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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들의 영도를 받으며 존즈의 메이너 농장을 접수한 동물들은 동물농장을 세운다. 그러나 혁명은 화석화되고 동물들 사이에서도 계급이 생긴다. 소비에트에 대한 풍자이면서도 우화로서의 알레고리인 이 소설의 대미는, 적의 주요 기능으로 규정했던 직립보행을 돼지들이 낑낑대며 흉내낼 뿐만 아니라 인간과 어울려 춤추며, 예전에 인근의 적대자였던 폭스우드 농장의 주인 필킹턴이 동물농장의 돼지들에게 초대되어 행하는 다음의 연설이다.

"동물농장의 주인 여러분, 당신들에게 다스려야 할 하급 동물들이 있다면, 우리 인간들에겐 다스려야 할 하층 계급들이 있습니다."(p.21) 이렇게 말하면서 필킹턴은 동물농장이 이룩한 노동의 효율화-식량분배는 줄이면서 노동시간은 연장시킨 것-을 극찬한다.

'노동자는 자본가가 되려고 한다'는 베블렌의 지적처럼, 봉기로 탈취한 생산물의 단물을 독점한 지배세력이 된 돼지들은 더이상 혁명이 필요없다고 다른 동물들을 세뇌시킨다.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권력의 본질을 권력 자체의 목적성으로 제시한 것처럼, 지배자에게 필요한 건 권력을 지키는 일, 권력의 누수를 사전에 예리하게 차단시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세계사는 권력을 지키려는 자와 이를 빼앗으려는 세력의 끊임없는 대결이 펼쳐지는 무대이다. 자연의 한계로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교체되어 가도 그들의 의상과 연기는 변함이 없다. 지배를 국가에 위임했다는 근대 계약설을 준용해, 지배를 어떤 몰인격체에게 위임함으로써 인간들 사이의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전복시킬 수 있을까? 이 우화의 앞부분에서 노장의 선동 돼지인 메이저의 선언은 이런 전복의 아이러니를 은연중 폭로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우리의 적이며 모든 동물은 우리의 동지입니다."(p.13) 메이저가 행한 이 연설의 이 마지막 대목은 다음과 같이 의역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인간의 적이거나 동지이다." 홉스 이래 인간은 인간에 대한 적이었으나 맑스 이래 노동하는 인간은 인간에게 동지이기도 했다. 동지와 적 사이에는 무관심한 이웃이 있을 것이다. 지배하려는 자는 이 중간을 가능한 배제하고 동지를 늘려가면서 적을 고립시키는 전술을 취해야 할 것이다. 동지가 적이 되고, 적이 동지가 되는 지배의 변증법에 무관심한 태도는 결국 지배의 용인이다.

마지막으로 역자가 친절하게도 풀어준 이 등장동물들의 일대일 대응관계 일부를 소개한다.
존즈 : 니콜라스 2세, 메이저 : 맑스,  나폴레옹 : 스탈린, 스노볼 : 트로츠키, 돼지들 : 볼세비키, 복서 : 프롤레타리아트,  스퀼러 : 프라우다, 개들 : 비밀경찰, 필링턴 : 영국, 프레드릭 : 독일....

다시 왕년의 대권에 침을 흘리는 러시아의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은 개떼 출신이다. 그도 나폴레옹을 꿈꾸는지 모른다.

텍스트 : 조지 오웰, 도정일 역 『동물농장』(민음사, 2009, 1판 68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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