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하버마스'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6.12.27 헌법과 실천
  2. 2013.08.23 구일섭의 서신2
  3. 2013.06.16 루카치
  4. 2013.04.12 구일섭의 서신1 : 의사소통행위이론1
  5. 2013.02.16 의사소통행위이론-서론 이후

헌법과 실천

주장 Behauptung 2016. 12. 27. 07:37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어느 법학자는 헌법이야말로 국민이 개돼지가 아님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유일한 문서라고 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개돼지같은 집권세력의 막장 드라마는 대통령의 탄핵심판과 형사재판을 앞두고 있다.  이 과정은 연이은 백만 촛불이라는 국민적 공분의 영향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박근혜 정권과의 결별을 결정한 언론의 폭로와 공세가 아니었더라면, 소문으로만 끝날 수도 있었던 일이다. 태블릿 PC 공개 이전에 이 정권과 결별하는 시점상 가장 극적인 경우는 조선일보다. 조선이 정권 중반기에 이미 이 사태를 인지하고 손에서 만지작거리던 것을 한겨레가 지속적으로 파고 들어갔고 마무리는 JTBC의 몫이었다. 어쩌면 조선이 계속 박근혜 정권과 밀월관계로 갔다면 이렇게 까지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더욱 무서운 일이다. 정권을 만들 수도 있고 폐기할 수도 있는 영향력을 가진 언론은 무소불위의 권력인 것이다. 헌법상의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길이 대권의 향방에 달려 있고, 이 향방을 특정 언론이 지속적으로 조작함으로써 여론을 주도한다면 헌법은 조문 속에만 갇혀 있을 것이다. 선언된 헌법을 실현하는 일은 개별적 양심의 의지와 실천이다.   

 

*참고 : 하버마스, <사실성과 타당성> 한국어판 서문   

반응형

구일섭의 서신2

서술 Beschreibung 2013. 8. 23. 23:19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구일섭과 하버마스의 서신 2 :
『의사소통행위이론2 : 기능주의적 이성 비판을 위하여』 중
V장 <미드와 뒤르켐에서의 패러다임 전환>

 

*이 글은 가상의 서신이며 텍스트 소개를 주목적으로 합니다. 인용된 텍스트의 쪽수는 문장 끝의 [ ] 안에 수자로 표기하며, 직접 인용한 텍스트의 문장은 ‘ ’사이로 넣습니다. 또한 『의사소통행위이론 1권』은 [1권, ] 으로 표기하며, 다른 인용문헌도 [ ] 로 표기합니다.
**주텍스트 : 위르겐 하버마스, 『의사소통행위이론』 2, 장춘익 역(나남, 2006).
***원문 대조본 : Jürgen Habermas, Theorie des kommunikativen Handelns band 2 Zur Kritik der funktionalistischen Vernunft (Suhrkamp, 1982).


 

루카치 (2013.08.17.月 : 구일섭이 하버마스에게)

 

편지가 많이 늦었다. 1차 서신을 마친 후,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 중 1967년 저자 서론을 지난 6월에 읽었다. 자신의 40여 년 전의 논문집을 유토피아적 관념론이라고 스스로 비판하는 루카치에 대해, 당신은 물화 개념을 통해 재차 비판을 가했다. 루카치와 아도르노는 미학을 포함한 사회철학적 주제의식의 공통성과 서술 방식의 복잡성에서 유사하기도 하지만, 아도르노는 루카치를 의식철학의 유산을 극복하지 못한 실패한 이론가로 신랄하게 비판했는데, 이 비판을 당신은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그러나 루카치는 당신들처럼 단지 이론의 전당에서 현실을 관찰하며 관조만 했던 인물이 아니다. 그는 국내적이며 국제적인 혁명의 과정에 깊이 개입하면서도 이론과 현실 해석을 통합하려고 했던, 비록 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을 지라도, 실천을 사유로 매개하려고 했던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성명이나 발표하고 각종 상을 수상하며 한가한 노년을 보내는 당신과는 첨예하게 다른 역사적 조건에서 분투했던 인물이다. 미국으로 망명해 천박한 대중문화에 아연실색하며 비판에 급급해 있던 비판이론가들과도. 당신이 루카치에게 가한 비판이 과연 얼마나 타당성이 있는지 언제 기회가 되면 좀 더 면밀히 검토해 보기로 하겠다. 여기서 내가 문제 삼는 것은, 『역사와 계급의식』에 관한 루카치 자신의 1967년 자아비판이 아도르노에겐 읽히지 않았을지라도, 분명 당신은 접했을 것인데, 이를 알면서도 재차 비판을 가하는 것은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하버마스가 참고한 루카치 전집 2권 『역사와 계급의식』의 출판 연도는 1968년임).

 

지난 4월 9일 편지의 말미에서 당신은 사회합리화의 문제를 의사소통행위의 개념과 조절매체를 통한 체계형성의 개념으로 전개하기에 앞서, 이 기본개념들을 미드와 뒤르켐의 이론에서 재구성해 보자고 했다. 이들에게서 이론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하는 이유와 앞으로의 논의 방향에 대해 설명해 달라.

 

반응형

루카치

책들 Bücher 2013. 6. 16. 23:11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3월부터 조기출근을 하다보니 주말에도 일찍 일어난다. 그래서 모처럼 아침 일찍 산에 올랐다. 멀리 가지는 못하고 약수터까지만 다녀왔는데, 그래도 그 이른 시간에 산을 타는 사람이 열 손가락 정도는 된다.  인적이 없어 약수터에서 담배까지 물었는데, 몇 모금 빨다 보니 등산객이 하나 둘 오는둥 해서 내려갈 때 까지 담배 한 까치를  중간 소등하면서 세 번에 걸쳐 나눠 피워야 했다. 일찍 산을 다녀와 하루종일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데, 그래도 산에 다녀온 기운이 있어선지 한결 기분이 청명했다.

 

도서관에서 <의사소통행위이론>을 읽다가 지칠 무렵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의 1967년 저자 서론을 읽었다. 자신의 40 여 년 전의 논문집을 유토피아적 관념론이라고 스스로 비판하는 루카치에 대해, 하버마스는 물화 개념을 통해 재차 비판을 가하는데, 진정성이 의심된다. 루카치와 아도르노는 미학을 포함한 사회철학적 주제의식의 공통성과 서술 방식의 복잡성에서 유사하기도 하지만, 아도르노는 루카치를 의식철학의 유산을 극복하지 못한 실패한 이론가로 신랄하게 비판하며, 이 비판을 하버마스는 더욱 발전시킨다. 그러나 루카치는 그들처럼 단지 이론의 전당에서 현실을 관찰하며 관조만했던 인물이 아니다. 그는 국내적이며 국제적인 혁명의 과정에 깊숙히 개입하면서도 이론의 현실 해석을 통합하려고 했던, 비록 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을 지라도 실천을 사유로 매개하려고 했던 실천적 지식이었다. 성명이나 발표하고 각종 상을 수상하며 한가한 노년을 보내는 하버마스와는 첨예하게 다른 역사적 조건에서 분투했던 인물이다. 미국으로 망명해 천박한 대중문화에 아연실색하며 비판에 급급해 있던 비판이론가들과도.

 

하버마스가 <의사소통행위론>에서 루카치에게 가한 비판이 과연 정확한지도 따져봐야 하지만, 과연 정당한 것인지도 물어 볼 수 있다. 한편 토마스 만이 장편 <마의 산>에서 염두한 인물이 루카치라는 점도 흥미롭다.

반응형
반응형

구일섭과 하버마스의 서신 1 : 『의사소통행위이론1 : 행위합리성과 사회합리화』에 관해

 

*이 글은 가상의 서신이며 텍스트 소개를 주목적으로 합니다. 인용된 문헌은 일부 요약도 있으나 그대로 본문을 옮겨온 경우도 있습니다. 텍스트 출처를 확인하고 싶은 분은 댓글이나 메일로 메일주소를 알려 주시면 각주가 포함된 PDF 파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streetphila@naver.com

**텍스트 : 위르겐 하버마스, 『의사소통행위이론1:행위합리성과 사회합리화』장춘익 역(나남, 2006).

 

**이 글은 2013년 5월 18일 웹진 미르 http://www.themir.net에 먼저 공개된 것이다.

 

 

2013.04.01.月 : 구일섭이 하버마스에게

 

1990년대 한국사회에서 당신의 사상은 많은 파급을 미쳤다. 특히 철학, 사회학 분야에서 심했는데, 어떤 대학원 철학과에서는 대학원생 모두가 당신을 공부했어야 했다는, 다소 과장된 증언마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이런 광범위한 관심들이 오로지 당신의 독자적인 영향력 때문이라기보다는, 당신이 80년대에 ‘재기발랄한 자극’이라고 치부한 파리발(發) 포스트모던 급진 철학에 대한 당신의 대결구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80년대 초반 당신의 미국 강의에 기초한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은 이런 대결구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흥미로운 저작이었다. 여기서 보여주는 비판은 수용적 비판이라는 방식을 취한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텍스트의 전반을 아우르면서 평가를 위한 핵심을 드러내고 판정을 내리는 방식이다. 여기서 판정은 인본주의와 반인본주의의 사이에서 그 강도가 달라진다. 같은 포스트모던 사상가라도 로티에 대해서는 관대한 반면 푸코나 데리다에 대해선 가히 비정한 비판을 당신은 가한다. 여기서 비정한 비판이란 경멸의 의식에까지 이를 수 있는 비호감을 말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신의 이런 비판의식이 비단 포스트모던 사상가에게 뿐만 아니라, 위대한 철학적, 사회학적 전통상에 있는 사유의 선배들에게도 예외가 없다는 점을 『의사소통행위이론』이 보여준다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비호감이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의사소통행위론의 구축을 위한 단서들은 모두 그들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

 

당신의 사상의 궤적을 추력하려면 『공론장의 구조 변동』과 같은 초기 저작을 기점으로 삼아야 하지만, 현재 나의 관심은 당신의 전기(傳記)적 사상이 아니라 당신이 주도적으로 해명하고자 한 문제의식을 살펴보는 데 있다. 주석가에게는 불성실한 이런 태도는 적어도 현대의 마지막 사유의 거장이면서 열린 사유의 여유와 겸손함을 견지하는 학자에게는 그리 불공정한 접근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리고 특히 『의사소통행위이론』은 당신의 대표작이면서 그러한 문제의식을 포괄적이고 심층적으로 드러낸 노작이다. 먼저 이 책의 전반적 기획과 의도에 관해 설명을 부탁한다.

 

 

반응형

의사소통행위이론-서론 이후

책들 Bücher 2013. 2. 16. 12:44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주말 동안 하버마스의 이 책을 읽어 나갔는데 속도가 매우 더디다. 몇 년만에 이론서를 보니 그렇겠지만, 쉽지 않은 맥락과 문체이기도 하다. 장중한 서론을 마치고 하버마스는 베버의 합리화이론을 검토한다. 그에 따르면, 역사철학적 합리성 개념과 사회진화론의 기능주의적 개념을 벗어나 분화된 사회형태에 맞춰 합리성 개념을 세운 장본인이 바로 베버다. 베버에 의해 서구의 합리성 개념이 보편화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는데, 인성의 측면에서 이 계기의 추동력은 종교 합리화에서 일어나며, 사회체제의 면에서 합리화는 자본주의의 발전과 국가기구의 관료화에서 일어난다.  신칸트 학파의 영향을 받은 베버의 관심사는 인성의 측면에 집중되며, 그의 종교사회학 논문집은 개신교를 통해 직업적 성공이 구원의 은총과 절충할 수 있는, 탈주술화된 목접 합리성의 유형을 추적한 결과물이다.  

 

하버마스가 본론의 시작을 베버에게서 시작하는 이유는, 보편화 가능한 규범의 모델을 베버에게서 재구성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맑스에게서 규범은 자유로운 개인의 연합이라는 미래적 가치에 투사될 뿐 개념화되어 있지 않으며, 그의 비판이론 전임자인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규범적 합리성을 체제의 폭력적 합리성에 묻혀 버렸다.  형이상적 근거에서 합리성을 추구하는 것은 관렴론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진화론의 개념을 차용한 유기적 사회진화론은 자연주의의 오류라는 전통적 비판에 직면하므로, 오직 사회 현상의 정신사적 맥락에서 합리성 개념을 끌어낸 점에서 베버의 숙고된 작업이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베버는 사회 합리화의 보편화 경향이 서구의 전유물로는 보지 않지만, 서구 유럽에서 분명하게 표출된 일련의 흐름으로 본다. 불교에서도 경전과 의식, 집례, 명상의 유형에서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의 역사가 보여준 변화만큼 역동적이지는 않다. 더군다나 발전하는 자본주의의 비상에 면죄부를 주어 세속의 욕망을 종교적 소망과 결합시키는 칼뱅주의적 성과는 시대 침투적이다. 이런 점은 현재 한국 교회에 너무나도 속속들이 그리고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종교가 전부였던 시대에 세속적 동기를 탈주술화된 종교로 합리화하는 정신적 성과와 훈련이 서구에서 물밀듯이 일어난 과정을 베버는 철저히 포착한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