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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Literatur 2011. 7. 6. 09:18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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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투산에서 도라민과 함께 지도자의 권위를 획득한 짐은 바다에서 해적질을 하는 브라운 패들의 침입으로 위기에 봉착한다. 파투산으로 들어가는 강의 하구에서 브라운은 노략질한 스쿠너 범선으로부터 보트를 띄어 13명의 부하들과 함께 강 상류로 진입하다가, 밀림의 원주민으로부터 격렬한 저항사격에 보트를 버리고 방어용으로 쓸만한 구릉으로 부하들과 도망친다. 여기에 목책을 구축하고 불안하게 목숨을 연명하다가  짐과 적대관계에 있던 라자 진영에서 온 밀사 카심과 비밀 접촉을 하게 된다. 다음은 브라운의 악랄한 본성을 보여주는 대목. 

"그[브라운]가 거짓 동맹 관계를 계획하고, 마음속으 그 백인[짐]의 운명에 대해 이미 결정을 내리는가 하면, 고자세로 당돌하게 카심과 음모를 꾸미면서, 그 자신도 거의 모르는 가운데 실제로 원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자기를 거역했던 그 밀림의 고을을 파괴하여 온통 시신으로 덮이고 불길에 휩싸이게 하자는 것이었음을 누구나 감지할 수 있었다."

조셉 콘래드,『로드 짐』2, 227.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이 작품의 후반부로 가면 콘래드는 서술을 말로의 이야기 방식에서 말로의 편지 방식으로 바꿈으로써, 이 작품에서  드물게 나오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의 형식을 본격적으로 도입한다.   

그리고 짐의 최후. 스타인이 짐을 가리켜 '로맨틱'하다고 규정한 것은 역자의 해설처럼 역설적이게도 자기 파괴적인 이기주의를 포함한 다중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 백인은 좌우로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향해 자랑스럽게 굽힘 없는 눈길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고 난 후 그는 손을 입술에 대고 앞으로 쓰러져 죽었다. 그게 끝이었다. 그는 구름에 가려진 채 떠나갔으며, 심중을 헤아릴 길이 없었고, 잊혀졌으되, 용서받지는 못했고, 지나치게 로맨틱했다. 그가 소년다운 꿈을 꾸던 그 걷잡을 수 없던 시절에도 이런 비범한 성공의 유혹적인 형상을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자랑스럽고 굽힙없는 눈길을 보냈던 그 짧은 마지막 순간에 그는 한 동방의 신부처럼 베일을 쓰고 자기 곁에 다가온 그 기회 ㅣ 의 얼굴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명성을 챙기는 무명의 정복자가 되어 자기의 도도한 이기주의가 보내는 손짓과 부름을 받고 샘 많은 연인[주얼]의 품에서 자기 자신을 떼어 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허깨비 같은 이상적 행위와 무자비한 혼례를 올리기 위해서 살아 있는 여인을 버리고 떠나고 있다. 그가 이제는 아주 만족하고 있는 걸까? 나는 궁금하다. 우리는 알아야겠다. 그는 우리 중의 한 사람이다."
 
상동, 291-292.

스타인은 자신의 옛친구이자 전우였던 도라민으로부터 우정의 증표로 받은 은반지를, 파투산으로 떠나는 짐에게 일종의 신임장으로 주었는데, 짐은 파투산에서 이 반지의 보증과 더불어 복수도 당해야 했다. 퇴각하던 브라운 일당의 역습에 강하구를 지키다가 전사한 도라민의 아들 다인 와리스의 손가락에 짐에 대한 신뢰의 증표로 이 반지가 끼워져 있던 것이다. 이 작품의 복잡한 서술형식은 불가지하고 혼돈스러운 짐의 캐릭터에 대한 암시를 드러내는데, 이는 새로운 형식과 더불어 더이상 영웅이라고 할 수 없는, 불완전하고 규정불가능한 주인공들이 몰려오는 현대소설의 도래를 예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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