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빠진 날

단상 Vorstelltung 2010. 5. 10. 22:30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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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에 가족과 동해에 도착했다. 오후 7시가 넘었지만 초여름의 초저녁은 얼마나 발랄한가. 11시부터 무려 8시간을 운전했다. 서울시내의 얼마 안되는 거리에 있는 결혼식장에 가려던 것을 극심한 정체로 포기하고  기수를 동쪽으로 선회해 국도로 가려고 했지만, 이미 팔당 인근부터 밀리는 것을 보고,  춘천-서울간 고속도로로 갔다.
 
저녁을 먹고 방파제까지 걸어갔다. 이미 날은 어두워 지고, 작은 부두에 걷어 올려져 차근차근 말아 올려 쌓아올린 백색의 그물망은 마치 노파의 머리처럼 새어버린 은물결이다. 방파제 너머 움푹 들어간 만 사이로 파도가 잔잔히 밀려가고 저 멀리에는 불빛들이 반짝인다. 마치 큰 배를 타고 부두 저멀리 정박해 있는 뱃머리에서 그리운 육지를 바라보는 심정이 이런걸까. 

방파제를 나와 모래사장으로 걸어간다. 바다 앞에서 서서 밀려오는 파도를 보다가 눈을 감아본다. 눈을 감고 듣는 파도소리에는 약간의 공포감도 밀려온다. 눈을 떠 보면 부드러운 파도가 어둠에 섞여 집채 만한 크기로 내 앞에 닥쳐 온다. 다시 눈을 감는다. 바다로 점점 떠 빠져들기 전에 해변가를 벗어난다.    

그륀리히와 결과적으로 사기 결혼을 하고 만 토니는 아버지의 사업가적 판단과 보살핌으로 친정에 딸 에리카를 데리고 와 살게 되며 남편과는 이혼한다. 그륀리히는 계획적으로 작당을 하고 8만 마르크의 지참금을 들고 온 토니와, 아니 명망있는 부덴브로크 가와 엮어짐으로써 몰락하던 사업의 파산을 에리카의 나이만큼 연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문의 위용을 위해 토니는 신망있게 보이도록 연출된 사업가와 결혼한 것이지만, 그녀의 직관이 처음부터 옮았음을 브덴브로크 영사는 뒤늦게 그륀리히의 돌려막기식 장부를 살펴 보며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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