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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 Beschreibung 2021. 2. 12. 04:00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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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으로 대학원에 다니는 것은 1, 2학기에 해당하는 1년이었고, 나머지 3,4학기는 논문준비 때문에 굳이 학교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수업시간이 없는 만큼 논문준비에 매진해야 하지만, 나는 어떤 사정 때문에(지금 생각하면 이건 핑계같다) 논문을 완성 못하고 수료만 한 채 공부 외의 길을 찾아 나섰다. 공부의 길을 벗어나면서도 메일로 장선생님과 소통하면서 진로에 관해 이런저런 조언을 구했었는데, 이후 내가 제약회사에 입사하자 메일상으로 아주 기뻐하시던 선생님의 문구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 직장은 얼마 다니지 않고 그만둔 후, 이런저런 일을 거친 후 나는 장기간 다닐 직장에 입사하게 됐고, 입사 후 며칠 후 어떻게 동문들과 자리가 마련되어 선생님과 신촌에서 축배의 맥주를 마셨다. 

 

직장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7년 근무 후 생기는 안식월이라는 1개월 유급휴가를 나는 미완의 석사논문을 완전히 다른 주제로 다시 쓰는 시간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칸트를 열심히 읽었고 관련 논문들도 여기저기서 찾아 봤다. 그리고 아마도 어느때 보다 빈번히 논문에 관해 장선생님과 메일로 소통하면서 2009년 여름에 나는 마지막으로 선생님을 춘천에서 뵈었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 완역 출간 이후 한창 루만의 <사회의 사회>를 번역하시던 시기였다. 에스프레소 커피를 드시며 루만의 사회이론을 아주 흥미로운 표정으로 설명해 주셨다. 이후 나는 논문을 어느 정도 진척시켜 나갔지만, 잡혀진 일정 대로 논문을 완성시켜 나가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고, 이런 어려움과 향후 진로에 관한 메일 이후 더이상 소통이 없게 됐다. 

 

이후 힘든 수술을 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나는 선뜻 연락할 생각은 접어둔 채 선생님이 내놓으신 번역물을 읽어 나갔다. 나는 그때 몇몇 매체에 서평을 게재하는 일이 이따금 있었는데 이때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을 하버마스와 독자가 나누는 가상의 대화 형식으로 3회에 걸쳐 다룬 적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는 루만의 <사회의 사회>를 읽으면서 이런 완벽한 번역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고가 투여됐을지 가늠이 안된다. 빗나가고 잃어버린 소통은 가상의 대화로나 복원시킬 수 있을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다시 빌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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