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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셋 몸'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1.05.05 열정
  2. 2011.05.02 몸의 『면도날』외
  3. 2010.04.26 사랑이 죄인가
  4. 2010.04.20 악평
  5. 2010.04.16 생활의 폭압

열정

책들 Bücher 2011. 5. 5. 22:32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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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의 래리에 대한 사랑이 열정없는 그것이었음을 작가가 지적하는 대목. 이런 점에서는 래리도 마찬가지였다.

"열정은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파스칼은, 가슴은 이성이 이해하지 못하는 나름대로의 이유를 갖고 있다고 말했지. 내 생각이 맞는다면 그건 열정이 가슴을 사로잡으면 가슴은 사랑을 위해 세상을 잃어도 좋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그럴듯한, 심지어는 결정적인 이유들을 만들어 낸다는 뜻이야. 그래서 명예를 희생시켜도 좋고 치욕도 그리 큰 대가가 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지. 열정은 파괴적인 거야.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파넬과 키티 오셰이도 결국 ㅣ 열정 때문에 파멸로 치닫고 말았잖아. 그리고 열정은 무언가를 파괴하지 않으면 소멸해 버려. 그러고 나면 수년 동안 인생을 허비했다는 걸 깨닫고 비참한 기분이 들겠지.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하면서 무서운 질투의 고통을 견뎌 내고 그 모든 쓰디쓴 치욕을 삼켜야 하는 순간이 올 테니까. 자신이 가진 애정을 전부 가난한 매춘부에게 소진했음을, 어리석고 하찮은 존재에게 자신의 꿈을 모두 걸었음을, 껌 한 쪽만도 못한 상대에게 영혼을 전부 쏟아부었음을 깨닫는 비참한 순간이 찾아오는 거지."

서머셋 몸, 『면도날』The Razor's Edge(1944) 안진환 역(민음사, 2010, 1판2쇄), 280-281.

모처럼의 휴일, 지역의 자그마한 어린이날 행사장에서 아이들과 적당히 놀고 집에서 적당히 쉬었다. 이청준의 『축제』를 읽으며 이걸 다른 언어로 번역된 걸 읽으면 어떨까 생각하니 아찔했다. 이청준 식의 특유 문형에 전라도의 사투리들. 결국 번역문은 어느 정도 문체의 느낌상으로나 의미상 손실을 감안하고 읽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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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면도날』외

문학 Literatur 2011. 5. 2. 15:3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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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서머셋 몸의 『달과 6펜스』와 『인간의 굴레에서』를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앞의 두 소설과 함께 그의 삼부작의 완결판이라는 『면도날』을 읽었다. 책 두께는 면도날을 무색해 할 만큼 두텁지만 그 제목은 매우 예리하다. 면도날을 그냥 넘기 힘들듯이 구원의 길이 험난함을 암시하는 제목이다.  이미 소설가로서의 입지와 영예를 획득하여 여유로운 중년을 넘긴 서머셋 몸은 그의 삶의 중반기에 알게된 주변 인물들을 십여년의 세월을 함께 관통하며 소설화시켰다. 래리, 엘리엇, 이사벨, 그레이, 소피, 코스티 등등. 주제나 소재는 앞의 두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작가 스스로 이야기에 등장하면서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주변의 특정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서술하는 점에서 다르다. 소설은  작중 인물들을 관찰자 시점에서 다룬다 해도 주관적 관점을 탈피할 수 없으나, 이 작품에서 몸은 비교적 그가 다루는 주변인물들에 대해 애정과 냉정을 유지하면서 자아를 덜어내는 시도를 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성공한 작가의 후일담으로 보일 만큼, 전작들에 비해 흥미와 긴장, 박력은 떨어진다. 시들어가는 작가의 굵직한 장편같다. 이 책과 함께 이청준의 『축제』를 빌렸었는데, 보다가 책을 덮고 싶어 졌다. 『눈길』만으로도 은유적으로 충만한 모정에 대한 형상화를 모친의 장례를 겪으면서 괜스레 이야기를 엿가락처럼 늘려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소설은 임권택의 요청으로 동시진행형으로 영화화하기 위해 나온 독특한 태생의 작품이란 점에서, 설혹 이 요청이 작가에게는 덥석 물어재낄 미끼라고 할지라도, 그런 부연스러움이  작고한 저 시대의 명작가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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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죄인가

문학 Literatur 2010. 4. 26. 22:35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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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적으로 사랑을 받쳤지만 상처만 주고 떠나버린 밀드레드를 잊고 새로운 다정한 연인 노바와 행복히 지내던 필립은 버림받고 돌아온 밀드레드 앞에서 다시 무너진다. 사랑은 죄는 아니지만 사람을 죄인으로 만든다.

"노라와 행복해지고 싶기보다 밀드레드와 불행해 지고 싶은 것이다...소파 위에 파란 표지의 조그만 책 한 권이 펼쳐진 채 엎어져 있었다. 필립은 무심코 그 책을 집어들었다. 싸구려 대중소설로 작가는 코트니 페지트였다. 노라가 필명으로 쓰는 이름이었다. "이 사람 책 너무 맘에 들어요" 밀드레드가 말했다. "이 사람이 쓴 건 다 읽었어요. 아주 세련된 작품이라구요" 언젠가 노라가 자기 글을 두고 한 말이 생각났다. " 내책은 하녀들이 엄청나게 좋아해요. 내 작품을 아주 고상하게 보나봐요.""

『인간의 굴레에서』2(민음사, 2008, 1판20쇄), p.54, 60.

밀드레드에게 이미 마음이 넘어가고 노바에게서 마음이 멀어져 가지만 그래도 노바에게 동정-동병상련의-이 남아있던 필립에게 다중연애의 달인인 동료 그리피스가 충고해 준다. 그러나 필립의 소개로 만난 그리피스와 밀드레드는 서로의 관능에 끌려 연인이 되고 만다.  

"이 사람아,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누군가는 괴로움을 겪을 수 밖에 없어.이를 악물고 참어. 한 가지는 분명하니까. 오래 가지는 않을 거야...ㅣ괴로움을 주는 게 그렇게 마음에 걸린다면, 그 여자에게 다시 돌아가는 수 밖에...편지를 쓰게. 다 끝났다고 말하는 거야. 그 점에 오해 없도록 분명히 해두어야 해. 상처를 받겠지. 하지만 이런 때는 어정쩡하게 처신하기보다는 매정하게 처리해 버리는 편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덜 주는 법이야" 

상동, 6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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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평

문학 Literatur 2010. 4. 20. 18:05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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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미술공부한지 2년 된 패니 프라이스에게 프와네 선생이 쏟아낸 악평. 이런 악평을 듣고도 '화가로 먹고 살' 작정을 하는 프라이스의 기개 하나는 배울만 하다. 그러나 예술 뿐만 아니라 빵에도 굶주렸던 프라이스가 삶의 벼랑끝까지 갔을 때, 그녀의 손을 잡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 자네는 내가 무슨 말을 해주길 바라나?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해 주길 바라나? 그런데 그렇지 않아. 잘 그렸다고 말해 주길 바라나? 못 그렸어. 장점이 있다고 말해 주길 바라나?  없어. 어디가 잘못됐는지 지적해 주길 바라나? 다 잘못되었어. 이 그림을 어떻게 하라고 말해 주길 바라나? 찢어버려. 자 이제 됐나?"

『인간의 굴레에서』, p.328.

괴짜 선생인 크론쇼가 필립에게 하는 설교.

"자네도 나이가 들면 알게 될 거야. 세상을 살 만한 장소로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도 필요한 일은 인간의 불가피한 이기성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것을. 자넨 타인에게 이기적이 아니기를 요구하는데 그건 자네의 욕망을 위해 타인더러 자신의 욕망을 희생하라고 하는 모순된 주장이야. 타인이 왜 그래야 하나. 모든 개인이 세상에 살면서 자기자신을 위한다는 사실을 자네가 받아들여야 자넨 다른 사람들에게 덜 요구할 수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덜 실망할 거고, 다른 사람들을 더 자비롭게 바라볼 수 있어. 사람은 인생에서 단 한 가지를 추구하지. 그건 자기 자신의 쾌락이야."

상동,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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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폭압

단상 Vorstelltung 2010. 4. 16. 23:22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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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후배와 전철을 타고 집에 가면서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과시용으로 보일만큼 직장에서 열성적으로 일하는 이 친구가 지금 다니는 직장을 평생 직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생각하지 않기 보다는 과연 그곳에서 오래 동안 살아 남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연수가 쌓일 수록 숨이 턱턱 막히듯이 조여져 가는 건 일반적인 직장생활에서 피할 수 없는 현상인지 모른다. 연수가 올라갈 수록 어떤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않으면 치이고 만다는 듯이 인간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가면서 사회는 인간을 계발시킨다. 

"나이가 들면서 필립은 백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필립은 솔직하고 고지식한 편이었다. 그래서 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실천할 수 없는 것도 성직자의 입장으로서는 열심히 설교할 수 있다는 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의 굴레에서』1, p.135.

다음은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인간의 의지적 실천에 관해 모옴이 어떤 입장을 지녔는지 살짝 보여주는 구절이다. 뒤끄로는 소설에서 필립의 프랑스어 노선생.

"인간 평등과  인권 옹호 사상을 열정적으로 신봉했던 무슈 뒤끄로는 토론도 하고, 논쟁도 하고, 파리의 바리케이트 뒤에서 싸우기도 하다가, 오스트리아 기병이 밀라노를 공격하기 전에 탈출하며, 여기서는 투옥되고, 저기서는 추방당하는데, 그러면서도 마법과도 같은 그 말, 자유라는 말에 늘 희망을 걸고 다시 기운을 차렸다. 그러다 마침내, 병과 굶주림에 몸이 망가지고, 나이가 들어 이제는 어쩌다 얻어걸리는 가난한 학생들의 개인교습밖에는 입에 풀칠할 재간이 없는 신세로 전락하여, 이 아담한 소읍[하이델베르크]에서 유럽의 어떤 폭정보다 더 잔인한 생활의 폭압에 신음하고 있다."

상동,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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