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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인근 에슈본에서 독일에선 처음으로 면접이란걸 보고난 후 라이프치히로 가기 전 남은 시간에 역 주변을 서성거리다 한 대혐서점에 들어갔다. 잡다한 책들만 있을줄 알았는데 학문별 코너에 가보니 의의로 전문적인 서적도 눈에 띄었다. 여기서 문고판 형태로 된 루만의 <사회의 사회>를 발견하고 즉시 구매했다. 한국에서 내가 유일하게 가지고 갔던 책이 바로 이 책의 번역본이었고, 지금까지도 나의 일상적 독일어 학습은 루만의 이 유명한 원전을 읽는 일이다. 라이프치히로 가는 저렴한 열차편에서 나의 소지품은 에슈본의 한인 상가에서 산 소주와 이 책.

Nachdem ich zum ersten Mal in Deutschland im Eschborn bei Frankfurt Interview hatte, bevor ging ich nach Leipzig und ging den Rest der Zeit um den Bahnhof herum, ich nach einer Großer Buchladen ging. Ich dachte, es gäbe nur wenige verschiedene Bücher, aber als ich in die akademische Abteilung ging, fand ich ein professionelles Buch von Bedeutung. Hier fand ich Luhmanns <Die Gesellschaft der Gesellschaft> in Form einer Taschenbuchausgabe und kaufte sie sofort. Das einzige Buch, das ich in Korea mitgenommen habe, war die Übersetzung dieses Buches, und bis heute lerne ich täglich Deutsch, um diesen berühmten Originaltext aus Luhmann zu lesen. In meinem billigen Zug nach Leipzig sind meine Sachen Soju das ich im koreanische Einkaufsviertel in Eschborn gekauft habe, und dieses B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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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치히 서점 Eine Buchhandlung in Leipzig

여행 Reise 2020. 7. 26. 22:25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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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시내 중심에 있는 라이프치히 대학 도서관과 집을 오가는 생활을 할 때, 시내의 상가에 있는 복층구조의 서점에 몇번 들른 적이 있다. 그러다가 한번은 귀국전 한국에서 어학공부를 위해 독어본 성경을 이 서점에서 사려고 했다. 하지만 한국의 일반서점에서도 그 흔한(?) 책이 보이지 않아 점원에게 물었더니 성경은 없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조금 충격을 받았다. 성경은 판매되는 것이 아닌지 혹은 서점주의 무신론이 작용한 것인지 모르나 일단 고개를 끄덕 거리고 역시 자주 들르던 헌책방을 가보니 여기엔 주로 오래된 성경책, 거의 몇십년에서 몇백년은 될 듯한 골동품들이었다. 종교혁명의 선구지에서 최초로 루터에 의해 민족어 번역 성경책을 내놓은 저력은 이제 먼지 처럼 쌓여 가는지도 모르나 어느 독일가요는 이렇게 노래한다. '우리는 먼지와 환상으로 이루어 졌다'.

Als ich im vergangenen Herbst in der Innenstadt der Leipziger Universitätsbibliothek und im Haus warderte, habe ich in einer zweistöckigen Buchhandlung in der Innenstadt Halt gegangen. Dann habe ich einmal vor meiner Rückkehr nach Südkorea versucht, eine Deutsche Bibel zu kaufen, um in Südkorea Deutsche zu lernen. In einer allgemeinen Buchhandlung in Südkorea wurde das gemeinsame (?) Buch jedoch dort nicht gesehen, und ich fragte den Angestellten, er sagt dass es keine Bibel gebe. Ich war ein wenig schockiert, das zu hören. Ich weiß nicht, ob die Bibel nicht zum Verkauf steht oder ob der Atheismus im Buchladen funktioniert hat, aber als ich nickte und in einen Antiquariat ging, waren es meistens alte Bibelbücher, Antiquitäten, die fast Jahrzehnte bis Hunderte von Jahren alt zu sein schienen. An der Spitze der Religiöse Revolutionen könnte die erste Veröffentlichung einer Bibelübersetzung der Landessprache durch Luther wie Staub aufgeschüttet werden, aber ein deutsches Lied singt so "Wir bestehen aus Staub und Fanta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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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2차)

여행 Reise 2019. 10. 3. 15:20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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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일이 있어 프랑크푸르트에 갔다가 일박을 하는 김에 시내를 좀 돌아다녔다. 두 달 전 프랑크푸르트에 왔을 때 마인츠 강 일대만 가봤을 뿐 푸랑크프르트 대학은 못가봐서 이번에 꼭 가보고자 했다. 중앙역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걷다가 숙소에서 받은 일일 교통권으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더 갔다. 대학에 들어가는 남문 안내판에 아도르느 기념공간 표시가 바로 나와 있었다. Denkmal 이라 해서 상당히 큰 구조물로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3평 정도 되는 공간에 아도르노가 쓰던 의자와 책상, 그리고 이 위에 놓인 노트, 저서(부정의 변증법?), 메트로놈을 에워싼 유리박스로 된 소박한 공간이었는데,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마치 아도르노가 천상에서 내려와 앉아 있는 듯한 묘한 기분도 들었다.

대학을 나와 숙소로 걸어가면서 한 작은 공원을 지났는데, 공원화 사업중 우연히 발견된 작은 망루와 범상치 않은 원형 동상이 인상적인 이곳은 로스차일드 가문이 19세기 처음으로 독일에 대저택을 마련한 부지였다. 현대적인 고층 빌딩이 마치 서울같은 기분을 들게하는 거리를 지나 중앙역 근처 숙소로 가는 길 모퉁이에 있는 펍에 들어갔다.

바에는 주로 나이든 남성들이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주변 테이블에는 일행과 함께 온 손님들이 있었다. 맥주를 시키고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일단 서서 기다리는데 바에 앉아 있던 한 50대  남성이 옆에 앉으라고 자리를 정리해 줬다. 시가를 피우며 쿠바 음악에 맞춰 흥얼거리는 이 남성과 음악에 관해 영어로 몇마디 얘기하다가 이런 저런 대화를 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52년째 살고 있으며 디자이너로 일하는, 율 부르너를 닮은 이 분과 헤어질 때 따로 연락처를 교환하지 않았지만 이 술집에 또 오게 된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다음날 일정을 마치고 돌아갈 때 전날의 ICE 고속철이 아닌, 일종의 완행열차인 IC를 타고 가는데 열차 시간이 지연되고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불편을 보니 승객이 텅텅 빌 만 하다. 얼마전 기사에서 잠깐 봤는데, DB에서 정부에 상당한 재정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기억난다. 거의 다 도착할 때 쯤 독일 온지 며칠 안된 한 베트남 대학생이 마치 나도 독일에 온지 얼만 안된 사람으로 보였는지 친절하게 나에게 뭔가 설명해 주려고 애썼다. 늦은 밤, 플랫폼에 내려 걸어가면서 이 친구에게 숙소는 있는지 물어 봤더니 이곳에 친구가 있다고 한다. 해맑은 희망이 퐁퐁 솟아나는 발걸음으로 캐리어를 끌고 간다. 역시 연락처를 교환하지 않았지만 같은 도시에 계속 있다면 마주칠 날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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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만에 두번째 출국의 귀착지는 마찬가지로 일본이었다. 그때는 큐슈였고 이번엔 관서지방. 풍경은 그때와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지만, 이번엔 주로 대중교통으로 다니다 보니 일본의 또다른 일상을 접할 수 있었다. 연수와 관광이 뒤섞인 이번 여행에서 총무를 맡아 모든 계산을 현금으로 하다보니 호텔 데스크의 안내원과 음식점/술집/계산원과 기초적인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 초급의 일본어 실력으로 글자는 볼 수 있지만 막상 회화는 전혀 되지 않아 불안전한 영어를 본능적으로 쓸 수 밖에 없었다.  동행들과 전철과 택시를 이용해 계속 움직이고 먹고 마시고 일일히 계산하고 하다보니 사실 시간성의 여유는 11년 전보다 더 없었다. 가뜩이나 담배 피울 외부 공간이 드문데, 같이 담배 피울 사람도 없었다. 술집이나 호텔의 내부에는 흡연실이 따로 있으나 외부에서 담배 피울 공간은 오아시스처럼 희귀하고 보행중 흡연하는 사람을 보기는 힘들다. 전철 창밖에서 비슷한 모양으로 빼곡히 늘어선 저층 주택가와 저층의 아파트에서 질서 정연하게 살아가는 일본인들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로 스마트 폰을 들여다 보는 전철 승객들의 풍경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객실에서 1명 정도는 책을 본다. 마찬가지로 젊은 층들은 아이폰을 많이 쓰고, 특히 라인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특이하다. 일본판 카카오톡이 있는지 몰랐는데, 카카오를 쓰는 승객도 봤다. 정밀 제조업의 강국에서 한국산 메신저 프로그램이 일본 저변을 파고 들어갔다는 것도 놀라운 현상이다.

교토를 좀더 오래 보고 싶었는데, 오후 한나절 이 도시의 대표적 절과 신사만 보고 오사카로 돌아가고만 것이 아쉽다. 대도시이면서 육중한 전통미와 낮은 일상사가 혼재된 느낌을 받았다. 현대적 도시같은 고베의 경우 현청이 고베시를 내려다 보고 있고, 히메지는 무장한 봉건 영주가 망루같은 성에서 도시를 관할했다면, 교토는 오래되고 우람한 절이 이 오래된 도시를 굽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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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발길

여행 Reise 2018. 7. 5. 03:50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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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금토는 다소 바쁜 일정이었지만 지나온 길을 보면 여행이라 생각한다. 연수로 완주 봉담을 다녀왔는데, 뒤늦게 알고보니 숙박한 곳이 신라와 백제가 오랜 접전을 벌였던 격전지인 대아성 근방의 운장산 산골이었다. 전북의 너른 평지에서 급격하게 오르고 깊이 들어가는 산세가 예사롭지 않다 했는데 역시 역사의 기록은 허투르게 볼게 아니다. 돌아온 토요일 오후에는 먹골과 동두천을 오고 가야 했다.  서울을 사이에 단절로 두고 완주에서 동두천, 나름 긴 여정이었지만 이동하는 길 중간에서 제대로 보려면 발길을 오래 멈춰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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