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상한 세월

단상 Vorstelltung 2009. 5. 15. 22:12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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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악법 종합 세트처럼,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하는 하위법의 전형은, 이땅의 지도층들이 그리도 좋아하는 미국의  건국 초기에도 드러난다.  1791년 미국 의회는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침해하는 어떠한 법도 만들지 않는다는 권리장전(Bill of Rights)을 통과시키고 이를 1차 수정헌법에 수용했다. 그러나 7년 후 의회는 이를 침해하는 이른바 선동죄(Sedition Act)를 통과시킴으로써, 정부와 의회 또는 대통령에 대해 허위적, 모함적,악의적인 것을 쓰거나 말하는 행위를 범죄로 만들어 버렸다. 이는 1차 수정헌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지만 강행됐다. 

현재 한국에 체류중인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는 프랑스와 한국의 유사점으로 오랜 문화적 전통과 식민지 경험, 전쟁을 들었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에는 혁명이 없었다. 4-19가 혁명인가? 대통령을 몰아낸다고 혁명인가? 혁명은 사회체제의 뿌리를 갈아 엎어 버리는 근본적 변혁이다. 하워드 진의 관점에서 본다면, 미국도 혁명을 경험한 국가가 아니다. 독립 혁명이 아니라 독립 전쟁이다.  외적으론 영국의 간섭을 몰아내면서 내적으론 '서부개척'이란 수사로 서부의 인디언 영토에 침공해 들어가는 발판이 독립을 기점으로 마련됐다. 외적을 몰아내자 내적을 본격적으로 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독립 전쟁의 전리품으로 자영농과 수공업자들이 혜택을 보게 되지만, 이들은 체제에 불안정한 소요를 일으키는 흑인노예, 인디언, 백인 빈곤층의 공격을 감내하기 위한 완충 장치이자, 영국으로부터 빼앗아 온 세수(稅收)권력의 먹이로 육성된 것이다. 

참고자료 : 하워드 진, <미국민중사>
               인터넷 한겨례(5월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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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살림

단상 Vorstelltung 2009. 4. 7. 14:08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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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Commune : 지역 살림에 대한 시론

 사람은 모자간 육아의 단계에서 벗어나면 시원적 생활세계*인 가정을 벗어나 일정한 교육시설에서 사회화의 첫발을 들여 놓는다. 이때의 교육시설은 주로 영영아, 영아, 유아를 돌보는 시설로 지역의 생활세계에 속한다. 아이가 성장해 성년이 되어갈수록 이러한 일차적 생활세계**는 지역 생활세계에서 이차적 생활세계인 광역의 생활세계로 확대되며, 성년은 더 이상 교육만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생산활동을 통해 자기 삶과 후세의 삶을 책임지는 사회인의 단계이다. 물론 이런 얘기는 순전히 모범적인 예에 불과하며, 실제로 일차 생활세계와 이차 생활세계 간에는 간극이 있어서 지역의 생활세계와 광역의 생활세계가 틀어지는 것이 청년백수 현상인데, 광역의 직업시장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청년이 동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바로 이런 예이다.

 여기서는 일단 광역의 생활세계를 학교생활이든 직장생활이든 동네의 단위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간주해 보자. 유아단계부터 동네 단위의 교육시설을 벗어나 광역단위로 나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 중등교육기간까지 사람들은 동네 단위의 일차적 생활세계에서 있기 마련이다. 지역평준화가 흔들리면서 중고등학생들이 광역의 생활단위로 편입해 가는 경향이 강화되면서 공교육도 점차 광역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사교육은 체인점처럼 지역에 거점을 두면서 광역 단위로 확장을 꾀한다.

교통체계가 발전하고 사람들의 이동이 매우 유동적인 사회에서 생활세계를 지역과 광역으로 나누는 것이 억지로 보인기도 한다. 그런데 예전부터 한창 주창되는 로컬푸드 운동을 볼 때, 먹을거리의 안전성과 에너지 부하 절감에서 지역이 주목된다면, 여기서 삶을 피워나가는 사람들의 생활세계도 간과할 수 없으며, 그렇다면 지역과 광역으로 지역을 분화하는 것이 단지 행정 편의적인 구획만은 아니다. 지역의 먹을거리가 지역에서 순환하는 흐름이 가능하다면, 지역에서 자란 아이들이 지역에서 성년을 맞고 지역에서 생산활동을 하는 모델도 가능하지 않을까? 아니, 오히려 이 둘이 관련되야만 온전한 의미에서 자립적인 지역의 생활세계가 가능할 수 있다. 물론 아미쉬처럼 종교에 기반한 폐쇄적인 자립형 공동체도 있겠지만, 내가 지금 제기하고 있는 지역의 생활세계는 이렇게 강한 공동체성을 염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농촌사회를 기반으로한 공동체 모델은 분명 패기할 과거의 잔재는 아니지만, 그대로 전승하는 것이 과제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특정한 종교나 이념을 구심점으로 삼는 공동체와 상관없는 지역의 생활세계가 가능할까? 물적, 인적 흐름이 지역과 광역의 구분을 의미없게 만드는 체제에서 지역의 자립적 경제란 수치상의 구분에 불과할 뿐이다. 먹을거리의 지역화도 어느 선상에서 한계가 있다. 도심에서 벼가 자라는 토지를 기대하기는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먹을거리를 통해 지역의 살림에서 되먹임 작용이 일어난다면, 살림의 차원 뿐만 아니라 교육과 문화에서도 지역에 기반을 둔 모델이 가능하지 않을까?

주)

*‘생활세계’라는 표현은 하버마스의 체계와 생활세계의 구분에서 가져온 것이다. 두 영역은 밀접히 맞물려 돌아가는데, 정치와 행정, 경제 영역을 포괄하는 체계는 생활세계에 일정한 영향을 끼치지만 반대로 생활세계가 체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여론이라는 수동적 반사 외에는 극히 미미하다.

**가족 중심의 시원적 생활세계와 마을, 지역 중심의 생활세계를 통틀어 일차적 생활세계라고 규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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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정법의 거부

문학 Literatur 2009. 3. 27. 14:16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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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제국주의에 반대한다면...어떻게 저항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정말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 봅시다...우리의 저항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은 제국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물질적으로 불가능하도록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군인은 전투를 거부해야 하고, 예비군은 복무하기를 거부해야 하고, 노동자는 무기를 배나 항공기에 선적하기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룬다티 로이, <9월이여,오라> 중

로이가 제시한 이러한 행동지침은 작년 촛불집회 때 나온 여러 행동강령을 연상시킨다. 조선일보에 광고를 내는 광고주 불매운동, 미쇠고기 운송 차량 저지, 한 의경의 양심고백..결국 보잘것 없는 초라한 패분만 남았지만, 도대체 이렇게도 하지 않고 어떻게 이 반이성적인 정권과 세계화의 패권에 맞설 수 있나? 실정법은 인민의 의사가 주체적으로 반영되어 만들어진 법이 아니라, 특수 맥락에서 정초되어 인민에게 수동적으로 주어진 법이다. 이것이 만들어지고  집행되는 과정에 대해  정작 그 법의 적용을 받아야 하는 이들은 소외되어 있다. 한 개인의 거친 양심과, 이에 대한 공감과 집단적 실천이 반란을 혁명으로 이끌어 올린다. 부당한 법의 행사를 거부한 이들을 종국적으로 철창에 보내려 한다면, 집단적으로 10만의 인민이 동시에 이 법의 행사를 거부해 버리면 법은 무력화된다. 연 30만명에 이르는 입대자 중의 1/3이 집총거부를 한다면, 이들을 과연 영창으로 보낼수 있을까? 법이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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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의 처지

문학 Literatur 2009. 3. 14. 23:41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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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행중에 있는 <순수이성비판> 독해를 이중으로 다시 시작하고 있다. 그러니까 현재 2/3정도 나간 독해를 그대로 진행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읽는 것이다. 번역본으로만 본다면 순서대로 죽 나가는게 좋지만 원서를 중심으로 읽으려 하다보니 속도가 더뎌 이런 방법을 쓴다.  서론, 선험적 분석론(요소론과 변증론), 선험적 방법론의 논의가 너무도 복잡스러워서 삼중 사중의 독해로 파고 들어가는 방법도 괜찮을 것 같다. 마치 철벽의 요새를 사방에서 공격하는 것처럼.

머릿말에서 당대 형이상학의 격추된 위상을 말하면서 칸트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중 트로이왕의 아내 헤쿠바(Hecuba)를 인용한다. 그러고 보면 <순수이성비판>도 마르크스의 <자본 : 정치경제학비판>처럼 건조한 서술로만 진행되지 않는다.  

modo maxima rerum, tot generis natisque potens-nunc trahor exul, inops. - Ovid. Metam.

eben noch die Allerhöchste, mächtig durch so viel Schwiegersöhne und Kinder...werde ich jetzt, verstoßen und hilflos, hinweggeführt. - Übersetzung des Herausgebers.

그래도 한때는 많은 사위들과 손주들 덕에 최고의 지위에서 권력을 누렸는데, 이제 버림받고 의지할 데 없이 이리 저리 끌려다니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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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사의 증상

문학 Literatur 2009. 3. 12. 13:3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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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라에 전여옥 의원의 증상에 관해 다음과 같은 의사의 진단이 있었다고 하는데...

 "전 의원은 폭행으로 인해 경추염좌(목이 삔거고)

몸 전체 다발성 찰과상,(몸 전체가 긁혔다는거고)

두뇌타박상, 뇌진탕(이건 의사소견상 나타나는 증상일 수 있지만 이 사람의 평상시

행동을 참고해 보면 선천적인 질병일 수도 있지 않은가 보고요)

왼쪽 눈 각막 손상(눈 비비다가도 각막손상은 흔히 됩니다)..."

다른 건 몰라도 경추염좌는 유독 기억납니다. 경추염좌..교통사고 중 뒤차로부터 추돌당했을 때 흔히 나오는 진단..나도 이거 2번 받았는데 피곤하면 가끔 목이 뻐근해 지는게 그때의 충격이 되돌아오는 느낌..나이들어 그런 것일 수도 있겠고..업무의 피로와 짜증이 머리를 압박하는데서 오는 현상일 수도 있고..생각의 무게를 떠받치는 목뼈의 노고일 수도 있겠고,,그런데 전여사는 가벼운 몸싸움을 몸소 하고서 온갖 합병증세를 보이니..오버 구라 캡숑 우리 전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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