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과 옥계의 잠수함

단상 Vorstelltung 2010. 3. 27. 22:50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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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도 넘은 시절에 동해의 옥계에서 북조선의 잠수함이 좌초된 사건이 있었죠. 좌초된 잠수함에서 승무원들은 모두 자살하고(타살도 있었겠지만), 생존능력이 있던 특수전 요원들은 오대산 쪽으로 도주하다 무력화됐죠. 당시에 이 요원들을 잡기 위해 엄청난 군병력이 동원됐고, 정말 전쟁이라도 날 분위기였습니다. 천안함 사건은 군사적 교전의 징후는 안 보이지만, 국가에 동원된 '개죽음'이라는 점에서 옥계에 침투했던 북조선 병사들도 생각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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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거북이

단상 Vorstelltung 2010. 3. 26. 07:06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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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이에게 조선의 전래동화인 <토끼와 거북이>를 각색한 유아용 영문 동화책 The Loyal Turtle(Geni Cube, 2007)을 읽어 주다가 몇가지 생각이 들었다.

1.거북이는 용왕에 대한 충성을 위해 육지에서 토끼에게 사기를 친다.
2.용궁에서 위기에 빠진 토끼는 육지로 살아 나가기 위해 사기를 친다.
3.다시 토끼를 찾으러 육지로 나간 멍청한 거북이는 그래도 맹목적인 충성심 때문에 산신령의 은총을 받는다. 

한글로 된 동화책을 읽어 줄 때 내가 너무 무덤덤해 읽어줘서 아이는 지루해 하지만, 영문 동화책을 읽어 줄 때는 다른가 보다. 고 3때 할아버지 영어선생의 열정적인 낭독을 무심결에 흉내낸듯 하다.    

토끼는 거북이의 유혹에 동해서 용궁에 따라 간다. 자신의 이익에 철저한 것이다. 반면 거북이는 용왕이 죽으라고 해도 죽을 충성스러운 신하이다. 물론 거북이도 용왕이라는 조직의 수장을 이용해 출세를 하려는 목적이 있을 수 있으므로 맹목적인 충성만 하지는 않을지 모른다. 정말 죽으라고 하면 죽을 시늉 정도만 하는. 하지만 토끼처럼 자신의 이익에 철저한 군상과 조직에 충성을 바치는 군상의  대조를 통해 이야기책은 순종적인 아이의 상을 제시한다.  공부 좀 못해도 신의가 있으면 세상사는데 지장없다는 정도의 교훈이라기 보다는, 토끼처럼 더 많은 이익과 생존을 위해 머리를 굴리면서도 현행의 제도에 순응하는 인간형을 추구하는 시대의 욕구가 출판기획에 담겨 있지 않을까.

또 하나의 교훈은 간(liver)의 이종간 이식을 옛날 옛적엔 감지했다는 점이다. 유전공학은 현대판 동화이다.  

토끼의 지략과 거북이의 충성에 관해 이아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주인 노릇을 할 수도 없거니와, 또 주인 노릇을 한다고 해서 하인놈들이 죄다 충성을 바치는 것도 아니거든요. 하기야 이 세상엔 굽실대며 평생 충성을 바치는 하인들도 좌악 깔렸지요. 그 녀석들은 멍에를 지고 주인집 당나귀 꼴이 되어 죽은 듯이 혹사당하면서도 그저 넙죽넙죽 주는 대로 받아먹다가, 늙어 비틀어지면 내쫓기죠! 그따위 고지식한 바보자식들은 늘씬하게 때려주고 싶어요. 이와 반대로, 겉으로는 충성을 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자기 속셈을 차리는 자들도 있지요. 주인 양반들에게 보라는 듯이 봉사를 하면서도 빨아먹을 것은 몽땅 빨아먹고, 주머니가 두둑해지면 주인 언제 봤더냐는 식이죠. 요런 작자들이 제법 줏대가 있는 자들이예요. 당신이 로더리고인 것이 확실한 것처럼, 내가 무어인이라면 절대로 이아고가 될 수 없겠죠. 무어인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긴 하지만, 실은 나 자신을 위해서 더 그러는 거랍니다...내가 뭐 존경심과 의무감에서 그 녀석을 떠받는 줄 아세요? 겉으로는 그러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꿍꿍이 속이 있는 겁니다. 자랑삼아 흉중의 야망을ㅣ 노출시켰다가는, 소매 위해 심장을 드러내 놓고 비둘기더러 쪼아먹으라는 꼴이 되고 말죠." 
 
 <오셀로> 중 in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태주 옮김(범우사, 2003, 2판 8쇄), p.384-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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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  유진 오닐, 『밤으로의 긴 여로』 민승남 역(민음사, 2008, 1판 18쇄)


유진 오닐은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통속극으로 25년간 전미를 돌며 돈을 갈고리로 쓸어 담는데 주력했던 주연배우 제임스 오닐의 삼남이었다.  아일랜드 출신으로서 불우한 어린시절을 겪으면서도 셰익스피어 전문배우의 꿈을 가졌었지만, <몬테그리스토 백작>의 장기간 흥행으로 돈방석에 앉으면서 오로지 돈만 생기면 땅만 살 궁리를 하고 정작 가족에게는 인색했던 아버지를 경멸했던 유진 오닐은 찰리 채플린과 결혼한 딸과 의절했다. 채플린을 통속 배우 쯤으로 본 것일까?    

자전적 이야기에 허구를 이음새 없는 옷처럼 잘 기우는 교묘한 작품들과 달리, 이 소설이 당기는 흡입력은 처참한 진실, 가장 내밀한 가족사의 속내를 비수같은 말들로 속속들이 파헤친다는 점이다. 말보다 잔혹한 도구가 있을까? 폭력은 말의 연장이다. 공포도 말의 연장이다. 단 하루 동안 한 가족에 일어난 일의 단면 만을 들춰내는 것으로도 겹겹히 굴곡을 이뤄 소용돌이치는 가족사의 전모가 드러난다. 이런 전개에서 희곡은 가장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속도감을 갖춘 형식이다. 쏟아지는 대사의 곡사포를 영화가 따라갈 수 있을까?   

역자는 이 자전적 희곡이 아픔의 가족사를 보편적 진실로 승화시킨 작품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분열된 가족상은 현대극의 빼놓을 수 없는 단골메뉴다. 막장 드라마에 사람들은 얼마나 열광하는가? 막장 드라마도 가족간의 피할 수 없는 연민과 동정을 유발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 자전적 작품이 막장과 다른 것은, 이들 가족이 서로를 너무도 사랑하면서도 분열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한때 성모의 계시를 받고 수녀를 꿈꾸던 메리는 잘 생긴 늠름한 배우 티론에 흠뻑 빠져 결혼을 했고, 쉰살이 넘어서도 그에게서 받은 드레스를 보며 황홀해 하지만, 남편에 대한 사랑만으로는 부족해 자꾸 과거로 거슬로 올라간다. 티론 역시 요조 숙녀였던 메리를 사랑했지만 집 보다는 바에서 친구들과 노닥거리고 든든한 자산인 부동산에 여유 돈을 투자할 생각에 골몰하면서도 폐병에 걸린 자식은 값싼 요양원에 보낼 궁리를 한다. 가족의 기대를 받던 맏아들 제이미는 병을 앓고 있는 동생 에드먼드를 보호해 주고 싶어 하지만 자신의 실패로 인해 동생을 질투한다. 에드먼드는 독립을 꿈꾸며 대학을 자퇴하고 선원생활을 하는 등 방랑하지만 폐병을 안고 귀가한다. 1910년 대에 대단한 부자는 아니더라도 여름 별장에 하인과 운전수를 둘 수 있을 정도의 집안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가족간의 가벼운 불화 정도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알콜 중독 보다 무서운 중독이 가족에게서 발생한다는 것은 크나큰 충격과 아픔일 수 밖에 없다.

그 아픔의 각인이 이런 작품을 낳게 했다면, 고통은 정말 창작의 밑거름이다. 그 동기에서나 과정에서도 잔혹한 진실이다.   

                 "내 묵은 슬픔을 눈물로, 피로 쓴 이 극의 원고를 당신에게"
                                                                        (칼로타에게 바치는 헌정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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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밤의 긴 여로

단상 Vorstelltung 2010. 3. 22. 18:1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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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사무실 확장 공사로 자리 정리를 위해 나와야 했다. 장충동 거리는 그래도 어느 정도 사무실이 모여있는 곳이라서 직장인들이 빠져나간 주말에는 산속의 절간 같다. 낮에는 결혼식 때문에 대구에 가는 가족을 서울역까지 바래다 주었다가 장을 보고, 집에 들렀다 바로 사무실로 나갔다. 북부간선을 타고 광화문을 거쳐 서울역, 옥수동, 구리, 남양주, 그리고 장충동까지. 모처럼 홀가분한 주말이라 일을 끝내고 선배를 만나려고 했는데, 약속이 취소되어 동네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다. 오후 5시부터 사무실 정리에 들어 갔는데 주도하는 몇몇 사람은 8시가 넘도록 집에 갈 생각을 안한다. 내가 나서서 서둘러 종료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나서 빠져 나왔다. 용마산 역 쪽으로 이사를 한 친구의 가게 앞 유황오리 집에서 오랜만에 만난 이들과 단맛의 소주를 마셨다.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 메리는 남편 티론에게 집에 있기 보다는 밖에서 친구들과 술마시는 걸 좋아한다고 불평한다. 불평할 사람이 없는 밤에 마시는 술은 마치 밀주같다. 자정으로 넘어가는 시간에 버스를 타고 도심 밖으로 넘어갔다.   

이날 만난 친구 중 하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동기인데, 한창 술마시더니 나 때문에 내신등급이 깍였다고 얘기했다. 같은 반이었던 고 3 때 나는 출석체크 담당이었는데, 농땡이 치기를 즐기던 이 녀석의 출석을 칼같이 체크했기 때문이란다. 그때 이 친구 보다 더 심하게 학교에 나오지 않던, 막나가던  동급생이 있었는데,  차마 이 친구에게는 출석 체크를 엄격하게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졸업을 못할 수도 있어서. 놀려면 이렇게 놀아야지, 드문 드문 학교를 빼먹어서는 육질의 평가마냥 등급의 줄세우기로 아직까지 술안주를 삼는다. 그래도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인지 술값은 내가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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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an Melville, The Piazza(2)

번역 Übersetzung 2010. 3. 17. 22:47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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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집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러한 지역에 위치해 있으면서 풍경을 즐기려는 욕망을 가지고, 시간을 들이며 그곳에 친근해 지려는 사람의 편의에 기여하는 베란다가 없으므로, 마치 의자가 없는 그림 전시장처럼 이 집은 무언가가 생략된 것으로 보였다. 이와 같은 석회석 언덕에 있는 대리석 회랑이 그림 전시장이 아니고 무엇인가? 전시장에는 다달히 새로, 끊임없이 생생한 그림으로 사라져갈 그림이 걸렸다. 아름다움은, 도망칠 수 없고 읽을 수 없는 경건함과 같다. 현재로선 안락의자에 앉은 채 정적(靜寂)과 부동(不動)이 필요해 진다. 비록 오래 전, 존경은 유행했지만 나태함은 유행하지 않았던 시절에 자연의 숭배자들이, 마치 그러한 시대의 대성당에서 보다 높은 권능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의심없이 일어서서 찬미하곤 했지만, 믿음이 좌초하고 연약한 무릎을 지닌 지금 시대에 우리는 베란다와 나무걸상을 갖는다.  

내가 거주하는 첫해 동안 더욱 여유롭게 샤를마뉴의 대관식을 볼 수 있었다(날씨는 매일 일출과 일몰에 그들이 샤를마뉴에게 왕관을 씌우는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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