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의 단독성

책들 Bücher 2011. 4. 11. 08:51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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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목요일부터 토마스 하디의 『테스』1 Tess of the D'Urbervilles(민음사, 정종화 역, 2009 1판 1쇄)를 읽고 있는데, 한 비극적 여인의 일생을 다룬 점에서 호돈의 『주홍글씨』에 대한 영국판이라 볼 수도 있지만, 이 책처럼 무겁지만은 않은 듯 하다. 영국 서남부 땅끝의 벽촌 블랙무어 계곡의 한 순박하고 예쁜 소녀 테스 더버필드가 천박한 양친의 허세에 밀려 벼락출세해 낙향한 '친지' 더버빌 가에 갔다가 겪게된 사건 이후, 그녀는 독립을 위해 찾아간 낙농가에서  옛시절 눈이 마주친 젊은 귀공자 에인절 클레어를 만난다. 클레어는 성공회의 복음주의계 목사의 삼남으로 아버지의 기대를 져버리고 목회의 길을 가지 않고, 런던에 나가 도시생활을 하다가, 도시 생활에 대한 비합리적이라 할 만한 기피증에 걸린 후, 새로운 인생의 출발로 식민지나 영국의 시골에서 낙농업을 하기 위해 견습차 테스가 찾아간 크릭의 목장에 와있었던 것이다. 지체 높은 신분으로 처음에는 여기서 일하는 일꾼들을 주의깊게 보지 않던 클레어는 이들과 생활하면서 책에서 접했던 구절을 경험하게 된다. 그 책의 구절은 이렇다. 

"지능이 높을수록 다른 사람에게서 각자의 다른 점을 이해하게 된다. 평범한 사람은 사람 사이의 차이점을 보지 못한다"(『팡세』의 서문 중, 213면에서 재인용)

거미의 종류는 무려 2만종이라고 하며, 한국에만 750종의 거미가 있다고 한다. 인간종은 차지하고라도, 사람의 개성은 또한 얼마나 다른가. 특정 부분에 특출난 인사가 특정 부분을 기준으로 만들어낸 징벌적 등록금제는 이런 점에서 몰인격적일 뿐만 단세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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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판의 도서 기획

책들 Bücher 2011. 4. 5. 17:22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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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읽고 있는 한트케의 『왼손잡이 여인』은 범우사의 1992년 2판 2쇄 판이다. 이 조그만 포켓북(정말 겨울 점퍼 주머니에 들어간다. 이 편리함이란!)에는 <왼손잡이 여인>(1976)과 <소망없는 불행>(1972)이 차례로 수록되어 있다. 2008년에 나온 민음사 판의 『소망없는 불행』에는 <소망없는 불행>과 <아이 이야기>가 실려 있다. <왼손잡이 여인>이 작가의 어린 시절 어머니의 몇몇 인상에 대한 집중적인 회상이라면, 그 이전에 나온 <소망없는 불행>은 어머니의 자살을 겪고 나서 자식으로서의 의무감을 작가로서의 냉정한 관찰로 해명하면서 이 소재를 소설화시킨 작품이다. <아이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작가의 어린 딸에 대한 이야기다. 민음사 편은 범우사 편을 작가의 비속으로 연장시켜 작가의 존비속 이야기로 완결시킨 기획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왼손잡이 여인>이 영상으로 살릴 만한 이미지 중심적인 작품인데 반해 <소망없는 불행>은 어머니의 시대상황과 가족사를 조망하면서 개인으로 파고드는 서술중심의 작품이다. <왼손잡이 여인>이 어린 아이에게 비친 어머니의 이미지들을 살리려고 하는 데 초점이 있다면, <소망없는 불행>은 거시적인 작가의 관점으로 어머니와 그 주변을 보려는 의도가 보인다. 그래서 오히려 <소망없는 불행>이 전기작이 아닐까 하는 느낌(범우사 판 수록의 편집 의도를 보아도)을 들게 한다. 

이 오래된 문고판은 90년 대 후반, 삼수한 대학 동기에게 선물 받은 것이다. 몇 번의 이사를 가면서도 읽지도 않으면서 같이 데리고 다니다가 근래에 펼쳐 보게 된 것도 오래된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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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체험

단상 Vorstelltung 2011. 4. 4. 00:1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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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에 사서 읽다 만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보급판 원서를 집에서 가끔 읽고 있다.  1차 대전기 미국의 참전을 둘러싸고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전쟁사업이 가동되는 시기를 다룬 장을 보고 있는데, 전쟁을 둘러싸고 좌우의 대립이 매우 첨예하다. 일제로부터의 해방 후 의기양양하게 인천에 들어오던 미군들은 내부의 혼란을 뚫고 세계로 전쟁을 확대해 갈 초창병이었던 것이다. 하워드 진의 약력을 보다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부르클린의  빈곤한 이민가 출신이던 그는 2차 대전 중 폭파 임무로 참전했다가 종전 후 제대군인에게 기회를 주는 G.I.Bill 덕분에 대학에 들어갔고 이후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그의 책도 나오지 않았을지 모를 일이었던 것이다. 사실, 작가들에게 전쟁은 아주 강한 흡입력을 일으키는 대사건이다. 사회적 행동가이자 희곡작가이기도 한 하워드 진에게도, 전쟁은 스탕달이나 헤밍웨이, 조지 오웰, 노먼 메일러와 같은 작가들처럼 작가로서 참여해야 할 어떤 통과의례적 과정으로 수용된 것일 수 있다. 전쟁은 언제 어디서나 있었고, 전쟁을 선포하는 지배 집단과 전쟁터에서 생사를 다투는 피지배 집단이 다를지라도, 끊임없는 이 광란은 그래서 소비되지 않을 수 없는 주제로 작가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물론 작가들에겐 전쟁이라는 헛된 짓거리 말고도 체험해야할 일들이 많다. 극단적으로 죽음까지 체험할 수 있냐며 체험주의를 비판하더라도 다종다양한 체험은 값진 자양분임을 작가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다 못해 도서관에 쳐박혀 있는 것보다는 산책이라도 하는 게 건강을 위해서도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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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퇴근 후 벼르고 벼르던 명동에 갔다. 사용한지 오래되어 왼쪽 알에 기스가 심하게 그어졌을 뿐만 아니라 양 다리가 양쪽 얼굴의 후렌다를 꾹 눌르는 불편한 안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사무실이 장충동이어서 명동은 가까운 편이라 금요일에 사무실로 출근하면 언제 가보려고 했던 참이었다. 마침 아무런 약속도 없어서 홀가분하게 사무실을 벗어나 전철을 탔다. 아주 오래 전에 남대문에서 한 번 안경을 맞춘 적이 있었는데, 여전히 안경집들이 성행중이었다. 라식,라색으로 눈알을 깍는 산업의 여파가 이곳에도 한파를 불러와 혹시 안경집들이 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을 무색케 했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 첫번째 안경집에 들렀다. 우선 나는 착용에 편리한 안경을 찾는다고 했더니 안경사는 인공심장 재질로 신축성이 뛰어난  안경태를 보여줬다. 비슷한 재질의 스위스 제를 모방한 국산이었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도수가 높아 알을 몇번이고 압축하는 데 따른 비용까지 더하니 다소 부담되는 가격이다. 별 기대없이, 일부러 멀리서 여기까지 안경을 사러 왔다고 공을 던졌지만 높은 가격대의 콧대를 꺽을 수는 없었다. 안경사의 만류를 등뒤로 한 채 전화를 한다고 하며 나갔다. 두번째 안경집에 갔더니 안경사의 첫마디는 어느 가격대를 찾냐는 것이다. 하루종일 손님을 맞다 보니 피곤이 역력해 보이는 표정에서 나오는 이런 말이 이해도 가지만 엄연히 손님으로서는 살짝 기분을 상하게 하는 자세다. 첫집과 비슷한 가격대여서 다시 나가려고 하니 귀찮은 손님 보낸다는 식이다. 장사하는 사람들 스타일도 가지각색이다. 세번째는 좀 더 시장 안쪽으로 들어간 유서깊은 안경집이었다. 나는 다시 나의 요구사항, 그러니까 양 얼굴의 후렌다를 조이지 않는 편안한 안경을 찾는다고 했더니, 안경집 이름처럼 친절한 점원이 몇가지 태를 보여줬다. 소재는 첫번째 안경집에서 인공심장 소재라고 했던 것보다 신축성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휘어지는게 예사롭지 않을 정도였고, 착용감과 가격대도 만족스러웠다. 일단 마음에 들어 구매의사를 나타내자 이제 가격을 흥정할 차례. 저쪽에서 먼저 가격을 살짝 내리자 나는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두번째 에누리를 요구했다. 하루종일 되풀이되는 설명에 목이 쉰 점원에게 가혹한 에누리 공세는 지독하다. 거리의 미학(이거 사러 아주 멀리서 여기까지 왔다!)을 다시 논거로 제시하자 저녁밥값을 건질 수 있었다. 안경을 맞출 때까지 30분 정도가 소요되어 나는 어디 국수라도 먹을까 하고 시장통으로 나와 두번째 호객을 한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아줌마가 메뉴판을 줬는데 가격이 없다. 외국인들을 많이 상대하는 곳에서 흔히 쓸 수 있는 수법같다. 가격을 물어보니 술안주로 할 만한 것들이 포장마차 치곤 비싼 편이었다. 주위에는 일본인 가족이 둘러 앉은 한 테이블만 채워져 있었다. 내가 뜸을 들이고 있자 주인 아줌마가 소주의 맛배기 안주인 홍합탕을 내왔다. 붙잡으려는 것이다. 여기에 나는 값싼 순대 한 접시로 응수했다. 물론 소주 한 병을 곁들이고. 

술을 마시며 내 앞에 앉아 있는 일본 사람들을 힐끗 쳐다 봤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부부와 아이 3명, 남편의 어머니인 듯한 할머니가 여러가지 메뉴를 상에 펼치고 있었다. 커다란 맥주가 한 병 놓여 있고, 남자는 연신 담배를 피워대며 가족들과 흥겹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안경을 찾고 서울역에 있는 술집에서 한 형님에게 이 얘기를 하면서, 이 일본 가족들이 밤의 포장마차라는 분위기에 휩싸여 마치 대지진과 원전참사를 피해 바다를 건너온 피난민같다는 인상이 들었다. 그러나 금요일 밤의 서울역을 띄울 듯이 들끊고 있는 타지로의 여행과 귀향의 흥분감도 바로 이 일본인들에게 있었다. 

서울역의 술집에서 맥주 한 잔을 하고 나온 뒤 전철을 타고 집에 가면서 『왼손잡이 여인』을 읽었다. 5,60년대 오스트리아의 특정한 가족상이 마치 동시대적이라고 보일 정도로, 작중 여인에 대한 한트케의 서술은 냉담하고 무미건조하다. 남편을 몰아내고 애써 행복을 거부하는 여인에게서 한트케는 소망의 붕괴를 본다.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자유주의적 평등』에서 인간의 행위를 규정하는 것은 소망과 성품이라고 했다. 미래에 바라는 바와 자신의 자질 내지 능력(다른 사람이 지불을 할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재산축적능력까지도)에 따라 특정한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다소 긴장된 경계의 예리한 눈초리를 뿌리면서도 어머니와 자식에 둘러싸여 행복한 흡연을 하는 일본 남자에게 보이는 근성과 소망과 달리 한트케의 '여인'은 불안한 것인가, 아니면 비정한 것인가.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동네 인근에서 갈매기살에 소주 한 잔을 더 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다른 아이들과 하루밤 자는 일종의 유아 MT를 떠나 모처럼 색다른 분위기였다. 떨어져 있어도 이미 함께 있는 가족이라는 기초 연결망에 대해 한트케는 뒤늦게 그 가치를 재발견해 나간다. 함께 있어도 함께 없어도 이어져 있다는 그 연대감은 비단 가족 뿐만이 아니다. 

오늘 청담동에서 형을 만나 저녁을 먹고, 동서울 터미널에서 하남을 거쳐 덕소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오랜만에 그 길다른 덕풍시장을 지나치면서, 작년 가을 한 때 직장 후배와 이곳에서 함께 했던 허름한 선술집을 눈길로 더듬거렸지만, 달리는 버스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버스에서 내가 앉은 좌석의 통로 건너편에 앉은 한 여대생이 고개를 가슴팍의 여행가방에 쳐박고 연신 자고 있다. 요즘 대학생은 학교 마크만 다르지 다 똑같은 야구 점퍼식 유니폼을 입고 다닌다. 하남을 벗어나기 전에 나는 깨울까 하다가, 알아서 내리겠지 생각하고 친절을 단념했는데,  덕소에 도착하니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내린다. 보이지 않는 줄에 연결되어 마치 실을 실타태로 다시 말아 끌듯이 사람들은 알아서 가야할 곳을 간다. 역에서 터미널에서 각자의 집으로, 그리고 다시 역으로 터미널로 때로는 스텝 지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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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한트케

책들 Bücher 2011. 4. 1. 18:07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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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를 읽고, 집에 있던 오래된 범우사 문고판의 『왼손잡이 여인』을 읽기 시작했다. 『..여인』의 초판 번역본(1977)이 나왔을 때 작가의 나이는 사십대 중반이었다. 『어두운 밤..』(1997)과 거의 20년 넘게 차이가 나는 변화가 너무도 선명하다. 마치 한 작가의 내면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들어가는 여행같다. 사실 『어두운 밤..』은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독서가 매우 더뎠고, 글의 이미지가 잘 맺혀지지 않았다. 문명과 자연 사이의 완충공간으로 작가가 설정한 도시와 도시 사이의 사막같은  스텝이라는 이미지가, 마치 『파리 텍사스』의 첫 장면과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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