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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굴레에서'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0.05.02 젊은 예술가의 안착
  2. 2010.04.26 사랑이 죄인가
  3. 2010.04.22 친절한 상담
  4. 2010.04.20 악평
  5. 2010.04.16 생활의 폭압

젊은 예술가의 안착

책들 Bücher 2010. 5. 2. 15:1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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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셋 모옴의 『인간의 굴레에서』를 다 읽었다. 증권투자로 돈을 날려 의학공부를 접은 채 노숙하며 전전하던 필립은 애설니의 도움으로 어렵게 의류 상회에 취직한다. 이후 블랙스터블에 있던 백부의 죽음으로 유산을 상속받아 7년간의 의학공부를 마치고 면허를 딴 뒤, 선의(船醫)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닐 꿈을 꾸던 필립은 애설니의 장녀 샐리와 뜻밖의 운명에 놓이게 된다. 애설니 가족과 필립이 켄트지방에서 홉을 따는 이야기가 나오는 소설의 후반부는 귀농을 그리는 아름다운 한 편의 전원소설이다. 몇 개의 문장이 이 소설의 전반적 주제를 암시해 줄 것이다. 그것은 원래 의미가 없는 삶에 의미의 굴레를 씌워 집착하지 말고 양탄자를 짜듯 무의미한 세계에 자신의 실날로 즐겁게 자신만의 무늬를 짜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예술가의 구도적 집념과 일상인의 현실인식이 격렬히 충돌하는 모습이 아주 심각하지 않게는 보여지지만, 작가는 현실의 건전한 상식에 대한 긍정으로 끝맺음한다.   

"크론쇼가 언젠가, 공상의 힘으로 시공의 두 영역을 영유하는 사람에게는 삶의 사실들이란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인간의 굴레에서』2, 496면.

"행복에 굴복하는 것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일지 몰랐지만 그것은 수많은 승리 보다 더 나은 패배였다."

상동, 5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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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죄인가

문학 Literatur 2010. 4. 26. 22:35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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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적으로 사랑을 받쳤지만 상처만 주고 떠나버린 밀드레드를 잊고 새로운 다정한 연인 노바와 행복히 지내던 필립은 버림받고 돌아온 밀드레드 앞에서 다시 무너진다. 사랑은 죄는 아니지만 사람을 죄인으로 만든다.

"노라와 행복해지고 싶기보다 밀드레드와 불행해 지고 싶은 것이다...소파 위에 파란 표지의 조그만 책 한 권이 펼쳐진 채 엎어져 있었다. 필립은 무심코 그 책을 집어들었다. 싸구려 대중소설로 작가는 코트니 페지트였다. 노라가 필명으로 쓰는 이름이었다. "이 사람 책 너무 맘에 들어요" 밀드레드가 말했다. "이 사람이 쓴 건 다 읽었어요. 아주 세련된 작품이라구요" 언젠가 노라가 자기 글을 두고 한 말이 생각났다. " 내책은 하녀들이 엄청나게 좋아해요. 내 작품을 아주 고상하게 보나봐요.""

『인간의 굴레에서』2(민음사, 2008, 1판20쇄), p.54, 60.

밀드레드에게 이미 마음이 넘어가고 노바에게서 마음이 멀어져 가지만 그래도 노바에게 동정-동병상련의-이 남아있던 필립에게 다중연애의 달인인 동료 그리피스가 충고해 준다. 그러나 필립의 소개로 만난 그리피스와 밀드레드는 서로의 관능에 끌려 연인이 되고 만다.  

"이 사람아,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누군가는 괴로움을 겪을 수 밖에 없어.이를 악물고 참어. 한 가지는 분명하니까. 오래 가지는 않을 거야...ㅣ괴로움을 주는 게 그렇게 마음에 걸린다면, 그 여자에게 다시 돌아가는 수 밖에...편지를 쓰게. 다 끝났다고 말하는 거야. 그 점에 오해 없도록 분명히 해두어야 해. 상처를 받겠지. 하지만 이런 때는 어정쩡하게 처신하기보다는 매정하게 처리해 버리는 편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덜 주는 법이야" 

상동, 6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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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상담

문학 Literatur 2010. 4. 22. 11:1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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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휴가라서 아침부터 마을 도서관에서 루만의 『사회체계이론』을 보다가, 아무래도 이제 소설책 읽기는 잠시 접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마 안남았던 『인간의 굴레에서』1권을 마져 다 읽고 반납했다. 화가의 길을 접은 현실적인 필립은 의사의 길로 나선다. 소설의 1권 뒷부분은 신사와 카페 종업원의 쓰라린 연애담이다.

보통의 화가가 될 정도의 재능 밖에 안될 바에야 다를 길을 찾아 볼 것을 고민하는 필립이 화가의 길에 정진하고 있는 클러튼에게 듣는 얘기.

"아, 이보게, 신사가 되고 싶으면 화가를 포기할 수 밖에 없네. 신사와 화가는 연관이 없어. 노모를 모시겠다고 상품화를 그리는 사람들 얘기 들어봤을 거야. 효자는 효자지. 하지만 그렇다고 형편없는 그림을 그려도 된다는 건 아냐. 그러면 장사꾼에 불과해. 화가라면 어머니를 구빈원에 가게 할 거야."

『인간의 굴레에서』1, p.408.

계속해서 고민하던 필립이 자신의 재능을 확인하기 위해 프아네 선생에게 자신의 그림을 보여 주고 그로부터 받는 충고.

"가진 돈이 얼마 없다고 했나?...[먹고 살기에도 힘들다는 필립의 얘기를 듣고] 세상에서 가장 굴욕스러운 일은 말이지, 먹고 사는 걱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이야. 난 돈을 멸시하는 사람들을 보면 경멸감밖에 들지 않네. 그런 자들은 위선자가 아니면 바보야. 돈이란 제 육감과 같아. 그게 없이는 다른 오감을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지. 적정한 수입이 없으면 인생의 가능성 가운데 절반은 막혀버리네. 딱 한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한푼 벌면 한푼 이상 쓰지 않아야 한다는 거야. 예술가에겐 가난이 제일 좋은 채찍이 된다는 말들을 하잖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가난의 쓰라림을 직접 겪어보지 못해서 그래. 가난이 사람을 얼마나 천하게 만드는지 몰라. 사람을 끝없이 비굴하게 만드네...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적어도 품위를 유지할 수 있 ㅣ 는 정도, 방해받지 않고 일을 할 수 있고, 너그럽고 솔직할 수 있을 정도, 그리고 독립적으로 살 수 있을 정도는 있어야지. 나는 말이지, 글을 쓰건 그림을 그리건 예술하는 사람이 먹고 사는 일을 자기 예술에만 의존한다면 그런 사람을 정말 가련하게 보네...자네에겐 손재주가 어느 정도 있네. 끈기 있게 노력하면 꼼꼼하면서도 쓸 만한 화가가 되지 말란 법은 없지. 자네보다 못한 화가들도 수백 명이 되고, 자네 정도 그리는 화가들도 수백은 되네. 자네가 내게 보여준 그림들에는 재능은 없네. 열성과 지성은 있어. 자넨 보통 이상의 화가는 되지 못할 거야...자네가 내 충고를 바란다면 말일세, 이렇게 말하고 싶네. 용기를 내어 딴 일에 운을 걸어보라고 말일세.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겠네만 들려주고 싶은 말은 이거네. 내가 자네 나이 때 누가 내게 그런 충고를 해주었다면, 그리고 내가 그 충고를 받아들였다면 정말 얼마나 좋았을까 싶네...때가 너무 늦은 뒤에 자신의 범용을 발견한다는 건 끔찍한 ㅣ 일이야. 그렇다고 인격 수양이 되는 것도 아니고." 

상동, 41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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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평

문학 Literatur 2010. 4. 20. 18:05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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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미술공부한지 2년 된 패니 프라이스에게 프와네 선생이 쏟아낸 악평. 이런 악평을 듣고도 '화가로 먹고 살' 작정을 하는 프라이스의 기개 하나는 배울만 하다. 그러나 예술 뿐만 아니라 빵에도 굶주렸던 프라이스가 삶의 벼랑끝까지 갔을 때, 그녀의 손을 잡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 자네는 내가 무슨 말을 해주길 바라나?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해 주길 바라나? 그런데 그렇지 않아. 잘 그렸다고 말해 주길 바라나? 못 그렸어. 장점이 있다고 말해 주길 바라나?  없어. 어디가 잘못됐는지 지적해 주길 바라나? 다 잘못되었어. 이 그림을 어떻게 하라고 말해 주길 바라나? 찢어버려. 자 이제 됐나?"

『인간의 굴레에서』, p.328.

괴짜 선생인 크론쇼가 필립에게 하는 설교.

"자네도 나이가 들면 알게 될 거야. 세상을 살 만한 장소로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도 필요한 일은 인간의 불가피한 이기성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것을. 자넨 타인에게 이기적이 아니기를 요구하는데 그건 자네의 욕망을 위해 타인더러 자신의 욕망을 희생하라고 하는 모순된 주장이야. 타인이 왜 그래야 하나. 모든 개인이 세상에 살면서 자기자신을 위한다는 사실을 자네가 받아들여야 자넨 다른 사람들에게 덜 요구할 수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덜 실망할 거고, 다른 사람들을 더 자비롭게 바라볼 수 있어. 사람은 인생에서 단 한 가지를 추구하지. 그건 자기 자신의 쾌락이야."

상동,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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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폭압

단상 Vorstelltung 2010. 4. 16. 23:22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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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후배와 전철을 타고 집에 가면서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과시용으로 보일만큼 직장에서 열성적으로 일하는 이 친구가 지금 다니는 직장을 평생 직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생각하지 않기 보다는 과연 그곳에서 오래 동안 살아 남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연수가 쌓일 수록 숨이 턱턱 막히듯이 조여져 가는 건 일반적인 직장생활에서 피할 수 없는 현상인지 모른다. 연수가 올라갈 수록 어떤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않으면 치이고 만다는 듯이 인간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가면서 사회는 인간을 계발시킨다. 

"나이가 들면서 필립은 백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필립은 솔직하고 고지식한 편이었다. 그래서 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실천할 수 없는 것도 성직자의 입장으로서는 열심히 설교할 수 있다는 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의 굴레에서』1, p.135.

다음은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인간의 의지적 실천에 관해 모옴이 어떤 입장을 지녔는지 살짝 보여주는 구절이다. 뒤끄로는 소설에서 필립의 프랑스어 노선생.

"인간 평등과  인권 옹호 사상을 열정적으로 신봉했던 무슈 뒤끄로는 토론도 하고, 논쟁도 하고, 파리의 바리케이트 뒤에서 싸우기도 하다가, 오스트리아 기병이 밀라노를 공격하기 전에 탈출하며, 여기서는 투옥되고, 저기서는 추방당하는데, 그러면서도 마법과도 같은 그 말, 자유라는 말에 늘 희망을 걸고 다시 기운을 차렸다. 그러다 마침내, 병과 굶주림에 몸이 망가지고, 나이가 들어 이제는 어쩌다 얻어걸리는 가난한 학생들의 개인교습밖에는 입에 풀칠할 재간이 없는 신세로 전락하여, 이 아담한 소읍[하이델베르크]에서 유럽의 어떤 폭정보다 더 잔인한 생활의 폭압에 신음하고 있다."

상동,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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