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들6 : 정신현상학

헤겔 Hegel 2025. 3. 2. 23:3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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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 G.W.F. Hegel, Phänomenologie des Geistes, 아카데믹판 h.v. G.J.P.J. Bolland(Leiden A.H. Adriani, 1907)



A.Bewusstsein
I.Die sinnliche Gewissheit oder das Dieses und das Meinen
II.Die Wahrnehmung oder das Ding und die Täuschung     S.79-

Die Dinge selbst also sind ‚an und für sich bestimmt‘…und drittens, indem ㅣsie so in der Dingheit sind, sind sie an und für sich und gleichgültig gegen einander. Es ist also in Wahrheit das Ding selbst, welches weiss und ‚auch‘ kubisch, ‚auch‘ scharf und so fort ist, oder das Ding ist das ‚Auch‘, oder das ‚allgemeine Medium‘, worin die vielen Eigenschaften ausser einander bestehen, ohne sich zu berühren und aufzuheben ; und so genommen wird es als das Wahre genommen.
물 자체는 본래적이자 그 자신을 위해[대자적으로] 규정된다…세번째, 속성들이 그렇게 물적 속성에 들어서면서 그것들은 본래적이자 대자적이면서 상호간에 무관하다. 하얗고 '또한' 육면체이고 '또한' 맵고 등등의 것들은 진리상으로는 물 자체이다. 또는 사물은 '또한'[병립하는 속성들]이거나 '보편 매개체'인데, 여기서 많은 속성들이 서로 간섭하지 않고 지양하지 않은 채 각기 존립한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참이 성립된다.

상동 89-90

Bei diesem Wahrnehmen nun ist das Bewusstsein zugleich sich bewusst, dass es sich ‚auch‘ in sich selbst reflectiert und in dem Wahrnehmen das dem ‚Auch‘ entgegengesetzt Moment vorkommt.
이제 이러한 지각에서 동시에 의식이 자각되는데 이는 '또한' 그 자신 안에서 스스로를 반성하는 것이고 이런 지각에서 '또한'에 대립되는 계기가 나타난다.

상동 90

Das ‚Ineinssetzen‘ dieser Eigenschaften kommt nur dem Bewusstsein zu, welches sie daher an dem Ding nicht in Eins fallen zu lassen hat. Zu dem Ende bringt es das ‚Insofern‘ herbei, wodurch es sie aus einander und das Ding als das Auch erhält…ㅣdas Ding ist auf diese Weise zum wahrhaften ‚Auch‘ erhoben, indem es eine Sammlung von [freie]Materien und, statt Eins zu sein, zu einer bloss umschliessenden Oberfläche wird.
이러한 [병립되어 있지만 서로 배제적인]속성들을 하나로 놓는 것은 의식에게만 속하는 일이며, 따라서 의식은 이것들이 사물에서 하나로 전락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 의식은 [그것이 하얗다는 점에서 정육면체가 아닌 식으로]‘그런 한에서'를 끌어들이는데, 이를 통해 의식은 속성들을 분리하고 사물을 또한으로 유지한다…사물은 이러한 방식으로 참된 '또한'으로 격상하는데, 여기서 이것은 [자유로운]물질의 집합이면서, 하나가 되는 대신에 감쌀 뿐인 표피가 된다.

상동 90-91

Das Bewusstsein findet also durch diese Vergleichung, dass nicht nur ‚sein’ Nehmen des Wahren die Verschiedheit des Auffassens und des in sich Zurückgehens an ihm hat, sondern dass vielmehr das Wahre selbst, das Ding, sich auf diese gedoppelte Weise zeigt. Es ist hiermit die Erfahrung vorhanden, dass das Ding sich ‚für das‘ auffassende Bewusstsein‘ auf eine bestimmte Weise ‚darstellt‘, aber ‚zugleich‘ aus der Weise, in der es sich darbietet, ‚heraus‘ und ‚in sich reflectiert‘ ist, oder an ihm selbst eine entgegengesetzte Wahrheit hat.
이러한 [번갈아 가며 의식이 사물을 다수성이 없는 하나이자 독립적인 물질들로 병립된 또한으로 만드는]비교로 의식이 발견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 의식이 진리를 수용하는 것은 파악과 자기반성의 불일치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진리 자체, 사물이 이렇게 이중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일어나는 경험은 다음과 같다 : 사물이 파악하는 의식에 대해 특정한 방식으로 제시되지만 동시에 이런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 안에서 반성하거나 그 자신 안에서 하나의 모순된 진리를 갖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상동 91

Das Bewusstsein ist also auch aus dieser zweiten Art, sich im Wahrnehmen zu verhalten, nämlich das Ding als das wahre Sichselbstgleich, sich aber für das Ungleiche, für das aus der Gleichheit heraus Insichzurückgehende zu nehmen, selbst heraus, und der Gegenstand ist ihm jetzt diese ganze Bewegung, welche vorher an den Gegenstand und an das Bewusstsein verteilt war. Das Ding ist Eins, in sich reflectiert ; es ist ‚für sich‘, aber es ist auch ‚für ein Anderes‘ und ㅣzwar ist ein Anderes für sich, als es für Anderes ist.
따라서 의식은 이러한 두번째 방식에서도 스스로를 지각에서 처리한다. 즉 사물을 참된 자기동일성으로 받이들이지만 하지만 비동일성으로, 동일성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자신 속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제 대상은 의식에게 이러한 전체적인 운동이 되는데, 이전에 이 운동은 대상과 의식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사물은 하나이면서 반성적인 존재다. 그 자신을 위해 있지만 타자를 위해서도 있고 그 자신에 대해서도 타자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타자로 있다.

상동 9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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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의 계엄에 대한 답변

잡다 Vielerlei 2025. 2. 27. 20:02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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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슈미트의 정치신학의 관점에서 근래 한국에서 있었던 계엄선포의 정당성은?


칼 슈미트(Carl Schmitt)의 **정치신학(Politische Theologie)** 개념을 바탕으로 최근 한국에서의 계엄 선포(혹은 논의)의 정당성을 평가하려면, 다음과 같은 핵심 개념을 고려해야 합니다.  

### **1. 칼 슈미트의 정치신학과 주권 개념**  
- 슈미트는 **"주권자란 비상상태(예외상태, Ausnahmezustand)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자"**라고 정의했습니다.  
- 즉, **국가의 정상적인 법질서가 기능하지 않을 때, 주권자는 법적 질서를 초월하여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 이는 **비상사태에서의 법적·정치적 권위의 문제**를 강조하며, 주권자는 법을 정지할 권리를 통해 스스로 법의 원천이 됩니다.  

### **2. 계엄 선포의 정당성 문제**  
최근 한국에서 논의되었던 계엄 선포(예: 촛불집회 당시 계엄령 검토 문건 등)의 정당성을 슈미트의 관점에서 평가할 때, 두 가지 논점이 충돌합니다.  

#### **① 계엄의 필요성과 국가 질서 유지**  
- 슈미트의 논리에 따르면,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비상사태라면 주권자는 헌법적 한계를 초월해서라도 질서를 회복할 권한을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만약 당시 계엄이 **실제 국가 존립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면**, 슈미트적 해석에서는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 **② 정치적 악용과 법치의 문제**  
- 그러나 슈미트의 개념이 모든 계엄 상황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 슈미트는 **"예외상태의 선포는 법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이라고 했지만, 이는 결국 **주권자가 임의적으로 예외상태를 선언하고 권력을 강화하는 도구로 활용할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 한국에서 논의된 계엄령 검토는 **단순한 질서 유지가 아니라 정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었다는 점**에서, 이는 슈미트적 '정치신학' 논리의 오남용이 될 수 있습니다.  

### **3. 결론: 슈미트적 정당화는 가능하나, 현대 민주주의와 충돌**  
- **슈미트의 논리를 따르면 계엄 선포의 정당성이 완전히 부정될 수는 없으나, 그것이 실제로 국가 존립의 위기 상황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특히 헌법과 법치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대한민국에서는 **"국민의 저항권"과 "민주적 정당성"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 따라서 **슈미트적 논리를 원용해 계엄령을 정당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위험하며, 반(反)민주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습니다.**  

즉, **칼 슈미트의 정치신학을 적용하면 계엄령의 이론적 정당성은 일부 주장될 수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민주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한국의 경우, 최근 논의된 계엄령은 **국가 존립 위기라기보다 특정 정치 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추진된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슈미트적 논리를 적용하더라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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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와 신학

책들 Bücher 2025. 2. 20. 02:25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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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 Foucault and Theology : The Politics of Religious Experience, ed.J.Bernauer&J.Carrette(Routledge, 2014)

4장. 미셸 푸코의 종교철학 : 반파시스트적 삶을 위한 서론  James Bernauer

그의 기획이 현재의 역사였던 점에서 그는 불가피하게 종교 분석에 들어서고 말았는데, 왜냐하면 그가 보기에 우리의 문화를 생동시키는 지식과 권력, 주체성의 형식은 결정적으로 종교적 실행과 관심의 수용 내지 논의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푸코에게 16세기는 탈기독교화의 시작이 아닌, 심층적 기독교화의 시작으로 특징지워짐.

상동 77

푸코가 주적으로 본 파시즘의 세 얼굴 :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같은 역사적 파시즘, 피시즘에 관한 언설과 행위 또는 열망에서 보이는 개인적 파시즘, 서구의 사고에서 권력의 형식이자 실재로의 접근로로 성역화한 '법, 한계, 거세, 빈틈'과 같은 범주의 우울한 공격성의 파시즘. 모든 파시즘에서 공통적인 것은 복종하는 주체이며 푸코의 종교철학은 이에 저항

상동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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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사태와 헌법의 위기

논문 Abhandlung 2025. 2. 17. 20:01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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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선포의 헌법상 근거와 정치신학

12.3 계엄사태에서 비롯된 내란국면은 법적 공방을 둘러싸고 여론분열의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법적일 뿐만 아니라 일반 상식의 차원에서 2시간 35분간 지속된 계엄은 이미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는 순간, 아니 계엄 자체를 이미 모의하는 순간 헌법을 위반한 것이다. 어느 누구나 대통령이 정치적인 이유로 계엄령을 시행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대통령 스스로도 계엄선포 대국민 방송에서 그리고 헌재에서 야당의 횡포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말이 정치적인 이유로 계엄을 한 것이라고 실토한 것임을 대통령은 알지 못하더라도 대다수 국민들은 알고 있다. '전시나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서 질서유지를 위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헌법 77조 규정에 '정치적인 이유'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 하지만 비상사태에 대한 규정을 두고 해석의 여지를 확보하려는 것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진영에서 준비하는 방어논리의 주요 근거를 위해 요구된다면, 바로 여기서 카를 슈미트의 정치신학(1922)이 주목될 수 있다.

슈미트에게 비상사태 또는 예외상황은 법의 기능이 정지된 상태다. 그가 예외상황에 주목하는 것은 법의 원천, 기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실존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보편 윤리의 목적론적 중단이 가능한가?' (주1)라고 제기하여 1920년대 유행하던 예외개념은 슈미트에게 법의 타당성을 설명하기 위한 방법론적 개념으로 변용된다. 즉 슈미트에게 예외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사실의 차원이 아니라 가설적인 차원에서 법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전용된 것이다. 정치신학에서 예외는 마치 참다운 현실인식, 본질을 직관할 수 있는 인식의 계기를 제공해주는 현상처럼 묘사되지만, 어디까지나 방법론적 도구에 다름 아니다. 물론 예외는 마치 프로이트의 무의식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의식을 떠받치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듯이, 정상성을 사방에서 위협하는 근본적 사태로 비춰지긴 하지만 슈미트의 의도는 예외개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주권개념을 끌어내는데 있다.

법의 작동이 정지된 예외상황에서 슈미트는 주권자가 나타난다고 본다. 왜냐하면 법의 작동이 멈취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정치신학 1장의 첫문장 '주권자는 예외상황을 결정한다'는 명제는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예외상황에서 비로서 주권이 실체화되는데, 주권은 예외상황의 아노미를 억제시키는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법의 기능중지를 중지시킨다. 이것이 바로 결정이다. 두번째, 주권자는 어떤 사태가 예외상황인지, 즉 비상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그런 무정부상태를 방지하기 위해 예외상황을 결정한다. 정치신학 1장에서 '주권자는 극도의 위급이 실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이를 제거하기 위해 무엇이 일어나야 하는지에 관해서도 결정한다'(주2)는 문장은 주권자에게 예외상황에 대한 판단 권한을 부여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이 두번째 해석이 유효하다면, 주권자는 계엄선포의 요건도 결정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그런가?

이에 대해서는 정치신학에서 근본구도로 상정된 예외개념으로 법의 기원과 정당성을 설명하는 것이 과연 성공적일 수 있는지, 그리고 여기에 뒤따르는 주권자로 슈미트가 지시하는 대상이 무엇이며 그것이 유효할 수 있는지 살펴 봄으로써 대답할 수 있다.


예외를 통한 법의 정당화와 주권의 문제

마리아노 크로체와 안드레아 살바토레는 정치신학에 대한 법학적 독해를 하면서 예외는 정치적 질서의 무근거성을 예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법학자(특히 슈미트)의 '구원적' 힘을 지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정치신학은 법적 정상성의 문제를 해명하는데 실패한 것이라고 말한다. 슈미트 자신도 예외적 결정은 법의 본질을 포착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는데, 1922년에 그는 예외를 '정상화'시키고 이를 법과 국가의 주요한 특징으로 만들려고 했으나 그 이후 여기서 손을 뗐다는 것이다. 이는 "예외가 일상생활에 아무런 안정된 근거를 제공할 수 없는, 부정기적인 극도의 상황임을 인지했던 것이고 따라서 그는 예외의 역할과 범위를 수정해야 했는데, 이는 질서와 안정보다는 무질서와 혼돈을 일으키는 잠재적 위험사태를 피하려는 것이었다."(주3)

즉 시론적으로 슈미트는 예외라는 실존철학적 개념을 끌어들이면서 역시 예외를 통해 주권이론을 펼친 장 보댕의 국가이론을 결합시켜 법이론의 근거를 마련하려는 시도에 그치고 말았던 것이다. 따라서  예외를 통해 주권이 발생한다는 명제는 가설적이고 실험적인 설명일 수 있으나 예외 개념 자체의 불확정성과 모호함 때문에 설득력을 상실한다. 더군다나, 예외를 통한 결정주의로 법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슈미트의 시도는 그의 비판대상인 한스 켈젠의 법실증주의를 답습하고 있다. 마리아노 크로체와 안드레아 살바토레는 방법론적으로 달랐지만 놀랍게도 일치하는 점을 이 두 학자에게서 발견한다. 그것은 법질서의 동일성을 결정짓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그들이 매우 유사한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법 정초와 관련해 내재적이거나 외재적인 법의 본성에 대해서, 그리고 이런 것이 법학의 영역에 해당하는지에 관해서나 불일치했다. 켈젠에게 규율(order)의 근원적 정초는 판사가 고려할 일이 아니다. 규율은 가정적인 근본 규범의 견지에서 고유한 동일성과 통일성, 완결성을 획득한다. 하지만 슈미트의 이론적 체계에서 결정에 의해 수행된 역할은 근본 규범에 의해 수행된 역할을 상기시킨다. 왜냐하면 결정은 누가 주권자인지, 이런 관점에서 무엇이 타당한 법 질서인지 확정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법은 적극적(positive) 본성을 지녔고 어떠한 내용도 가질 수 있다. 그들은 법(law)의 타당성이 법 외부에서 획득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법적(legal) 타당성은 법적 기계의 논리로부터 기원한다는데 동의한다.ㅣ 슈미트와 달리 켈젠에게 이 기계는 법 수립의 계기를 포함하지 않는다."(주4)

정치신학에서 켈젠의 무근거적인 법적 정당화 작업을 비판하면서 예외를 통해 법의 원천을 드러내려는 슈미트의 시도는 다시 켈젠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것인데, 비록 슈미트는 우회로를 거치지만 결국은 켈젠과 마찬가지로 법의 기계적 체계 앞에서 멈춰 선다. 다만 슈미트는 켈젠과 달리 이 법적 기계에 법 정초를 위한 결정의 역할도 부여함으로써 더욱 더 능동적인 법 기계로 치닫는데, 그것은 바로 예외상황을 결정하는 주권자다. 정치신학에서 슈미트가 주권이론의 전형으로 인용하는 장 보댕은 잘 알려져있다시피 루이 14세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절대주의 왕권을 옹호하며 왕권신수설을 주장한 이론가다. 비록 그에게 주권자란 군주에게만 한정되지 않는 영속적이고 불가분적인 절대 존재자이지만, 어디까지나 강력한 입헌 군주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슈미트가 염두하는 주권자는 오늘날 민주주의 헌법체계의 서두를 여는 국민주권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더군다나 정치신학을 발표하고 그 다음 해에 발표한 글 오늘날 의회주의의 정신사적 상황 Die geistesgeschichtliche Lage des heutigen Parlamentarismus(1923)에서 슈미트는 의회주의와 전쟁선포를 하면서 당대 이탈리아에서 승리한 파시스트 정권에 경도됐다(주5). 결국 그에게 끝없이 논쟁만 이어가는 의회주의에 포위된 것으로 보였던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돈과 무질서'에 마침표를 찍고 결단하는 독재자를 긍정하는 길로 슈미트는 들어서고 말았던 것이다.

따라서 카를 슈미트의 예외를 통한 법의 정당화 작업과 마찬가지로 그가 염두한 주권자는 현대 민주주의
헌법체계에 부합하기에는 설득력이 없을 뿐더러 시대착오적인 한계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주권자가 비상사태를 결정할 수 있다는 그의 핵심명제는 정치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 타당성과 개연성을 상실한다.


헌법위반의 중대성과 파시즘의 발흥

헌재의 대통령 탄핵심판의 핵심쟁점은 계엄선포 후 현재까지 명확히 드러난 헌법위반 사실과 함께 대통령의 헌법위반에 중대성이 있느냐에 있다. 헌법 위반이라는 사실만으로는 탄핵사유가 성립될 수 없다는 판례(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때문에 헌법위반의 중대성을 놓고 헌재에서 청구인측과 피청구인측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이미 정치적인 이유로 계엄을 선포한 것 자체만으로도 헌법을 중대하게 위반한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높을 뿐더러, 내란죄 보다 상대적으로 헌법침해의 정도가 낮은 국정농단으로 박근혜의 대통령 파면이 이뤄진 전례를 볼 때, 도대체 어떻게 헌법을 위반해야 내란죄 보다 더 중대하게 헌법을 위반할 죄가 있을지 의구심을 들게한다. 더군다나 현재까지 진행된 상황을 볼 때 대통령은 자신의 결백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헌재의 대통령 탄핵이 기각되면 헌재는 대통령이 2차 계엄도 시도할 수 있는 면죄부를 주는 셈이다. 잠시 지금까지 내란정국의 주요 국면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계엄선포 2024.12.03
국회 계엄해제 의결 2024.12.04
탄핵(1,2차) 2024.12.16
공조본청구, 서부지법의 체포영장 발부 12.31
공수처,국수본의 체포집행(1,2차) 2025.01.15
중앙지법의 체포적부심 기각 2025.01.16
서부지법의 구속영장 발부 2025.01.18
(탄핵반대진영의 서부지법 소요사태 발생)
검찰청구, 중앙지법의 구속기간연장 기각 01.24
검찰 기소 2025.01.27
헌재 10차 변론 종결,형사재판개시 2025.02.20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가 헌재에서 인용되지 않으면 3달 가까이 진행된 이 모든 과정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개연성이 높다. 지난 주 형사재판 준비기일에 중앙지법 해당 형사부에 청구된 대통령측의 구속적부심은 헌재의 결론을 바라보고 있다. 사법부가 최고 권력자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의혹은 이제 사법부가 여론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처지에 놓이게 했다. 탄핵찬성만큼 과반 이상의 지지를 받지 못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탄핵반대 여론은 마치 양당제로 갈린 총선과 대선의 지지율 양상으로 그려지며, 이것은 헌법재판관 8명중 3명은 탄핵에 반대할 수 있다는 해괴한 셈법으로 이어진다. 대통령 탄핵인용을 위한 헌재의 의결정족수는 6명 이상이다(주6).

세계사의 혼돈 국면에 그래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정치와 경제 체계에 있는 것으로 보이던 국가에서 이런 위험한 도박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은 어쩌면 그 사회의 실상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일상에 만연된 파시즘이다. 미셸 푸코는 자신의 주적으로 간주한 파시즘에서 세가지 얼굴을 본다.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같은 역사적 파시즘, 파시즘에 관한 언설과 행위 또는 열망에서 보이는 개인적 파시즘, 서구의 사고에서 권력의 형식이자 실재로의 접근로로 성역화한 '법, 한계, 거세, 빈틈'과 같은 범주의 우울한 공격성의 파시즘'(주7)이 바로 메두사의 머리같은 파시즘의 모습이다. 한국 사회의 내면에 두번째, 세번째 얼굴로 대표되는 파시즘의 경향이 만연되어 있다면, 헌재의 결정은 첫번째 얼굴로 대표되는 파시즘에 합법의 길을 터주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각주
1. 이 문제제기는 1843년 키에르케고르가 코펜하겐에서 익명으로 출판한 공포와 전율 : 요하네스 드 실렌티오의 변증 시 Frygt og Baeven : Dialektisk Lyrik af Johannes de Silentio 에서 제시된 세가지 문제유형 중 첫번째다. 이 책의 이례적인 성공은 작가로서 자신의 이름에 불멸성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하다고 일기에 기록할 정도로 키에르케고르를 고무시켰다. Konrad Paul Liessmann, Sören Kierkegaard zur Einführung(Hamburg:Junius, 1993), S.57-58 참조. 한편, 이 첫번째 문제제기는 공포와 전율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 "아브라함이 자기 자신 보다 더 사랑해야할 그 아들 이삭에 대한 윤리적 의무를 정지시키는 것이 보편 윤리의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가능한가?" S. Kierkegaard, Furcht und Zittern, in Gesammelte Werke 4.Abteilung, h.v., E. Hirsch & H. Gerdes(Gütersloher Verlagshaus Gerd Mohn, 1982), S.61.
2. Carl Schmitt, Politische Theologie : Vier Kapitel zur Lehre von der Souveränität, neunte Auflage(Berlin:Duncker&Humblot, 2009), S.14.
3. Mariano Croce & Andrea Salvatore, Carl Schmitt‘s Institutional Theory : The Political Power of Normalit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3), p.12.
4. 상동 22-23.
5. Reinhard Mehring, Carl Schmitt zur Einführung(Hamburg:Junius, 2017), S.35-37.
6. 헌법 제113조 및 헌법재판소법 제23조(ChatGPT)
7. Michel Foucault and Theology : The Politics of Religious Experience, ed.J.Bernauer&J.Carrette(Routledge, 2014), 4장. 미셸 푸코의 종교철학 : 반파시스트적 삶을 위한 서론  James Bernauer p.78.

*작성 : 2월 17, 19, 24일

https://youtu.be/-7ccwARbers?si=Cp1fAcqg_A71BQL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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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권력자의 인터뷰 : 박정희

단상 Vorstelltung 2025. 2. 11. 05:1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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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트브에서 1977년 11월 29일에 있었던 박정희와 일본 언론인과의 대담영상을 봤다. 아마도 당시 국내의 방송에선 시도할 수 없었던 대담형식으로 보일 정도로 일본 기자의 질의는 교묘하게 정곡을 찌르는 방식으로 대통령을 몰아 세웠다. 첫번째 질문은 당시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권력승계가 이뤄지고 있다는 북한에 대한 것이었다. 시종일관 비굴하다싶을 정도로 웃음기를 띤 기자의 이 질문을 받으면서 박정희는 편안한 표정으로 이 황당한 사회주의 국가의 권력이동에 관해 논평했지만, 두번째 그리고 세번째 질문에선 그의 표정이 굳어졌고 답변도 의례적이었다. 그것은 유신체제에서 한국의 대통령 선출방식에 관한 것과 김대중에 대한 것이었다. 박정희는 마치 일본기자가 걸어놓은 덫에 걸린 것으로 보였다. 기자는 이런 의도를 가지고 질문을 했던 것이 아닐까?

'너는 북한의 부자권력승계를 비판하겠지만 헌법을 뜯어고쳐 종신집권을 시행하는 것도 모잘라, 이런 독재에 방해가 되는 정적을 너가 좋아하는 이웃나라에서 처리하려고 했지만 잘 안되서 감옥에 보내지 않았어?'

아마도 박정희는 그날 밤 이 기자를 안주삼아 측근들과 술잔을 돌렸을 것이다. 물 웅덩이에 고인 달빛을 보며 윤은 이런 권력가의 로망에 심취했던 것인가? 부하의 총에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어차피 가는 인생인데 한방 폼나게 살아봐야 하지 않냐고? 서울법대를 나와 9수 끝에 사시를 통과하고 검찰 특수부를 거쳐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 대통령 그리고 계엄령으로 할 건 다했다. 총에 맞아 죽을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이제 살아온 날들 보다 참회의 날들이 더 길게 느껴질 것이다.

https://youtu.be/GqUc_xte0DM?si=PW7qPXk0CHDhMAp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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