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한국문학의 불안한 심로

문학 Literatur 2010. 11. 4. 15:58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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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선정한 20세기 한국 중단편 소설집을 읽고 있다(20세기 한국소설 시리즈 21). 주중에 술먹고 보거나 졸음을 참으며 읽으면서 집중력은 다소 떨어진 독서였지만, 간단한 느낌을 차례로 정리해 본다.

포인트(최상규,1956) : 갓 결혼한 백수 남편에게 입대영장이 온 후 겪는 심정의 변화를 보여주는 단편인데, 왜 제목이 포인트인지 모르겠다. 소수점에 점 하나를 찍어 더 작은 단위로 내려 가듯이, 점점 위축되어 가는 주인공의 심리를 암시하는 것일까.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보이는데,  마치 조국이 식민지로 전락하는데서 오는 박탈감 비슷한 심정이 보인다. 작가로 입신하기 위해 부인은 백화점에 보내고, 군대까지 요리 저리 피해보려다 결국 덜미가 잡힌 막가는 청춘의 모습 속에 징집의 부당성을 고발하는 것인가? 이 점만으로도 그 시대에 작은 충격을 줄 만한 소재로 보인다.

흑색 그리스도(송상옥,1965) : 분위기는 포인트와 비슷하다. 제목은 종교적 주제를 암시하는데, 이야기 흐름과 큰 관련성은 없어 보인다. 마치 술취한 사람이 똑같은 말을 반복하듯, 특정구절을 이따금식 반복해 보이는게 당시로선 새로운 형식의 추구로 보였을지 모를 일이다.

겨울밤(이병주,1974) : 소설이라기 보다는 에세이에 가까운 작품이다.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기에도 어색하다. 오히려 이후 작가가 발표할 기록문학의 예고편 같은 다짐과 포부를 보이는 작가의 말같다. 그의 처녀작 <알렉산드리아>에 대한 노정필의 비판, 그러니까 이 작품은 작가의 말대로 기록문학이 아니라, 서정문학이라는 평가에 몰려 작가는 보다 충실한 기록문학을 준비한게 아닐까 생각한다. 역시 작품의 제목과 작품의 내용이 엇갈린다.  

병신과 머저리(이청준, 1966) : 한국전쟁과 같은 역사의 대사건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사실과 상상의 엇갈림, 리얼리즘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봉합시키는 작가가 또 있을까. 동족상잔의 참란이라는 상흔을 안고 있는 '병신'인 전전 세대와 근원을 모를 병폐를 안고 있는 '머저리'인 전후세대의 대립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에서 극명해 진다. 상흔을 잊고 현실에서 싸워나가기 위해 과거를 조작할 수 있는 것은 전쟁의 참상이 너무도 깊기 때문인 반면, 전란을 소용돌이를 비켜간 세대에겐 망각과 흔들림이 거추장스러운 위선으로 비춰진 것일까. 이러한 작가의 문제의식은 약간의 변조를 거쳐 <자서전들 쓰십시다>에 이어진다.

자서전들 쓰십시다(이청준,1976) :   이른바 성공한 인간들 열댓명의 자서전을 대필해온 작품 속 작가는 자서전이란 대필 청부업자에게 의뢰를 하더라도, 그 주제는 자신을 의견을 주장하는 과거시제의 미래투영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를 만인에게 드러내 보이는 고백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자서전은 자신의 과오도 미덕으로 추앙하는 위장을 드러내는데, 그래서 짓밟히는 사람들은 두번 짓밟힐 수 있는 것이다. 그 성공에 짓눌린 무수한 타인들은 기록 속에서도 짓밟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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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기행

책들 Bücher 2010. 10. 30. 11:2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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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일요일,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다가 문학 기행에 관한 책을 발견했다. 강춘진, 『책 속에 갇힌 문학, 책 밖으로 나오다 : 작가와 함께 떠나는 현장탐방』(가교출판,2006). 이 책은 부산의 국제신문에 2001년 10월부터 5년간 연재된 기자의 기록을 단행본으로  낸 것으로, 당시의 현존 소설가와 시인, 그리고 한국전쟁 이전에 출생하고 작고한  작가들의 문학 고향을 찾아나선 보고다. 부끄럽게도 이 책에 소개된 시인들은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소설은 극히 일부만 읽었다. 소개된 작가들은 다음과 같다. 소설가로는 장흥의 이청준(당신들의 천국), 한승원(물보라), 보성의 조정래(태백산맥), 전북 무주의 박범신(흰 소가 끄는 수레), 나주 영산강의 문순태(타오르는 강), 도쿄의 윤정모(님), 화천 파로호의 오정희, 통영의 김훈(칼의 노래), 경남 창녕 화왕산과 낙동강의 김영현, 설악산 은비령의 이순원, 묵호의 심상대. 시인으로는 정선의 황동규, 울진의 김명인, 경산의 이동순, 광주의 김준태, 경북 고령의 이하석, 경남 합천 황강의 박태일, 청주의 도종환, 부석사의 정호승, 경남 진해의 정일근, 변산반도의 안도현, 경남 악양의 박남준, 지리산의 이원규(지리산 폭주족), 홍성의 이정록, 양평 서종면의 최하림. 작고한 작가로는 괴산의 홍명희(임꺽정), 군산의 채만식 등이 소개되었다. 이런 작가들 때문에 한국 기행은 더욱 풍성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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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에 다녀오다

여행 Reise 2010. 10. 25. 17:40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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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결혼식이 있어 마산에 다녀왔다. 제주도를 빼고 남쪽 끝은 부산,장흥을 다녀온 적이 있고, 마산은 처음이다. 마산은 70년대 부마 항쟁의 한 축이었으며, 윤이상과 박경리를 낳은 통영이 바로 지척이다. 생각보다 마산은 넓고 복잡했으며,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도심으로 들어가는데 차량 정체가 심했다. 결혼식장은 부두를 접한 오동동이었는데, 밀물과 썰물이 오고가는 넓은 강같은 좁은 바다에 조선소가 있다. 이거 하나로도 지역의 든든한 버팀목인지, 유흥가가 즐비한 주변의 활기 속에 간간히 날리는 갯내음이 신선한 바다공기를 실어 준다. 결혼식장은 웬만한 서울 중심의 식장에 뒤질세라 휘황찬란하고, 이날 하루 정체된 커플들을  한정된 시간내에 소화하기 위해 식은 속전속결이다. 왕복 10시간 넘게 걸리는 곳에서 고작 밥한끼 먹고 담배 한 대 피우니 올라갈 시간이다. 

차를 타고 올라오는 차창 밖에서 본 경남의 도시들은 수도권에 즐비한 도시들 못지 않게 솟은 아파트와 산업시설, 유흥가가 차벽처럼 고속도로 멀리 솟아 있다. 4대강 사업이 진행중인 낙동강은 수량이 얼마 안되는데, 둔치는 마구 파헤쳐 진 후 거친 사막처럼 평탄화 되어 있는게 마치 발가 벗겨 유린당한 것 같고, 접근금지라는 드넓은 플랭카드로 덮혀 있는 골재는 화성의 야산처럼 적막하다. 10 여 년 전에 장흥에 다녀 올 때 본 풍경과는 여전히 대조될 경남의 도시들은 뭔가 피로해 보인다. 주마간산으로 스쳐간 여행객의 피곤 탓도 있고. 차 안에서 담배 피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수도권에 와  밀리는 고속도로에서 함께 피우는 담배는 강행군을 하는 차량에게 하늘로 단맛을 뿜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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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노을』(1979) 중에서

책들 Bücher 2010. 10. 19. 09:47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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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첫번의 예였으나 그 이후 헤아릴 수 없이 그러한 연속들을 보았다. 강자들에게 속하고 싶은 욕망은 실로 억제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 얼마나 많은 전장에서 항복의 위협을 받는 자들이 자신의 깃발을 바꾸었던가."

슈테판 헤름린,『저녁노을Abendlicht 박소은 역(당대, 1995), p.52.

"세 권의 책을, 매일 읽고자 노력했고, 주머니 속에 넣어 다니며, 전쟁에도 체포령에도 항상 간직하였다. 휄더린 한 권, 쉘리 한 권, 그리고 보들레르 한 권. 그것이 내가 소유하던 장서의 전부였다."

상동, 103.

김나지움에 다니던 16세의 소년이 거리에서 백수상태의 공산주의자들이 즐기던 정치토론을 듣다가 거리에서 입당 서명을 하고, 이 서명을 황혼기까지 지켜나가는 집념은 시대의 정황을 변명으로 한 변신들과 대비된다. 그의 집념은 때로는 너무 완고해서 스탈린에 대한 상찬으로까지 이었졌다. 스탈린은 야만의 시대에 선택할 수 있는 차선의 야만이었다는 것이다. 소련에 대한 헤름린의 이러한 호의적 평가는 그와 마찬가지로 반프랑코 투쟁을 위해 스페인 내전에 참여했던 조지 오웰과는 극명히 대조된다.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전체의 자유로운 발전의 전제조건이라고 나오는 공산당 선언의 한 구절을 그 반대로 읽은 소년의 오독은 자신의 부유한 태생적 계급을 넘어서려는 행위였다. 수십 년 후 작가는 사회적 갈등의 최전선에서 이 오독 속의 개인을  발견한 것이다. 전후 동독에서 루카치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의해 전위예술이라고 이단시됐던 카프카,엘리엇,조이스,푸르스트를 옹호했던 작가는 사회주의의 본성이 사회주의의 박제화가 아니라 "스스로 언제나 다른 무엇이 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95년도에 국내에서 첫판의 번역본이 나오고 자취를 감춘 이 책은 그 때만큼이나 지금도 조용히 읽히고 있을 것이다. 그 때는 이런 책을 보는 것이 사치였고, 지금은 이런 책을 읽는 일이 향수로 그려질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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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룰포의 『뻬드로 빠라모』(1955)

문학 Literatur 2010. 10. 13. 09:17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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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혁명 후기를 배경으로 하는  낯설고 복잡한 형식의 이 작품에서 뻬드로는 베드로, 빠라모는 들판을 뜻하는 뻬드로 빠라모는 멕시코 서남부 할리스꼬(Jalisco) 부근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꼬말라의 토호 지주 돈 뻬드로 빠트론를 가리킨다. 중남미문학에 워낙 생소하다 보니 무척 읽기에 까다롭다. 1910년부터 시작된 멕시코 혁명(1910~1917)의 연장선에 있던 피비린내나는 '끄리스떼라 반란'(1926~1928)을 지켜보면서 부친과 친지를 잃은 작가의 피맺힌 각인이 마치 몽환적인 형식과 시적 문체로 형상화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비평가들에게 후대로 평가를 유보할 정도의 충격을 준 이 작품은 형식도 형식이지만, 화자가 마구 뒤바뀌고 대화 도중에 다른 화자의 대화가 도입되는 등, 분석을 해가며 읽지 않으면 종잡기 어렵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비평가들의 눈에 들만한 작품이다. 변방의 오랜 식민지가 강탈되고 유린되는 상황에서 유령들이 주도적으로 출몰하는 이 작품은 시대의 짓눌려진 굴절이다. 이 책의 시대상과 분위기가 요르단 욥코브의 『발칸의 전설』을 연상시킨다.

텍스트 : 정창 역 『뻬드로 빠라모Pedro Paramo(민음사, 2010, 1판 17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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