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중심

책들 Bücher 2011. 9. 18. 10:1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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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 : 지옥편』을 읽다가 지루해서 반납했다. 고대 이후 서양 지성사에 대한 일종의 검열같은 리뷰라는 점에서 존 바스가 했던 시도와 유사하다. 오히려 존 바스가 더 생동감있지 않았나 싶다. 바스는 선대의 유산을 단죄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유산을 개작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 읽다가 뒤쪽에 있는, 본문의 분량과 맞먹는 기다란 주석을 참조하며 읽는 것도 고역이다. 주석에 큰 욕심을 부리지 말고 본문 밑에 짧은 분량으로 싣는 방식이 가독에 더 용이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작을 중간에 읽다가 그만두면, 큰 산을 앞에 두고 발길을 돌린 듯한 낭패감이 든다. 그래서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경영서 한 권을 골랐다. 허남석과 포스코 사람들이 지은 『강한 현장이 강한 기업을 만든다』(김영사, 2009, 1판 13쇄). 아무래도 노골적인 자사 홍보물로 밖에 볼 수 없는 책인데, 이런 높은 판매부수는 직원이 1만 7,000명에 달하는 포스코의 규모를 짐작해 볼 때 알만한 수치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이런 책을 들여다 볼 만한 관심은 조금 있지만, 중간 중간에 구역질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책의 서두를 장식한 정준양 포스코 회장의 추천사부터 그렇다. 철강산업이 쇳물을 만드는 제선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현실에서 포스코는 파이넥스 공법으로 탄소배출량을 상당히 줄였다고 하는 점은 그렇다 치더라도, 앞으로는 소형원전을 이용한 수소환원기술을 상용화해 '환경오염이 없는 제선작업을 이루는 동시에 저탄소 녹색성장의 선두주자'가 되겠다는 포부는 이병박 정권의 녹생성장과 뜻을 함께 한다. 원전을 늘려가며 녹색성장을 한다는건 원전을 녹색으로 칠해 그 위험성을 가리겠다는 곡학아세다. 그래도 이 책에서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은, 450 만평에 이르는 광양제철소 공장 구석 구석을 제철소장이 헬맷을 쓰고 방진복을 입고, 작업화를 신은 채 매일 매일 돌아다니며 직원들을 살피는 현장 중심주의다. 현장을 옥죄기 위한 의도는 분명하지만, 직원들과 작업과 관련없는 대화도 하면서 그들의 고충을 들어준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라 본다. 이건희나 이재용은 위험산업장으로 찍힌 삼성전자 공장을 과연 얼마나 가 보았을까. 사장단 회의도 자신의 집에서 주재하는 등 웬만 해서는 출근을 하지 않는 이런 족벌세습경영주와는 전혀 다르다. 입으로는 위기 경영이니 하면서 게거품을 물며 겁박이나 할 줄 알지 현장 알기로 개코로 아는 경영주야말로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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