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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과 24일 부서연수가 강릉 포남동에서 있었다. 첫날은 예전에 한 번 방문한 적이 있는 주문진의 가공공장을 둘러 보고,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저녁까지 회의를 한 후, 새벽까지 술집과 당구장을 전전했다. 다음날은 동해의 처가로 일행들이 나를 데려다 주고 서울로 올라가기 전, 전망 좋은 동해 휴게소와 대진의 방파제로 내가 일행들을 안내했는데 다들 좋아했다. 처가에서 하룻밤 자고 어제 뒤늦게 내려온 가족을 남겨두고 오늘 점심 때 혼자 귀경길 버스에 올랐는데, 삼척에서 출발해 동해를 거쳐 동서울로 가는 이 버스의 내 자리 옆에 사북,정선,태백을 지역구로 하는 통합민주당 최종원 의원이 먼저 타고 있었다. 그냥 비슷하게 생긴 사람일 수 있을 듯 해서 횡성휴게소까지 모른 척 하면서 졸고 가다가 버스가 횡성 휴게소에서 떠날 때 내가 먼저 인사를 하고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할 때 까지 주로 정치 현안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개인적인 일정에는 이렇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얘기와 이런 저런 의정활동에 들어가는 품에 비해 의정활동비가 현실화되어 있지 않아 대다수 국회의원이 이리 저리 손을 벌릴 수 밖에 없는 의정 현실에 대한 공분이 이어졌다. 종편 관련 방송위 국감에서 보여 주었더 투사 이미지 답게 민주당의 통합과정에 대해서 강한 비판을 보여 줬는데, 새롭게 진입한 젊은 신진세력에 대한 견제감을 보이는 반면 문성근의 정치참여에 대해선 우호적인 반응을 보여줬다. 혹시 배우로 다시 복귀한다면 같이 일해 보고 싶은 감독이 있냐고 물었더니 이명세나 임권택 같은 감독들이 제대로 펀딩을 못받아 작품활동을 할 수 없는 영화계 현실의 어려움을 개탄했다. 정치현실과 당내 계파 갈등에 대해 진저리난다는 듯한 토로와 표정을 보여주면서도 분명히 19대에도 출마할 뜻이 있음을, 당내 경선에서 당권 도전 의사가 없냐는 질문에 자신은 야권 내에서도 야권을 표방하는 무당파라는 소신의 답변에서 읽을 수 있었다(그 다음날인 26일에 통합민주당의 지도부를 뽑는 예비경선이 있다). 지난 국감 때 감사대상인  KT 간부들과 있었던 술자리 파동에 대해선 다소 억울한 입장임을 말하면서 당장 28일 열리는 MB의 영부인 김윤옥의 명예훼손건에 대한 재판에 더 신경을 쓰는 인상을 받았다. '영부인이 권력을 이용해 재산을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발언 때문에. 한강변에 들어서는 버스에서 석양을 받으며 영화계 현실을 얘기하는 초로의 배우 출신 의원이 보여주는 모습은 40년 배우 인생의 최종 기착점은 배우임을 알리는 사명감마져 보일 정도로 진중했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지난 한 주간 보아온 황순원의 『神들의 주사위』를 다 읽었다. 작가가 60대의 나이 이후에 이런 장편을, 소설가  김치수의 해설처럼 인물들간의 대단한 조직성을 갖춰 장인정신으로 제작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시골 토호 집안의 촉망받는 한 고시생의 로망과 농촌문제 및 환경오염, 통치문제에 대한 고발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다만 주요 인물들간의 일부 대화가, 작품 전체에서 드러나는 정성어린 표현기법에 비해 다소 부자연스러운 감이 있다. 해설자도 지적하고 있지만, 이 작품의 장르는 딱히 규정하기 힘든 점에서 로망이라고 봐야할 개인적 서사이지만, 도시자본에 종속되어 붕괴하는 농촌 사회에 대한 공분은 있어도 이를 극복하는 미학적 상징성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와 같은 역작에 비해 약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무지몽매한 내게 여름 한 철 잠깐 내렸다 그치고 말 '소나기'로만 기억되는 작가가 이런 작품을 이미 30 년 전에 내놓았다는 것은 시대의식의 선견지명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염색공장이 들어서는 농촌 사회에서 지역개발을 우선하는 유지들과 이를 염려하는 지식인 계층간의 대립구조는 원전단지 유치 예정인 삼척과 영덕에서 확대재생산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인접 지역구의 최의원에게 물어봤는데, 원전의 위험성을 어느 정도 알지만 아무래도 지역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 아니냐는 식으로 들리는 애매한 답변을 들었다.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텍스트 : 황순원, 『神들의 주사위』(문학과 지성사, 황순원 전집 10, 2003년 재판 3쇄) 
출판이력 : 1978년, 『문학과 지성』봄호, 첫 회 발표. 
               1980년 7월 『문학과 지성』정간, 
               1981년 『문학과 지성』8월호부터 1982년 5월호까지 연재.
등장인물 : 두식영감, 한영아범, 한영, 한수, 진희, 세미, 병배, 민섭, 봉룡, 문진영감, 송회장, 윤의사, 보건소장, 강사장, 심읍장, 명재소년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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