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지(Wissen)의 도정

헤겔 Hegel 2010. 5. 16. 00:0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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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정도에 걸쳐 읽은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1권과 『경영학원론을 아침에 반납하고 『정신현상학』1권과 또다른 경영서를 대출했다. 토마스 만이 20대 중반의 새파란 시절에 낸 이 장편은, 『타락』이나 『트리스탄』과 같은 주옥같은 그의 단편들에 비해 사실 지루하기 짝이 없다. 사업과 신망, 명예로 번영하던 브덴브로크 가문이 이제 급격히 몰락해 갈 것을 예고하는 2권을 읽는 의무감에 충실하기 보다는, 끊기고 있는 『정신현상학』독해를 일단 번역본으로라도 흝고 지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내용도 없이 불쑥 단언만 하는 것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참다운 인식이 아닌 것에도 눈여겨볼 만한 것이 있으니 그로부터 학문으로 통하는 길도 열릴 수 있다는 식의 안이한 생각을 품는다는 것은 더더욱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왜냐하면 이런 안이한 생각을 하게 되면 존재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참다운 인식이 아닌 것에 안주하는 학문의 존재에, 즉 학문의 그릇된 양식과 그의 외양에 가치가 두어짐으로써 학문이 진정으로 갖추어야 할 참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여기에 논술된 것은 순차적으로 현상화하는 지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이 논술 자체도 제대로의 형태를 갖추고 움직여나가는 자유로운 학문의 체재를 지닌 것은 아니고, 그 나름의 입장에서 자연적인 인식이 참다운 지를 추구해나가는 도정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마음[임석진은 Seele를 "혼"이라고 번역했는데, 다소 의아스럽다. 영혼이란 말이 더 낫겠지만, 나는 이하 "혼"이라는 역어를 "마음"으로 고쳤다]이 그의 본성에 따라서 미리 지정된 정류장과도 같은 갖가지 마음의 형태를 두루 거치고 난 뒤에 마침내 정신으로 순화되어가는 그런 도정을 그려낸 것이다. 이렇듯 자기 자신이 편력해온 경험의 도정을 완벽하게 마무리지을 때, 마음은 본래 그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가를 깨우치게 된다."

헤겔, 『정신현상학』1권, 임석진 역(한길사, 2007 1판 4쇄), 서론,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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