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소설

문학 Literatur 2011. 1. 10. 17:2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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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해가 기울어져 가는 시간에 집을 나와 칼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하다 마을 도서관에 들렀다. 11월 경에 반 정도 읽다간 반납했던 김수영의 산문집을 들추니, 내가 맞춰 놓은 페이지에 그대로 책에 딸린 줄헝겊의 갈피가 꽂혀 있었다. 참 책들 안본다.

64년에 김수영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산문을 가리켜 유동적이고 시흥(詩興)적이라 인상과 의미를 포착하는 것이 극히 어렵다고 했는데, <닥터 지바고>를 거의 다 보는 시점에서 매우 공감이 가는 말이다. 시와 소설은 얼마나 다른 것인가. 그런데 이 두가지를 다 했다니. 시인의 소설은 소설처럼 읽기 보다는 시처럼 읽어나가야 하는데, 소설의 속도감은 또한 얼마나 빠른가. 뒷부분에 실린 지바고의 대서사시는 시처럼 읽어야 겠다.

파스테르나크에 대한 김수영의 소개글을 읽다 보니, <닥터 지바고>는 파스테르나크의 유일한 소설이 아니었다.  중간에 몇편의 중단편이 있었다.  읽은 책의 책날개에 이 책이 작가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라고 쓰여 있던 문구를 유일한 소설로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

<닥터 지바고>는 58년도에 소련에서 등재는 물론  출판이 금지되자 이탈리아에서 먼저 출판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소련에서 이 책의 해외출판을 저지하려 했던 점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대한 영국 정보부의 출판저지 시도와 흡사하다는 점이다. 파스테르나크는 혁명이 스탈린을 정점으로 권력화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히틀러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이 오히려 해방을 가져다 줬다는 관점을 <닥터 지바고>의 에필로그에 드러냈다. 정치범으로 몰려 유형을 받던 지바고의 옛친구들은 독일과의 전쟁 때문에 유형을 벗어날 수 있었다. 비록 전쟁에 나가야 했지만, 유형보다는 오히려 전쟁이 이들에게 더 인간적이었다. 이런 시각은, 아무리 스탈린 사후라고 하지만, 그 후광을 입은 관료들에게 밉살받을 만한 위험한 시각이다. 조지 오웰도 소련의 눈치를 보는 영국의 외교정책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고 보면 이 두 작가는 영혼을 질식시키는 절대주의 체제에 저항한 점에서, 서로 다른 곳에서 거대괴물을 공격해 들어간 비판정신이다. 파스테르나크에게 그 괴물은 당대의 소비에뜨 권력이었고, 오웰에게는 미래의 전지적 권력이었다.    

<닥터 지바고>는 시대사의 대격변기라는 거대한 수레바퀴에 짓눌린 개인의 삶을 보여준 점에서 게오르규의 <25시>를 연상시키지만, 부르조아 계급출신으로 인텔리겐차이자 의사이며 시인인 지바고는 결코 요한 모리츠만큼 불행한 삶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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