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상담

문학 Literatur 2010. 4. 22. 11:1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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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휴가라서 아침부터 마을 도서관에서 루만의 『사회체계이론』을 보다가, 아무래도 이제 소설책 읽기는 잠시 접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마 안남았던 『인간의 굴레에서』1권을 마져 다 읽고 반납했다. 화가의 길을 접은 현실적인 필립은 의사의 길로 나선다. 소설의 1권 뒷부분은 신사와 카페 종업원의 쓰라린 연애담이다.

보통의 화가가 될 정도의 재능 밖에 안될 바에야 다를 길을 찾아 볼 것을 고민하는 필립이 화가의 길에 정진하고 있는 클러튼에게 듣는 얘기.

"아, 이보게, 신사가 되고 싶으면 화가를 포기할 수 밖에 없네. 신사와 화가는 연관이 없어. 노모를 모시겠다고 상품화를 그리는 사람들 얘기 들어봤을 거야. 효자는 효자지. 하지만 그렇다고 형편없는 그림을 그려도 된다는 건 아냐. 그러면 장사꾼에 불과해. 화가라면 어머니를 구빈원에 가게 할 거야."

『인간의 굴레에서』1, p.408.

계속해서 고민하던 필립이 자신의 재능을 확인하기 위해 프아네 선생에게 자신의 그림을 보여 주고 그로부터 받는 충고.

"가진 돈이 얼마 없다고 했나?...[먹고 살기에도 힘들다는 필립의 얘기를 듣고] 세상에서 가장 굴욕스러운 일은 말이지, 먹고 사는 걱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이야. 난 돈을 멸시하는 사람들을 보면 경멸감밖에 들지 않네. 그런 자들은 위선자가 아니면 바보야. 돈이란 제 육감과 같아. 그게 없이는 다른 오감을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지. 적정한 수입이 없으면 인생의 가능성 가운데 절반은 막혀버리네. 딱 한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한푼 벌면 한푼 이상 쓰지 않아야 한다는 거야. 예술가에겐 가난이 제일 좋은 채찍이 된다는 말들을 하잖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가난의 쓰라림을 직접 겪어보지 못해서 그래. 가난이 사람을 얼마나 천하게 만드는지 몰라. 사람을 끝없이 비굴하게 만드네...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적어도 품위를 유지할 수 있 ㅣ 는 정도, 방해받지 않고 일을 할 수 있고, 너그럽고 솔직할 수 있을 정도, 그리고 독립적으로 살 수 있을 정도는 있어야지. 나는 말이지, 글을 쓰건 그림을 그리건 예술하는 사람이 먹고 사는 일을 자기 예술에만 의존한다면 그런 사람을 정말 가련하게 보네...자네에겐 손재주가 어느 정도 있네. 끈기 있게 노력하면 꼼꼼하면서도 쓸 만한 화가가 되지 말란 법은 없지. 자네보다 못한 화가들도 수백 명이 되고, 자네 정도 그리는 화가들도 수백은 되네. 자네가 내게 보여준 그림들에는 재능은 없네. 열성과 지성은 있어. 자넨 보통 이상의 화가는 되지 못할 거야...자네가 내 충고를 바란다면 말일세, 이렇게 말하고 싶네. 용기를 내어 딴 일에 운을 걸어보라고 말일세.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겠네만 들려주고 싶은 말은 이거네. 내가 자네 나이 때 누가 내게 그런 충고를 해주었다면, 그리고 내가 그 충고를 받아들였다면 정말 얼마나 좋았을까 싶네...때가 너무 늦은 뒤에 자신의 범용을 발견한다는 건 끔찍한 ㅣ 일이야. 그렇다고 인격 수양이 되는 것도 아니고." 

상동, 41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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