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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2.02.14 당신들의 천국
  2. 2011.05.05 열정
  3. 2011.05.02 몸의 『면도날』외
  4. 2010.12.20 작가의 운명 1
  5. 2010.12.17 이청준의 성토 : 누가 다시 전쟁을 말하는가

당신들의 천국

문학 Literatur 2012. 2. 14. 08:5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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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의 이 소설은 실존인물을 모델화하면서 이 실존인물과 경합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소설 종결 후 작가의 말에서, 애시당초 이청준은 주인공의 자전적 경험이 가미된 이 소설에서 주인공 조원장에게 부당한 간섭을 행사함으로써 그 실존 인물 이후의 삶에 분명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런 영향은 작가가 배반과 탈출의 섬 소록도를  '문둥이'의 애환이 깃든 섬이 아니라 하나의 우화로 그림으로써 힘의 질서로 운위되는 세계에 대한 비판 위에서 작가의 도덕주의적 정치관을 개입시려는 데서 드러나는데, 그것은 자유와 사랑에 바탕한 힘의 행사로 나타나며, 그 사랑에는 공동적 운명을 감수할 믿음이 깔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배자는 사랑과 권위로, 피지배자는 자유로 상호 관계맺음으로써, 이 둘 사이의 애매한 지배/피지배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다소 동양 고전의 유토피아적 지배절서를 지향하는 듯한 작가의 해결책은 조원장으로 대표되는 선의의 대의에 대한 이상욱의 날카로운 비판의식에 비하면 너무도 무력하고 허망해 보이기도 하다. 작가의 예리한 비판의식은 결국 종교, 특히 기독교적 주제인 화해에 경도되어 무뎌지고 순화된다. 단지 제 3부에서 이정태 기자와 조원장의 대화로 이 소설에서 줄기차게 전개된 갈등의 양태들을 해결해 버리려는 것은 안이한 뒷처리로도 보인다. 시종일관 무겁게 전개되던 소설이 제 3부에서 구원의 해결책을 만났다고 할까? 차라리 제 3부는 없애고, 이상욱의 편지 두 통만 추가하는 것으로 이 소설의 대미를 장식했다면, 이 소설은 내일에 대한 선택을 독자에게 맡김으로써 이청준이 말한 '당신들의 천국'을 '독자들의 천국'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우리에게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탁월한 글쟁이임에는 틀림없겠다.  

등장인물 : 조백헌 대령, 황장로, 이상욱 보건과장, 김정일 의료부장, 이정태, 윤해원, 서미연, 주원장, 사토, 한민 외  

텍스트 : 이청준,『당신들의 천국』(문학과 지성사, 2011, 5판 15쇄; 초판은 19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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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책들 Bücher 2011. 5. 5. 22:32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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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의 래리에 대한 사랑이 열정없는 그것이었음을 작가가 지적하는 대목. 이런 점에서는 래리도 마찬가지였다.

"열정은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파스칼은, 가슴은 이성이 이해하지 못하는 나름대로의 이유를 갖고 있다고 말했지. 내 생각이 맞는다면 그건 열정이 가슴을 사로잡으면 가슴은 사랑을 위해 세상을 잃어도 좋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그럴듯한, 심지어는 결정적인 이유들을 만들어 낸다는 뜻이야. 그래서 명예를 희생시켜도 좋고 치욕도 그리 큰 대가가 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지. 열정은 파괴적인 거야.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파넬과 키티 오셰이도 결국 ㅣ 열정 때문에 파멸로 치닫고 말았잖아. 그리고 열정은 무언가를 파괴하지 않으면 소멸해 버려. 그러고 나면 수년 동안 인생을 허비했다는 걸 깨닫고 비참한 기분이 들겠지.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하면서 무서운 질투의 고통을 견뎌 내고 그 모든 쓰디쓴 치욕을 삼켜야 하는 순간이 올 테니까. 자신이 가진 애정을 전부 가난한 매춘부에게 소진했음을, 어리석고 하찮은 존재에게 자신의 꿈을 모두 걸었음을, 껌 한 쪽만도 못한 상대에게 영혼을 전부 쏟아부었음을 깨닫는 비참한 순간이 찾아오는 거지."

서머셋 몸, 『면도날』The Razor's Edge(1944) 안진환 역(민음사, 2010, 1판2쇄), 280-281.

모처럼의 휴일, 지역의 자그마한 어린이날 행사장에서 아이들과 적당히 놀고 집에서 적당히 쉬었다. 이청준의 『축제』를 읽으며 이걸 다른 언어로 번역된 걸 읽으면 어떨까 생각하니 아찔했다. 이청준 식의 특유 문형에 전라도의 사투리들. 결국 번역문은 어느 정도 문체의 느낌상으로나 의미상 손실을 감안하고 읽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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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면도날』외

문학 Literatur 2011. 5. 2. 15:3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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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서머셋 몸의 『달과 6펜스』와 『인간의 굴레에서』를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앞의 두 소설과 함께 그의 삼부작의 완결판이라는 『면도날』을 읽었다. 책 두께는 면도날을 무색해 할 만큼 두텁지만 그 제목은 매우 예리하다. 면도날을 그냥 넘기 힘들듯이 구원의 길이 험난함을 암시하는 제목이다.  이미 소설가로서의 입지와 영예를 획득하여 여유로운 중년을 넘긴 서머셋 몸은 그의 삶의 중반기에 알게된 주변 인물들을 십여년의 세월을 함께 관통하며 소설화시켰다. 래리, 엘리엇, 이사벨, 그레이, 소피, 코스티 등등. 주제나 소재는 앞의 두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작가 스스로 이야기에 등장하면서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주변의 특정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서술하는 점에서 다르다. 소설은  작중 인물들을 관찰자 시점에서 다룬다 해도 주관적 관점을 탈피할 수 없으나, 이 작품에서 몸은 비교적 그가 다루는 주변인물들에 대해 애정과 냉정을 유지하면서 자아를 덜어내는 시도를 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성공한 작가의 후일담으로 보일 만큼, 전작들에 비해 흥미와 긴장, 박력은 떨어진다. 시들어가는 작가의 굵직한 장편같다. 이 책과 함께 이청준의 『축제』를 빌렸었는데, 보다가 책을 덮고 싶어 졌다. 『눈길』만으로도 은유적으로 충만한 모정에 대한 형상화를 모친의 장례를 겪으면서 괜스레 이야기를 엿가락처럼 늘려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소설은 임권택의 요청으로 동시진행형으로 영화화하기 위해 나온 독특한 태생의 작품이란 점에서, 설혹 이 요청이 작가에게는 덥석 물어재낄 미끼라고 할지라도, 그런 부연스러움이  작고한 저 시대의 명작가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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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운명

단상 Vorstelltung 2010. 12. 20. 10:27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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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라디오에서 우연찮게 작가의 인터뷰를 들은 때가 있었다. 예전에 명절 즈음에 김주영이 나왔었는데, 작가란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품은 사람이라고 말했던 걸 기억한다. 세상을 풍요롭고  넉넉하게 살아온 사람이 글 나부랭이를 끄적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진흙탕에서도 꽃을 피우는 연꽃같은 존재가 작가라는 것인가? 개인적인 아픔을 만인에게 토로하는 것이 작가라면 너무도 사적인 규정이 되고 만다. 그 상처가 작품의 소재가 될 수는 있겠지만, 거기에 따라붙는 자기합리화의 기제를 피할 수도 없다. 물론, 그 상흔이 시대의 배경에서 오는 것인 한, 그 아픔은 보편적 체험으로 수용될 소지가 높다. 다른 동년배 작가들도 비슷하겠지만, 김수영의 시와 산문은 직접적인 전쟁의 참화로 뒤덮힌 잔해를 뚫고 피어난 꽃이다. 이에 비해 이청준의 특정 작품, 예를 들어 <눈길>은 가족사의 몰락이라는 철저히 사적인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김현으로부터 지 어미를 팔아먹은 소설이라는 핀잔도 받았지만, 들추고 싶지 않은 집안의 얘기를 끌어내어 이청준 특유의 주제인 인간의 원형적 그리움에 도달한 것은 탁월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고 그런 집안의 속사정은 어지간해서는 가까운 사람에게도 밝히기 힘든 소재다. 그 밝히기 힘든 답답함 때문에, 언젠가 이 소재를 다루겠다는 미룸과 연기 속에서 자신의 산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 작가의 운명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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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의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라는 에세이류의 단편소설집을 천천히 읽다가 이제 짧은 두 꼭지를 달랑 남겨 두고 있다. 앞부분과 중반 이후까지 읽으면서, 망향살이의 설움에 복박치는 노작가의 푸념처럼 읽히어 그만 읽을까 하다가 마져 잡고 있었는데, 마치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처럼 뒤로 갈수록 다시 일으켜 살아나는 숭고미처럼 노작가의 설움은 이 시대의 현재를 반추한다. 자신의 예전 단편의 모티브를 제공한 선교책자의 실화는 더더욱 현재감을 더한다. 한국전의 동란기에 다리밑에서 자신의 옷을 벗어 입혀주고 숨을 거둔 어미의 가슴팍에서 튀어나와 울음을 그치지 않던 여아가 미국 선교사에게 발견되어 양육되고, 결국 10살의 나이에 선교사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린 일화에 대해서, 이청준은 단지 개인에게 덮친 불운을 불분명한 운명에 돌리지 않고, 이런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들을 지목한다. 이 지목이 구체적이지 않아 모호하지만, 다시 전쟁을 외치는 이들을 우리가 두 눈 똑바로 뜨고 볼 수 있는 현재, 우린 똑같은 불행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전쟁이 인류 생존의 필요악으로 있어 왔고, 앞으로도 없다고 할 수 없는 이상, 평화만을 외치는 일이 오히려 허구적이라 해도, 인간의 생활세계가 무슨 봄철 밭갈이 처럼 마구 파헤쳐지고 뭉개지고 나서 터가 잡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연평의 황금어장에 북조선 배가 나올 수 없게 일방적인 북방한계선이 그어진 현재의 수역은 준비된 화약고에 다름 아니었다. 자연그대로 흘러가는 강을 파헤치고 비틀어 생명의 강을 만든다고 하듯이, 평화기반 조성으로 남북 공동 공영의 길로 갈 수 있는 방안을 팽개치고 무력으로 조저서 깔아 뭉개야 하겠다는 것이 이명박 정권의 이념이다. 악마를 뽑은 국민은 결국 대가를 치루는 거라고 한다면, 지금까지만 만으로도 족하다. 이 뒷수습만으로도 앞으로도 헤아리기 힘든 시간이 걸리겠지만, 또다시 강행되는 연평의 포사격훈련을 보면서 저세상으로 가신 우리 노작가께서도 이제 생전에 못다한 힘을 발휘해 오늘 내리는 눈처럼 많은 천상의 군대를 밤새 내려보내 전쟁을 외치는 저 악마들을 거둬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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