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소설

문학 Literatur 2011. 6. 21. 16:5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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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래드의 소설은 『어둠의 핵심』만 읽어 봤는데, 서술형식의 특이성 외에 별도로 짙게 남은 인상은 없었다. 이 소설도 주로 말로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서술 방식은 동일하지만, 파트나 호에서 벌어진 사건에 관해 직접 서술하지 않고 주변으로 빙빙 이야기를 돌면서 사건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방식이 긴장을 서서히 고조시킨다. 이런 소설에 관해 미리 사전 정보를 읽는 것은 완벽한 스포일러일 것이다.    

[말로의 이야기]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범죄보다 더한 나약함을 저지르다가 발각된 사람을 지켜보는 일보다 더 끔찍한 것은 없거든. 가장 평범한 형태의 강건함만 있어도 우리가 법률적 의미의 죄인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하지만 우리 중의 어느 누구도 나약함으로부터는 안전할 수가 없어...반생이 넘도록 우리에게 숨겨져 있어서 더러는 그것을 감시하기도 하고 못 보기도 하고, 또 더러는 기도로써 그것을 막으려 하고, 사내답게 멸시해 버리고, 또는 억압하고 무시하기도 하지만, 그런 나약함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일세...나는 거기 서 있던 그 젊은이[로드 짐]를 지켜보고 있었지. 그의 외모가 내 마음에 들었던 거야. 그런 외모를 난 잘 안다고. 그는 출신이 좋은 사람이거든. 그는 우리들 중의 한 사람이라할 수 있어. 거기서 그는 자기 부류 사람들의 태생을 대표하고 있어. 결코 영리하거나 재미있지는 않지만 정직한 믿음과 본능적인 용기에 존재의 근거를 두고 있던 선 ㅣ 남선녀를 대표하고 있었지. 나는 군대의 용기라든지 시민적 용기라든지 또는 그 어떤 특별한 종류의 용기를 말하려는 건 아니야. 내가 의미하는 것은 그저 유혹과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타고난 능력으로서 이지적이지는 못하되 허식이 없는 마음의 태세이기도 해."   

조셉 콘래드,『로드 짐』1 이상옥 역(민음사, 2007, 1판 3쇄), 71-72.

[짐이 파트나 호를 빠져나오는 시점에 관한 말로의 이야기]
"그는 모든 사람들이 그 이상한 소음에 대해 분별력 있는 주의를 기울일 정도로 유식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철선이며 하얀 얼굴의 사내들이며 그 밖의 모든 광경과 소리 같은 배 위의 온갖 것들이 무식하고 경건한 다수의 승객들에게는 똑같이 신기하기만 했고 또 영원히 불가사의할 뿐만 아니라 믿음직해 보이기도 했겠지. 그에게는 그런 사실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 것은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했으니까."

상동, 133.

[파트나 호를 공해에서 발견해 아덴항으로 예인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프랑스 군함 장교의 이야기]
"예인하는 동안 우리는 사뭇 두 명의 조타원에게 도끼를 들려 밧줄 곁에 서 있게 했답니다. 만약에 기선이 침몰할 경우에는 우리 군함에서 예인 밧줄을 잘라버리자는 것이었지요...ㅣ 장교 한 사람이 그 배에 남아서 감시의 눈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건 올바른 판단이었습니 ㅣ 다...우리 배는 구명정들을 내릴 준비를 해두었고, 나 역시 그 배에서는 여러 조치를 취한 거예요."

상동, 214-216. 

[짐을 다시 만나 추천서를 써주기 위해 그를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온 말로의 이야기]
"그는 너무 섬세하고 섬세해서 아주 불행했던 거야. 조금만 더 거친 성격이었다면 그런 마음고생을 겪지 않았을 것이고, 한숨짓거나 불평하거나 아니면 너털웃음을 웃으며 자신과 화해했을 테니까. 좀 더 거친 성격이었다면 아무 상처를 받을 수 없을 만큼 무지했겠지만, 그런 사람이라면 내게는 전혀 흥미가 없었을 테지."

상동, 268.

짐은 파트나 호가 난파의 위기에 몰려 일촉측발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에서 멈칫거리다가 이미 구명정을 내려 승객들을 팽개친 채 자신들만 빠져나가려던 선장과 항해사 등 간부 3명의 긴박한 호출로 기선에서 뛰어 내린다. 그러나 그들은 짐을 조지라는 기관사로 오인한 것이었다. 결국 이들 세 명의 뱃사람과 함께 짐은 선원증을 박탈당하지만 이들과 달리 극심한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된다.
 
[말로의 사무실에서 계속되는 말로의 이야기]
" 나로 하여금 잠자코 있게 한 것은 그를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어. 왜냐하면 내가 만약 그를 어둠 속으로 사라지게 놓아 준다면 영영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불가해한 힘으로 날 짓누루고 있었기 때문이야."

상동, 272.

[짐이 말로의 추천장으로 두번째로 일한 항구의 선구상에서 또다시 일을 그만두고 떠나려 할 때, 이 상점의 공동경영자인 에그스트룀이 짐에게 했던 말을 말로에게 전하는 대목]
"내가 말했지요. '다만 이 말은 해두어야겠어. 자네가 계속 이렇게 살아간다면 이 세상이 자네를 지탱해 줄만큼 넓은 곳이 아니라는 것을 이내 알 걸세...'...[말로에게 짐이 파트나 호의 항해사였다는 얘기를 듣고] 세상에 누가 그런 ㅣ 걸 상관한답니까...이 세상은 그의 광분을 지탱해 줄만큼 넓은 곳이 되지 못할 거라고 녀석에게 말해 주었다고요"

상동, 295-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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