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이상

문학 Literatur 2010. 12. 1. 20:55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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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뉴 프런티어>란 시가 필요없는 곳이다...시 무용론(無用論)은 시인의 최고 혐오인 동시에 최고의 목표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진지한 시인은 언제나 이 양극의 마찰 사이에 몸을 놓고 균형을 취하려고 애를 쓴다. 여기에 정치가에게 허용되지 않는 시인만의 모랄과 프라이드가 있다. 그가 사랑한 것은 <불가능>이다...말하자면 시인이란 선천적인 혁명가인 것이다."(1961.3.'시의 <뉴 프런티어>')

『김수영 전집2 : 산문』(민음사, 2008, 개정판 6쇄), 239면.

"도대체가 시인은 자기의 시를 규정하고 정리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그에게 눈곱재기만 한 플러스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시의 현 시점을 이탈하고 사는 사람이고 또 이탈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다. 어제의 시나 오늘의 시는 그에게는 문제가 안 된다. 그의 모든 관심은 내일의 시에 있다. 그런데 이 내일의 시는 미지(未知)다."(1964.9.'시인의 정신은 미지')

상동, 253면.

"시인은 영원한 배반자다. 촌초(寸秒)의 배반자다. 그 자신을 배반하고, 그 자신을 배반한 그 자신을 배반하고...이렇게 무한히 배반하는 배반자다.ㅣ...술을 마실 때도, 산보를 할 때도, 교섭을 할 때도 무엇을 속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속이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그대를 속이고 있다. 그대가 영리한 사람인 경우에는 눈치를 챈다. 나를 신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리한 그대는 내가 속이는 순간만 알고 있고, 내가 속이지 않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대는 내가 시인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러한 그대를 구출하는 길은 그대가 시인이 되는 길밖에는 없다. 시인은 모든 면에서 백치가 될 수 있지만, 단 하나 시인을 발견하는 일에서만은 백치가 아니다. 시인을 발견하는 것은 시인이다. 시인의 자격은 시인을 발견하는 데 있다. 그밖의 모든 책임을 시인으로부터 경감하라!"(상동)

상동, 255-6면. 

"나쁜 시를 발견하기는 쉽지만 좋은 시를 발견하기란 참 어렵다. 그 시와 같이 살 수 있는 순간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시를 쓰기도 어렵지만 시의 독자가 되기는 더 어려운 것 같다. 진정한 시의 독자는 시인이 아니고서는 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피상적으로 시의 독자가 있느니 없는니 말할 수도 없고, 시의 독자가 없다고 비관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1964.10.'생활현실과 시')

상동, 26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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