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책이 결국 목숨을 내놓은 격렬한 쟁투로 피어오르는 화염의 현장에서 다시 부각되고 있다. 용산참사의 현장에서 멍든 가슴에 충격을 받은 노년의 작가가 절규하고 있다. 군사독재의 산업화시기에 빼앗길 대로 빼앗겨 숨 쉴 지느러미와 퀭한 눈망울만 가진 채 가시밖에 없는 몸뚱아리로 연명하다 절명한 이들의 비참함이 한 세대를 건너 뛰어 다시 전해지고 있다. 비참함은 세대를 넘었지만 굴뚝 위에 올라가 목숨을 던지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한 세대의 벽을 넘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 오고 있다. 그 작은 공은 난장이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이상이었다. 이런 소망을 담은 공은 대기권을 벗어나기는커녕 쏘아 올리자마자 난장이와 함께 굴뚝 속으로 수직 낙하할 운명을 타고난 것인가? 그래서 한줌의 재만 남기고 뭉클한 연기로만 지상을 벗어나는 것인가? 굴뚝의 공이 그렇게도 쏘아올리기 힘든 공인가? 왜 소박한 이상들은 도대체 현실능력이 마비된 공상으로 치부되는가? 왜 소박한 꿈을 꾸는 이들은 외계인으로 몰리는가? 이것은 한 사회의 물적이고 지적인 수준 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양심을 드러낸다. 세대를 넘어 공명될 수 밖에 없는 이 책의 불편함이 미래의 어느 시절 미개한 시기에 관한 르뽀로 전락할 날을 만들기 위해 투사(投射)는 계속 되야 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의 고통을 알아 주고 그 고통을 함께 져 줄 사람이었다. (70)
햄릿을 읽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이웃집에서 받고 있는 인간적 절망에 대해 눈물짓는 능력은 마비당하고, 또 상실당한 것은 아닐까?(85)
독일 하스트로 호수 근처에 있다는 릴리푸트 읍 이야기...독자적인 마을을 열망한 작은 힘들이 난장이 마을을 세웠다.(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