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힘

문학 Literatur 2011. 6. 28. 18:2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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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면서 자꾸만 『지옥의 묵시록』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강 깊숙히 밀림으로 들어 갈수록 새로운 사건이 기다리고 있는 장면들과 까면 깔수록 계속 핵심이 나오는 양파처럼. 화자가 화자들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에서 말로는 아주 드물게만 작가의 서술 대상이 된다. 어쩌면 우리의 오랜 조상들은 말로의 이야기 방식으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전율할 수 있는 감성을 지녔을지도 모른다.  

[말로가 스타인과 짐에 관한 얘기를 나눈 후 짐을 원시인이 지배하는 밀림의 벽지 파투산의 교역소 서기로 보내고 난 후]

"아직도 최종 판단은 내려지지 않았고 어쩌면 영영 내려지지 않을 거야. 충분한 발언이야말로 우리가 일생 동안 말을 더듬으며 노리는 유일한 지속적 의도임이 분명하지만, 사람의 일생이란 그런 발언을 하기에 너무 짧지 않은가? 만약에 최종 판단이 내려질 수만 있다면 하늘과 땅을 진동케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판단에 대한 기대 ㅣ 를 이미 포기해 버렸어. 우리의 사랑, 욕구, 믿음, 회한, 굴종, 반항 등에 대해 우리가 최종적인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영영 없을 거야. 하늘과 땅을 진동하게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해. 적어도, 하늘과 땅 어느 것에 대해서도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우리가 그걸 진동케 해서야 안되지. 짐에 대해서 내가 내릴 최종 판단은 몇 마디 되지 않을 거야. 나는 그가 위대함을 성취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이야기할 때, 아니 오히려 그걸 들을 때, 그 위대함은 왜소해지고 말걸. 솔직히 말해서, 내가 불신하는 것은 내 말이 아니고 자네들의 마음이지. 자네들이 육신을 살찌우느라 그만 상상력을 굶주리게 했다는 두려움만 없다면 나는 달변으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거야."

조셉 콘래드, 『로드 짐』2 이상옥 역(민음사, 2007, 1판3쇄), 17-18.

[짐이 파투산으로 떠나기 전, 말로와의 대화 중]
""기억을 하는 쪽은 내가 아니요 이 세상도 아니라네." 내가 소리를 질렀어. "기억은 자네가 하고 있는 거야. 자네가." 그는 조금도 움츠리지 않고 열띤 어조로 말했어. "모든 것을, 모든 사람, 모든 사람을 잊어야죠....""

상동, 34.

[짐을 데리고 파투산 입구까지 데려다 줄 쌍돛대 범선의 선장이 하는 말]
"짐이 잠시 선실로 내려간 사이에 내 말에 대합하면서 그는 "그럼요. 파투산이지요."라고 말했어. 그는 짐을 파투산 강의 하구까지만 데리고 갈 뿐 강을 "상승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하더군. 그의 유창한 영어는 마치 광인이 편찬한 사전에서나 나올 만한 말로 되어 있었어."

상동,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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