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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3.11.27 김수영 문학관 개관
  2. 2012.11.06 산행
  3. 2011.01.10 시와 소설
  4. 2010.12.20 작가의 운명 1
  5. 2010.12.01 시인의 이상

김수영 문학관 개관

문학 Literatur 2013. 11. 27. 13:17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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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가고 유품은 박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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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잡다 Vielerlei 2012. 11. 6. 11:4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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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 이어 지난 토요일에도 운길산에 다녀왔다. 집에서 출발해 새재고개, 약수터, 운길산 정상, 수종사를 거쳐 운길산역까지 4시간. 지난번 보다 한결 편한 산길이었다. 하산 후 찾아온 친구와 자전거길을 걸으며 능내역에서 감자전에 술한잔 하고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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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소설

문학 Literatur 2011. 1. 10. 17:2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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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해가 기울어져 가는 시간에 집을 나와 칼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하다 마을 도서관에 들렀다. 11월 경에 반 정도 읽다간 반납했던 김수영의 산문집을 들추니, 내가 맞춰 놓은 페이지에 그대로 책에 딸린 줄헝겊의 갈피가 꽂혀 있었다. 참 책들 안본다.

64년에 김수영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산문을 가리켜 유동적이고 시흥(詩興)적이라 인상과 의미를 포착하는 것이 극히 어렵다고 했는데, <닥터 지바고>를 거의 다 보는 시점에서 매우 공감이 가는 말이다. 시와 소설은 얼마나 다른 것인가. 그런데 이 두가지를 다 했다니. 시인의 소설은 소설처럼 읽기 보다는 시처럼 읽어나가야 하는데, 소설의 속도감은 또한 얼마나 빠른가. 뒷부분에 실린 지바고의 대서사시는 시처럼 읽어야 겠다.

파스테르나크에 대한 김수영의 소개글을 읽다 보니, <닥터 지바고>는 파스테르나크의 유일한 소설이 아니었다.  중간에 몇편의 중단편이 있었다.  읽은 책의 책날개에 이 책이 작가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라고 쓰여 있던 문구를 유일한 소설로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

<닥터 지바고>는 58년도에 소련에서 등재는 물론  출판이 금지되자 이탈리아에서 먼저 출판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소련에서 이 책의 해외출판을 저지하려 했던 점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대한 영국 정보부의 출판저지 시도와 흡사하다는 점이다. 파스테르나크는 혁명이 스탈린을 정점으로 권력화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히틀러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이 오히려 해방을 가져다 줬다는 관점을 <닥터 지바고>의 에필로그에 드러냈다. 정치범으로 몰려 유형을 받던 지바고의 옛친구들은 독일과의 전쟁 때문에 유형을 벗어날 수 있었다. 비록 전쟁에 나가야 했지만, 유형보다는 오히려 전쟁이 이들에게 더 인간적이었다. 이런 시각은, 아무리 스탈린 사후라고 하지만, 그 후광을 입은 관료들에게 밉살받을 만한 위험한 시각이다. 조지 오웰도 소련의 눈치를 보는 영국의 외교정책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고 보면 이 두 작가는 영혼을 질식시키는 절대주의 체제에 저항한 점에서, 서로 다른 곳에서 거대괴물을 공격해 들어간 비판정신이다. 파스테르나크에게 그 괴물은 당대의 소비에뜨 권력이었고, 오웰에게는 미래의 전지적 권력이었다.    

<닥터 지바고>는 시대사의 대격변기라는 거대한 수레바퀴에 짓눌린 개인의 삶을 보여준 점에서 게오르규의 <25시>를 연상시키지만, 부르조아 계급출신으로 인텔리겐차이자 의사이며 시인인 지바고는 결코 요한 모리츠만큼 불행한 삶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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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운명

단상 Vorstelltung 2010. 12. 20. 10:27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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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라디오에서 우연찮게 작가의 인터뷰를 들은 때가 있었다. 예전에 명절 즈음에 김주영이 나왔었는데, 작가란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품은 사람이라고 말했던 걸 기억한다. 세상을 풍요롭고  넉넉하게 살아온 사람이 글 나부랭이를 끄적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진흙탕에서도 꽃을 피우는 연꽃같은 존재가 작가라는 것인가? 개인적인 아픔을 만인에게 토로하는 것이 작가라면 너무도 사적인 규정이 되고 만다. 그 상처가 작품의 소재가 될 수는 있겠지만, 거기에 따라붙는 자기합리화의 기제를 피할 수도 없다. 물론, 그 상흔이 시대의 배경에서 오는 것인 한, 그 아픔은 보편적 체험으로 수용될 소지가 높다. 다른 동년배 작가들도 비슷하겠지만, 김수영의 시와 산문은 직접적인 전쟁의 참화로 뒤덮힌 잔해를 뚫고 피어난 꽃이다. 이에 비해 이청준의 특정 작품, 예를 들어 <눈길>은 가족사의 몰락이라는 철저히 사적인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김현으로부터 지 어미를 팔아먹은 소설이라는 핀잔도 받았지만, 들추고 싶지 않은 집안의 얘기를 끌어내어 이청준 특유의 주제인 인간의 원형적 그리움에 도달한 것은 탁월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고 그런 집안의 속사정은 어지간해서는 가까운 사람에게도 밝히기 힘든 소재다. 그 밝히기 힘든 답답함 때문에, 언젠가 이 소재를 다루겠다는 미룸과 연기 속에서 자신의 산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 작가의 운명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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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이상

문학 Literatur 2010. 12. 1. 20:55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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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뉴 프런티어>란 시가 필요없는 곳이다...시 무용론(無用論)은 시인의 최고 혐오인 동시에 최고의 목표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진지한 시인은 언제나 이 양극의 마찰 사이에 몸을 놓고 균형을 취하려고 애를 쓴다. 여기에 정치가에게 허용되지 않는 시인만의 모랄과 프라이드가 있다. 그가 사랑한 것은 <불가능>이다...말하자면 시인이란 선천적인 혁명가인 것이다."(1961.3.'시의 <뉴 프런티어>')

『김수영 전집2 : 산문』(민음사, 2008, 개정판 6쇄), 239면.

"도대체가 시인은 자기의 시를 규정하고 정리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그에게 눈곱재기만 한 플러스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시의 현 시점을 이탈하고 사는 사람이고 또 이탈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다. 어제의 시나 오늘의 시는 그에게는 문제가 안 된다. 그의 모든 관심은 내일의 시에 있다. 그런데 이 내일의 시는 미지(未知)다."(1964.9.'시인의 정신은 미지')

상동, 253면.

"시인은 영원한 배반자다. 촌초(寸秒)의 배반자다. 그 자신을 배반하고, 그 자신을 배반한 그 자신을 배반하고...이렇게 무한히 배반하는 배반자다.ㅣ...술을 마실 때도, 산보를 할 때도, 교섭을 할 때도 무엇을 속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속이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그대를 속이고 있다. 그대가 영리한 사람인 경우에는 눈치를 챈다. 나를 신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리한 그대는 내가 속이는 순간만 알고 있고, 내가 속이지 않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대는 내가 시인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러한 그대를 구출하는 길은 그대가 시인이 되는 길밖에는 없다. 시인은 모든 면에서 백치가 될 수 있지만, 단 하나 시인을 발견하는 일에서만은 백치가 아니다. 시인을 발견하는 것은 시인이다. 시인의 자격은 시인을 발견하는 데 있다. 그밖의 모든 책임을 시인으로부터 경감하라!"(상동)

상동, 255-6면. 

"나쁜 시를 발견하기는 쉽지만 좋은 시를 발견하기란 참 어렵다. 그 시와 같이 살 수 있는 순간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시를 쓰기도 어렵지만 시의 독자가 되기는 더 어려운 것 같다. 진정한 시의 독자는 시인이 아니고서는 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피상적으로 시의 독자가 있느니 없는니 말할 수도 없고, 시의 독자가 없다고 비관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1964.10.'생활현실과 시')

상동, 26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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