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강원도

서술 Beschreibung 2008. 9. 25. 12:15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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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에 일주일 가량 있는 동안 한가한 시간에는 보름 정도 묵은 신문들을 쭉 흝어 봤다. 주소가 적힌 휘장에 싸여 조선시대 편지봉투만한 크기로 접혀진 강원도민일보는 매일 우편으로 배달되는데, 신문을 보다 보니 여러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원래 강릉에 속해 있던 동해는 1981년에야 독립해서 별도의 시로 승격됐다. 따라서 동해시 보다 유서깊은 곳은 묵호이다. 현재는 지역항이지만 원래는 외항선원들이 들락거렸다는 묵호항은 한창 탄광이 대량으로 채굴되던 시절에는 풍부한 어획량으로 부유한 동네였다. 지금은 영동의 다른 항구들과 마찬가지로 줄어든 어획량으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이다. 인구나 경제규모에서 동해는 원주, 춘천, 강릉에 못미치는 동네인데, 현재 삼척에 LNG 저장소 설치와 LS전선 공장을 유치해서 지역경제를 살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재미있는 신규사업 하나가 눈에 띄었는데, 그것은 대마사업이다. 백봉령으로 가는 곳에 위치한 동해시 삼화동은 예로부터 대마가 생산되던 곳인데, 대마의 마약성분으로 인해 그 생산은 엄격히 규제되어 있다. 그런데 대마는 단지 마약성분으로만 유용한 것이 아니라 의복, 약품, 항공소재 등 그 활용이 무궁무진해서 뿌리에서부터 줄기, 꽃까지 버릴게 없다고 한다. 지자체와 민간 사업자가 협력해 지역의 신규핵심사업으로 부상시키려고 하는데, 워낙 먹고 살게 부진하다 보니 이런 곳으로도 머리를 쓰나 보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마가 그렇게 널리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대마의 마약성으로 인해 애써 무시되어온 점도 있다. 동해시의 인구유입이 젊은 층보다는 노년층에서 일어나고 있는 점에서 볼 때, 관광자원과 결합된 실버사업이 이 해안도시의 새로운 동력일 것이다.    

 호사가들이 정치현안보다는 정치인의 행보에 관심을 보이듯, 지방선거가 2년이나 남았는데도 이 신문은 차기 도지사 후보를 물망하는 기사를 명절 전에 실었다(현 도지사는 2선인데 3선은 제한되어있다). 지역에서 중등교육을 받고 서울의 명문대에 진학한 도민출신에게 큰 기대를  품는 것은 강원도만의 실정은 아닐 것이다. 태백시는 취약한 지역에 농어촌 특별전형의 기회를 부여하는 지위를 상실당하자 들고 일어섰다. 여전히 태백시는 동등한 입시 경쟁을 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호소다. 춘천과 원주, 강릉의 일부 명문고를 제외한 지역의 학교들이 초토화되는 비평준화의 고장에서 서울을 바라보며 떡고물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는 절규는 한편으로는 비참하면서도 지역의 현실론으로 자리를 잡았다. 논란 속에 원주에서 강릉간 신규철로개설이 당정에서 수용되었지만, 막대한 비용이 초래되는 이 사업의 미래가 밝지는 않다. 철로가 개설된다면 기존에 비해 40분이 단축된다고 하는데, 이런 정도의 효율로 사업적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지이고, 건설재원 확보도 순탄치는 않다고 한다. 이런 우울한 기사를 제치고 눈에 띄는 한 독자의 시가 있었다. 강릉의 한 목사가 올린 시인데, 필력이 사람들을 움직이는 광경을 메밀꽃 축제에서 예를 들었다. 변변한 볼거리 없는 시골동네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오게 한 것은 이효석의 필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필력 하나로만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가. 메밀꽃 축제를 기획한 사람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필력은 책장 속에만 숨쉴 뿐이다. 그런데 평창 출신인 이효석도 서울로 유학와서 작품활동을 해 동네를 일으킨 셈이다. 혼자 클 수 없는 강원도의 힘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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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와 니체

칸트 Kant 2008. 8. 29. 12:5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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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한다"와 "하고자 한다"는 동사개념이 결국 의지의 문제로 귀착된다면, 결과적으로 이 두 독신철학자들의 문제의식은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그 귀결에 이르는 과정과 방법은 얼마나 상이한가. 한 사람은 오성의 명증성을 사용해 이성의 체계적 비판의 작업으로서 당위를 끌어낸 반면에 다른 한 사람은 이성 밖에서 이성을 주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의지의 문제에 다가섰다. 방식과 과정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접점과 이 접점의 해리 지점을 추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일 것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 중 "정신의 세 단계 변화에 대하여" 장에서 낙타의 비유를 통해 칸트를 염두해 두고 있다. 낙타에서 사자, 어린아이로 가는 정신의 단계적 변화에서 낙타는 가장 낮은 수준의 정신 단계로서 인식의 괴로운 노동을 수행하는 자이다. 인식론에서 새로운 형이상학으로 나가는 칸트의 도정은 법철학에서 미완의 종결을 이룬다. 형이상학은 어떻게 전개되는가? 엄밀하게는 도덕의 형이상학으로서, 인간 존재의 도덕성을 인과율로 규정된 자연이나 초월적인 신적인 존재의 요청으로부터 탈각시키려는 것이 칸트의 목적이다. 자연성은 인간을 구속시킬 수 있으나 그의 자유를 침범하지는 못한다. 신적인 존재는 인간의 도덕을 완성시키거나 근거짓지는 못하지만 도덕을 함양할 수 있는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하다. 따라서 도덕은 인간의 자유로부터 성립해야 하는데, 이것이 <실천이성비판>과 <도덕 형이상학>의 과제이다. 여기서 칸트가 법철학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그를 법실증주의자의 전형으로 몰아 붙인다. 왜냐하면 도덕법은 자유의 인식근거로서 강력한 규범으로 정립되기 때문이다.

니체에게는 칸트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체계를 완성시키는 것이 엄중하고 지난한 인식의 노동, 단조로운 인식의 고통으로 그려진다. 이에 비해 사자는 모든 전제 조건을 부수는 부정의 의미를 상징한다. 용에게 일격을 가하는 사자의 비유는 망치를 들고 기존의 철학을 부수는 회의주의를 암시한다. 정합적인 체계를 만들려는 시도와 이를 부정하는 회의주의의 대립은 고대부터 있었는데, 인과율을 부대연상이라는 심리적 작용으로 설명하려는 흄과 이를 반박하는 칸트의 논의는 이 논쟁의 근대적 재현이다.  그렇다면 어린아이는 누구인가? 순진무구한 망각이며 영원한 놀이인 어린아이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차라투스트라..>를 읽으면서 이 물음을 이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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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비주류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서양 철학사에서 '경멸'이라는 단어를 사회적 주제로 부곽시킨다. 경멸이란 인간이 인간에 대해 갖는 불쾌한 감정이다. 경멸의 대상인 후자의 인간이 불쾌를 유발할 수도 있지만, 경멸을 느끼는 전자의 인간이 불쾌를 생산할 수도 있다. 경멸이 발생하는 원인을 이 양자의 어떤 지점에서 명확히 갈라 규명하려는 것은 심리학적 탐구를 포함한 경험과학이 떠맡을 문제지만, 2,000년 전에도 있었던 이런 감정이 새삼 새로운 것도 아니다. 그래서 고대 철학사에서부터 경멸은 한 무리의 사유 집단이 걷잡을 수 없는 수효의 군중을 교양화시키기 위한 원인이었다.  그러나 경멸을 비로서 사회적 주제로 파악한 철학자는 니체이다. 차라투스트라가 지상의 인민에게 쏟아내는 비극적 서사시는 인민에 대한 경멸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 슬로터디예크가 말하듯, 경멸을 가린채 대중에게 아부하는 헤겔이나 마르크스에 비해 니체야 말로 솔직한 철학자인 셈이다. 그러나 이게 다인가? 경멸의 베일 너머에는 또한 질투심이 도사리고 있다. 집시여인인 에스메랄드를 사랑하는 노틀담의 꼽추 콰지모도를 경멸하는 부주교 클로드에게도 질투심이 유발된다. 질투심은 한편으로 증오로 치닫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차이가 있는 두 인간을 동화시키도록 촉구할 뿐만 아니라, 질투를 유발하는 인간을 넘어설 것을 요구하는 욕망의 샘이다. 이런 점에서 차라투스트라와 토니오 크뢰거는 유사한 점이 있다. 즉 이들의 질투심에는 어떤 동경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동경의 대상은 차라투스트라에게는 운명애이며 토니오 크뢰거에게는 <금발과 파란 눈을 가진> 일상의 부르조아적 시민의 생활세계이다.

토니오가 동경의 대상으로 삼은 북구의 사람들에 비해, 자신과 같은 예술가들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는 대중을 경멸하면서도 대중 속에서 예술의 의미를 찾는 시민 예술가로 자신을 정립시키려 한다. 시민 계급이란 자신의 지위를 주어 받은 것이 아니라 투쟁하고 쟁취한, 생성해 만들어낸 사회적 창작물이다.  토니오가 고난을 모르고 양심이 없는 지중해 연안 사람을 혐오하고 거센 바닷바람에 단련된 북구 사람을 동경하는 이면에는, 그의 고향에 대한 애증 섞인 정서도 있겠지만, 이러한 사회성의 배경도 있다. 자신과 같은 작가를 비롯한 예술가들은 시민사회에서 변화의 움직임을 가장 예민하게 감지하는 촉수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변화를 일으키는 작용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술가가 일상의 사회를 벗어나 자신만의 천상으로 비상하는 것은, 마치 신, 자유, 불멸성과 같은 칸트의 선험적 이념이 현실과는 전혀 상관없이 사유의 비행을 감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쩌면 칸트처럼 소박하게도, 토니오는 이 거친 물결이 흐르는 강의 양안에서 굳건한 다리를 세우려고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예술가에게 다리라는 건축물이 가능한 것인가?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소명, 아니 저주를 부여받은 예술가에게 견고한 다리는 모순된 건축물이다. 이런 건축은 예술가가 개입할 수는 있으나 전담할 수는 없는 문제다. 왜냐하면 현실에 강하게 밀착되어 자기 소리를 분명히 내는 시끄러운 무리배들이 예술가들에게 떠밀릴 일은 없기 때문이다.  

28살의 나이에 발표한 이 자전적 단편에서 토마스 만의 유년과 청년 시절의 소외된 의식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 그리고 책임있는 예술인의 상에 대한 의지와 더불어, 젊은 작가의 특권인 방랑의 유희를 읽을 수 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마치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연상시킨다. 오직 방향없고 배설적인 경멸로 가득찬 『호밀밭의 파수꾼』에 비해 이 작품에서는 어떤 숭고한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조짐이 드러난다. 인생의 특정한 시절,  한때의 비상함으로 추억되는 빛바랜 <젊은날의 초상>으로서가 아니라.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바다의 물결 소리가 내게까지 올라옵니다. 그래서 나는 눈을 감습니다. 그러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그림자처럼 어른거리고 있는 한 세계가 들여다 보입니다. 그 세계는 나한테서 질서와 형상을 부여받고 싶어서 안달입니다."(107-108)

텍스트 :  토마스 만 단편선, 안삼환 외 역(민음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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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학생과의 간담회

주장 Behauptung 2008. 7. 29. 09:01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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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은 굶주리는 북한동포를 위한 점심 단식과 모금회 및 북한상황에 대한 정보 교류회가 있다. 2주째 참석하는데, 지난 시간에는 민간의 탈북청소년 학교인 셋넷학교 교장과의 간담회 및 동영상 시청이 있었고, 오늘은 지난 4년 전 탈북해 한국에 온지 1년이 됐고 현재 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 20대의 여학생과 간담회가 있었다. 탈북한 청소년들이 정말 영화 하나를 찍을 정도의 소재로 삼을 만한 체험을 겪었다는 교장의 말처럼, 오늘 온 탈북 학생도 만만찮은 여정을 들려줬다. 국경도시에서 살던 이 학생은 4년 전 이 도시의 역전에서 중국 브로커의 꾀임에 넘어가 다른 북한 청소년과 함께 중국 농촌에 팔려갔다. 여기서 탈출해 다시 다른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태국까지 도보로 산길을 이용해 도주했다가 탈북 4년만에 한국에 올 수 있었다. 하나원에서 3개월간의 적응훈련을 받은 후 보잘것 없는 정착금을 받고 생활하다가 한국친구에 속아 정착금을 사기당한 경우도 있었다. 중국에서 공안에 발각될까 숨어지내고 도망다니는 불안한 생활로 인해, 탈북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심장이 약하며, 자살 충동도 있을 정도로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이지만 현재 상담 치료를 받고 교회생활을 하면서 안정된 편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요즘 현안인 촛불집회와 관련지어, 북한에서 체제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없냐는 내 질문에 대해 학생은 단호하게 그런 경우는 바로 죽는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정치를 '받는다'고 하며, 공개 처형장까지 일명의 예외없이 유치원생도 동원되어 처형을 봐야 한다고 하니 김일성 체제가 얼마나 무섭게 인민의 숨통을 조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식량위기는 94년 김일성 사후에 심각해 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장에는 먹을게 충분하지만 그것을 구매할 돈이 인민에게 없으며, 급여로 지급되던 돈도 끊겨 대부분의 인민은 장사를 해야 먹고 살 수 있다고 한다. 굶기지는 않던 위대한 지도자가 사라지자 그 주변의 빈대같은 도적떼들이 세습권력의 피를 빨아먹고, 다수 인민의 삶을 궁지로 몰아 넣는 양상이다.

솔직히 이런 모임에 별로 나갈 생각이 없었다. 어느때 부터 굶주림의 문제는 특수한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보편적 차원의 문제로 보아서, 아프리카 빈민과 북한 주민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된 체제로 고통받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당장 북한은 우리 면전에 있는 국가고, 탈북한 주민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는 추세에서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수용할지 준비하지 않는다면, 탈북 인민은 또다른 외국노동자로 분류될 소지가 있다. 물론 이런 말을 한다고 외국인 노동자가 탈북민보다 못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향후 언제 있을지 모를 통일시대를 생각한다면 외국인 노동자와는 다르게 이들에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 당국의 금강산 사건 처리과정이나, 북한당국이 베이징 올림픽 때 북한 경찰과 군대를 풀어 이들이 탈북 북한 주민을 잡아오면 평생 먹고 살게 해주겠다는 소문을 볼 때 통일의 길은 까마득하다. 그러나 탈북한 북한인들과 남한인의 관계는 인도주의적 관계가 아니라 내국민간의 사회적 관계다.  점점더 수효가 늘어나는 이들의 흡수는 우리에게 북한인에 대한 새로운 관계정립을 요구한다. 통일을 염두한다면 더욱더 피할 수 없는 요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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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열대 중

단상 Vorstelltung 2008. 7. 9. 12:5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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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신세계의 도시들은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즉 이것들은 중간적인 단계를 거침이 없이 첫 생성기로부터 바로 노쇠기로 접어드는 것이다...유럽의 어떤 도시들은 천천히, 그리고 평화스럽게 쇠퇴하고 있으나, 신세계의 도시들은 영원한 청춘을 간직할 수 없는 하나의 고질(固疾)과도 같은 계속적인 고열을 지니고 있다"

(레비 스트로스, Tristes Tropiques, 제 11장 상파울로)

빔 벰더스의 '파리텍사스'에서 그려지는 미국의 황량한 들판과 기계적 도시는 바로 구도시 '파리'와 신대륙 '텍사스'의 무미건조한 결합을 보여줍니다. 빔 벰더스는 이런 도시에서 길을 잃어버린 듯한 시선을 노출합니다. 이에 비해 서울은 왕조의 전통과 식민지 잔재, 미국문화라는 혼재된 시대의 퇴적층에 이제 재개발의 쇠말뚝이 곳곳에 박히는 기이한 도시의 면모를 보여 줍니다. 명박산성은 점점 높아지고 확대되는데, 산성에 들어가기엔 지불해야할 높은 통행세를 감당못할 대중의 삶은 외곽으로 몰려가는 현장이 MB 시대 서울의 모습입니다. 청춘을 잃어버린 늙은 도시의 몸체에 성형만이 능사인 아름다운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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