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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자기의식과 순수히 자립적이 아닌, 타자와 관계하는 의식, 즉 사물의 형태를 띠고 존재하는 의식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것은 의식에게는 모두가 본질적이다. 그러나 일단 이 양자는 서로 부등한 상태에서 대립해 있는 가운데 서로가 통일로 복귀할 수 있는 길잡이는 아직 나타나 있지 않으므로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의식형 ㅣ 태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한쪽이 독자성을 본질로 하는 자립적인 의식이고 다른 한쪽은 생명, 즉 타자에 대한 존재를 본질로 하는 비자립적인 의식이다. 여기서 전자가 '주인'(der Herr)이고 후자가 '노예'(der Knecht)이다."

『정신현상학』, 227-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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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이 이러한 투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기가 독자적인 존재라고 하는 자기확신을 쌍방 모두가 진리로까지 고양시켜야만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자유를 확증하는 데는 오직 생명을 걸고 나서는 길만이 있을 수 있으니, 자기의식에게는 단지 주어진 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삶의 나날 속에서 덧없는 세월을 보내는 것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무상함을 되씹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도 결코 놓칠 수 없는 순수한 독자성(reines Fürsichseins)을 확보하는 것이 본질적이라는 것마저도 생명을 걸고 나서지 않고서는 확증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생명을 걸고 나서야 할 처지에 있어보지 않은 개인도 인격으로서 인정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개인은 자립적인 자기의식으로 인정받는 참다운 인정상태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때 각자는 자기의 생명을 내걸 뿐만 아니라 타인을 죽음으로 내몰아야만 한다. 타인은 추호도 자기 이상으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며 그의 본질을 자기 안에 지니지 않고 자기의 밖으로 벗어나 있으니[애매한 구절이다], 밖으로 벗어나 있는 존재는 지양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타자는 다양한 일상사에 매여 있는 그런 의식이지만, 자기의식이 스스로의 타자로서 맞서려고 하는 것은 순수한 독자존재 또는 절대적 부정성을 지닌 존재로서의 타자인 것이다.
  그러나 죽음에 의한 이러한 확증은 필경 이로부터 발현되어야 할 진리는 물론이고 심지어 자기확신마저도 전적으로 무산시켜버린다. 왜냐하면 생명이란 의식을 떠받쳐주는 자연적인 기점이며 절대적 부정성까지는 갖추지 않은 자립적인 힘으로서, 그의 자연적인 부정상태로서의 죽음은 아무런 자립성도 없는 부정성을 뜻한다는 점에서 여기서 요구되는 바와 같은 인정의 의의를 담보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죽음을 통하여 두 개의 자기의식이 서로 목숨을 걸고 상대방의 생명 ㅣ 을 업신여기는 것은 확증되지만, 이러한 확증은 싸움을 견뎌낸 당사자에게 안겨지지는 않는다...그리하여 두 개의 자기의식은 교호적인 관계 속에 양극으로 대립해 있다는 본질적인 계기는 상실한 채 다만 죽은 통일체라고나 할 중간 지점에 자리잡고 있을 뿐이니, 이렇게 죽음의 궁지로 내몰린 상태에서는 이 중간지점도 역시 대립없는 양극에 묻혀버리게 된다. 양극이 더 이상 의식적으로 대응하면서 서로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관계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물체가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은 채 거기에 내던져져 있을 뿐이다. 생사를 건 투쟁은 무의미한 부정으로서, 이는 상대를 타파하면서도 또한 그것을 보존하고 유지함으로써(aufheben) 파국을 견뎌내고 살아남은 의식의 부정과는 다른 것이다."

『정신현상학』, 226-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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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살이 있는 데 지나지 않는 온갖 생명체는 생명(Leben)의 전개과정 속에서 스스로의 자립성을 상실하고 형태상의 구별이 스러져버리는 것과 함께 생물로서의 존재성을 잃게 되지만 이와는 달리 자기의식이 대상으로 하는 것은 자기를 부정하면서도 여전히 자립성을 지키는 그러한 존재이다. 이로써 자기의식은 스스로가 유임을 자각하여 자기의 고유한 특성을 확보하는 가운데 생명계 전체의 유동성을 몸소 떠안게 되는바, 이것이 살아있는 자기의식이다..."

『정신현상학』, 219.

"자기의식은 우선 단일한 독자존재로서, 일체의 타자를 배제하는 자기동일성을 지닌다. 이때 자기의식의 본질이며 절대적 대상이 되는 것은 '자아'로서, 자기의식은 직접 이 '자아'와 어우러진 가운데 '자아'라는 독자적인 개별자로서 존재한다. 이 개별자는 타자와 맞서 있는데, 이때 타자는 부정되어야 하는 것으로 성격지어진 비본질적인 대상이다. 그러나 이 타자 역시 자기의식인 까닭에 여기에는 개인과 개인의 대립이 형성한다.
   그러나 갓 출현했을 때의 이들 개인은 서로가 흔히 마주치는 대상일 뿐이어서, 비록 독립된 형태를 띠었다고는 하지만 그의 의식은 생명이라는 존재-여기서는 생명이 대상과 같은 존재이다-속에 매몰되어 있다. 따라서 이 두 개의 의식은 서로가 직접적인 자기존재를 송두리째 말소해 자기동일적 의식을 지닌 수순한 부정적 존재로서 감당해야 할 절대적인 추상화운동을 수행하는 데에는 아직 이르지 못하고 있어서, 서로가 독자존재 또는 자기의식으로 대치하고 있지는 않다.
   결국 이들은 저마다 자기존재를 확신하고는 있으면서도 타자의 존재 ㅣ 를 확신하고 있지는 않으므로, 아직 스스로에 대한 자기확신이 진리가 되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진리일 수 있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독자존재가 자신에게 자립적인 대상으로서, 다시 말하면 대상이 순수한 자기확신으로서 나타나야만 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러한 사태가 인정 개념을 뒷받침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타자가 자기에 대해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도 타자에 대해서 있고, 또 각기 서로가 자기 자신의 행위와 마찬가지로 타자의 행위를 통해서도 저마다 독자존재일 수 있는 순수한 추상화운동(diese reine Abstraktion des Fürsichseins)을 펼쳐나가야만 한다.
   그런데 자기의식의 순수한 추상운동으로서 상호간의 행위가 나타날 때, 이들은 각기 자기의 대상적인 양식을 순수하게 부정할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하면 어떤 특정한 것에 집착하지도 않고 일반적인 개별 사안이나 심지어 생명에도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이는 이중의 행위로서, 타자의 행위이면서 동시에 자기의 행위이기도 하다. 그것이 타자의 행위인 한은 각자가 서로 타자의 죽음을 겨냥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둘째로 또한 자기의 행위도 포함되어 있으니, 타인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곧 자기의 생명을 거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개의 자기의식의 관계는 ㅣ 생사를 건 투쟁을 통해 각자마다 서로의 존재를 실증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상동, 22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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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개된 단일성

헤겔 Hegel 2010. 5. 16. 17:3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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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정신현상학』의 제 1장, 감각적 확신을 다루면서 두 가지 단어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는데, 이 단어는 '지금'과 '여기'이다. 헤겔은 이 두 단어가 매개된 단일성(vermittelte Einfachheit), 달리 말해 보편적인 것으로 드러난다고 말한다. 이 보편성은 그 자체로 보편적인 것이 아니고, 특수한 부정을 거친 보편성이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정신의 역사와 비슷한 설명의 양상을 띤다.

"'지금'을 명시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경로를 거쳐가는 하나의 운동임을 알 수 있다.
1.나는 '지금'을 가리키며 이것이 '참다운 지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렇게 명시되는 것은 이미 '지금'이었던 것이 되고 더 이상 '지금'은 아닌 것이므로 여기서 첫번째 진리는 파기된다.
2.두번째 진리로서 나는 '지금'이라는 것은 '지금'이었던 것이고 더이상 '지금'은 아닌 것이라고 주장한다.
3.그러나 '지금'이었던 것이면 지금은 있을 리가 없다. 따라서 '지금'이었던 것, 더 이상 '지금'은 아닌 것이라고 했던 두번째 진리가 파기됨으로써 부정됐던 '지금'이 다시 한 번 부정되어 결국은 '지금'은 있다고 하는 첫번째 주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된다.
  이렇게 볼 때 '지금'과 '지금'을 명시하는 것은 그 어느 쪽도 모두가 직접 거기에 있는 단일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를 안고 있는 하나의 ㅣ 운동(Bewegung)이 된다. 즉 '이것'이 정립되고 나면 이렇게 정립된 것은 곧바로 '다른 것'이 되어 '이것'은 파기된다. 그러나 '이것'이 파기되고 난 뒤에 나타나는 '다른 것'이 다시금 파기되면서 운동은 최초의 시점으로 복귀한다. 하지만 자체 내로 복귀한 최초의 '지금'은 애초에 직접 거기에 있던 '지금'과 완전히 동일하다고는 할 수 없다. 즉 그것은 자체 내로 복귀한 이상 자기의 밖으로 나가면서도 자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단일한 '지금'인 것이다. 말하자면 이는 한 시점상의 지금이면서 절대다수의 '지금'이라고 할 그런 '지금'인 것이다."

『정신현상, 제1장 감감적 확신, '이것'과 '사념' 중, p.144-145.

언어는 개별성을 보편성으로 전환시킨다

"비록 현실로 있는 사물, 외적인 감각적 대상 또는 절대적인 개별체라는 등의 표현을 쓴다고 하더라도, 말로 표시되는 것은 보편적인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das Unaussprechliche)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참이 아닌 것, 비이성적인 것 또는 단지 사념된 데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해야만 하겠다.
  뭔가에 관하여 그것은 실제로 있는 사물이고 외적인 대상이라는 것 이상의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면 이는 보편성의 극치를 나타내는 것으로 ㅣ 서, 즉 이렇게 얘기되고 있는 것은 다른 것과의 차이보다는 다른 모든 것과의 동일함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내가 "개별체로 있는 사물"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전적으로 보편적인 것으로 나타내는 것이 되는데, 즉 이때 모든 것은 개별적인 사물이다. 마찬가지로 '이것, 이 물건'이라는 말도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더 나아가 '이 종잇조각'이라고 할 경우에도 이는 예외없이 모든 종이에 해당되는 말로서 결국 말로 표현되는 것은 언제나 보편적인 관념일 뿐이다."

상동, 146-147.

단일한 사물의 상이한 성질은 의식에 귀속

"의식이 자기편에서 떠맡은 갖가지 성질이라는 측면을 놓고 공통의 매체 속에 저마다 독주하고 있는 것을 끌어내보면 그 모두가 특정한 성질이다. 이를테면 흰색은 검은색과 대립되는 한에서 흰색이 되고 매운 것은 단 것과 대립되는 한에서 매운 것이 된다는 식으로 오직 타자와의 대립 속에서만 사물은 하나의 것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것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내적인 자기응집성을 지닌 것이 된다. 따라서 이렇게 본다면 모든 것은 예외 없이 하나인 까닭에, 사물은 하나가 됨으로 해서 타자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특정한 성질을 지님으로써 타자를 배제한다고 해야만 하겠다. 그렇다면 사물은 저마다 예외 없이 특정한 성질의 완벽한 존재가 되는 까닭에, 오직 성질을 지님으로써만 타자로부터도 구별된다. 그런데 또 이렇듯 성질이 사물 그 자체의 성질 또는 사물에 안겨져 있는 성질이라고 한다면 사물은 복수의 성질을 지니는 것이 된다." 

『정신현상』, 2장 지각 ; 사물과 착각,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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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지(Wissen)의 도정

헤겔 Hegel 2010. 5. 16. 00:0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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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정도에 걸쳐 읽은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1권과 『경영학원론을 아침에 반납하고 『정신현상학』1권과 또다른 경영서를 대출했다. 토마스 만이 20대 중반의 새파란 시절에 낸 이 장편은, 『타락』이나 『트리스탄』과 같은 주옥같은 그의 단편들에 비해 사실 지루하기 짝이 없다. 사업과 신망, 명예로 번영하던 브덴브로크 가문이 이제 급격히 몰락해 갈 것을 예고하는 2권을 읽는 의무감에 충실하기 보다는, 끊기고 있는 『정신현상학』독해를 일단 번역본으로라도 흝고 지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내용도 없이 불쑥 단언만 하는 것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참다운 인식이 아닌 것에도 눈여겨볼 만한 것이 있으니 그로부터 학문으로 통하는 길도 열릴 수 있다는 식의 안이한 생각을 품는다는 것은 더더욱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왜냐하면 이런 안이한 생각을 하게 되면 존재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참다운 인식이 아닌 것에 안주하는 학문의 존재에, 즉 학문의 그릇된 양식과 그의 외양에 가치가 두어짐으로써 학문이 진정으로 갖추어야 할 참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여기에 논술된 것은 순차적으로 현상화하는 지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이 논술 자체도 제대로의 형태를 갖추고 움직여나가는 자유로운 학문의 체재를 지닌 것은 아니고, 그 나름의 입장에서 자연적인 인식이 참다운 지를 추구해나가는 도정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마음[임석진은 Seele를 "혼"이라고 번역했는데, 다소 의아스럽다. 영혼이란 말이 더 낫겠지만, 나는 이하 "혼"이라는 역어를 "마음"으로 고쳤다]이 그의 본성에 따라서 미리 지정된 정류장과도 같은 갖가지 마음의 형태를 두루 거치고 난 뒤에 마침내 정신으로 순화되어가는 그런 도정을 그려낸 것이다. 이렇듯 자기 자신이 편력해온 경험의 도정을 완벽하게 마무리지을 때, 마음은 본래 그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가를 깨우치게 된다."

헤겔, 『정신현상학』1권, 임석진 역(한길사, 2007 1판 4쇄), 서론,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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