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개된 단일성

헤겔 Hegel 2010. 5. 16. 17:3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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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정신현상학』의 제 1장, 감각적 확신을 다루면서 두 가지 단어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는데, 이 단어는 '지금'과 '여기'이다. 헤겔은 이 두 단어가 매개된 단일성(vermittelte Einfachheit), 달리 말해 보편적인 것으로 드러난다고 말한다. 이 보편성은 그 자체로 보편적인 것이 아니고, 특수한 부정을 거친 보편성이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정신의 역사와 비슷한 설명의 양상을 띤다.

"'지금'을 명시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경로를 거쳐가는 하나의 운동임을 알 수 있다.
1.나는 '지금'을 가리키며 이것이 '참다운 지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렇게 명시되는 것은 이미 '지금'이었던 것이 되고 더 이상 '지금'은 아닌 것이므로 여기서 첫번째 진리는 파기된다.
2.두번째 진리로서 나는 '지금'이라는 것은 '지금'이었던 것이고 더이상 '지금'은 아닌 것이라고 주장한다.
3.그러나 '지금'이었던 것이면 지금은 있을 리가 없다. 따라서 '지금'이었던 것, 더 이상 '지금'은 아닌 것이라고 했던 두번째 진리가 파기됨으로써 부정됐던 '지금'이 다시 한 번 부정되어 결국은 '지금'은 있다고 하는 첫번째 주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된다.
  이렇게 볼 때 '지금'과 '지금'을 명시하는 것은 그 어느 쪽도 모두가 직접 거기에 있는 단일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를 안고 있는 하나의 ㅣ 운동(Bewegung)이 된다. 즉 '이것'이 정립되고 나면 이렇게 정립된 것은 곧바로 '다른 것'이 되어 '이것'은 파기된다. 그러나 '이것'이 파기되고 난 뒤에 나타나는 '다른 것'이 다시금 파기되면서 운동은 최초의 시점으로 복귀한다. 하지만 자체 내로 복귀한 최초의 '지금'은 애초에 직접 거기에 있던 '지금'과 완전히 동일하다고는 할 수 없다. 즉 그것은 자체 내로 복귀한 이상 자기의 밖으로 나가면서도 자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단일한 '지금'인 것이다. 말하자면 이는 한 시점상의 지금이면서 절대다수의 '지금'이라고 할 그런 '지금'인 것이다."

『정신현상, 제1장 감감적 확신, '이것'과 '사념' 중, p.144-145.

언어는 개별성을 보편성으로 전환시킨다

"비록 현실로 있는 사물, 외적인 감각적 대상 또는 절대적인 개별체라는 등의 표현을 쓴다고 하더라도, 말로 표시되는 것은 보편적인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das Unaussprechliche)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참이 아닌 것, 비이성적인 것 또는 단지 사념된 데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해야만 하겠다.
  뭔가에 관하여 그것은 실제로 있는 사물이고 외적인 대상이라는 것 이상의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면 이는 보편성의 극치를 나타내는 것으로 ㅣ 서, 즉 이렇게 얘기되고 있는 것은 다른 것과의 차이보다는 다른 모든 것과의 동일함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내가 "개별체로 있는 사물"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전적으로 보편적인 것으로 나타내는 것이 되는데, 즉 이때 모든 것은 개별적인 사물이다. 마찬가지로 '이것, 이 물건'이라는 말도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더 나아가 '이 종잇조각'이라고 할 경우에도 이는 예외없이 모든 종이에 해당되는 말로서 결국 말로 표현되는 것은 언제나 보편적인 관념일 뿐이다."

상동, 146-147.

단일한 사물의 상이한 성질은 의식에 귀속

"의식이 자기편에서 떠맡은 갖가지 성질이라는 측면을 놓고 공통의 매체 속에 저마다 독주하고 있는 것을 끌어내보면 그 모두가 특정한 성질이다. 이를테면 흰색은 검은색과 대립되는 한에서 흰색이 되고 매운 것은 단 것과 대립되는 한에서 매운 것이 된다는 식으로 오직 타자와의 대립 속에서만 사물은 하나의 것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것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내적인 자기응집성을 지닌 것이 된다. 따라서 이렇게 본다면 모든 것은 예외 없이 하나인 까닭에, 사물은 하나가 됨으로 해서 타자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특정한 성질을 지님으로써 타자를 배제한다고 해야만 하겠다. 그렇다면 사물은 저마다 예외 없이 특정한 성질의 완벽한 존재가 되는 까닭에, 오직 성질을 지님으로써만 타자로부터도 구별된다. 그런데 또 이렇듯 성질이 사물 그 자체의 성질 또는 사물에 안겨져 있는 성질이라고 한다면 사물은 복수의 성질을 지니는 것이 된다." 

『정신현상』, 2장 지각 ; 사물과 착각,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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