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사람들

책들 Bücher 2010. 10. 8. 14:1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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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갔다가 시가전을 겪고 난 후 다시 전선에 복귀한 오웰은 목에 부상을 입고 후방에서 치료를 받다가 공산당 주도의 집권 정부에 의해 통일노동자당이 불법화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귀국을 결심한다. 그러나 오웰은 통일노동자당 의용군에서 복무했으므로 비밀경찰의 검거리스트에 포함되었다. 그를 검거하기 위해, 그의 아내가 머물러 있던 바르셀로나의 컨티넬탈 호텔에 경찰 6명이 급습하지만, 2시간 동안 경찰들은 정작 오웰의 아내가 누워있는 침대는 수색하지 않고 그 밖의 곳곳을, 바닥을 들추면서까지 수색했다. 여성이 누워있는 침대는 감히 건드릴 수 없다는 존중감이 이 경찰들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침대에 숨겨둔 여권을 빼앗기지 않아 오웰은 정쟁에 휩싸인 스페인을 벗어날 수 있었다. 전체주의에 대해 평생 견제의식을 지녔던 오웰은 이런  스페인 사람들에게서 가느다란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스페인 사람들이 관대하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실 그들은 20세기에 속하지 않는 고귀한 종족이다. 이 점 때문에 스페인에서는 파시즘이라 해도 상대적으로 느슨하고 견딜 만한 형태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프랑코가 1936년도에 일으킨 반란은 1939년 프랑코의 승리로 끝나고, 프랑코의 파시스트 정권은 1975년까지 이어진다] 스페인 사람들 중에 현대 전체주의 국가가 요구하는 지독스러운 효율성과 일관성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카탈로니아 찬가』, 285.

"이런 찬사-어떻게 끝이 나건 스페인 전쟁은 살육과 신체적 고통은 별도로 하고라도 경악할 만한 참사였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를 잠깐 보았다고 해서 꼭 환멸과 냉소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 경험 전체를 통해 인간의 품위에 대한 나의 믿음은 약해지기는커녕 오히려 강해졌다."

상동, 294.

"런던 외곽의 드넓고 평화로운 광야, 진창같은 강물 위의 짐배, 낯익은 거리, 크리켓 시합과 왕족의 결혼을 알리는 포스터, 크리켓 투수모자를 쓴 남자들, 트라팔가 광장의 비둘기, 빨간 버스, 파란 제복의 경찰관 모두가 영국의 깊고 깊은 잠을 자고 있다. 나는 때때로 우리가 폭탄의 굉음 때문에 화들짝 놀라기 전에는 결코 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상동,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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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스페인에서 일어난 좌파 세력간의 분열은 해방 후 북조선에서 일어난 강권 통치체제의 성립과정과 유사한 점이 있다. 이것은 20세기 전반부, 코멘테른의 지도를 받아  공산화로 치달은 전세계 절반의 국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거기엔 뚜렷한 차이점들이 있다. 예를 들어 북조선에서 스페인에서 일어났던 것 같은 혼란과 갈등은 매우 짧은 시기에 정리됐다. 월남의 공산화는 중국을 비롯한 강력한 외세를 저지하고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성격이 강하다. 한편, 파시스트를 막다가 강압통치를 불러 오는 악순환에 대한 오웰의 예견은 예리하다.  

"평생 사회주의에 헌신해 온 사람들에 대한 비난이 조금이라도 더 쌓이게 되면, 통일노동자당에 대한 혐의처럼 날조된 혐의들이 조금이라도 더 쌓이게 되면, 그 분열은 치유 불가능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유일한 희망은 정치적 논쟁을 철저한 논의가 가능할 정도로 유지하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과 그들보다 더 좌익인-또는 그렇다고 주장하는-사람들 사이에는 정말로 큰 차이가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자본가 계급 일부와 동맹(인민전선)을 맺음으로써 파시즘을 물리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반대자들은 이런 공작이 파시즘의 새로운 온상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는 해결되어야 한다. 여기서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우리는 몇 백 년 동안 반(半)노예 상태로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로츠키-파시스트!>라는 고함 외에 아무런 주장도 나오지 않는다면, 논의는 시작도 할 수 없 ㅣ 다...[이는] 진지한 논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유일한 목적일 것이다. 그것은 마치 체스를 두다가 상대가 방화나 중혼죄를 지었다고 갑자기 악을 써대는 것과 같다."

『카탈로니아 찬가』 230-231.

"사실 모든 전쟁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점차 타락해 간다. 개인적 자유나 진실한 언론 보도는 군사적 효율성과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동, 232.

"어디든 전선 가까운 곳에만 가면 전반적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니 신기한 일이었다. 정당간의 악의에 찬 증오심은 모두, 혹은 거의 사라져버렸다."

상동, 259.

"며칠 동안 후방의 신문에서 자신을 파시스트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모른 채 전사한 사람도 꽤 많을 것이다. 이런 일은 용서하기가 힘들다. 나도 전투하는 부대에게 나쁜 소식을 알리지 않는 것이 관례임은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을 전투에 내보내 놓고는 등뒤에서 그들의 당을 불법화하고, 지도자들을 반역자라고 비난하며, 그들의 친구와 친척들을 투옥했다는 사실을 알리지도 않는다는 것은 문제가 다르다."

상동,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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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중

책들 Bücher 2010. 10. 4. 13:42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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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으로 처음 조지 오웰을 읽었다가,  작가의 저술 연대를 거슬러 『동물농장』을 거쳐 이 책을  보고 있다. 여기서 1936년 당시 프랑코의 반란에 따른 반파시스트의 응전으로 치닫는 스페인 내전과  코민테르의 개입에 따라 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갈등을 겪는 무정부주의자 중심의 혁명파와 소련과 연계된 공산주의자 중심의 전쟁파의 대립을, 지리멸렬한 아라곤 전선과 격렬한 바르셀로나 시가전의 현장과 함께 오웰은 생생히 보고 하고 있다. 조지 오웰이 『카탈로니아 찬가』를 출간한 후 저술한 『동물농장』의 출판에 오웰은 애를 먹었는데, 2차 대전 기간 동안 소련과 동맹을 맺은 영국에 대한 비판적 서술이 『카탈로니아 찬가』에 드러난 점을 볼 때, 영국 정보부에서 고의적으로 『동물농장』의 출간을 저지했던 정황이 분명해 보인다. 더군다나 영국은 『동물농장』에서 돼지들[볼세비키]과 결탁한 인간 농장주 필링턴으로 비유된다. 읽기 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다큐의 진수를 이 책은 보여준다.    

                                 스페인의 북동부 위치한  자치 공화국 카탈로니아

"훈련과 무기 부족으로 인한 결함이 마치 평등주의적 체계의 결과인 것처럼 호도되기도 했다. 새로 모병한 의용군 병사들이 군기가 안 잡힌 무리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장교들이 사병들을 <동지>라고 불러서가 아니라, 신병 부대라는 것이 원래 규율이 잡히지 않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민주적이고 <혁명적>인 규율은 예상했던 것보다 믿을 만했다. 이론적으로 따지자면, 노동자들의 군대에서 ㅣ 규율은 자발적인 것이다. 이들의 규율은 계급에 대한 충성에 기초한다. 반면 브로조아 징집병 부대의 규율은 궁극적으로 공포에 기초를 둔다(의용군을 대체한 인민군은 두 유형의 중간쯤이었다). 의용군에서는 일반 군대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기합이나 학대가 조금도 용납되지 않았다. 일반적인 군사적 징계는 있었다. 그러나 매우 심각한 죄목에만 한정되었다. 어떤 사람이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처벌하지는 않았다. 우선 동지애의 이름으로 호소를 했다. 사람을 다루어본 경험이 없는 냉소적인 사람들은 금방 이런 방식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방법이 장기적으로 <효과>가 있다. 최악의 상태에 처한 의용군 신병들이라 해도 그 규율은 시간이 지나면서 눈에 띄게 나아졌다."

조지 오웰, 『카탈로니아 찬가』정영목 역(민음사, 2008, 1판 18쇄), 41-42면.

"무정부주의자들은 원칙이 다소 모호하기는 했지만 특권과 불의에 대한 증오는 정말로 순수했다는 점에서 대다수의 이른바 혁명가들과 대립되었다. 철학적으로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는 양극단이다. 실제적으로, 즉 목표로 하는 사회의 형태라는 점에서 둘 사이의 차이는 주로 강조점의 차이이다. 그러나 그 차이 때문에 절대로 화해할 수가 없다. 공산주의자는 늘 중앙 집권과 효율을 강조한다. 무정부주의자는 자유와 평등을 강조한다. 무정 ㅣ 부주의는 스페인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따라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사라지만 아마 공산주의 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전쟁의 처음 두 달 동안 상황에 잘 대처해 나간 사람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무정부주의자들이었다."
 
상동, 84-85.

"처음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곳에 계급 구분이나 빈부의 격차가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나는 이것이 희망과  위장이 혼합된 모습임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노동 계급은 시작은 되었으되 결코 견고하게 자라잡지 못했던 혁명을 믿었다. 부르조아지는 겁에 질려 잠시 노동자로 위장했다. 혁명 초기 몇 달 동안은 아마 살기 위한 방편으로 일부러 작업복을 입고 혁명적 ㅣ 구호를 외치며 다녔던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몇달간 전선에 있다 온 후] 모든 것이 평상시로 돌아가고 있었다.고급식당과 호텔은 값비싼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부자들로 가득했다. 식료품비는 급등한 반면 노동 계급의 임금 상승은 그에 훨씬 못 미쳤다."

상동, 150-151.

"정당 내부의 논쟁에 너무 자세하게 파고드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것은 오물 구덩이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그러나 가능한 한 진실을 확립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먼 도시에서 벌어진 이 지저분한 싸움이 보기보다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동,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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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들의 영도를 받으며 존즈의 메이너 농장을 접수한 동물들은 동물농장을 세운다. 그러나 혁명은 화석화되고 동물들 사이에서도 계급이 생긴다. 소비에트에 대한 풍자이면서도 우화로서의 알레고리인 이 소설의 대미는, 적의 주요 기능으로 규정했던 직립보행을 돼지들이 낑낑대며 흉내낼 뿐만 아니라 인간과 어울려 춤추며, 예전에 인근의 적대자였던 폭스우드 농장의 주인 필킹턴이 동물농장의 돼지들에게 초대되어 행하는 다음의 연설이다.

"동물농장의 주인 여러분, 당신들에게 다스려야 할 하급 동물들이 있다면, 우리 인간들에겐 다스려야 할 하층 계급들이 있습니다."(p.21) 이렇게 말하면서 필킹턴은 동물농장이 이룩한 노동의 효율화-식량분배는 줄이면서 노동시간은 연장시킨 것-을 극찬한다.

'노동자는 자본가가 되려고 한다'는 베블렌의 지적처럼, 봉기로 탈취한 생산물의 단물을 독점한 지배세력이 된 돼지들은 더이상 혁명이 필요없다고 다른 동물들을 세뇌시킨다.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권력의 본질을 권력 자체의 목적성으로 제시한 것처럼, 지배자에게 필요한 건 권력을 지키는 일, 권력의 누수를 사전에 예리하게 차단시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세계사는 권력을 지키려는 자와 이를 빼앗으려는 세력의 끊임없는 대결이 펼쳐지는 무대이다. 자연의 한계로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교체되어 가도 그들의 의상과 연기는 변함이 없다. 지배를 국가에 위임했다는 근대 계약설을 준용해, 지배를 어떤 몰인격체에게 위임함으로써 인간들 사이의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전복시킬 수 있을까? 이 우화의 앞부분에서 노장의 선동 돼지인 메이저의 선언은 이런 전복의 아이러니를 은연중 폭로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우리의 적이며 모든 동물은 우리의 동지입니다."(p.13) 메이저가 행한 이 연설의 이 마지막 대목은 다음과 같이 의역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인간의 적이거나 동지이다." 홉스 이래 인간은 인간에 대한 적이었으나 맑스 이래 노동하는 인간은 인간에게 동지이기도 했다. 동지와 적 사이에는 무관심한 이웃이 있을 것이다. 지배하려는 자는 이 중간을 가능한 배제하고 동지를 늘려가면서 적을 고립시키는 전술을 취해야 할 것이다. 동지가 적이 되고, 적이 동지가 되는 지배의 변증법에 무관심한 태도는 결국 지배의 용인이다.

마지막으로 역자가 친절하게도 풀어준 이 등장동물들의 일대일 대응관계 일부를 소개한다.
존즈 : 니콜라스 2세, 메이저 : 맑스,  나폴레옹 : 스탈린, 스노볼 : 트로츠키, 돼지들 : 볼세비키, 복서 : 프롤레타리아트,  스퀼러 : 프라우다, 개들 : 비밀경찰, 필링턴 : 영국, 프레드릭 : 독일....

다시 왕년의 대권에 침을 흘리는 러시아의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은 개떼 출신이다. 그도 나폴레옹을 꿈꾸는지 모른다.

텍스트 : 조지 오웰, 도정일 역 『동물농장』(민음사, 2009, 1판 68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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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입성

문학 Literatur 2010. 9. 13. 11:27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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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부터 읽기 시작한 세계문학 독서를 지난 주부터 중단했다. 거의 격주간으로 도서관에 가서 민음사판  세계문학코너에서 책을 골랐는데 더이상 소설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과학과 심리학, 철학 쪽에 구미가 당기는 책들이 있긴 했지만, 도서관에서 죽치고 앉아 읽으면 모를까, 대출해서 전철이나 집에서 읽기엔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지난주에 대출을 안해서 오랜만에 집에 있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작년 가을에 카프카의 소설로 넘어가는 계기가 된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를 전철 독서용으로 다시 들었다. 지난 주말에는 집에서 거실 바닥을 구르며 홉스봄의 『자본의 시대』를 짚었다. 역시 이름값 하는 책이다. 그러다가 어제 오후 산책을 나갔다가 와부 도서관에 들렀다. 산책길의 전환점이 도서관인데,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말이 이 경우다.  문학 쪽 서가를 두리번 거리다, 구효서의 『오남리 이야기란 책을 발견했다. 작가가 보안법 위반으로 수감중인 동료 작가 김하기에게 보낸 서한집인데, 작가가 집필을 위해 칩거해 들어간 오남리에 관한 얘기들이 나온다. 같은 남양주라서 호기심도 들었지만, 예전에 나도 이곳으로 집을 알아보러 두어번 가본 적도 있어서 마음이 동했다. 서울 집을 나와 혼자서 경기도 산골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살림을 하며 글을 써 나가는 생활을 작가는  친구의 수감생활과 비교하는데, 간수들이 간밤에 죄수들을 살피는게 오히려 부럽다고 말한다. 혼자 자다가 가위라도 눌리면 아무 도움없이 그냥 갈 수도 있지만, 감옥은 이런 점에서 좋지 않겠냐는 거다. 친구를 위안하기 위한 별스러운 발상이지만, 은근히 그런 생활을 즐기는 작가의 즐거운 불평같다.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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