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운명

단상 Vorstelltung 2010. 12. 20. 10:27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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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라디오에서 우연찮게 작가의 인터뷰를 들은 때가 있었다. 예전에 명절 즈음에 김주영이 나왔었는데, 작가란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품은 사람이라고 말했던 걸 기억한다. 세상을 풍요롭고  넉넉하게 살아온 사람이 글 나부랭이를 끄적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진흙탕에서도 꽃을 피우는 연꽃같은 존재가 작가라는 것인가? 개인적인 아픔을 만인에게 토로하는 것이 작가라면 너무도 사적인 규정이 되고 만다. 그 상처가 작품의 소재가 될 수는 있겠지만, 거기에 따라붙는 자기합리화의 기제를 피할 수도 없다. 물론, 그 상흔이 시대의 배경에서 오는 것인 한, 그 아픔은 보편적 체험으로 수용될 소지가 높다. 다른 동년배 작가들도 비슷하겠지만, 김수영의 시와 산문은 직접적인 전쟁의 참화로 뒤덮힌 잔해를 뚫고 피어난 꽃이다. 이에 비해 이청준의 특정 작품, 예를 들어 <눈길>은 가족사의 몰락이라는 철저히 사적인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김현으로부터 지 어미를 팔아먹은 소설이라는 핀잔도 받았지만, 들추고 싶지 않은 집안의 얘기를 끌어내어 이청준 특유의 주제인 인간의 원형적 그리움에 도달한 것은 탁월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고 그런 집안의 속사정은 어지간해서는 가까운 사람에게도 밝히기 힘든 소재다. 그 밝히기 힘든 답답함 때문에, 언젠가 이 소재를 다루겠다는 미룸과 연기 속에서 자신의 산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 작가의 운명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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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의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라는 에세이류의 단편소설집을 천천히 읽다가 이제 짧은 두 꼭지를 달랑 남겨 두고 있다. 앞부분과 중반 이후까지 읽으면서, 망향살이의 설움에 복박치는 노작가의 푸념처럼 읽히어 그만 읽을까 하다가 마져 잡고 있었는데, 마치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처럼 뒤로 갈수록 다시 일으켜 살아나는 숭고미처럼 노작가의 설움은 이 시대의 현재를 반추한다. 자신의 예전 단편의 모티브를 제공한 선교책자의 실화는 더더욱 현재감을 더한다. 한국전의 동란기에 다리밑에서 자신의 옷을 벗어 입혀주고 숨을 거둔 어미의 가슴팍에서 튀어나와 울음을 그치지 않던 여아가 미국 선교사에게 발견되어 양육되고, 결국 10살의 나이에 선교사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린 일화에 대해서, 이청준은 단지 개인에게 덮친 불운을 불분명한 운명에 돌리지 않고, 이런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들을 지목한다. 이 지목이 구체적이지 않아 모호하지만, 다시 전쟁을 외치는 이들을 우리가 두 눈 똑바로 뜨고 볼 수 있는 현재, 우린 똑같은 불행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전쟁이 인류 생존의 필요악으로 있어 왔고, 앞으로도 없다고 할 수 없는 이상, 평화만을 외치는 일이 오히려 허구적이라 해도, 인간의 생활세계가 무슨 봄철 밭갈이 처럼 마구 파헤쳐지고 뭉개지고 나서 터가 잡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연평의 황금어장에 북조선 배가 나올 수 없게 일방적인 북방한계선이 그어진 현재의 수역은 준비된 화약고에 다름 아니었다. 자연그대로 흘러가는 강을 파헤치고 비틀어 생명의 강을 만든다고 하듯이, 평화기반 조성으로 남북 공동 공영의 길로 갈 수 있는 방안을 팽개치고 무력으로 조저서 깔아 뭉개야 하겠다는 것이 이명박 정권의 이념이다. 악마를 뽑은 국민은 결국 대가를 치루는 거라고 한다면, 지금까지만 만으로도 족하다. 이 뒷수습만으로도 앞으로도 헤아리기 힘든 시간이 걸리겠지만, 또다시 강행되는 연평의 포사격훈련을 보면서 저세상으로 가신 우리 노작가께서도 이제 생전에 못다한 힘을 발휘해 오늘 내리는 눈처럼 많은 천상의 군대를 밤새 내려보내 전쟁을 외치는 저 악마들을 거둬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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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이 단편은, 일제시대 강진에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독립운동가와 함께 연해주로 떠난 8살 장남이 일본 첩자 혐의로 몰려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당하고 난 뒤, 70여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2002년 서울 월드컵에 다녀간 얘기를 소재로 한다. 혁명의 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가는 물론 모국어도 팽개쳐 버린 이 장남은 고국에 와서도 또다시 고국을 잊어야 한다는 역설에 부딪쳤다. 2002년 온 나라를 뒤덮은 붉은 물결에 동요된 어떤 흥분감이 혁명을 외치던 지난 세월 소련의 인민대열에서 자신의 국적을 숨기고 혁명에 동요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일깨운다. 언뜻 이해하기 힘든  심정이지만, 소련의 몰락 이후 더해진 어떤 당혹감이 월드컵의 붉은 물결을 만나면서 이 노인에게 '대한민국'이란 외침을 허위로 보이게 한 것인지 모른다.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군중의식 외에 악마들의 외침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너도 나도 빨간 셔츠를 입고 동요하던 사람들에게 한때의 즐거운 일탈감 내지 동질감이라는 추억 외에 다른게 있을리 없다. 굴절당한 삶을 지속해야 했던 노인에게만 그 심층이 보여졌을 뿐이다.
 
<천년의 돛배>(2006)
단편 소설집의 첫번째 작품으로, 어린 시절의 기억과 신화적 상상, 그리고 사실성이 결합된 원형질적인 작품이다. 상상의 허위를 벗기기 보다는 상상을 지켜주는 사람들의 공감을 보여준다. 눈 길 위에서 멀어져 간 자식의 발자국을 보며 닿을 수 없어도 마음이 가는 것처럼, 천년의 바위는 끊임없는 모녀 간의 그리움을 상징하며, 이 그리움에 사람들은 공감의 돛대를 꽂은 것이다. 그런데 이 돛배는 과연 실제하는 것일가?  

<지하실>,<이상한 선물>, <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
여기까지 실린 이 책의 단편들에서  이청준은 고향, 고국이라는 인간 원형의 귀향처를 그리워하면서도 갈 수 없는 심정을 반복하고 있다. 그 자신도 쫏기듯이 고향을 떠나야 했고, 우즈베키스탄이나 멕시코에 있는 이민 3세대의 조부도 쫏기듯이 고국을 떠나 이역만리로 떠밀려야 했다. 그리움과 회한의 정서는 노년의 작가에게 드리운 그림자다. 고향, 고국을 그리워 하지만, 더이상 그곳에 갈 수 없는 이율배반의 심정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남도의 백성 수만이 일본군에 납치되어 세계 곳곳으로 팔려나갔다는 역사적 사실도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을 지켜준 고국, 자신을 지켜준 고향이 없다는 데서 고국, 고향은 버려야할, 잊어야 할 장소다. 단편의 형식을 빌린, 그리고 세상과의 작별을 얼마 안남겼었던 노작가의 회한의 정서가 삶을 덧없게 채색한다.    

<부처님은 어찌하시렵니까><조물주의 그림>
소설이 아니라 작가와 비교적 가까이 지낸 친우들에 대한 뒷얘기같은 이야기들이다. 이 책의 그림을 그린 동향지기 화가 김선두와 그의 형, 그리고 박상륭의 편지. 특히 임권택에 대해 다룬 <조물주의 그림>은 Y 감독의 미학적 의식이 얼마나 고전주의적인지 보여준다. 황혼녁 남해에 낚시배를 띄워 바다 한 가운데에서 두 사람이 바라본 일몰의 광경에서 부터 전란의 추격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여학생이 숨어있던 바위에서 나와서 바라본 검은 산의 모습들. 자연이 빚은 산하와 인간이 갈군 지경들에서 이미지를 찍어내는 일은 또다른 고역이자 강행군임을 작가는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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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에 다녀 오다

여행 Reise 2010. 12. 6. 11:30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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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두 가족이 한 차에 타서 2박 3일간 전라 남도에 다녀왔다. 여행의 동기는 만난지 오래된 장흥의 옛 벗을 만나기 위함인데, 쉽게 가기 힘든 남도행이니 가서 두루 여기 저기 둘러볼 참이었다. 숙소는 지리산 자락에 있는 한 통신사의 수련관이었는데, 정작 지리산은 바라만 보고 왔다.
 
금요일 휴가를 내고 늦은 아침에 출발해서 중부-호남 고속도로로 내려가 담양에 도착했다. 메타세쿼이어라는 겨울철 황량한 가로수길과  대나무 숲으로 덮힌 언덕으로 이루어진 죽녹원을 들렀는데, 이날 추운 바람이 불어 하늘로 솟은 대나무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판옥선들끼리 부딛는 소리처럼 드럭드럭 거렸다. 죽녹원은 이정표 안내가 잘 되어 있었지만, 약간 미로같은 구조라서 잘못 돌면 빠져 나오기 힘든 길도 있었다. 날씨만 따듯했으면 더 둘러보기 좋은 곳이었다. 죽녹원을 나와 동행한 친구 가족이 스마트폰으로 탐색한 이름난 떡갈비 집에서 식사를 겸한 반주를 했다. 골목길에 자리잡은 식당은 밖에서 보기엔 전형적인 시골 읍내 식당처럼 허름해 보였으나, 방송을 타면서 유명세를 탔는지 원래 유명했는지 식당은 초저녁인데도 북적거렸다. 전날 술을 마셨지만, 잎새주로 마신 술맛은 이날 저녁이 가장 포근하고 흥겨운 취기를 주었다. 저녁을 먹고 국도같은 88고속도로를 타고 지리산에 있는 숙소에 들어와 볼링을 치고 막걸리를 마셨다. 

다음날, 숙소에서 아침을 일찍 들고 바로 장흥으로 출발했다. 구례에서 순천, 벌교, 보성을 거쳐 장흥까지 2시간 정도 걸렸다. 달리는 국도 옆에 남해 고속도로 공사가 진행중이라 길은 조만간 급속도로 빨라질 것이다. 가는 길 중간 중간에 좌측 창가로 거대한 담수호 같은 은빛 바다가 이따금식 보였다. 이청준의 <천년의 돛배>를 연상시키는 바다다. 장흥에는 그 친구 때문에 10년 전에 와보고 이번이 두번째인데, 그때 봤던 제암산의 기괴함은 변함이 없다. 길다란 상권으로 변모한 장흥읍 중앙거리에서 4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친구는 생각보다 번듯한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대개의 자영업이 그렇지만, 자리를 잡기 위해 힘겹게 살아온 세월이 느껴졌다. 결혼하기 전, 읍내에서 동떨어진 농가에서 살던 친구는 이제 읍내에 들어와 살고 있고, 옛집은 그대로 있는데, 방치된 채 관리가 안되 걱정이란다. 고향에서 나서 고등학교까지 마쳤지만 집안의 불운을 겪은 후 잠시 대처로 나가 살아 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아 귀향을 했고, 이제 고향에 정착한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결혼 전, 초라한 세간살림에서 변모한 모습은 마치 4만5천 인구의 장흥이 변모한 모습같았다. 친구가 만들어준 대형 피자를 먹고 난 후 손님 치루기에 바쁜 가게를 빠져 나와 5일장과 토요시장이 열리는 장터를 둘러 보고, 수문해수욕장에 들렀다가 다시 친구의 가게에 왔다. 오랜만에, 그리고 처음 만난 친구들의 가족들에게 장사로 바쁜 일손에 제대로 대접도 못해 줬다고 아쉬워 하며 친구는 새로 출시했다는 파닭을 포장해 주고 아이들 용돈을 찔러 주면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다음에 만나면 술 한잔 하자는 말을 남기고.

저녁 밤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두 가족을 태운 차는 구례군으로 접어 들고 있었다. 길게 뻗어 있는 지리산의 한 자락을 굽어 보면서 저곳에서 싸우다 죽어간 이들을 노래한  '지리산'이 나도 몰래 나왔다. 이날 밤에는 노래방에라도 가서 이 노래를 부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장흥 친구가 준 맛있는 파닭으로 맥주를 마시고 나니 꽤 피곤했다. 잠시 친구와 수련관 주변을 둘러 보며 마지막 밤을 보냈다. 우리와 동년배로 이 통신사의 부사장으로 영입된 낙하신 인사, 직장에 관한 이러저런 얘기. 문득 이 친구가 죽녹원에서 하던 말이 떠오른다.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꿋꿋하게 대지에 박힌 채 산들거리는 대나무처럼 직장생활도 유연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지만 거센 바람이 불면 대나무는 얼마나 흔들리며 얼마나 서로들 부딪치며  때로 그 끝은 얼마나 예리한 무기인가. 다음날 먹구름도 넘지 못하는 지리산을 저 멀리 보며 남원, 장수를 거쳐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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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이상

문학 Literatur 2010. 12. 1. 20:55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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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뉴 프런티어>란 시가 필요없는 곳이다...시 무용론(無用論)은 시인의 최고 혐오인 동시에 최고의 목표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진지한 시인은 언제나 이 양극의 마찰 사이에 몸을 놓고 균형을 취하려고 애를 쓴다. 여기에 정치가에게 허용되지 않는 시인만의 모랄과 프라이드가 있다. 그가 사랑한 것은 <불가능>이다...말하자면 시인이란 선천적인 혁명가인 것이다."(1961.3.'시의 <뉴 프런티어>')

『김수영 전집2 : 산문』(민음사, 2008, 개정판 6쇄), 239면.

"도대체가 시인은 자기의 시를 규정하고 정리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그에게 눈곱재기만 한 플러스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시의 현 시점을 이탈하고 사는 사람이고 또 이탈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다. 어제의 시나 오늘의 시는 그에게는 문제가 안 된다. 그의 모든 관심은 내일의 시에 있다. 그런데 이 내일의 시는 미지(未知)다."(1964.9.'시인의 정신은 미지')

상동, 253면.

"시인은 영원한 배반자다. 촌초(寸秒)의 배반자다. 그 자신을 배반하고, 그 자신을 배반한 그 자신을 배반하고...이렇게 무한히 배반하는 배반자다.ㅣ...술을 마실 때도, 산보를 할 때도, 교섭을 할 때도 무엇을 속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속이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그대를 속이고 있다. 그대가 영리한 사람인 경우에는 눈치를 챈다. 나를 신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리한 그대는 내가 속이는 순간만 알고 있고, 내가 속이지 않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대는 내가 시인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러한 그대를 구출하는 길은 그대가 시인이 되는 길밖에는 없다. 시인은 모든 면에서 백치가 될 수 있지만, 단 하나 시인을 발견하는 일에서만은 백치가 아니다. 시인을 발견하는 것은 시인이다. 시인의 자격은 시인을 발견하는 데 있다. 그밖의 모든 책임을 시인으로부터 경감하라!"(상동)

상동, 255-6면. 

"나쁜 시를 발견하기는 쉽지만 좋은 시를 발견하기란 참 어렵다. 그 시와 같이 살 수 있는 순간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시를 쓰기도 어렵지만 시의 독자가 되기는 더 어려운 것 같다. 진정한 시의 독자는 시인이 아니고서는 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피상적으로 시의 독자가 있느니 없는니 말할 수도 없고, 시의 독자가 없다고 비관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1964.10.'생활현실과 시')

상동, 26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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