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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퇴근 후 벼르고 벼르던 명동에 갔다. 사용한지 오래되어 왼쪽 알에 기스가 심하게 그어졌을 뿐만 아니라 양 다리가 양쪽 얼굴의 후렌다를 꾹 눌르는 불편한 안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사무실이 장충동이어서 명동은 가까운 편이라 금요일에 사무실로 출근하면 언제 가보려고 했던 참이었다. 마침 아무런 약속도 없어서 홀가분하게 사무실을 벗어나 전철을 탔다. 아주 오래 전에 남대문에서 한 번 안경을 맞춘 적이 있었는데, 여전히 안경집들이 성행중이었다. 라식,라색으로 눈알을 깍는 산업의 여파가 이곳에도 한파를 불러와 혹시 안경집들이 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을 무색케 했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 첫번째 안경집에 들렀다. 우선 나는 착용에 편리한 안경을 찾는다고 했더니 안경사는 인공심장 재질로 신축성이 뛰어난  안경태를 보여줬다. 비슷한 재질의 스위스 제를 모방한 국산이었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도수가 높아 알을 몇번이고 압축하는 데 따른 비용까지 더하니 다소 부담되는 가격이다. 별 기대없이, 일부러 멀리서 여기까지 안경을 사러 왔다고 공을 던졌지만 높은 가격대의 콧대를 꺽을 수는 없었다. 안경사의 만류를 등뒤로 한 채 전화를 한다고 하며 나갔다. 두번째 안경집에 갔더니 안경사의 첫마디는 어느 가격대를 찾냐는 것이다. 하루종일 손님을 맞다 보니 피곤이 역력해 보이는 표정에서 나오는 이런 말이 이해도 가지만 엄연히 손님으로서는 살짝 기분을 상하게 하는 자세다. 첫집과 비슷한 가격대여서 다시 나가려고 하니 귀찮은 손님 보낸다는 식이다. 장사하는 사람들 스타일도 가지각색이다. 세번째는 좀 더 시장 안쪽으로 들어간 유서깊은 안경집이었다. 나는 다시 나의 요구사항, 그러니까 양 얼굴의 후렌다를 조이지 않는 편안한 안경을 찾는다고 했더니, 안경집 이름처럼 친절한 점원이 몇가지 태를 보여줬다. 소재는 첫번째 안경집에서 인공심장 소재라고 했던 것보다 신축성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휘어지는게 예사롭지 않을 정도였고, 착용감과 가격대도 만족스러웠다. 일단 마음에 들어 구매의사를 나타내자 이제 가격을 흥정할 차례. 저쪽에서 먼저 가격을 살짝 내리자 나는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두번째 에누리를 요구했다. 하루종일 되풀이되는 설명에 목이 쉰 점원에게 가혹한 에누리 공세는 지독하다. 거리의 미학(이거 사러 아주 멀리서 여기까지 왔다!)을 다시 논거로 제시하자 저녁밥값을 건질 수 있었다. 안경을 맞출 때까지 30분 정도가 소요되어 나는 어디 국수라도 먹을까 하고 시장통으로 나와 두번째 호객을 한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아줌마가 메뉴판을 줬는데 가격이 없다. 외국인들을 많이 상대하는 곳에서 흔히 쓸 수 있는 수법같다. 가격을 물어보니 술안주로 할 만한 것들이 포장마차 치곤 비싼 편이었다. 주위에는 일본인 가족이 둘러 앉은 한 테이블만 채워져 있었다. 내가 뜸을 들이고 있자 주인 아줌마가 소주의 맛배기 안주인 홍합탕을 내왔다. 붙잡으려는 것이다. 여기에 나는 값싼 순대 한 접시로 응수했다. 물론 소주 한 병을 곁들이고. 

술을 마시며 내 앞에 앉아 있는 일본 사람들을 힐끗 쳐다 봤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부부와 아이 3명, 남편의 어머니인 듯한 할머니가 여러가지 메뉴를 상에 펼치고 있었다. 커다란 맥주가 한 병 놓여 있고, 남자는 연신 담배를 피워대며 가족들과 흥겹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안경을 찾고 서울역에 있는 술집에서 한 형님에게 이 얘기를 하면서, 이 일본 가족들이 밤의 포장마차라는 분위기에 휩싸여 마치 대지진과 원전참사를 피해 바다를 건너온 피난민같다는 인상이 들었다. 그러나 금요일 밤의 서울역을 띄울 듯이 들끊고 있는 타지로의 여행과 귀향의 흥분감도 바로 이 일본인들에게 있었다. 

서울역의 술집에서 맥주 한 잔을 하고 나온 뒤 전철을 타고 집에 가면서 『왼손잡이 여인』을 읽었다. 5,60년대 오스트리아의 특정한 가족상이 마치 동시대적이라고 보일 정도로, 작중 여인에 대한 한트케의 서술은 냉담하고 무미건조하다. 남편을 몰아내고 애써 행복을 거부하는 여인에게서 한트케는 소망의 붕괴를 본다.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자유주의적 평등』에서 인간의 행위를 규정하는 것은 소망과 성품이라고 했다. 미래에 바라는 바와 자신의 자질 내지 능력(다른 사람이 지불을 할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재산축적능력까지도)에 따라 특정한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다소 긴장된 경계의 예리한 눈초리를 뿌리면서도 어머니와 자식에 둘러싸여 행복한 흡연을 하는 일본 남자에게 보이는 근성과 소망과 달리 한트케의 '여인'은 불안한 것인가, 아니면 비정한 것인가.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동네 인근에서 갈매기살에 소주 한 잔을 더 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다른 아이들과 하루밤 자는 일종의 유아 MT를 떠나 모처럼 색다른 분위기였다. 떨어져 있어도 이미 함께 있는 가족이라는 기초 연결망에 대해 한트케는 뒤늦게 그 가치를 재발견해 나간다. 함께 있어도 함께 없어도 이어져 있다는 그 연대감은 비단 가족 뿐만이 아니다. 

오늘 청담동에서 형을 만나 저녁을 먹고, 동서울 터미널에서 하남을 거쳐 덕소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오랜만에 그 길다른 덕풍시장을 지나치면서, 작년 가을 한 때 직장 후배와 이곳에서 함께 했던 허름한 선술집을 눈길로 더듬거렸지만, 달리는 버스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버스에서 내가 앉은 좌석의 통로 건너편에 앉은 한 여대생이 고개를 가슴팍의 여행가방에 쳐박고 연신 자고 있다. 요즘 대학생은 학교 마크만 다르지 다 똑같은 야구 점퍼식 유니폼을 입고 다닌다. 하남을 벗어나기 전에 나는 깨울까 하다가, 알아서 내리겠지 생각하고 친절을 단념했는데,  덕소에 도착하니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내린다. 보이지 않는 줄에 연결되어 마치 실을 실타태로 다시 말아 끌듯이 사람들은 알아서 가야할 곳을 간다. 역에서 터미널에서 각자의 집으로, 그리고 다시 역으로 터미널로 때로는 스텝 지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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