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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Behauptung'에 해당되는 글 29건

  1. 2007.08.31 이 땅의 기독교는 정말 제 정신인가?
  2. 2007.08.21 학벌의 야만 1
  3. 2007.08.13 군대가 인간의 자율성을 파괴하는 이유
  4. 2007.05.18 심리적 군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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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선교금지라는 정부결정에 대해 대책회의를 주도한 세계선교협의회 강승삼 사무총장의 주장.  “지금까지 이슬람권 선교 활동으로 인해 한 번도 위기 상황이 발생한 적이 없다. 선교사들은 납치당하면 자기가 책임을 지고 죽게 되면 죽는다는 서명을 하고 나가기 때문에 국가에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교계에서는 정부도움이 필요없는 위기관리팀을 구성하겠다고 하는데, 이런 서약을 받아 놓고 선교사 개인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기독교는 미친게 아닌가? 순진무구한 인질들이 어렵게 풀려난  상황에서 이런 발언을 내놓는 것을 보면, 아직 교계 지도자란 인간들은 정신을 못차린 것이다. 그렇게 위험지역에 가고 싶으면, 전두환과 함께 너희들이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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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의 야만

주장 Behauptung 2007. 8. 21. 10:16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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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學閥)이란 말에서 ‘閥’은 문벌이나 가족, 공훈, 공로를 의미한다. 따라서 학벌의 한자 뜻을 그대로 따라 정의해 본다면 학력으로 이룩한 공적이다. 그런데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학벌의 의미는 좀더 현실적이다. 1.학문을 닦아서 얻게 된 사회적 지위나 신분, 또는 출신 학교의 사회적 지위나 등급. 2.출신 학교나 학파에 따라 이루어지는 파벌을 의미. 뭔가 엉성한 정의인데, 좀더 자세히 살펴 보자. 1번에서 ‘학문을 닦아서 얻게된 사회적 지위나 신분’이란 말은, 정확하게는 학문을 닦아서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지위나 신분이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과연 학문을 닦아서 사회적 지위나 특정 신분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 과연 학문을 닦는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뿐더러, 학문을 닦는다고 어떤 사회적 지위나 신분을 획득한다는 것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학위를 따서 좋은 직장을 잡아 연봉을 올리거나 교수자리를 잡는다는 식의 사회적 지위나 신분을 얻는다고 하면 더 적절할 것이다. 둘째로, ‘출신 학교의 사회적 지위나 등급’이란 말은 아주 훌륭한 현실의 반영처럼 보이지만 이상한 말이다. 출신학교가 서열화되어 있다는 것인데, 매년 중앙일보에서 부문별 대학평가를 하는 사업에 적중하는 정의다. 그렇다면 중앙일보는 대학의 서열화로 학벌을 조장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2번의 정의는 더욱 현실적이다. ‘출신학교나 학파에 따라 이루어지는 파벌’이란 괴상한 정의는 괴상한 현실의 반영이다. 그런데 학파에 따라 의견의 대립이 분명해, 파벌을 형성할 정도라고 한다면, 이것이 꼭 바람직하지 않게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현실에서 이런 ‘학파’에 따른 파벌보다는 ‘출신학교’에 따른 파벌이 월등히 강하므로 이 정의도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 정의의 애매함과 불명료함에도 불구하고 학벌이란 말에는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학문을 배우고 가르치며 교류하는 일이 학벌을 형성한다는 것은 분명 학문의 목적에 어긋나는 현상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의 특정시기에 측정된 학습성취도로 잡은 학위가 신분의 상승과 지위의 독점을 향한 대로를 보장하는 방법이라면, 대학은 더 이상 학문을 소통하고 축적하며 발산하는 기관이 아니라 특정 지위나 신분 보장을 위한 사관학교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에서 대학들이, 학위가 없이도 성공해서 학벌사회를 비웃을 수도 있지만, 대개는 이런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한 명망가들에게 명예박사학위라도 뿌리는게 학교의 재정과 명예를 튼실히 해주는 방안일 것이고, 이것은 대학이 학문이 아닌 판촉으로 사회에 나름대로 기여하는 방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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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시절, 연병장 사열대 옆에 키작은 돌덩이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軍命如山"."군대의 명령은 산과 같다"는 이 글귀는 언뜻보면 멋지게 보이나 무서운 말이다. 군대에서의 명령은 산이 내려 앉은 것과 같아서 한번 발동되면 거부할 수 없는, 움직일 수 없는 산과 같다는 말이다. 군대에서 명령을 그토록 강조하고, 아니 명령 자체가 군대의 본질인 점은 인간사회의 가장 사악한 본능을 충족시키려는 목적, 즉 위협과 승전 때문이다. 이 목적은 물론 이보다 더 큰 목적, 즉 그 사회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겠지만, 이런 목적론의 계열을 추적해 들어가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로 저 무서운 말이 통용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전시적 상황뿐이다. 한순간에 생존이 뒤바뀔 수 있는 비정상적인 폭력적 상황에서 군대라는 체계는 매우 효율적으로 작동되는 전쟁기계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율성이니 도덕이니 하는 말들은 공허한 단어들일 뿐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 즉 전시와, 전시에 버금가는 작전상황에서 명령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군대는 그야말로 거대한 블래호크의 다운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우리의 일상과 너무도 거리가 멀지만, 종종 우리는 이러한 군대적 문화가 암암리에 통용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왜? 당장 세계 저편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엄연히 한국군이 파병되어 가 있듯, 세계에는 국지적 전쟁의 화염이 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다른 대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팽배해질 정도로, 경제대국의 군비가 증강하고 있는 상황은 분명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이런 세계정세를 벗어나 이 사회의 현실을 보더라도, 인간의 생명활동이 생존경쟁 내지 생존투쟁이라는 이름의 격전장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회가 그런 전시적 분위기의 면모를 띤다면, 분명 군대에서 통용되는 명령체제가 그대로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는 위험이 산재해 있다. 연세의료원의 파업, 이랜드 사건 등은 그러한 위험사회의 흐름에 제동을 거는 지엽적 사례의 일면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이런 사회 현실의 장력이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 순전히 가상적인 상태에서 왜 군대가 인간의 자율성을 파괴할 수 있는지 논해 보겠다. 그리고 인간이 과연 자율적일 수 있을지, 그리고 그럴만한 자격과 능력을 갖춘 존재자인지는 확신하기 보다는 일단, 그럴 수 있다고 가정해 본다.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전시에서 대량학살을 감행한 전범이나 잔혹한 고문으로 악명을 떨친 전직 경찰, 혹은 대형비리에 연루된 회사간부가 법정의 추궁에 냉랭히 대답하는 이런 답변.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이 답변에는 명령을 따르는 사람은 오직 명령에 충실했을 뿐이므로, 오히려 상을 줘야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울분이 숨겨져 있다. 그러나 이런 울분은 정당한 것인가? 이 울분은 한 인간으로서 그의 자율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 뿐더라, 이런 자율성을 행사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비분이 되어야 하지만, 여전히 그는 타율적으로 자신에게 명령한 상사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것에 불과하다. 즉 자신은 명령을 따랐을 뿐인데, 처벌을 하려면 명령을 한 주체에게서 해야지 왜 자신을 닥달하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 볼 수 있다. "당신은 그런 명령이 옳다고 보았습니까? 그래서 당신은 그 명령을 수행한 건가요?" 이에 대해서 여전히 자신은 그저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대답한다면, 그는 더이상 인간이 아니다. 즉 자신의 생각을 바탕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정신을 가진 존재자로 인간을 정의한다면, 그는 이런 정의에서 전혀 부합할 수 없는 그런 존재자, 즉 인간이 아닌 하나의 사물에 불과하다. 그래서 기계처럼 일할 수 있다. 군대가 인간에게 끼치는 해악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인간을 생각없는 기계로 양산하는 군대, 군대적 문화의 타파는 인간이 자신의 진정한 존재를 찾아 가는 하나의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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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군왕주의

주장 Behauptung 2007. 5. 18. 09:1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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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의 왕릉에서 문화재청장이 지역 유지들과 부탄가스로 고기를 구워 먹은 일이 논란이다. 어제 MBC 9시 뉴스는 이런 행태를 몇년전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창경궁의 저녁 만찬 파티와 마찬가지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해석을 가한다. 종묘에 어린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못들어가게 하는 관행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일들은 분명 형평성에 어긋난다. 왕릉이나 왕궁, 종묘는 어떠한 곳이길래 거기서 고기를 구워 먹어서는 안되며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들어가서는 안되나? 나는 이런 금지의 원칙이 고유한 문화유산에 대한 보호라는 측면에서 제기된다면 마땅히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괴테의 생가 앞마당에서 관람객들이 프랑크소세지를 구워 먹는 일을 상상하기 힘든 맥락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논란에서 비판의 준거로 작용하는 일말의 사고에는 아직도 조선왕조의 유산을 성역화시키려는 심리적 군왕주의가 자리를 잡고 있지 않을까? 2차세계대전의 A급 전범들이 봉양된 일본의 신사 참배를 미디어에서 즐겨 비난하는 이면에는 우리에게도 성역화시킬 무엇이 필요하다는 절규에 가깝다.

고궁이나 왕릉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일은 문화유산에 대한 모독이지 결코 성역화된 왕조의 잔재를 침범하는 일은 아니다. 심리적 군왕주의야말로 공화주의에 대한 심리적 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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