞으로 쓰러져 죽었다. 그게 끝이었다. 그는 구름에 가려진 채 떠나갔으며, 심중을 헤아릴 길이 없었고, 잊혀졌으되, 용서받지는 못했고, 지나치게 로맨틱했다. 그가 소년다운 꿈을 꾸던 그 걷잡을 수 없던 시절에도 이런 비범한 성공의 유혹적인 형상을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자랑스럽고 굽힙없는 눈길을 보냈던 그 짧은 마지막 순간에 그는 한 동방의 신부처럼 베일을 쓰고 자기 곁에 다가온 그 기회 ㅣ 의 얼굴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명성을 챙기는 무명의 정복자가 되어 자기의 도도한 이기주의가 보내는 손짓과 부름을 받고 샘 많은 연인[주얼]의 품에서 자기 자신을 떼어 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허깨비 같은 이상적 행위와 무자비한 혼례를 올리기 위해서 살아 있는 여인을 버리고 떠나고 있다. 그가 이제는 아주 만족하고 있는 걸까? 나는 궁금하다. 우리는 알아야겠다. 그는 우리 중의 한 사람이다."
 
상동, 291-292.

스타인은 자신의 옛친구이자 전우였던 도라민으로부터 우정의 증표로 받은 은반지를, 파투산으로 떠나는 짐에게 일종의 신임장으로 주었는데, 짐은 파투산에서 이 반지의 보증과 더불어 복수도 당해야 했다. 퇴각하던 브라운 일당의 역습에 강하구를 지키다가 전사한 도라민의 아들 다인 와리스의 손가락에 짐에 대한 신뢰의 증표로 이 반지가 끼워져 있던 것이다. 이 작품의 복잡한 서술형식은 불가지하고 혼돈스러운 짐의 캐릭터에 대한 암시를 드러내는데, 이는 새로운 형식과 더불어 더이상 영웅이라고 할 수 없는, 불완전하고 규정불가능한 주인공들이 몰려오는 현대소설의 도래를 예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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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힘

문학 Literatur 2011. 6. 28. 18:2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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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면서 자꾸만 『지옥의 묵시록』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강 깊숙히 밀림으로 들어 갈수록 새로운 사건이 기다리고 있는 장면들과 까면 깔수록 계속 핵심이 나오는 양파처럼. 화자가 화자들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에서 말로는 아주 드물게만 작가의 서술 대상이 된다. 어쩌면 우리의 오랜 조상들은 말로의 이야기 방식으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전율할 수 있는 감성을 지녔을지도 모른다.  

[말로가 스타인과 짐에 관한 얘기를 나눈 후 짐을 원시인이 지배하는 밀림의 벽지 파투산의 교역소 서기로 보내고 난 후]

"아직도 최종 판단은 내려지지 않았고 어쩌면 영영 내려지지 않을 거야. 충분한 발언이야말로 우리가 일생 동안 말을 더듬으며 노리는 유일한 지속적 의도임이 분명하지만, 사람의 일생이란 그런 발언을 하기에 너무 짧지 않은가? 만약에 최종 판단이 내려질 수만 있다면 하늘과 땅을 진동케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판단에 대한 기대 ㅣ 를 이미 포기해 버렸어. 우리의 사랑, 욕구, 믿음, 회한, 굴종, 반항 등에 대해 우리가 최종적인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영영 없을 거야. 하늘과 땅을 진동하게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해. 적어도, 하늘과 땅 어느 것에 대해서도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우리가 그걸 진동케 해서야 안되지. 짐에 대해서 내가 내릴 최종 판단은 몇 마디 되지 않을 거야. 나는 그가 위대함을 성취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이야기할 때, 아니 오히려 그걸 들을 때, 그 위대함은 왜소해지고 말걸. 솔직히 말해서, 내가 불신하는 것은 내 말이 아니고 자네들의 마음이지. 자네들이 육신을 살찌우느라 그만 상상력을 굶주리게 했다는 두려움만 없다면 나는 달변으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거야."

조셉 콘래드, 『로드 짐』2 이상옥 역(민음사, 2007, 1판3쇄), 17-18.

[짐이 파투산으로 떠나기 전, 말로와의 대화 중]
""기억을 하는 쪽은 내가 아니요 이 세상도 아니라네." 내가 소리를 질렀어. "기억은 자네가 하고 있는 거야. 자네가." 그는 조금도 움츠리지 않고 열띤 어조로 말했어. "모든 것을, 모든 사람, 모든 사람을 잊어야죠....""

상동, 34.

[짐을 데리고 파투산 입구까지 데려다 줄 쌍돛대 범선의 선장이 하는 말]
"짐이 잠시 선실로 내려간 사이에 내 말에 대합하면서 그는 "그럼요. 파투산이지요."라고 말했어. 그는 짐을 파투산 강의 하구까지만 데리고 갈 뿐 강을 "상승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하더군. 그의 유창한 영어는 마치 광인이 편찬한 사전에서나 나올 만한 말로 되어 있었어."

상동,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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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소설

문학 Literatur 2011. 6. 21. 16:5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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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래드의 소설은 『어둠의 핵심』만 읽어 봤는데, 서술형식의 특이성 외에 별도로 짙게 남은 인상은 없었다. 이 소설도 주로 말로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서술 방식은 동일하지만, 파트나 호에서 벌어진 사건에 관해 직접 서술하지 않고 주변으로 빙빙 이야기를 돌면서 사건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방식이 긴장을 서서히 고조시킨다. 이런 소설에 관해 미리 사전 정보를 읽는 것은 완벽한 스포일러일 것이다.    

[말로의 이야기]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범죄보다 더한 나약함을 저지르다가 발각된 사람을 지켜보는 일보다 더 끔찍한 것은 없거든. 가장 평범한 형태의 강건함만 있어도 우리가 법률적 의미의 죄인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하지만 우리 중의 어느 누구도 나약함으로부터는 안전할 수가 없어...반생이 넘도록 우리에게 숨겨져 있어서 더러는 그것을 감시하기도 하고 못 보기도 하고, 또 더러는 기도로써 그것을 막으려 하고, 사내답게 멸시해 버리고, 또는 억압하고 무시하기도 하지만, 그런 나약함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일세...나는 거기 서 있던 그 젊은이[로드 짐]를 지켜보고 있었지. 그의 외모가 내 마음에 들었던 거야. 그런 외모를 난 잘 안다고. 그는 출신이 좋은 사람이거든. 그는 우리들 중의 한 사람이라할 수 있어. 거기서 그는 자기 부류 사람들의 태생을 대표하고 있어. 결코 영리하거나 재미있지는 않지만 정직한 믿음과 본능적인 용기에 존재의 근거를 두고 있던 선 ㅣ 남선녀를 대표하고 있었지. 나는 군대의 용기라든지 시민적 용기라든지 또는 그 어떤 특별한 종류의 용기를 말하려는 건 아니야. 내가 의미하는 것은 그저 유혹과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타고난 능력으로서 이지적이지는 못하되 허식이 없는 마음의 태세이기도 해."   

조셉 콘래드,『로드 짐』1 이상옥 역(민음사, 2007, 1판 3쇄), 71-72.

[짐이 파트나 호를 빠져나오는 시점에 관한 말로의 이야기]
"그는 모든 사람들이 그 이상한 소음에 대해 분별력 있는 주의를 기울일 정도로 유식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철선이며 하얀 얼굴의 사내들이며 그 밖의 모든 광경과 소리 같은 배 위의 온갖 것들이 무식하고 경건한 다수의 승객들에게는 똑같이 신기하기만 했고 또 영원히 불가사의할 뿐만 아니라 믿음직해 보이기도 했겠지. 그에게는 그런 사실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 것은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했으니까."

상동, 133.

[파트나 호를 공해에서 발견해 아덴항으로 예인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프랑스 군함 장교의 이야기]
"예인하는 동안 우리는 사뭇 두 명의 조타원에게 도끼를 들려 밧줄 곁에 서 있게 했답니다. 만약에 기선이 침몰할 경우에는 우리 군함에서 예인 밧줄을 잘라버리자는 것이었지요...ㅣ 장교 한 사람이 그 배에 남아서 감시의 눈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건 올바른 판단이었습니 ㅣ 다...우리 배는 구명정들을 내릴 준비를 해두었고, 나 역시 그 배에서는 여러 조치를 취한 거예요."

상동, 214-216. 

[짐을 다시 만나 추천서를 써주기 위해 그를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온 말로의 이야기]
"그는 너무 섬세하고 섬세해서 아주 불행했던 거야. 조금만 더 거친 성격이었다면 그런 마음고생을 겪지 않았을 것이고, 한숨짓거나 불평하거나 아니면 너털웃음을 웃으며 자신과 화해했을 테니까. 좀 더 거친 성격이었다면 아무 상처를 받을 수 없을 만큼 무지했겠지만, 그런 사람이라면 내게는 전혀 흥미가 없었을 테지."

상동, 268.

짐은 파트나 호가 난파의 위기에 몰려 일촉측발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에서 멈칫거리다가 이미 구명정을 내려 승객들을 팽개친 채 자신들만 빠져나가려던 선장과 항해사 등 간부 3명의 긴박한 호출로 기선에서 뛰어 내린다. 그러나 그들은 짐을 조지라는 기관사로 오인한 것이었다. 결국 이들 세 명의 뱃사람과 함께 짐은 선원증을 박탈당하지만 이들과 달리 극심한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된다.
 
[말로의 사무실에서 계속되는 말로의 이야기]
" 나로 하여금 잠자코 있게 한 것은 그를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어. 왜냐하면 내가 만약 그를 어둠 속으로 사라지게 놓아 준다면 영영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불가해한 힘으로 날 짓누루고 있었기 때문이야."

상동, 272.

[짐이 말로의 추천장으로 두번째로 일한 항구의 선구상에서 또다시 일을 그만두고 떠나려 할 때, 이 상점의 공동경영자인 에그스트룀이 짐에게 했던 말을 말로에게 전하는 대목]
"내가 말했지요. '다만 이 말은 해두어야겠어. 자네가 계속 이렇게 살아간다면 이 세상이 자네를 지탱해 줄만큼 넓은 곳이 아니라는 것을 이내 알 걸세...'...[말로에게 짐이 파트나 호의 항해사였다는 얘기를 듣고] 세상에 누가 그런 ㅣ 걸 상관한답니까...이 세상은 그의 광분을 지탱해 줄만큼 넓은 곳이 되지 못할 거라고 녀석에게 말해 주었다고요"

상동, 295-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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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콘래드, 『어둠의 속』(1899)

책들 Bücher 2010. 7. 24. 20:2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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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제대로 집중해서 못봐서 그런건지, 번역이 시원찮은 것인지, 보고 난 후 느낌이 아리까리하다. 혹은 원작으로 코폴라에게 영향을 끼쳐 80년 후 개봉된  『지옥의 묵시록』의 영상이 더 강하게 기억에 남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콩고의 원시림은 캄보디아의 밀림으로 대체되었지만, 커츠라는 신비의 베일에 싸인  이름은 동일하다.  

10대 시절부터 동양으로 나가던 배를 타다가 항해사, 선장의 지위까지 오름으로써 성공한 뱃사람으로 장성한 폴란드 출신의 콘래드는 생생한 선박 생활의 체험을 바탕으로 19세기 말의  영국 문단에 서서히 이름을 드러냈다. 일찍 부모를 여윈 고독한 소년에게 바다의 냉정한 고요와 격로는 젊은 심장을 단련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콘래드가 만약 문학의 길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면 그는 아마도 선장생활로 인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에게 소설을 쓰고 싶은 욕구는 끊임없이 배를 타고 나가고 싶어하는 욕구의 대체물이다. 한편, 뱃사람의 경력으로 본다면, 허먼 멜빌은 조셉 콘래드에게 풋내기에 불과할 것이다.

이 소설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은 등장인물이 화자가 되어 소설을 이끌어가는 나레이션기법이다. 밤안개가 깔리며 세계의 끝까지 이어질듯한 템즈강에서 말로우가 동료들에게 상아를 쫏아 콩고에 갔던 얘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소설은 시종일관 전개된다. 소설의 시작과 중간에 필자의 개입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으나, 매우 이례적으로 나타날 뿐이다. 오디오북을 미리 예견한 것일까? 이 소설은 말로우라는 인물을 가상설정해서 말로우가 낭독하는 오디오북으로 듣는다면 더 와닿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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