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선생께

서술 Beschreibung 2012. 9. 12. 23:1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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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작가 생활의 절반을 기울여 탈고하신 님의 소설을 한창의 유행이 지나고, 그리고 피안으로 가신 지 4년이 넘은 이제야 읽고 이런 편지를 씁니다. 독서는 죽은 작가와 살아 남은 독자의 대화라고도 하는데 죽은 작가와 살아 남은 독자 간에 편지를 못 쓸 것도 없겠지요. 그리고 6년 전인가, 개인적으로 님이 거주하고 계셨던 원주의 토지 문학관에서 우연찮게 주말을 보냈지만 미쳐 뵙지 못한 아쉬움에서 이런 형식의 글을 쓰게 됐는지도 모릅니다.

 

소설을 다 읽고 우선 드는 생각은, 웬지 소설이 서둘러 종결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이미 이 작품을 쓰실 때 어느 시기까지 나갈지 어느 정도 방향은 정하셨겠지만, 그리고 구한말과 해방 시점 사이의 40여 년의 기간이 소설의 서사적 기간으로 그리 길다고 할 수 없더라도, 3 세대로 연결된 시간이 집단과 개인의 생생한 생활사와 시대의 굴곡 사이에서 유유히 흘러간 모습을 보여주는 대하 소설임에 분명하지만, 해방후 또 다르게  험악해지는 한반도의 살풍경을 애써 외면하고 싶어하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소설 말미에서 명희의 막대한 기부로 산채에 모인 사내들의 논쟁 중에 그런 조짐이 이미 드러나죠). 시대의 폭정에 가족의 삶이 당신의 대를 이어 유린되는 상황에서 그 정도의 선을 지키는 것이 나름의 선이겠으나, 저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이병주의  『지리산』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암울한 이 한반도의 역사를 총체적인 시점이 아닌 특정 인물들의 군락과 특정 공간을 통해 가장 은밀하면서도 구체적인 서사를 통해 구한말에서부터 꿰뚫어 보고 싶은 유혹을 님께서 너무도 강렬히 남기셨기 때문입니다.

 

후반부에 비교적 자주 등장하는 상의의 기숙사 얘기는 상당히 자전적인 기억을 옮긴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소설을 극적으로 이끌어가는 긴장과 해소의 힘은 최치수의 몰락과 음모의 발각 부분에서 고조되고 이후의 얘기들은 이 초반부의 극적 구성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딴에는 그 험준한 폭발로 고원이 생기지 않았다면 이 소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밋밋하게 전개될 소지가 있겠습니다.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하동 평사리 마을 사람들을 통해서 님은 소설의 재미가 아니라 시대에 짓눌린 이 땅의 민초들의 애환과 도전의 과정을 보여주려는 것이겠죠. 그러면서도 전염병과 불의의 사고, 전쟁, 노쇠로 일어나는 세대의 교체를 통해 생의 허망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극랄하고 악독한 처신에 대한 분명한 응징을 담담히 보여 줍니다.

   

이 소설을 탈고하시고 노년을 보내신 원주에는 멀지 않은 시기에 가볼듯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제 조준구의 아들 병수를 비롯해 아름다운 영혼들이 살았다는 통영에 내려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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