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영화 Film'에 해당되는 글 34건

  1. 2009.05.27 카게무샤와 추모의 열풍
  2. 2009.05.19 파니 핑크와 아도르노
  3. 2008.09.29 EIDF : 시골순회재판
  4. 2007.05.16 무간도1 들여다 보기

카게무샤와 추모의 열풍

영화 Film 2009. 5. 27. 22:35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아쉽게도 후반부에 잠깐 졸면서 보다가 이 영화의 가장 스펙타클한 장면이라고 하는 마지막 전투신(다케다 기마대가 오다 노부나가의 철포를 향해 무모하게 돌진하는 나가시노 전투)을 못봤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는 EBS에서 두번째로 본 건데 실험적인 요소가 가미된 영화임을 알 수 있다. 첫장면 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타르코스키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긴 정지화면의 프레임에 갇혀 세 배우들이 마치 세 봉우리의 산처럼 우직하게 앉아 있으면서 영화의 서막이라고 할 만한 대사를 펼친다. 16세기 말 일본 전국시대의 삼강 중 통일일본의 유력한 세력으로 꼽히던 다케다 신겐은 조심스럽게 자신을 대신할 '카게무샤'(그림자무사 : 적을 교란시키기 위해 세우는 영주의 짝퉁) 후보를 면접한다. 영지의 가택 본청의 연단을 중심으로 낮고 굵은 톤의 음성들이 교차하다가 천박한 목소리가 솟구쳐 올라온다. 카게무샤로 낙점된 이 인물은 좀도둑질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신겐의 눈에 띄어 본청에 불려져 온 것이다. 좀도둑질을 하는 자신에 비해 무참히 인명을 살상해온 신겐이 더 악질이 아니냐고 대들자 신겐은 그의 대범함을 치켜 세우며 그를 카게무샤로 훈련시키도록 명령한다. 영화는 한낱 비천한 신분의 사람이 어떻게 거대한 권력자에 동화되는지 보여준다. 그림자는 단지 모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실체에 몸을 바쳐 충성을 해야 한다는 점. 죽은 신겐을 흉내내는 장면에서 비장한 음악이 흘러 나온다. 논란의 지도자가 죽자 그를 애도하는 물결이 파도치고 있다. 그가 살아 있다면 나오지 않았을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한 인간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카게무샤를 세워야 가문을 유지할 수 있는 세력에 비해 이 무슨 현상인가. 
반응형

파니 핑크와 아도르노

영화 Film 2009. 5. 19. 09:16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영화  <파니 핑크>는 아마도 90년대 중반에 본 걸로 기억하는데, EBS에서 다시 보니 느낌이 새롭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외양은 예전 청계천의 쓰러질듯한 아파트처럼 생긴 아파트의 옥상에서 무당으로 나오는 세입자가 추는 춤이다. 가장 합리적인 체제를 갖춘 곳에서 원시적인 무희가 전혀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듯한 느낌을 일으킨다. 왜 이런 느낌이 들까?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자연은 이성이다'라는 결론적 명제를 <계몽의 변증법>에서 내렸다. 이때의 이성은 자연의 폭력을 이성이 전유한다는 의미에서 자연이다. 이성은 맹목적인 자연의 질서를 비켜가는 계략으로 자연에서 벗어났지만, 자신이 벗어나고자 했던 자연을 이성은 다시 재현시킨다. 잠자리의 모양과 비행방식을 모사해 전투헬기를 만드는 것은 이런 경우다. 이성은 모사를 통해 탁월하게 자연을 모방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성은 그 자체가 하나의 인간지배를 위한 도구로 전락함으로써 타락한 자연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들은 이성(Vernunft)을 협의의 이성, 곧 오성(Verstand)에 축소시켰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감성에서 받아들인 현상의 다양을 범주화시키는 것은 오성의 몫이다. 이성의 기능은, 이러한 범주화를 위한 선험적 법칙을 만드는 것인데, 이 법칙은 결코 자연 혹은 경험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은 그 자체로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고, 자연의 법칙이라는 것도 이성이 만든 법칙을 자연에 적용시킨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성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기능은 바로 통제적 사용이다. 이성은 법칙을 창안하지만, 이 법칙은 무한한 자연 앞에서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법칙은 언제나 그 변경이 개방되어 있다.

자연에 대해서 인간은 세가지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그것은 과학, 미학, 윤리의 경로다. 주술은 미학에 가깝다. 물론 이 세 경로는 혼용이 될 수 있지만 혼동이 되서는 곤란하다. 애인이 없는 사람에게 '당신의 유전자가 잘못되어 있다'는 판단은, 아무리 의학적 관찰에 기반했더라도 잘못이다. 그런 면에서 독일은 사물을 대하듯 인간을 대하는 풍조가 있는듯 하다. 이성의 통제적 사용보다는 이성의 통압적 사용이 사회를 질식시키는 듯한 질서를 부여한다. 이런 곳에서 주술의 힘은 바로 인간의 시원적 본성을 선명하게 부곽시킨다.   

반응형

EIDF : 시골순회재판

영화 Film 2008. 9. 29. 13:33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소문을 듣고 어제 제대로 한편을 봤다. 저녁 9시 뉴스가 끝나는 시점에 매일 EBS에서 다큐가 방영된다는 점을 알았지만 볼 만한 여력이 없었는데 어제 암스테르담에서 무슬림 사원 축조에 대해 다룬 다큐를 잠깐 보다가, 중국에서 촬영된 순회재판편을 봤다. 특이하고 놀라운 점은 이들의 판결이 아니라, 교통 사정이 열악해 나귀에 국가 휘장과 플랭카드를 메게 하고 세 명의 재판관과 1명의 서기관이 70여 곳에 흩어진 시골 구석구석을 말그대로 순회재판을 위해 이동하는 과정이다. 중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한국같은 상황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다. 이미 한국의 시골에서는 의사도 없어서 도회지로 나가야 치료를 받을 수 있을 정도인데, 재판이야 오죽하겠는가. 재판관의 태도도 마치 동네 사람의 싸움을 중재하는 정도의 역할로만 나오고, 가급적 판결은 피하고 합의안을 유도한다. 이런 역할을 보증하는 것은 그들이 힘겹게 옮기고 다니는 국가 휘장과 플랭카드이며, 이들의 이동과정이다. 한창 중국산 먹거리로 문제로 중국의 국가 위신이 추락하는데, 시골순회재판은 인민에게 밀착해 있는 중국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 준다. 나쁘게 말하면 국가가 인민의 생활 곳곳에 침투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일상에서 진행되는 사법 서비스라는 측면에서 국가의 역할이 긍정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반응형

무간도1 들여다 보기

영화 Film 2007. 5. 16. 17:43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홍콩에서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놀랍다. 중국 대륙영화를 제외하곤 홍콩 영화란 주윤발 시대의 홍콩 느와르나 액션 코메디가 전부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시나리오도 탄탄하고 재미도 있으면서 무게감있는 갱영화일 줄은 몰랐다. 최근 개봉되는 마틴 스콜세지의 '디파티드'가 '무간도'의 리메이크란 점이 이 영화의 무게를 반증한다.

무간도는 열반경에 나오는 18번째 지옥을 말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한 스파이의 내면 상태를 암시한다.  

유덕화, 양조위의 주연도 돋보이지만 황추생(황국장), 증지위(한침)의 조연도 볼만하다.

영화 종반부에서 다른 삶(선한  삶)을 살고 싶다는 경찰 간부직 스파이 유건명(유덕화)에게, 경찰신분을 숨긴채 갱스파이로 젊음을 소진한 진영인(양조위)이 코웃음친다. 그러자 유건명은 진영인에게 자신을 죽일 거냐고 묻자 진영인은 다시 코웃음치며 자신은 경찰이라고 한다. 이때 유건명의 이 한마디가 카메라 원격조정으로 화면을 급변시키면서 그대로 진영인이 유건명의 이마에 총구를 들이대게 한다.

                                                 "그걸 누가 아는데?"

경찰 후보생 시절에 갱스파이 임무를 위해 특채로 뽑힌 진영인이 경찰학교에서 추방되는 형식으로 나갈 때 그의 신분을 아는 사람은 단 두 사람, 면접관과 황국장 뿐이었다. 이 영화는 초반부에 이 면접관의 장례행렬을 보여 주면서 본래 경찰 신분인 진영인의 정체성을 위태롭게 지탱하던 한 축이 붕괴되는 것을 보여준다. 한침을 올가미를 만들어 합법적으로 구속하기 위해 진영인과 접선을 했던 황국장이 갱들에게 무참하게 죽임을 당해 남았던 한 축 마져 무너진 후,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진영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유건명 한사람으로 전도된다. 즉 진영인은 자신의 정체가 누구인지 알고 이 신분을 증명할 데이타를 이미 삭제해 버린 사람을 놓고 총을 겨누는 것이다.  

진영인으로서는 유건명을 죽여서는 안된다. 죽이면 자신의 신분을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살인범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유건명은? 경찰 고위직으로 승승장구하는 자신의 입신을 위해 그는 자신 외에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정리되는 것을 지켜본다. 영화상으로 유건명이 진영인과 진정으로 '합작'을 바란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자신을 살려준 경찰 내부의 또다른 부하 스파이를 여지없이 살해하는 것을 보면, 그가 믿는 것은 그 자신 밖에 없다고 보는 편이 유력하다. 단지 진공 엠프로 음악듣기를 좋아하는 취미의 공통성이 '합작'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이제 자신 밖에 없게 된 상황에서 법칙과 규율이 없는 곳으로 '나도 나가고 싶다'라는 유건명의 말은 승자의 반성일 뿐이다. 그래서 도덕은 강자를 위한 것인가?

*영화 시작부에 대여섯명의 청년들이 한침의 설교를 듣고 경찰학교에 입사하는 것을 보면, 경찰 내부에 유건명의 정체를 아는 스파이가 또 있을 수 있고, 진영인이 죽은지 6개월 후 그의 신분이 회복되는 점은 이런 이야기 구도를 희석시킬 소지가 있으나, 정체성이라는 주제의 골격을 드러내는데 의의가 있을 뿐이다.

2006. 11.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