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의 산고(화, 다시 추워짐)

문학 Literatur 2012. 2. 7. 13:46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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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에 입당한지 얼마 안된 짐은 골수 당원이자 파업 전문가인 맥과 함께 캘리포니아의 사과농장에 잠입한다. 들어가자마자 이들은 농장의 일용 노무자들을 이끄는 지도자 런든을 찾아 가는데, 런든의 막사에서는 런든의 며느리가 해산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상태에서 극심한 산고의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맥은 이것이 런든의 신임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애를 받아본 경험도 없으면서도 짐과 함께 달려들어 결국 성공한다. 파업의 전야에 일어난 이 일은 파업에 대한 상징이다. 파업에 돌입한 농장의 노동자들은 출혈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바리케이트를 쳐부수고 파업 파괴 노동자를 처단하려 진격하기도 하지만, 산고의 아픔 처럼 파업이 하루 이틀 연장될수록 고통과 불편이 이들을 짓누른다. 파업은 노사 양측에서 협상의 여지가 없을 때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가 자신의 생존조건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최후의 무기, 사용자를 향한 무기이면서 자신에게도 겨누어지는 무기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앤더슨의 소농장에 건설된 파업 노동자들의 임시 주거촌에서  위생과 의료를 담당한 의사 닥 버튼은 파업의 소용돌이를 냉정하게 관찰하면서 그러한 비관적 전망을 던진다. 간이 식당차를 운영하는 앨을 통해 파업 기간동안 노동자들이 머물 주거촌을 확보하고, 딕을 통해서는 식량을, 조이를 통해서는 파업파괴 노동자의 회유를, 닥을 통해서는  위생과 의료를 확보하는 식으로 성공적인 파업을 위한 준비를 마친 맥은 초반에는 파업의 승리를 가늠하고, 온갖 기회(조이의 장례식, 앨의 식당차 전소, 연단에서 파업 지도자 런든을 모함하다 런든에 의해 쥐어 터진 헌터)를 활용해 파업을 성공시키려 하지만 보안관과 보안관 보조 대원들 및 농장주의 자경대원들로 잘 조직된 파업 분쇄의 벽이 점차로 이들을 궁지로 몰아 넣는다. 그리고 그 마지막 기회를 위해 자신을 던질 각오가 되어 있던 짐을 맥은  엄숙히 이용한다. 

아들이 자경대원에게 린치를 당하고 그의 식당차가 전소되었으며, 농장 헛간과 포인터까지 잃어버린 앤더슨의 몰락에 대해 짐은 재산을 잃어버린 게 무슨 대수냐는 식으로 말하며, 가진 게 없는 무산자인 자신과 같은 노동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다고 한다. 파업은 유산자에게는 재산의 낭비이지만 무산자에게는 희생을 담보한 투쟁인 것이다. 특히나 파업의 주모자에게는 더욱 더.

[에필로그 : 맥이 짐의 얼굴없는 몸을 가리키며]
"이 친구는 자신을 위해 원한 게 아무것도 없었소. 동무들! 그는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단 말이오."

존 스타인벡,『의심스러운 싸움』In Dubious Battle(1936) 윤희기 역(2006, 보급판1쇄), 327면.

*이 소설은 이 소설의 출간 2년 후 나온 『분노의 포도』와 비교해 보면, 파업의 의미를 거시적으로 보여주기 보다는 국지적인 파업 현장의 이야기를 파업 주동자의 관점에서 전개시킨다. 반면 『분노의 포도』는 두 가지 서술형식을 병치시키면서 오키들의 이주 원인과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문학적 세련미와 미학적 완성도에서는  단연『분노의 포도』가 앞서지만 『의심스러운 싸움』은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을 연상시킬 정도로 생생한 다큐 문학의 느낌도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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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과 24일 부서연수가 강릉 포남동에서 있었다. 첫날은 예전에 한 번 방문한 적이 있는 주문진의 가공공장을 둘러 보고,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저녁까지 회의를 한 후, 새벽까지 술집과 당구장을 전전했다. 다음날은 동해의 처가로 일행들이 나를 데려다 주고 서울로 올라가기 전, 전망 좋은 동해 휴게소와 대진의 방파제로 내가 일행들을 안내했는데 다들 좋아했다. 처가에서 하룻밤 자고 어제 뒤늦게 내려온 가족을 남겨두고 오늘 점심 때 혼자 귀경길 버스에 올랐는데, 삼척에서 출발해 동해를 거쳐 동서울로 가는 이 버스의 내 자리 옆에 사북,정선,태백을 지역구로 하는 통합민주당 최종원 의원이 먼저 타고 있었다. 그냥 비슷하게 생긴 사람일 수 있을 듯 해서 횡성휴게소까지 모른 척 하면서 졸고 가다가 버스가 횡성 휴게소에서 떠날 때 내가 먼저 인사를 하고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할 때 까지 주로 정치 현안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개인적인 일정에는 이렇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얘기와 이런 저런 의정활동에 들어가는 품에 비해 의정활동비가 현실화되어 있지 않아 대다수 국회의원이 이리 저리 손을 벌릴 수 밖에 없는 의정 현실에 대한 공분이 이어졌다. 종편 관련 방송위 국감에서 보여 주었더 투사 이미지 답게 민주당의 통합과정에 대해서 강한 비판을 보여 줬는데, 새롭게 진입한 젊은 신진세력에 대한 견제감을 보이는 반면 문성근의 정치참여에 대해선 우호적인 반응을 보여줬다. 혹시 배우로 다시 복귀한다면 같이 일해 보고 싶은 감독이 있냐고 물었더니 이명세나 임권택 같은 감독들이 제대로 펀딩을 못받아 작품활동을 할 수 없는 영화계 현실의 어려움을 개탄했다. 정치현실과 당내 계파 갈등에 대해 진저리난다는 듯한 토로와 표정을 보여주면서도 분명히 19대에도 출마할 뜻이 있음을, 당내 경선에서 당권 도전 의사가 없냐는 질문에 자신은 야권 내에서도 야권을 표방하는 무당파라는 소신의 답변에서 읽을 수 있었다(그 다음날인 26일에 통합민주당의 지도부를 뽑는 예비경선이 있다). 지난 국감 때 감사대상인  KT 간부들과 있었던 술자리 파동에 대해선 다소 억울한 입장임을 말하면서 당장 28일 열리는 MB의 영부인 김윤옥의 명예훼손건에 대한 재판에 더 신경을 쓰는 인상을 받았다. '영부인이 권력을 이용해 재산을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발언 때문에. 한강변에 들어서는 버스에서 석양을 받으며 영화계 현실을 얘기하는 초로의 배우 출신 의원이 보여주는 모습은 40년 배우 인생의 최종 기착점은 배우임을 알리는 사명감마져 보일 정도로 진중했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지난 한 주간 보아온 황순원의 『神들의 주사위』를 다 읽었다. 작가가 60대의 나이 이후에 이런 장편을, 소설가  김치수의 해설처럼 인물들간의 대단한 조직성을 갖춰 장인정신으로 제작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시골 토호 집안의 촉망받는 한 고시생의 로망과 농촌문제 및 환경오염, 통치문제에 대한 고발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다만 주요 인물들간의 일부 대화가, 작품 전체에서 드러나는 정성어린 표현기법에 비해 다소 부자연스러운 감이 있다. 해설자도 지적하고 있지만, 이 작품의 장르는 딱히 규정하기 힘든 점에서 로망이라고 봐야할 개인적 서사이지만, 도시자본에 종속되어 붕괴하는 농촌 사회에 대한 공분은 있어도 이를 극복하는 미학적 상징성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와 같은 역작에 비해 약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무지몽매한 내게 여름 한 철 잠깐 내렸다 그치고 말 '소나기'로만 기억되는 작가가 이런 작품을 이미 30 년 전에 내놓았다는 것은 시대의식의 선견지명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염색공장이 들어서는 농촌 사회에서 지역개발을 우선하는 유지들과 이를 염려하는 지식인 계층간의 대립구조는 원전단지 유치 예정인 삼척과 영덕에서 확대재생산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인접 지역구의 최의원에게 물어봤는데, 원전의 위험성을 어느 정도 알지만 아무래도 지역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 아니냐는 식으로 들리는 애매한 답변을 들었다.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텍스트 : 황순원, 『神들의 주사위』(문학과 지성사, 황순원 전집 10, 2003년 재판 3쇄) 
출판이력 : 1978년, 『문학과 지성』봄호, 첫 회 발표. 
               1980년 7월 『문학과 지성』정간, 
               1981년 『문학과 지성』8월호부터 1982년 5월호까지 연재.
등장인물 : 두식영감, 한영아범, 한영, 한수, 진희, 세미, 병배, 민섭, 봉룡, 문진영감, 송회장, 윤의사, 보건소장, 강사장, 심읍장, 명재소년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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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후유증

책들 Bücher 2011. 9. 15. 14:42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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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기간동안 집의 컴퓨터와 차량이 큰 고장을 일으켰다. 추석 당일 아침, 가족과 함께 동해로 향하던 차량에서 타는 냄새가 났고 오르막길에서 힘을 내지 못했다. 10년도 넘은 차량이긴 하지만 그런대로 잘 관리를 해서 이 지경까지는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수동 기어의 변속감도 없었다. 풍수원에서 견인차를 불렀는데, 횡성 읍내에서 유일하게 문을 열었다는 정비소로 안내했다. 견적가가 너무 비싸게 나와 다른 정비소를 알아보러 횡성을 뒤지다가 그냥 동해로 출발했다. 90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고, 주행중에 변속을 할 필요도 없어서 운행할 만 했다. 무사히 처가에 도착해 다음날 동서 형님이 소개한 천곡동의 카센터에 갔다. 여기서 미션을 들어내는 장작 5시간의 수술을 받은 승용차는 수술의 여파로 이젠 트럭같은 소리를 낸다. 장거리를 대비해서 차량 정비를 어느 정도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잦은 고장을 일으키는 낡은 트럭을 손수 수리해 가며 오클라호마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이주하는  톰 조드 가족의 고군분투를 그린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로 이어졌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봉착한 험난한 도정에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이런 작품은 무형의 자산이다.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단테, 『신곡 : 지옥편』La comedia di Dante Alighieri-Inferno 박상진 역(민음사, 2011, 1판 11쇄) 1곡,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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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폭력

문학 Literatur 2011. 8. 10. 09:4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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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은 그의 가족과 함께 세번째로 옮겨간 복숭아 농장의 천막촌에서, 파업을 일으키고 외부로 쫏겨난 케이시를 만나게 된다. 경찰과 협력해 파업 잔당을 몰아내려는 주민이 곡괭이 자루로 케이시를 가격해 숨지게 하자 톰은 그 자리에서 이 살인자를 동일한 방법으로 쳐죽인다. 톰의 가족은 톰으로부터 이 사실을 알게 되고,  가족을 떠나 멀리 도망치려던 톰은 어머니의 만류로 이날 밤 톰의 가족이 네번째로 옮겨간 목화밭 유개화차 주변 개울가의 덤불과 배수로에 몸을 숨기게 된다. 맥알레스터 교도소에서 살인죄로 형기를 마치고 가석방되었던 톰 조드는 다시 살인을 저지름으로써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한 번의 살인은 정당방위에서, 또 한번의 살인은 부당한 폭력에 대한 항거로. 다음은 얼굴에 심한 상처를 입고 코뼈가 부러져 집에 들어온 톰이 가족들에게 하는 말 ]

"그 사람[톰 조드]이  뭔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이런 생각을 하고 있겠죠. '그래. 교수대에서 깨끗이 죽자. 내가 잘못을 저질렀으니 벌을 받아야지.' 하지만 그 사람은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어요. 기분이 스컹크 한 마리를 죽였을 때랑 별로 다르지 않다고요."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2 The Grapes of Wrath (1939) 김승욱 역 (민음사, 2009, 1판 4쇄), 361면.

인간이라고 부르기 합당하지 않은 자를 처단하는 것이 정당함을 작가는 톰 조드의 행위를 통해 주장한다. 매값을 던지며 사람을 두둘겨 팬 M&M의 재벌 2세 같은 놈들을 죽여버리는 것은, 법의 이름으로는 불법이라도 정의의 이름으로는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야기 전개와 별개로 각 장 사이에 끼어있는 에세이 형식의 글은 특정 개인사의 이야기를 넘어 미국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봄까지 일이 없어. 일이 없다고.
 일이 없으면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거야.
 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땅을 갈고 풀을 벨 때 말을 이용하지. 하지만 말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녀석들을 ㅣ 굶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건 말 얘기지. 우린 사람이잖아.
 여자들은 남자들을 지켜보았다. 결국 파국이 왔는지 보려고. 여자들은 말없이 서서 지켜보았다. 모여 있는 남자들의 얼굴에서 공포가 사라지고 대신 분노가 나타났다. 여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아직 파국은 오지 않았다. 두려움이 분노로 변할 수 있는 한, 파국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상동, 43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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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익어 가는 폭동의 조짐

책들 Bücher 2011. 8. 4. 15:0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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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쫏겨나듯 오클라호마의 샐리소를 떠난 톰의 가족은 우여곡절 끝에 캘리포니아에 도착하지만, 고속도로의 중간 중간에 만났던 사람들의 경고처럼 서부에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음을 알게 된다. 남동부 전역에 뿌려진 캘리포니아 농장의 구인 전단은 노동공급을 늘려 노임을 낮추려는 것, 곧 산업예비군의 양성으로 기층민중의 생활을 폭압적으로 몰아가면서 저렴한 값으로 쉽게 뽑고 쉽게 자를 수 있도록 이들을 관리하려는 것이었다. 매스의 단위로 인간을 관리하는 이런 현상은 아감벤이 지적하다시피, 생명이 관리대상으로 포섭되는 아우슈비츠를 전형으로 해서, 첨담화되는 정보통신기술과 맞물려 이제 온사회에 퍼져가고 있다.] 

"땅은 더욱더 소수의 손에 집중되었고,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났다. 대지주들은 사람들을 억압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엄청난 재산을 보호하는데 필요한 무기와 독가스를 사는 데 많은 돈을 썼다. 혹시 사람들 사이에서 불온한 소리들이 오가지는 않는지 감시하기 위해 첩자들도 보냈다. 폭동이 일어나면 짓밟아 버리기 위해서였다. 대지주들은 경제적 변화도 무시했고, 변화를 위한 계획도 무시했다. 폭동의 원인이 계속 존재하는데도 대지주들은 폭동을 분쇄할 방법만 생각했다."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2 The Grapes of Wrath (1939) 김승욱 역 (민음사, 2009, 1판 4쇄), 23면.

"기업들, 은행들도 스스로 파멸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몰랐다. 농사는 잘되었지만 굶주린 사람들은 도로로 나섰다. 곡식 창고는 가득 차 있어도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구루병에 걸렸고 펠라그라병 때문에 옆구리에서는 종기가 솟아올랐다. 대기업들은 굶주림과 분노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들은 어쩌면 품삯으로 지불할 수도 있었을 돈을 독가스와 총을 사들이는 데, 공작원과 첩자를 고용하는 데,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사람들을 훈련하는 데 썼다. 고속도로에서 사람들은 개미처럼 움직이며 일자리와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분노가 끊어오르기 시작했다."

상동,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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