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판의 도서 기획

책들 Bücher 2011. 4. 5. 17:22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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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읽고 있는 한트케의 『왼손잡이 여인』은 범우사의 1992년 2판 2쇄 판이다. 이 조그만 포켓북(정말 겨울 점퍼 주머니에 들어간다. 이 편리함이란!)에는 <왼손잡이 여인>(1976)과 <소망없는 불행>(1972)이 차례로 수록되어 있다. 2008년에 나온 민음사 판의 『소망없는 불행』에는 <소망없는 불행>과 <아이 이야기>가 실려 있다. <왼손잡이 여인>이 작가의 어린 시절 어머니의 몇몇 인상에 대한 집중적인 회상이라면, 그 이전에 나온 <소망없는 불행>은 어머니의 자살을 겪고 나서 자식으로서의 의무감을 작가로서의 냉정한 관찰로 해명하면서 이 소재를 소설화시킨 작품이다. <아이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작가의 어린 딸에 대한 이야기다. 민음사 편은 범우사 편을 작가의 비속으로 연장시켜 작가의 존비속 이야기로 완결시킨 기획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왼손잡이 여인>이 영상으로 살릴 만한 이미지 중심적인 작품인데 반해 <소망없는 불행>은 어머니의 시대상황과 가족사를 조망하면서 개인으로 파고드는 서술중심의 작품이다. <왼손잡이 여인>이 어린 아이에게 비친 어머니의 이미지들을 살리려고 하는 데 초점이 있다면, <소망없는 불행>은 거시적인 작가의 관점으로 어머니와 그 주변을 보려는 의도가 보인다. 그래서 오히려 <소망없는 불행>이 전기작이 아닐까 하는 느낌(범우사 판 수록의 편집 의도를 보아도)을 들게 한다. 

이 오래된 문고판은 90년 대 후반, 삼수한 대학 동기에게 선물 받은 것이다. 몇 번의 이사를 가면서도 읽지도 않으면서 같이 데리고 다니다가 근래에 펼쳐 보게 된 것도 오래된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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