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답지 않게 산책하기 좋은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날씨라도 좀 추워야 연말 분위기가 나는데, 대선이라는 국가이벤트가 지나가자 기후도 싱겁게 돌아가는듯 하다. 이 국가 이벤트가 연말 분위기를 다 잡아 먹고 말았다는 느낌이다. 예정된 참패를 겪은 후, 뉴스레터를 보내주는 한 신문은 여전히 하이에나의 근성을 못버리고 당선자의 흠집을 찾는데서 독자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기사도 상품과 마찬가지로 팔려야 한다는 '간절함'에서 그런 것이라면 할 말이 없다. 민주주의를 상품화시키는데 이 신문이 기여한 바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도대체 민주의의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민주주의는 이미 실현되어, 그 효력이 상실된, 폐장화폐에 불과한가? 국민의 정부를 표방했던 김대중 정권은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명분에 어울리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동반 상승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말이 수평적 정권교체지, 넓게 보면 김대중 정권은, 자신이 비판했던 김영삼 정권과 마찬가지로 타협적 정권교체라는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정권을 수여한 이 타협의 대상은 사실 전혀 자신의 힘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시켰다. 즉, 역시 타협적 정권교체를 모색하다 드라마적으로 정권을 연장시킨 노무현 정권 뒤에서 이 정권을 조정한 것이다. 이제 미국중심의 불안정한 세계자본주의의 궤도에 개발독재로 이룩한 전시산업이라는 폭주기관차를 고속으로 운행시키는 시발역이 이명박 정권인 셈이다. 즉 양김 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이명박 정권을 준비시킨 것이고, 다만 이명박 정권의 등장으로 흙먼지와 소음만 심해질 뿐이다.
이렇게 이해한다면, 준비된 패배고 10년 정권의 몰락이라는 말은 별 의미가 없다. 본래 그렇게 흘러 가도록 되어 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민주주의에 대한 물음에서 빗겨 가고 있다. 이 물음은 빗겨가더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은, 이것이 남한의 생활세계와 체제에 대한 모든 규정을 근거짓는 기초법의 제 1 원리, 제 1조항이기 때문이다. 저조한 득표율과 이에 따른 계파갈등을 겪는 민노당을 비롯, 허본좌라 불리는 대권과대망상증에 걸린 광대에게도 뒤지는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한 한국사회당에서는 이런 근본적 물음을 들고 이번 대선을 치뤘다. 이런 물음을 내면화시키는 풍토가 선거기간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이뤄진다면, 적어도 10년~20년 후에는 지금과는 판이한 정치풍토가 형성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민주주의적 가치의 내면화는 비단 한국사회당 만의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