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은 굶주리는 북한동포를 위한 점심 단식과 모금회 및 북한상황에 대한 정보 교류회가 있다. 2주째 참석하는데, 지난 시간에는 민간의 탈북청소년 학교인 셋넷학교 교장과의 간담회 및 동영상 시청이 있었고, 오늘은 지난 4년 전 탈북해 한국에 온지 1년이 됐고 현재 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 20대의 여학생과 간담회가 있었다. 탈북한 청소년들이 정말 영화 하나를 찍을 정도의 소재로 삼을 만한 체험을 겪었다는 교장의 말처럼, 오늘 온 탈북 학생도 만만찮은 여정을 들려줬다. 국경도시에서 살던 이 학생은 4년 전 이 도시의 역전에서 중국 브로커의 꾀임에 넘어가 다른 북한 청소년과 함께 중국 농촌에 팔려갔다. 여기서 탈출해 다시 다른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태국까지 도보로 산길을 이용해 도주했다가 탈북 4년만에 한국에 올 수 있었다. 하나원에서 3개월간의 적응훈련을 받은 후 보잘것 없는 정착금을 받고 생활하다가 한국친구에 속아 정착금을 사기당한 경우도 있었다. 중국에서 공안에 발각될까 숨어지내고 도망다니는 불안한 생활로 인해, 탈북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심장이 약하며, 자살 충동도 있을 정도로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이지만 현재 상담 치료를 받고 교회생활을 하면서 안정된 편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요즘 현안인 촛불집회와 관련지어, 북한에서 체제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없냐는 내 질문에 대해 학생은 단호하게 그런 경우는 바로 죽는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정치를 '받는다'고 하며, 공개 처형장까지 일명의 예외없이 유치원생도 동원되어 처형을 봐야 한다고 하니 김일성 체제가 얼마나 무섭게 인민의 숨통을 조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식량위기는 94년 김일성 사후에 심각해 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장에는 먹을게 충분하지만 그것을 구매할 돈이 인민에게 없으며, 급여로 지급되던 돈도 끊겨 대부분의 인민은 장사를 해야 먹고 살 수 있다고 한다. 굶기지는 않던 위대한 지도자가 사라지자 그 주변의 빈대같은 도적떼들이 세습권력의 피를 빨아먹고, 다수 인민의 삶을 궁지로 몰아 넣는 양상이다.
솔직히 이런 모임에 별로 나갈 생각이 없었다. 어느때 부터 굶주림의 문제는 특수한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보편적 차원의 문제로 보아서, 아프리카 빈민과 북한 주민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된 체제로 고통받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당장 북한은 우리 면전에 있는 국가고, 탈북한 주민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는 추세에서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수용할지 준비하지 않는다면, 탈북 인민은 또다른 외국노동자로 분류될 소지가 있다. 물론 이런 말을 한다고 외국인 노동자가 탈북민보다 못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향후 언제 있을지 모를 통일시대를 생각한다면 외국인 노동자와는 다르게 이들에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 당국의 금강산 사건 처리과정이나, 북한당국이 베이징 올림픽 때 북한 경찰과 군대를 풀어 이들이 탈북 북한 주민을 잡아오면 평생 먹고 살게 해주겠다는 소문을 볼 때 통일의 길은 까마득하다. 그러나 탈북한 북한인들과 남한인의 관계는 인도주의적 관계가 아니라 내국민간의 사회적 관계다. 점점더 수효가 늘어나는 이들의 흡수는 우리에게 북한인에 대한 새로운 관계정립을 요구한다. 통일을 염두한다면 더욱더 피할 수 없는 요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