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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국어교과서에서 다룰 정도로 비중있다는 이 책은 서양의 대표적 고전인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기초를 두고 시대를 뒤섞으면서 이 고전의 인물들을 동원시킨다. 존 바스의 경우처럼 변주와 방식의 또다른 특이성을 보여주긴 하지만 사실 읽는 재미 보다는 중압감과 의무감으로 읽게 만드는 책이다. 루마니아의 흑해 해안가로 추정되는 세상의 끝마을 토미로 추방된 오비디우스의 행적을 찾아간 코타의 여정이 어떻게 전개될지 내심 궁금해 가며 소설을 쫓아가지만 엉뚱한 방향으로 소설은 나아간다. 오비디우스의 작품을 꾀고 있다면 좀더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소설일 수도 있겠다. 

주요 등장인물 : 코타, 오비디우스, 키아네(오비디우스의 부인), 피타고라스, 아라크네, 아우구스투스 1,2세, 에코, 이아손(무역상), 테레우스(개똥지빠귀), 이티스, 프로크네, 필로멜라, 키파리스(난쟁이 영화기사), 티스(독일 출신 장의사), 파마(소문의 식료상), 바투스(간질병을 앓다가 돌로 변한 파마의 아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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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중심

책들 Bücher 2011. 9. 18. 10:1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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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 : 지옥편』을 읽다가 지루해서 반납했다. 고대 이후 서양 지성사에 대한 일종의 검열같은 리뷰라는 점에서 존 바스가 했던 시도와 유사하다. 오히려 존 바스가 더 생동감있지 않았나 싶다. 바스는 선대의 유산을 단죄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유산을 개작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 읽다가 뒤쪽에 있는, 본문의 분량과 맞먹는 기다란 주석을 참조하며 읽는 것도 고역이다. 주석에 큰 욕심을 부리지 말고 본문 밑에 짧은 분량으로 싣는 방식이 가독에 더 용이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작을 중간에 읽다가 그만두면, 큰 산을 앞에 두고 발길을 돌린 듯한 낭패감이 든다. 그래서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경영서 한 권을 골랐다. 허남석과 포스코 사람들이 지은 『강한 현장이 강한 기업을 만든다』(김영사, 2009, 1판 13쇄). 아무래도 노골적인 자사 홍보물로 밖에 볼 수 없는 책인데, 이런 높은 판매부수는 직원이 1만 7,000명에 달하는 포스코의 규모를 짐작해 볼 때 알만한 수치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이런 책을 들여다 볼 만한 관심은 조금 있지만, 중간 중간에 구역질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책의 서두를 장식한 정준양 포스코 회장의 추천사부터 그렇다. 철강산업이 쇳물을 만드는 제선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현실에서 포스코는 파이넥스 공법으로 탄소배출량을 상당히 줄였다고 하는 점은 그렇다 치더라도, 앞으로는 소형원전을 이용한 수소환원기술을 상용화해 '환경오염이 없는 제선작업을 이루는 동시에 저탄소 녹색성장의 선두주자'가 되겠다는 포부는 이병박 정권의 녹생성장과 뜻을 함께 한다. 원전을 늘려가며 녹색성장을 한다는건 원전을 녹색으로 칠해 그 위험성을 가리겠다는 곡학아세다. 그래도 이 책에서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은, 450 만평에 이르는 광양제철소 공장 구석 구석을 제철소장이 헬맷을 쓰고 방진복을 입고, 작업화를 신은 채 매일 매일 돌아다니며 직원들을 살피는 현장 중심주의다. 현장을 옥죄기 위한 의도는 분명하지만, 직원들과 작업과 관련없는 대화도 하면서 그들의 고충을 들어준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라 본다. 이건희나 이재용은 위험산업장으로 찍힌 삼성전자 공장을 과연 얼마나 가 보았을까. 사장단 회의도 자신의 집에서 주재하는 등 웬만 해서는 출근을 하지 않는 이런 족벌세습경영주와는 전혀 다르다. 입으로는 위기 경영이니 하면서 게거품을 물며 겁박이나 할 줄 알지 현장 알기로 개코로 아는 경영주야말로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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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의 질서

문학 Literatur 2011. 6. 13. 16:02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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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우스의 사촌인 벨레로폰의 계속되는 이야기 속에 작가의 의도를 보여주는 구절.

"나는 목소리들로 가득 차 있어. 모두 내 목소리인데, 어느 것도 내가 아냐. 말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예전처럼 확실하게 단언할 수가 없어. 모호해지거나 어려워지는 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냐. 나는 영감을 주지는 못해도 적어도 즐겁게는 해 주고 싶었어. 하지만 사람들은 광기에 덧씌워진 질서에 대한 환상을 가졌다고나 할까. 때때로 페가수스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 내려다보면 미로 같은 늪 길도 구도가 분명해 보여. 물이 어떻게 흐르고 왜 흐르는지, 그리고 어떤 짐을 지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있지. 하지만 지상으로 내려와 늪 사이로 들어가면 수렁에 처박히게 돼."
 
존 바스, 『키메라』, <벨레로포니아드> 2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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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바스의 『키메라』(1972)를 절반 못미쳐 읽고 있는데, 너무 지루해서 내일 반납할지도 모르겠다. 웬만한 소설이라도 별 흥미가 없어도 완주하는데, 이야기꾼은 저혼자 신화를 비틀어대며 주절거리기에 여념없고 독자에게 글자는 맺히지 않고 흘러가 버린다. 천일야화를 바탕으로 한 첫번째 노벨라 '두니자디아드'는 그래도 읽을 만 한데, 페르세우스를 다루는 그리스 신화에 대한 메타 이야기인 두번째 노벨라 '페르세이드'는 도대체 종잡을 수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 소설가이자 이론가의 면모를 물씬 보여주는 작품인데(노먼 메일러가 『밤의 군대들』이라는 악전고투의 경험에 바탕한 소설로 힘겹게 획득한 67년 전미도서상을 바스는 이 책으로 수상했다), 아무래도 나한테는 이런 방식, 그러니까 이론화를 위한 좋은 미끼같은 지독한 실험적 형식이자 상상력이 복잡하게 작용하는 소설 보다는 좀 더 리얼리티에 근접한 소설이 취향에 맞는듯 하다. 바스같은 작가에게 리얼리즘이란 한물 가고 구태의연한 양식이겠지만서도, 웬지 상상 속에서만 분탕질을 하는 작가가 괴기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텍스트 : 『키메라』이운경 역(민음사, 2010, 1판 1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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