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의 안착

책들 Bücher 2010. 5. 2. 15:1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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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셋 모옴의 『인간의 굴레에서』를 다 읽었다. 증권투자로 돈을 날려 의학공부를 접은 채 노숙하며 전전하던 필립은 애설니의 도움으로 어렵게 의류 상회에 취직한다. 이후 블랙스터블에 있던 백부의 죽음으로 유산을 상속받아 7년간의 의학공부를 마치고 면허를 딴 뒤, 선의(船醫)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닐 꿈을 꾸던 필립은 애설니의 장녀 샐리와 뜻밖의 운명에 놓이게 된다. 애설니 가족과 필립이 켄트지방에서 홉을 따는 이야기가 나오는 소설의 후반부는 귀농을 그리는 아름다운 한 편의 전원소설이다. 몇 개의 문장이 이 소설의 전반적 주제를 암시해 줄 것이다. 그것은 원래 의미가 없는 삶에 의미의 굴레를 씌워 집착하지 말고 양탄자를 짜듯 무의미한 세계에 자신의 실날로 즐겁게 자신만의 무늬를 짜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예술가의 구도적 집념과 일상인의 현실인식이 격렬히 충돌하는 모습이 아주 심각하지 않게는 보여지지만, 작가는 현실의 건전한 상식에 대한 긍정으로 끝맺음한다.   

"크론쇼가 언젠가, 공상의 힘으로 시공의 두 영역을 영유하는 사람에게는 삶의 사실들이란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인간의 굴레에서』2, 496면.

"행복에 굴복하는 것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일지 몰랐지만 그것은 수많은 승리 보다 더 나은 패배였다."

상동, 5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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