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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근원은 신이 아닌 인간의 선택(판단의 자유, 그리고 판단의 책임)

김용옥의 강연에 의하면, 구약성서의 집필시기는  이스라엘의 바빌론 유수기(b.c. 6세기, 70년간)로 추정된다. 즉 모세오경과 같은 구약의 기초서사(출애굽 외)를 비롯해 열왕기,  유대 통일왕국을 이룩한 다윗의 이야기가 모두 고고학적 증거가 없는 하나의 신화라는 것이다. 이는 오디세이가 고대 영웅들의 신화적 서사인 것과 비슷하지만 주변 강대국들에 고난을 당하고 결국 멸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염원하는 소망을 담은 장대한 드라마라는 것이다. 마치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처럼 말이다.

그러나 성서가 구약으로만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단지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규범과 서사로 남았을 것이지만, 신약으로 인해 보편종교로 나아갈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아브라함도, 야곱도, 요셉도, 모세도, 다윗도, 솔로몬도, 그리고 예수도 역사적 실체가 모호한 신화적 서사의 주인공들일지라도, 서한의 형식으로 신약 집필의 서두를 마련한 역사적 인물 바울에 의해서 기독교의 고난과 승리의 길이 예비된다.

믿을 수 없는 일을 믿는 것, 그것은 결단이고 나아가 신앙일지도 모른다.

김용옥은 구약에 기반을 둔 유대교의 야훼신앙을 민족 편협적인 성황당 종교라고 폄훼하며 그런 류의 신앙은 세계에 보편적으로 산재해 있다고 하면서, 러셀의 서양철학사에 근거해 플라톤의 심신 이원론을 바울이 끌어들이면서 유대교의 뿌리에서 기독교가 혁명적으로 불거져 나온 것으로 본다. 다른 맥락에서 니체도 바울을 기독교의 산파로 보지만, 유대 철학자 야곱 타우베스는 정치적 맥락에서 바울을 본다. 루터 보다 더 급진적이고 근본적으로 유대교의 전통을 뒤엎었을 뿐만 아니라, 로마에 대해 두리뭉실하게 존립과 타협의 줄타기를 하는 유대교 지도부와 달리 로마의 황제 숭배에 정면으로 대적하는 행보를 서한의 형식으로 바울이 전개했다는 것이다. 종교가 사회현실 및 권력과 관련을 맺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사회를 개혁하는 일, 그리고 이것이 성공하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불교는 이런 일에 초연한 인상을 불러올지 모르지만 인상일 뿐이다.

하지만 전례 혹은 의식은 훈련이자 무장으로서 실행력에서 지식을 넘어선다. 타우베스는 전례학에서 신학을 도출하는 방식에 경도됐다(바울의 정치신학, 조효원 역 그린비 2013, 94면).

J. Habermas, A.e.G.d.P., s.15. : 만들어진 신, 인간과 공진화한[커뮤니케이션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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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땅에 일하러 온 것이지만, 예상보다 혹독한 업무조건에 놓이다보니 일만하러 여기에 온 것인지 의문이 들면서 다시 공부의 길을 찾아보자는, 하지만 생업을 놓지 않으면서, 아니 놓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돌파구를 마련해 보자는 생각이 요며칠 강하게 들었다. 그것이 학위처럼 타인의 인정을 받는 식의 공부이든, 자기만족에 그치는 것이든간에, 일단 조금식이라도 시도해 보자는. 시간도 없고 눈도 침침해 졌지만, 시간을 만드는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도 일종의 다짐과 의지일지도 모른다. 일단 시작은 언어와 주제를 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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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입국 후기 2023.03.07

여행 Reise 2023. 3. 15. 17:1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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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독일에 온지 일주일이 되어간다. 처음 온 것도 아니고, 비록 도착 후 가는 도시는 매번 달랐어도 여전히 관문은 프랑크푸르트 공항과 중앙역이다.

한 달 전, 급작스럽지만 그래도 싼 비행기표를 구한다는게 경유편인 폴란드 항공이었다. 원래는 한번 이용해 본 적이 있던 역시 경유편인 네덜란드 항공을 예약했다가 무료수하물 제공이 없어서  취소하고 잡은 것이 폴란드 항공이었는데, 막상 프랑크푸르트 공항 도착시각이 밤 10시 40분이었다. 공항에서 70여 km 떨어진 도시를 뭐 어떻게든 가는 것은 되겠지만, 열차가 그 시간대에 없다면 문제였다.

폴란드 항공의 일반석 무료 수하물은 위탁이 1개 23kg, 기내는 8kg 이내였다. 출국 며칠 전 갑자기 가져갈 무거운 짐이 생겨서 위탁수하물로 가져갈 짐을 줄여서 23kg로 맞추긴 했지만 기내로 가져갈 짐은 도저히 8kg 내로 줄일 수 없었다. 출국일 당일 인천공항의 폴란드 항공 부스에서 발권을 할 때 아무래도 기내로 가져갈 짐의 부피가 눈에 띄여서 직원이 중량을 재보자고 했고 8kg가 추가되어 적지않은 추가 운임을 내야 했다.

짐을 붙이고 잠깐 대기하다 탑승했다. 이륙 후 안정궤도에 진입하자 음료와 식사가 제공되었고 이후 바로 기내는 소등되었다. 무려 10시간 가량이나. 식사 후 잠깐 잠들긴 했으나 어두운 기내에서 10시간 이상을 몽롱한 상태에서 버텨야 했다.


비행기는 우크라이나 남동부의 격전지를 비켜가는 경로를 취함에 따라 시간이 더 걸리는 것으로  보였다. 유럽에 진입하자 점등이 되고 음료와 식사가 나왔다. 인천에서 12시 30분에 출발해 바르샤바 쇼팽 공항에 현지 시각 18시에 도착했다. 13시간 30분의 긴 비행이었다.

공항 부지는 매우 광할하지만 시설은 다소 노후해 보이는 바르샤바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기 전 입국심사를 받았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짧은 머리의 남성 심사관은 앞선 사람들에 비해 짧게 내 여권을 살펴본 후 질문도 없이 도장을 쾅 찍어줬다. 그리고 기내 수하물과 소지품 통관 심사가 이어졌는데, 특이하게도 폴란드 경찰이 가방을 직접 뒤지기까지 했다. 면세 담배 한 보루는 허용이 안되는지 뭐라 지적을 했지만 별다른 제재는 없었다.  경유편 출국 대기실 한 가운데 흡연장이 넉넉히 있는 점이 편리했지만 갈아탈 비행기가 소형이라서 그런지 승객들을 가득 실은 버스편으로 비행기까지 이동해야 했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국적으로 보이는 60대 여성이 통로에 앉고 나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는데, 20시 40분에서 프랑크푸르트로 22시 40분까지 2시간 비행중 내가 한번 화장실을 가려고 하자 이 여성은 인상을 찡그리면서 투덜댔다. 이후 공항에 도착해 위탁수하물을 찾으러 갈 때, 이 비행편이 유럽내의 짧은 경유이고 승객들도 대부분 독일인이나 폴란드인으로 위탁 수하물을 찾으러 가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다시 만원 버스를 타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어느 구석지고 음산해 보이는 입국장 입구에서 버스는 승객들을 하차시켰다. 계단을 올라 입국장에 들어서는데 살짝 놀랐다. 입국심사대가 없이 바로 공항 밖으로 나가는 출구가 펼쳐진 것이다. 그러니까 바르샤바의 입국심사로 독일입국심사는 완료된 것이다.

여권을 들춰보니 2년전 네덜란드항공 경유편으로 귀국할 때도 출국도장은 암스테르담에서 한번만 찍혔다. EU의 실체는 마트 뿐만 아니라 이런 데에서도 직감할 수 있는 셈이다.

우선 나가기 전에 위탁수하물을 찾아야 하는데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1층의 배기지 컨베이어는 대부분 멈춰 있는 것으로 보여 지하로 내려갔다. 여기서 내 옆에 앉았던 그 러시아계 여성을 볼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른 비행기를 타고 온 것으로 보였다. 20분 정도 기다린 끝에 수하물이 나왔고 출구에서 살짝 헤매는 나에게 한 20대 초반의 건장한 소녀같은 직원이 친절히 출구를 안내해 줬다.

공항을 빠져 나가는 5유로 상당의 전철표를 끊고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내려 근방의 예약한 숙소로 갔다.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각, 방에 짐을 풀고 맥주나 한잔 하러 근처의 아이리쉬 펍에 가려다 앉을 자리도 없이 사람이 많아서 근처 매점에서 맥주 2병을 사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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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세번째 출국을 앞두고

단상 Vorstelltung 2023. 3. 4. 20:0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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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과 우연의 결과로 다시 나가게 됐다. 다시 나갈 만한 아주 좋은 여건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나갈 수 있는 계기가 생길 줄을 예상못했다. 언어 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이 서툴고 또한 불편한 외국생활이지만 더는 미룰 수 없는 심정도 있다. 2년간 못본 가족들 때문이 아니라면 여행으로만 가기에도 부담되는 여정이지만 일단 삶의 또다른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지난 토요일까지 일을 하고, 명절 연휴 보다 긴 시간, 그러나 뭔가 촉박해져 가는 한 주를 보냈다. 맺어졌다가 헤쳐지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긴 여운을 남기고 또다른 인연의 실타래가 저 먼땅에서 풀어 헤쳐질 것이다. 

 

암울하고 못마땅하고 지쳐가던, 그럼에도 흘러가는 시간에 몸과 마음을 맡긴 결과의 소산으로 또다른 생활의 도약점을 마련해 가는 인파 속에 담겼던 몸을 빼지만, 또다른 바다가 다가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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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현장 숙소생활의 기억들

단상 Vorstelltung 2023. 2. 13. 21:28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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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중순~2020.02.초순 : 평택 P2 수장공사. 아주 오래된 빌라 3층. 칸막이 팀 답게 많은 사람들이 좁은 집에 오고 감. 오래된 빌라지만 그래도 시내 근방의 근린생활권이고 주변에 상권도 발달해서 인기있던 숙소였음.

2020.02~2020.06 : P2 전기가설. 평택현장 숙소의 메카라고 할 만한 법원 단지 주변 숙소. 법조단지 답게 발달한 유흥가는 건설인력의 대거 유입으로 밤마다 불야성. 이전 수장팀과는 달리, 그리고 가설의 특성상 연장근무가 없어서 팀장을 비롯한 숙소동료들과 술마실 일이 적지 않았고 괴상한 개성의 인물들을 접함.

2020.07~2020.09 : 이천 하이닉스 M15 전기트레이. 요양소같은 시골 아파트 숙소에 평택에 비해 쾌적하고 인간적인 현장. 마치 긴 여름 휴가를 보낸듯한 숙소와 좋은 사람들.

2020.09~2020.10 : 옥천 생활 잠시

2021.04~2021.07 : P2 및 화성 트레이팀. 안성 원곡. 소재지가 안성이지 실제는 평택생활권인데다 가장 현대적이었던 아파트 숙소. 첫날부터 아주 강렬한 개성의 20대 룸메이트를 만남, 아니 같이 방을 씀. 전기팀은 가는 곳마다 저마다의 개성, 아주 특출난 성격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됨.

2021.08~2021.10 : 평택 EUV 트레이팀. 통복천 근방의 쾌적한 복층 빌라. 이렇게 화장실이 많은 빌라는 처음 봤지만, 같이 입사한 룸메이트 형님 외에 친숙해 지기 힘든 숙소 분위기.

2021.10~2022.06 : P3 가설 및 수직 트레이. 법원 단지 숙소. 숙소생활을 더이상 하고 싶지 않게 됨.

2022.06~2022.07 : P3 철야 수장팀. 고덕 주변에서 마지막 숙소생활. 한달 사이에 타인의 의사로 숙소 이사를 세 번, 하루 사이에 두 번 함. 아무리 숙소가 현대적이고 깨끗해 보여도 결국 사람이 가꾸고 같이 만들어 가는 것이 숙소생활, 나름 협동생활이라 생각.

2022.07~2023.02 : P3 그린동 단말팀. 숙소 밖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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