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폭압

단상 Vorstelltung 2010. 4. 16. 23:22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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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후배와 전철을 타고 집에 가면서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과시용으로 보일만큼 직장에서 열성적으로 일하는 이 친구가 지금 다니는 직장을 평생 직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생각하지 않기 보다는 과연 그곳에서 오래 동안 살아 남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연수가 쌓일 수록 숨이 턱턱 막히듯이 조여져 가는 건 일반적인 직장생활에서 피할 수 없는 현상인지 모른다. 연수가 올라갈 수록 어떤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않으면 치이고 만다는 듯이 인간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가면서 사회는 인간을 계발시킨다. 

"나이가 들면서 필립은 백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필립은 솔직하고 고지식한 편이었다. 그래서 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실천할 수 없는 것도 성직자의 입장으로서는 열심히 설교할 수 있다는 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의 굴레에서』1, p.135.

다음은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인간의 의지적 실천에 관해 모옴이 어떤 입장을 지녔는지 살짝 보여주는 구절이다. 뒤끄로는 소설에서 필립의 프랑스어 노선생.

"인간 평등과  인권 옹호 사상을 열정적으로 신봉했던 무슈 뒤끄로는 토론도 하고, 논쟁도 하고, 파리의 바리케이트 뒤에서 싸우기도 하다가, 오스트리아 기병이 밀라노를 공격하기 전에 탈출하며, 여기서는 투옥되고, 저기서는 추방당하는데, 그러면서도 마법과도 같은 그 말, 자유라는 말에 늘 희망을 걸고 다시 기운을 차렸다. 그러다 마침내, 병과 굶주림에 몸이 망가지고, 나이가 들어 이제는 어쩌다 얻어걸리는 가난한 학생들의 개인교습밖에는 입에 풀칠할 재간이 없는 신세로 전락하여, 이 아담한 소읍[하이델베르크]에서 유럽의 어떤 폭정보다 더 잔인한 생활의 폭압에 신음하고 있다."

상동,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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