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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었다. 전반적으로 이야기 전개의 힘이 후반부로 갈수록 약화되는 느낌이 든다. 셰익스피어 전집에 정통한 헉슬리가 야만인 존의 입을 통해 이야기 상황에 맞춰 줄기차게 이 전집을 인용하는 방식은 방식 자체의 단조로움을 더한다. 결혼,가족,죽음을 몰이해하도록 조건반사교육을 시키는 신세계의 계급화된 사회에서 알파,베타,감마,입실론의 개체들은 감정의 전이라는 게 없이 바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데, 그 매개는 자유연애와 소마다. 만인은 만인을 위해 존재한다는 19세기의 협동주의적이며 유토피아적인 격언("만인은 일인을 위해, 일인은 만인을 위해")이 바로 자유연애의 모토가 되버리고, 죽음은 화장 후 남는 인이라는 화학 요소로 재활용되는 유용성은 있지만 아무런 슬픔없이 그냥 사라지는 것으로 수용된다. 병에서 조작된 복제기술로 계급이 예정된다는 구상 자체는 이 소설의 출판 당시로서는 획기적일 수 있으나, 서유럽 세계 총통에게 소마 대신 자유를 달라는 존의 외침은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대심문관 편에 대한 조잡한 변주같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제목을 따왔다 점으로 이 소설의 의도가 드러난다. 그것은 행복을 대량생산하는 기계화 시대에 직면해, 금서로 묶인 고전의 세계로 돌아가고픈 야만인의 절규다. 마치 『박하사탕』의 철로에서 외치는 설경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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