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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Reise'에 해당되는 글 44건

  1. 2009.11.02 홍천강 : 가을 한 때
  2. 2009.10.28 남한산성에 다녀오다
  3. 2009.10.18 예산에 다녀오다
  4. 2009.08.17 규슈의 생협 기행(2007.11.12~16 )

홍천강 : 가을 한 때

여행 Reise 2009. 11. 2. 08:5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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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가족과 홍천에 다녀왔는데, 비온 뒤 휑한 농토에 남은 작물은 배추 밖에 없었다. 벼수확이 끝나고 이제 본격적인 농한기에 들어선 시기인지 농사꾼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로 간 것일까? 돌아오는 길에 팔봉산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은 후 홍천강을 둘러 보았다. 너른 개울처럼 물이 줄어든 맑은 강엔 송사리 떼가 빠르게 헤험치고 있었다. 아이는 아빠를 따라 강에 물장구를 치는 돌을 던지다 못해 돌을 집어 집까지 가져가 욕조를 개울로 만들었다.  

명문가로 통한다는 작가들이 글 잘쓰는 비법으로 한결같이 독서를 든다고 뉴스는 말한다. 여전희 새로울게 없는 얘기를 반복하는게 뉴스다. 잡스러운 도서로 가득찬 서고가 작가의 보물창고일 수 밖에 없겠지만, 남의 얘기를 개조해 빌려 쓰는 것이 작가적 글쓰기의 본령같지는 않다. 독서는 말할 필요없는 기본이다. 창조력이 결여될 수록 독서는 왕성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독서의 시간을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100만 부수의 작가에게는 부러운 점이 있다.

늦은 밤에 '초록 물고기'(1997)를 봤다. 데뷔작 같지가 않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보이지만, 그래도 현란한 배우들의 덕을 어느 정도 본 것 같다. 한석규, 심혜진, 문성근, 명계남, 정진영, 오지혜, 송강호.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보다도 현란한 이러한 배우들이 언제 다시 모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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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에 다녀오다

여행 Reise 2009. 10. 28. 10:2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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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랜만에 강동 쪽으로 공급지원을 나갔다가, 일찍 일을 마치고 동문과 초저녁에 산성역에서 만났다. 근방의 술집에 들어갈까 하다가,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는 버스가 있다고 하길래 산에 가자고 했다(산성역 1번 출구 9번 버스). 아마도 서울 근교에 500미터가 넘는 산길로 올라가는 버스노선은 이곳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빙빙 돌며 올라가는게 마치 옛날 한계령 길 같다. 버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가파른 벼랑과 나무가지 넘어  저 멀리 성남과 송파 일대의 야경이 너무도 눈부시게 비춰지고 있었다. 북문 쪽 인근의 너른 평지에 있는 오래된 손두부집에서 동동주를 마시고 북문까지 올라가 봤다. 성문이 열려 있었는데, 성문 밖은 낭떠러지로, 광주 방면이다. 호란 당시 인조가 머물렀다는 행궁을 새로 조성했다길래 찾으러 갔다가, 밤길에 길을 헤매다 북문까지 올라가 본 것이다. 어두워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책으로 접했던 산성 내부를 눈으로 보니 색다르다. 나도 유적지나 좀 돌아보고 역사소설을 써서 재미좀 봐볼까. 남한산성은 얼마나 좋은 소재인가. 북문에서 내려와 다시 버스를 타고 하산한 뒤 역 인근에서 한잔 더 하고 헤어졌다. 잠실에서 버스를 갈아 타는데, 예전에 육영재단에서 운영하던 어린이집 자리에 홈플러스가 들어서 있는 것을 확인했다. 잠깐 사이에도 많은게 변하지만, 사라진 권력의 유산은 너무도 탄탄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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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에 다녀오다

여행 Reise 2009. 10. 18. 00:0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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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오감면에 있는 옹기 산지를 다녀왔다. 그 주변에 있다는 추사 김정희의 고택도 방문한다기에 카메라를 준비하려고 했었는데, 막상 준비를 못하고 가다보니 글이라도 남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히 알려진 옹기 산지라고 예상했지만, 전시관에 들르니 마치 관공서같다. 전시관 정면에 구어지기 전 상태의 항아리에 '이명박'이 새겨진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옆면엔 김종필과 찍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막상 항아리를 빗고 있는 명장의 얘기를 듣고 보니, 이 분의 스케일이 가히 우주적이다. 시효에 따라 인사발림으로 요동치는 정치권은 이분의 배경일 뿐이다.

솔직히 나는 우리 일행이 전시관과 생산시설을 둘러 보고, 명장이 작업하는 공방에 들렀을 때, 물레을 돌리며 명장이 작업하고 있는 모습이 혹시 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관의 전시가 그런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분이 하는 얘기와, 얘기가 끝난 후 우리가 실습을 하고 나서, 그분이 하던 항아리 작업에서 보이지 않던 항아리 끝의 공정이 끝나가고 있음을 봤을 때, 쇼는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말과 행위의 일치다.

올해 칠순을 넘긴 명장은 이미 옹기에 관한 박사급이 아니라 옹기에 의한 철학자 같았다. 흔히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오랜 세월 썩거나 화장을 하면 인간의 신체가 흙으로 돌아 가는데, 이런 흙이 옹기의 기본이다. 그래서 명장은 옹기는 인류 보편의 시원적 문화라고 한다. 신석기 시대 부터 옹기는 살림이라는 생활사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인간 최후의 장례에도 이용되었다. 이런 옹기의 원리가 우주복에도 활용된다고 한다. 굳어진 흙이라는 경화된 입자에 통풍이 가능한 것은 세라믹의 원리의 비슷하다. 세라믹은 철과 달리 조건에 따라 전류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인위적인 가변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후 들러본 김정희의 고택은 조잡한 감이 들었다. 고택 주변에 추사의 묘와 더불어 증조부의 묘가 조성되어 있는게 이상하다 했는데, 알고 보니 증조부 김한신의 처가 영조의 딸이며, 이 사람의 열녀문이 그 주변에 조성되어 있어 관광자원화된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초반의 사람인 김정희가 남긴 건 글씨 말고 다른게 있나? 그래도 그 주변이 마치 남도의 이름없는 시골처럼 한없이 한적한 체로 남아 있는 게 새삼 신비롭다.

어떻게 보면 사진은 강한 시차의 고착이다. 내가 본 순간은 사진으로 인해 타인의 시간으로 고정된다.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은, 이런 고정이 없는 것이다. 나는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


*참고자료(홈페이지 참조)

■ 전통옹기의 특성

▪ 성형상의 특성

옹기의 성형기법은 타렴질과 수레기법이 있다. 옹기의 성형기법 중 다른 나라와 다른 특징은 수레질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수레질은 철기시대로 보고 있다. 선사시대의 186cm의 대형 옹관이 출토되고 기물의 안과밖에 도개와 수레자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점부터 수레질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타렴질로 해서 기벽을 쌓은 후 수레질로 그릇을 만드는 기법은 가장 단시간 내에 큰 기물을 효율적 으로 만들 수 있는 기법으로 다른 나라의 수레질과는 큰 차이점과 발전 형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 실용성.통기성

예로부터 옹기는 숨을 쉰다고 알고 있다. 실제 편광 현미경으로 관찰을 할 경우 적당한 크기의 석영 입자가 많이 있고 그 사이에 아주 작은 입자들의 틈이 형성이 되어 있다고 한다. 이 작은 틈들은 옹기가 숨을 쉬게 하는 통로가 되며, 크기는 1-20마이크로 크기로서 그보다 작은 0.00022 마이크로의 산소는 쉽게 드나들 수 있으나 이보다 2000배가 넘는 물의 입자는 내부로 침투 되거나 밖으로 나올 수 없다고 한다. 다만 산소보다는 크고 물보다는 입자가 작은 소금이나 설탕은 밖으로 나올 수 있다고 한다.

▪ 방부성

옹기에 쌀이나 보리, 씨앗을 담아두면 다음해까지 썩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옹기를 가마안에 넣고 구울때 발생되는 탄소알갱이가 방부성을 갖게 한다고 한다. 또한 잿물유약에 들어가는 재도 썩지 않게하는 방부성의 효과를 준다고 한다.

▪ 쓰임새의 다양성

옹기는 귀족들이 사용하던 청자나 백자와는 달리 서민들의 실생활에 부담없이 집안 곳곳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어 왔다. 장독대,부엌의 물동이, 곳간의 저장용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신앙용, 의약용, 악기, 건축용재에 이르기 까지 우리의 생활에 폭넓게 자리하고 있었다.

 ▪ 자연으로의 환원성

우리가 쓰는 그릇중 옹기는 자연에 가장 가까운 그릇이라 볼수 있을것이다. 야산에서 얻어지는 옹기 흙에 나뭇잎이 썩어 만들어진 부엽토와 재로 만든 잿물을 입혀 구웠기 때문에 우리 몸에 전혀 해가 없다. 옹기는 조심스레 사용을 하면 백년 이상 사용할수 있으나 사용시 깨지게 되면 그릇의 성분이 자연 그대로 이기 때문에 쉽게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

 ▪ 정수와 온도 조절기능

액체를 담았을때 잡물을 빨아들여 기벽에 붙거나 바닥에 가라앉게 만들어 물을 맑게 한다. 옹기의 기공이 수분을 빨아들여 밖으로 기화시키면서 열을 발산해 그 속에 담겨있는 물을 항상 시원하게 해 주며, 오랜 기간동안 물이 냣지 않게 한다.

► 생산과정
 1. 흙준비 : 수비(본밀 기계를 통해 고운 흙 채취) ➠ 수분제거 ➠ 일정크기로 절단
    - 전통방식은 물에 흙을 풀어 침전시켜 고운흙을 채취함.

 2. 성형 : 석고 틀에 넣고 다짐(석고 틀은 대량화에 따라 필요한 공정임) ➠ 물레에 올려놓고              겉면을 다듬고 손잡이를 붙인다.
    - 수작업이라 작업자에 따라 모든 모양이 같을 수 없음.

 3. 건조 : 너무 건조시키면 구울시 유약이 갈라지므로 꾸득할 정도로 건조)

 4. 유약 바르기 ➠ 건조
    - 유약작업은 수작업으로 이뤄지고 손을 잡은 자리에 유약을 덧발라 주어 자국이 생기고, 유약이 흐른 자국이 남아 있을 수 있음.(자연스러운 현상)

 5. 굽기 : 가스이용(일정온도유지). 평균 1,250℃에서 20시간 / 큰 옹기의 경우 48시간
    - 나무를 이용한 전통방식은 온도편차가 심하고 구워지는 정도가 일정치 않아 생산이
      어렵다. 나무 이용시 일주일정도 불을 집혀야함.

  ※ 천연유약: 소나무가지재+콩깍지재+약토를 일정비율로 섞어 6개월~1년 삭힘
               ➠ 체에 걸러냄
  6. 포장 : 색상이 최대한 같은 본체와 뚜껑을 맞춰 포장한다.

► 질의응답

 1. 옹기는 흙으로 빚어 만들고 고온에서 가공하므로 다양한 용도로 사용이 가능하고           1,200~1,300℃에서 구워 렌즈에도 사용이 가능하다.  내열옹기류는 사용하는 흙의 종류가 다른 고가의 흙이다.  옹기류는 도자기와 달리 수레기법을 이용하여 대형작업이 가능하다.
 
 2.  광명단은 납성분이 들어있어 800~900℃에서 녹아 고온이 필요치 않고 색상과 광택이
     동일하게 생산이 가능하나 해로운 성분과 저온에서 구워 옹기 본연의 특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3. 옹기의 색상이 다른 이유는?
   - 잿물의 농도차이 - 묽음 : 검은색  / - 진함 : 연두빛
     나무탄재만 사용할 경우 연두빛 이나 노란빛이 남.
     붉은 무늬 : 잿물이 마른 후에 손으로 무늬를 넣으면 그 부분이 유약 차이로 붉은빛은 띰.

 4. 김치냉장고에 들어가게 사각 옹기는 재작하지 않은지..?
   - 사각의 경우 성형 자체도 어렵고 공기 순환도 원활하지 못해 옹기 자체의 특성이 발휘
     되지 못함.

 5. 흙은 어디서 구하는지?
   - 현지 조달 하고 부족분은 김제와 산천에서 조달한다. 한가지 흙으로 만들지 않고 여러
     흙을 섞어 사용한다.(흙의 특성과 잿물과의 융화도도 다르고 열에 대한 성질도 달라       용도에 맞게 섞어 사용한다.)

 6. 사용 시 주의사항
   - 옹기는 설탕이나 소금기가 겉으로 뿜어져 나오므로 주기적으로 닦아줘야 한다.
     이렇게 사용하다 보면 뿜어져 나오는 것은 감소한다.
   - 설거지 이후 물을 담아두었다가 햇볕에 말려 사용하여야하며, 사용하는 빈도에 따라
     다르지만 흙으로 빚은 것이라 영구사용은 어렵다. (설거지나 취급 시 발생하는 작은 충격 등에 의해 미세한 금이 생길 수 있어 장기간 사용이 어려울 수 있다.)
   - 냉장보관 후 바로 불에 올리면 큰 온도차에 의해 금이 생기거나 파손될 수 있다.
   - 옹기는 유해한 성분을 흡착한다. 식수용기로 사용할 경우 주기적으로 내부 겉면을 닦아        사용 하고 물은 떠먹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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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의 생협 기행(2007.11.12~16 )

여행 Reise 2009. 8. 17. 15:26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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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어두운 새벽  First day(11.12). Dark Daybreak 

16일날 이사갈 집을 마지막으로 나왔다. 나오면서 골목길에 16일 아침 들어올 이사차량을 위해 협조를 해달라는 용지를 붙였다. 벽돌에 테이프가 잘 붙지는 않았지만, 5장을 붙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차량들은 골목에 그대로 주차되어 있었고, 전신주의 전선 때문에 대형 이사차는 들어올 수 없었다고 한다. 골목을 빠져나오면서 혹시 일본에서 비가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아무래도 물가가 더 비쌀거라는 잘못된 판단으로 편의점에서 우산을 샀다. 버스로 청량리에 가서 공항버스를 탔다. 매표소에서 9,000원 짜리 티켓을 사고 버스를 탔는데, 602번 공황버스는 동대문,종로,신촌,합정을 경유할 때 까지 승객을 가득채우고, 강변북로에 접어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달렸다. 아이처럼 쉬지 않고 달리는 버스에서야 나는 눈을 붙일 수 있었다. 

Lastly i came out my house which our family pull up sticks in Thursday(11.16). I  

12일 아침 인천공항

뿌연 차창에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7시가 좀 넘어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청량리에서 1시간 20분 가량 걸렸다. 집결시간인 8시까지 시간이 남아 공항터미널 편의점에서 우유와 햄버거를 사다 먹는데, 멀리서 이번 연수의 간사인 좌00씨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먹는데 집중하느라 인사는 요기를 마치고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나와서야 했다. 좌00씨가 담배를 사러 간다기에 돗대가 남은 담배를 주었다. 돗대 담배에 대한 답례로 미안하게도 커피를 얻어 마셨다. 1.5평의 소형매장에서 파는 카푸치노를 마시는데 한둘 씩 연수 참가자가 오시 시작했다. 집이사도 있고 해서, 예약한 로밍폰을 KTF센터에서 받았다. 알고보니 15명 연수 참가자 중에 로밍폰을 준비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연수 기간 동안 혼자 쓰기 미안도 해서, 거의 꺼놓고, 자유시간에나 잠깐 켜서 사용했다. 약속 시간에 강00만 빼놓고 15명이 모였다. 강00과 같이 못가는 것은 또다른 추억 하나가 빠지는 아픔이었다. 10시 11분, 후쿠오카행 아시아나 OZ 132기가 이륙했다.

12일 점심, 비행과 도착, 다시 점심

비행기가 이륙해 9만피트의 안정기류에 접어들자 기내식이 나왔다. 간단한 일식 요리를 마치고 물한잔 마시자 벌써 영해를 넘고 있었다. 제주도보다 10분 정도 더 소요되는듯 하다. 양끝의 창 밖으로 바다와 후쿠오카 시가 보이기 시작한다. 외국땅을 처음 밟아 보는 설레임이 밀려왔다(11시). 공항에 도착하고 비행기를 빠져 나가는데 야구모자에 줄무니 셔츠, 곤색 바지를 입은 유니폼의 안전요원이 일본어로 인사를 한다. 입국심사를 하는데 공간이 좁아 외국인은 빙글빙글 돌도록 안내벨트가 세워져 있다. 통로 안내를 하는 늙은 공항 경비원은 한국말을 곁들이며 유쾌하게 관광객을 안내하는데 단수 높은 부스에 앉아 있는 입국심사원은 마치 밀입국자를 심사하듯이 외국인들을 쳐다 봤다. 일주일 후에 개정법령에 따라 일본에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이 지문과 얼굴사진을 채취당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이날의 입국절차는 간소한 것이다.

가방을 찾고 인원점검을 하고 대기실로 나오자 이번 연수의  통역을 맡은 성신일 선생, 동행을 한 그린코프연합 상품본부 조사부 수에츠구씨와 만났다. 김해에서 오는 부산,경남,울산 실무자들은 10여분 후에 도착했고, 전세 소형 버스가 올 시간이 남기도 해서, 성선생의 안내로 간단한 점심을 위해 공황내에 있는 푸게추 우동집에 들어갔다. 대부분 아침을 거르고 새벽부터 출발한지라 기내식으로는 허기진 상태이기도 했다. 주문과 자리잡기를 다소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일단 17명이 10평 정도의 홀에 자리를 잡자, 식당 서빙을 하는 아줌마가 신속하게 테이블마다 별도로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인상적인 것은, 나무로 된 원형의 바 형태의 테이블에서 담배를 피우며 우동을 기다리는 50대의 여성이었다. 일본인인듯 한데, 우리를 신기하면서도 시니컬하게 쳐다보면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공항을 나와 다노츠(多の津) 물류센터로

우동을 먹고 흡연자들은 허겁지겁 담배를 피운 후, 버스에 올랐다. 앞좌석에 자리를 잡은 나는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하면서 누르기 시작한 카메라 셔텨를 본격적으로 눌러댔다. 낮은 건물들, 좌측통행의 도로, 눈에 띄는 일본 자동자 대리점과 외국 자동차 대리점, 토요타 일색의 자동차들. 어느덧 느긋하고 여유로운 오후의 따듯한 햇빛을 받으며 버스는 20분 후 물류센터가 집중해 있는 좁은 도로로 진입했고, 그 끝에 그린코프 연합의 다노츠 물류센터가 있었다. 다노츠 물류센터는 일본에 있는 그린코프 연합의 6개 물류센터 중 와카미오(若宮)물류센터 다음으로 집품수와 규모 면에서 2번째인 곳으로, 특별 잡화는 단독으로 전체를 담당하며 냉장,냉동, 매장 물품을 다룬다. 다노츠는 주당 개별집품수는 600,000점이며 일하는 사람들은 230명(이중 정직원인 실무자는 10명 내외), 3,000평 대지에 2,500평의 건평을 가지고 있다. 이외의 물류센터를 집품수와 규모의 크기 순으로 내림차순으로 나열하면, 냉장 냉동 중심의 구마모토(態本)물류센터, 후쿠오카 청과 센터, 히로시마 물류센터, 냉장 냉동을 다루는 소규모의 오오이타 물류센터가 있다.
 

그린코프 연합 사업 일람

다노츠 물류센터에서 받은 2007년.6월자 안내지에 따르면, 그린코프 연합의 회원 생협은 그린코프생협오사카(3,839명), 그린코프생협효고(3,535명), 그린코프생협톳토리(3,416명), 시마네 현의 그린코프생협(시마네 7,636명), 그린코프생협오까야마(4,223명), 그린코프생협히로시마(15,877명), 그린코프야마구치생협(20,803명), 그린코프생협후쿠오카(159,736명), 그린코프생협사가(8,641명), 나가사키현의 그린코프생협(나가사키 13,001명), 그린코프생협구마모토(67,194명), 그린코프생협오오이타(33,104), 그린코프생협미야자키(5,042명), 그린코프카고시마(19,455명)생협으로서, 일본의 42개 현중 주로 서남부에 위치해 있다. 총 14개 생협의 연합체로서, 일본에는 현재 720여개의 생협이 있다고 한다(한국은 230여개). 2006년도(2006.4~2007.3)의 그린코프 생협동태를 보면, 공급고는 585억엔(*1엔당 8.28원화=4,843억8천만원), 이중 공동구입은 534억엔(90%), 점포는 53억엔(총 34개로 10%), 출자금 총액은 142억엔, 총조합원수는 365,502세대이다. 공동구입 사업고 533.7억엔 중 품목별 점유율을 내림차순으로 정렬하면 다음과 같다. 가공냉장식품(60.5억엔/11.3%), 정육(11.1%), 특수잡화 의류 복지(10.9%), 일반식품(9.8%), 청과(9.3%), 어패류(8.2%), 과자 음료(8.1%), 조리식품(6.6%), 우유(5.9%), 쌀(4.6%), 일반잡화(4.4%), 계란(3.7%), 기타(2.3%), 술(2%), 빵(1.8%).  

다노츠 물류센터 회의실에서의 간담회

물류관리부 고츠루와 센터장 마무로부터 그린코프 개요와 물류센터에 대한 설명을 듣고 냉장, 냉동, 잡화 물류센터를 견학한 후 회의실에서 질의응답의 시간을 가졌다. 인상적인 것은, 그린코프 연합에서 나오는 정보지 작업에 10명의 직원이 투입되며, 재활용 병의 회수율이 99%, 조미료병의 회수율은 70%대라는 점이다. 재활용병만을 따로 회수하는 위탁업체가 있다고 한다. 또한 대다수의 인원이 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인데, 한국에서라면 비정규직으로서 많은 문제가 제기될 수 있으나, 일본에는 아직 비정규직 보호법령이 없을 뿐더러, 그런 법이 없더라도 일부로 이런 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를 소득세를 낮추기 위해 선호하는 편이라는 설명을 성신일 선생으로부터 들었다. 노동의 유연화에 대해 인식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한국과 일본의 실정이다. '토요타 벤치마킹'에서 볼 수 있듯이 물류센터의 깨끗한 정리정돈과 3층 빠레트의 공간활용, 건물과 건물 사이를 터널형태로 유기적으로 연결해 놓은 것은 일본다운 모습이다.

博多區  콘포드 호텔과 다이슈카히카리에서의 친교회

5시가 넘어서야 간담회가 마무리됐다. 얘기가 더 진행될 수도 있었지만, 엉뚱하게 부여받은 단장의 지위를 활용해 의사진행을 마감하도록 독촉했다. 대부분 긴 여행에 피곤한 기색이라 나의 마감 제안이 반갑기도 했을 것이다. 물류센터를 먼저 나오니 벌써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1.5톤의 배송차량의 기사가 탑차의 문을 닫고 있었다. 염색을 하고 얼굴이 불긋불긋한 20대 후반으로 보였다. 차 후미에  양편에 염소의 뿔처럼 지면까지 살짝 닿도록 삐져 나온 고무꼬리가 있기에 무슨 용도인지 물어 보았다. 이것이 무엇인지 묻기는 쉬웠으나 알아듣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친절한 말투로 해주는 설명을 들어보니 대략 후방 탐지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후진하며  이 고무가 무언가에 닿는다면 흔들리는게 백미러로 보일 것이다. 버스에 올라타면서, 콧수염을 한 고츠루, 나이에 비해 젊게 보이고 활달한 마무로부터 친교회에서 보자는 인사를 하고 버스에 탔다. 20분가량 걸려서 후쿠오카시의 중심가인 博多區의 콘포드 호텔에 도착했다. 독방의 숙소를 배정받고 방에서 약 30분간 쉴 수 있었다. 집에 로밍폰으로 통화를 하고, 침대에도 누워보고, TV도 켜 보았다. 처음 가보는 나라에 단체로 와서 이렇게 혼자 방을 쓰는게 무척 이색적이면서도 호젓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이 방의 사진을 찍으면서도 느낀 점이지만,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9층의 창문은 마치 '공각기동대'의 첫장면에 나오는 오피스텔을 연상시킨다. 잠시 쉰 후에 6시 20분에 모여서 시내 중심의 오래된 일식 주점인 다이슈카히카리에 걸어서 갔다. 나는 사진을 찍느라 대열에서 조금 뒤쳐졌고, 주점 앞에서 수에추구씨가 인원파악을 하고 있었다. 휘황찬란한 빠징코를 찍고 대열에 합류하자 수에츠구씨가 웃으며 나를 지목했다. 인원파악이 완료됐다는 것이다. 친교회에는 수에츠구씨와 성선생을 비롯한 우리측 17명과 간담회에서 만난 고츠루와 마무씨, 그리고 그린코프 연합의 전무이사를 통틀어 3명이 참여했다. 예상외로 고츠루씨가 술을 아주 좋아했고, 연신 옆에 앉은 나에게 술을 권했다. 조00 부장과 마무씨는 나이가 동갑이라며 친구가 되었다. 내가 그린코프 연합의 유키오카 전 전무이사의 생각이 작업장에 얼마나 반영되느냐고 고츠루씨한테 물었더니, 유키오카 전 전무의 글은 어렵다는 얘기를 했다. 좌00씨가 나보고 헤겔을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고츠루 씨에게 얘기해 줬지만 헤겔의 발음이 일본과 달라서 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고츠루씨에게 주로 영어로 얘기를 했고, 고츠루씨는 주로 일어로 얘기를 하다가 짧은 영어를 사용했고, 한번은 영어를 잘한다는 마무씨를 불러서 삼자대면으로 얘기를 했다. 술을 마시며 안되는 소통을 하는 것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친교회는 원래 잡힌 일정대로 9시까지 진행됐고(일본의 술집에서는 시간을 정해놓고 술은 무한정 먹을 수 있는 식으로 손님을 받는 경우가 있다) 콘포드 호텔 앞에서 헤어졌다.  

 평가와 시내 배회

배정받은 방 호수의 짝홀수에 따라 팀을 나눠 평가회를 가졌다. 좌00씨가 방을 내줬고, 박00는 방을 빼앗겼다. 밥먹고 술도 먹은 상태에서 평가회의란 귀찮은 일이지만, 한사람씩 얘기를 하다보니 말에 살이 붙기 시작했다. 우리 방에서는 물류센터의 시스템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의견이 있었고, 나는 그런 체계적 시스템과 센터내 깔끔한 정리정돈은 일본 특유의 질서의식에서 나온게 아니겠냐고 발언했다. 얘기가 길어지는 우리조를 남겨두고 좌수일씨측 조에서는 그의 방에서 술판을 준비해 놨다. 방에서 술을 마시다 술이 떨어져 호텔 옆의 편의점에 갔다가, 몇명이 함께 시내를 배회하기로 했다. 호텔 뒤편을 돌아서 가는데, 하수구에서 작업하는 3명 외에 중심가의 뒷골목은 휭하다. 사람보다 자판기가 더 많이 보인다. '그럼 자판기를 이용할 사람보다 자판기가 많은게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한바퀴를 돌다가 아무래도 부족해 친교회를 가려고 관통했던 博多驛에 갔다. 밤 11시가 넘었는데, 초저녁에는 하지 않고 있던 천장공사를 본격적으로 하고 있었다. 상점들은 아직 불을 밝히고 있고, 공사 인부와 노숙자, 그리고 모여서 춤을 추고 있는 십대 대여섯명, 신간센이 있어서 그 주변에 모여드는 사람들 일부, 긴 택시 행렬이 있는데, 서울역 보다는 좀더 작은 분위기다. 인근을 한바퀴 돌고 숙소로 갔는데 유00이 같이 한바퀴 돌아보자고 해서 안가본 거리로 다시 걷기로 했다. 공원에 가보고 자판기에서 음료도 뽑아 마시며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이 안난다. 취한 상태에서 호텔에 들어와 TV 리모콘을 돌리다가 끄고 스탠드도 돌려서 껐다.

 다음날 아침과 긴 여정

 아침에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창밖을 보니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콘포드 호텔 앞에서 금연이라고 성선생한테 들었는데, 과연 아침에 보니 제복을 입은 노년의 건장한 거리지도요원이 감시를 하고 있었다. 주먹 김밥과 수프로 부담되는 아침을 먹고, 담배는 내 방에 올라가 피운 후, 짐을 정리하고 나왔다. 9시 출발인데 아직 안나온 몇몇 사람들을 프론트에서 내선 전화로 불러냈고, 수에츠구씨의 인원점검이 완료되서야 버스는 출발했다. 후쿠오카 시를 벗어나기 위해 고속도로에 진입했는데, 본격적으로 고속도로에 들어서기 전에 2층 고가도로를 볼 수 있었다. 한나라당 대선예비후보였던 홍준표 의원이 이명박의 대운하에 대한 대안으로 이층고가의 경부고속도로를 제안한 적이 있는데, 일본은 벌써 이런게 있다. 둘째날 밤 방에서 NHK를 보니 고층 건물의 4~6층 사이를 뚫어 고가 터널로 활용할 정도니, 일본의 건축기술에는 상상력도 작용하고 있는듯 하다. 9시 5분에 출발한 소형 버스는, 500km의 길이로 병풍처럼 멀리 펼쳐져 있는 미노우렌자산을 지나서 10시 40분에서야 오오이타현의 오오야마초(大山町)에 도착했다. 전형적인 일본의 농촌이다.

오오야마초 농협의 잼 공장과 버섯공장, 식당

버섯공장에 가기전, 점심으로 먹을 오오야마초 농협 직영의 매장연계형 식당에서 이 농협의 영업책임자로 일하는 미토마씨를 태웠다. 영업하는 사람 답게 반듯한 복장에 기품있는 인사를 했고, 한살림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 보았다. 잼 공장의 나카시마 책임자는 딸기잼을 그린코프에만 납품한다고 하며, 1층의 잼배합 기계와 당도를 조절하는 2층의 잼농축기(진공가마), 1층의 고온 살균기가 있는 19년된 공장을 보여 주었다. 유자껍데기와 고추가루를 혼합시켜 양념을 만든 제품도 봤다. 저녁 평가시간에 나온 얘기지만, 가공공장의 바닥에 물이 고여 있는게 흠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잼공장과 인접해 있는 버섯공장에서는 나메꼬라는, 팽이버섯 보다 끝봉오리가 두툼하고 노란색인 버섯을 재배하는데, 이곳의 공장 책임자 야노시씨의 말에 따르면 하루에 이 나메꼬를 2톤 생산하며 하루 4만개를 포장한다고 한다. 사진촬영을 금지해, 밖에서만 일부 찍을 수 있었다. 이 두 가공공장을 둘러 보고, 종전에 들렀던 매장연계형 식당에 버스를 타고 갔다. 대형평수의 농산물 및 가공품 매장과 고장의 특산물이 있는 매장이 있으며, 그린코프 연합내 매장으로 보낼 매장별 상차 구역도 있었다. 점심을 들으면서 성선생한테 들은 얘기인데, 이곳은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끌려온 도공들이 모여 있던 지역이라고 한다. 조그만 사기 하나가 1,000엔을 넘는 것을 보면, 도기에 대한 일본인의 애착을 느낄 수 있다. 어제 마신 술로 오전까지 심신이 쳐져 있었는데, 싱싱한 부페식을 먹고 나서야 힘이 회복됐다. 그러나 점심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나서 버스는 다시 출발해야 했다. 오오야마초에서 남단의 오오이타시까지 2시간 이상의 긴 여정이 기다렸다. 회복되는 힘은 잠으로 마비되었고, 정중한 노년의 버스기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1시간 가량 잠에 취했다.   

베푸를 내려다보고 오오이타시로

서일본고속도로를 이용해 남단으로 달리는 버스의 외경은 또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제주도와 흡사해 지면서 갑자기 대관령의 분위기로 돌변했다. 베푸시가 멀리 내려다 보이는 휴게소는 대관령과 흡사한 지형으로 보였다. 베푸의 바다는 바로 태평양이다. 그냥 같은 바다지만, 태평양에 이어지는 바다라 느낌이 달랐다. 노천 온천으로 유명한 베푸답게, 곳곳에서 연기가 솟아 나오고 있었다. 원숭이가 자주 출몰한다는 안내판이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자주 보였다. 버스는 마치 거대한 산속을 저공 비행을 해오다가 오오이타시에 도착하자 하강 고가를 타고 지면에 착륙하듯이 내려 왔다. 25년 전에나 볼 수 있었던 새까만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의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린 모습이 후쿠오카와는 또다른 도시의 면모를 상징하는듯 했다.   

오오이타생협과 히토토복지관

오오이타생협 배송센터겸 사무실에서 마츠모토 전무와 하라다 부장, 오이니시 홍보담당자와 인사를 하고 바로 복지관으로 이동했다. 치매기가 있거나 고령이라서 집에서 돌보기 힘든 노인들을 주간에 봐주는 시설이다. 일본에서는 40대부터 전국민이 개호보험을 의무 납부해야 하는데, 오오이타 생협에서는 이 개호보험을 수령 대상 노인을 대상으로 운영하는데, 현재 9명의 노인을 7명의 스탭이 돌보고 있다. 7평 정도의 아담한 마당에 나무로 외관을 감싼 가정집 분위기의 복지관은 고령의 노인들이 이용하기 편리하도록 세면대와 화장실에 배려의 흔적이 역력하다. 들어가는 입구에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복지관을 이용하는 노인들이 젊은 시절 그린 그림을 전시함으로써, 노인들이 젊은 시절 자신 쏟아부은 상상을 되돌아 보도록 고안한 것으로 보인다. 굵은 필체로 개성적으로 그려진 자신의 그림들을 보면서 노인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생각해 보면 조금 서글퍼 지기도 한다. 홀에서는 4분의 노인과 1명의 주부 스탭이 블루마블같은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이런 게임도 노화를 억제하기 위한 의도로 고안된 것이다. 15명의 외국 젊은이들이 와 복지관에 활기가 넘치는 상황이 되자, 한 스텝분이 노래를 틀고 같이 율동하는 시간을 가졌다. 전통적인 일본 가요로 보이는데, 율동은 가사에 맞춘 것으로 보인다. 거의 뼈만 남은 손으로 박수를 치는 초고령의 노인에게 이런 복지관은 남은 생의 마감을 준비해 주는 호스피스 시설과 유사할지 모른다. 보봐르의 소설처럼, 결국 '모든 인간은 죽는다'. 


간담회 : 정체된 도시의 새로운 동력 찾기

복지관 옆에 있는 오오이타 생협 소유의 인상적인 부속 건물에서 복지관 책임자, 하라다 부장과 얘기를 나누고 난 후, 오오이타 생협 본부와 연결된 자유자재점(개호보호물품전문판매)과 매장을 둘러보고, 2층에서 마츠모토 전무와 간단한 간담회를 가졌다.  작년도 사업이 적자가 났으며, 올해도 적자가 예상되나, 만회해 보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런 적자 속에서도 복지관이나 개호보호물품 위주의 자유자재점을 지속적으로 운영해 나간다는 방침을 보면, 일반 기업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을 이런 생협이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서 교류회

버스를 타고 약 30분 걸려 크레인호텔 다카조(高城)에 이틀간의 여장을 풀었다. 클래식과 재즈 음악이 간간히 들리고, 모던한 분위기에 아담하면서 소박한 호텔이다. 긴 버스 여행으로 어제와는 또다른 피곤이 몰려 왔지만, 오오이타 생협 인사들과의 교류회가 이 호텔 2층에 잡혀 있어 마음은 편했다. 여행자들을 배려한 흔적이 보인다. 교류회에 참석한 오오이타 생협측 인사는 다음과 같다. 아들 3명을 둔 카야이마 노리요 이사장,  희긋희긋한 머리에 소녀같은 인상의 고토 마미 부이사장, 한국요리를 좋아한다는 오쿠추 준코 복지위원장, 3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24살난 딸을 시집보내고 싶다며 한살림 총각들을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나시카와 푸미에 조합원사무국장, 이상은 사무국 활동가들이고 실무직원은 다음과 같다. 아직 노총각이라는 마츠모토 유타카 전무이사,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는 히구마 케니치 점포사업운영부장, 사회를 맡은 풍만한 인상의 타카이라 히로쉬 오오이타동부센터장, 나와 담배를 나눠피운 이마푸쿠 카주야 점포(어류)담당, 아이 하나를 두고 있으며 근무 7년째라는 야쿠쉬니에 미노루 오오이타동부센터 공동구입담당(이하 공급자로 명칭), 긴머리의 카나자키 뤼우이치 공급자, 다음날 공급동행을 한 마추쉬타 유우키, 일본의 장동건이라고 자기소개한 타나카 히로유키. 18살에서 19살 때부터 오오이타 생협에서 일했다는 20대 초반의 공급자에게 초봉이 14만~15만엔이지만 각종 수당이 있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두면 그에 따라 급여를 차등지급한다고 한다. 내 나이 또래인 타카이라 동부센터장 같은 경우 일한지 15년 됐다고 하니 나로서는 놀라울 뿐이다. 나보다 10년을 먼저 일한 것이다. 15년간 한 직장에서 일을 했으면, 아직도 젊은 나이에 얼마나 많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 예상된다. 일찍부터 일을 시작해 여유로운 노령을 준비하는 것도 좋아 보인다. 그런데 젊었을 때 한가로이 지내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해서 50~60대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뭔가 답답하다. 자기 삶의 약동지점을 어느 한곳에 지정하기 보다는, 어느 곳에서나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유로와지는게 이상이자 칸트의 지상명령이 아닐까?   

흔들리는 의자

교류회와 평가회를 마치고 나는 바로 내 방으로 들어갔다. 더이상 술마실 기운이 없고, 졸리기도 했으나, 이런 곳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고도 싶었다. 가라타니 고진의 '윤리21'을 들춰보다가 서랍장에서 불경을 발견했다. 한편에는 성인방송 안내책자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불경이 있는 이 호텔이 정말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의 근본적 계율을 설명해 주는 책자다. 이중 집제(集諦)를 설명하는 부분은 욕망의 근본적 동인을 죽음의 본능이라고 본 프로이트를 연상시킨다.  

"desire, having a strong will-to-live as its basis, seeks that which it feels desirabel, even if it is somethimes death. This is called the Truth of the Cause of Suffering.(Dharma 중)      

나의 무게 때문인지, 원래 부실해서 인지, 화장대 외의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무리인지 의자가 심하게 흔들거렸다. 12시쯤인데 밖은 새벽같다. NHK를 보니 새로 입법된 법령과 미국대선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볼 수 있었다. 대국민 상대 국정 브리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심층 방송으로 보였는데, 이런 얘기를 다음날 아침을 먹으며 성선생한테 했더니 본인은 NHK를 싫어한다고 했다. 역사왜곡이나 위안부 문제같은 민감한 사안에 침묵하는 방송에 대한 실망 때문이다. 

아침식사와 오오오타 동부센터센터 견학

일찍 일어나 1층 식당으로 내려오니 수에츠구씨가 신문을 보고 있었다. 오늘은 배송센터 견학을 위해 1시간 일찍 일정이 시작된다. 활동가가 공급하는 차량은 가솔린 1톤 탑차로, 근거리의 공동구입 위주로 공급을 나가며, 실무직원이 공급하는 차량은 LPG 1.5톤으로 장거리의 개별 공급지로 나간다. 상차는 상차 아르바이트가 7시부터 시작한다고 하며, 활동가와 실무직원은 8시부터 일을 시작해 5시까지 일한다. 인상적인 것은 체조 후 조회시간인데, 15년 이상된 간부급 직원들이 차례로 초급 직원들과 활동가, 아르바이트를 상대로 브리핑을 하는 시간이었다. 짧은 조회시간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알림사항을 전달하는 것이다. 브리핑이 끝나고 인근의 4집을 버스를 타고 공급동행을 하고, 다시 센터로 돌아와 사무실을 돌아보고 조회시간에 브리핑을 한 실무직원 3인과 간담회를 가졌다. 자료를 보니, 공급 담당자별로 선물 증정 인원과 목표 이용률 33.0%에 따른 목표 달성률을 명시한 표를 보니, 일개 선물도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그 효과를 면밀히 검토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부센터를 일람해 보면, 07년 27호(4월 회기순으로부터 27번째 주) 현재 등록조합원은 9,344명(이하 가로는 오오이타 생협 전체로서 27,641명), 배포회수는 6,517회(19,749), 회수회수는 5,214회(15,912), 주당 수주금액은 25,006,716엔(76,261,253엔), 세대당 객단가는 4,759엔(4,793엔), 정규직원수 10명(22명), 배송 파트수 13명(36명), 배송아르바이트수 10명(21명), 공동구입 워커즈수 13(59), 평균 공급 34집(36)이다. 동부센터는 그린코프오오이타생협의 6개 센터중 사업고와 규모가 제일 큰 곳이다. 우리처럼, 배송코스별로 박스에 집품되고 일부 물품만 개별 상차된 것이 아니라, 전부 개별품목으로 나뉘어 상차된다. 한살림의 공급방식이 더 체계적인 셈이지만, 상온품과 냉장, 냉동품을 분리해 운용하는 장점이 있다. 냉장품과 냉동품의 비중이 높아질 수록 아이스박스와 드라이아이스를 활용한 이런 방식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나 품목이 늘어난다면 이런 식의 상차에도 한계가 올 것이지만, 물품과 더 친해질 수는 있겠다. 까맣게 때가 낀 아이스박스도 끈질기게 재활용하고, 지저저분해 보이는 탑차 내부도 깔끔하게 보일 정도로 질서정연하게 품목별로 박스채 상차하고, 빈 아이스박스도 3개로 포개서 상차하는 기술도 돋보인다. 아이스 박스엔 손잡이 한 쪽에 테이프를 붙여서, 매번 여기에 라벨을 붙여다 떼어도 아이스박스가 상하지 않게 하려는 세심한 배려도 보인다. 

 조합원 활동가들과의 점심 교류회

점심을 들며 그린코프오오이타생협 주부 활동가들과의 교류회를 가졌다. 말이 교류회이지 진상은 활동보고회라 할 정도로 성심성의껏 자신들의 활동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점심을 먹고 파워포인트로 프리젠테이션을 하려고 했는데, 프로그램에 문제가 생기자 카야이미 이사장이 뭐라 말했고, 갑자기 활동가들이 우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개별적인 선물증정이었다. 휴지와 과자, 라면, 안내책자가 들어가 있는 두툼한 봉투를 난데없이 받는게 어리둥절했지만, 시간안배를 고려한 조치였다. 그리고 2시간 가량의 보고회가 이어졌다. 밥을 먹고 회의실을 어둡게 한 채 진행되는 보고회라 집중이 잘 안됐지만, 감동적인 활동 보고의 장이었다. 주부 활동가들의 활동은 한살림 활동가들의 활발한 활동과 크게 다르게 보이지 않았지만 아이들과 배를 타고 바다를 청소하는 활동, 어린이 요리교실 등은 배울만한 활동이다. 활동보고가 끝나고 단장으로서 인사말을 해야 했다. 고향에 온 것 같고, 10여년 전에 본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타오르는 푸른나무'도 짧게 언급했다. 실패한 공동체가 아니라 생명력있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단체를 여기서 볼 수 있게돼 반갑다는 말로 맺음을 했다. 대표제목을 '타오르는 푸른나무'로 기억했고, 3권짜리라고 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검색을 해보니 '흔들림'과 '구세주의 수난'이 보인다.   

베푸 관광과 마지막 저녁

오오이타시에서 30분 거리인 베푸시의 산중 노천 온천에 갔다. 나와 네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는 온천에 들어갔고 우리는 수안보와 흡사한 분위기의 온천지대 주변을 배회했다. 초저녁인데나 쌀쌀하지 않은 남방의 날씨탓에 온천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사가 궁금해 다시 전화를 해보니 마무리 중이라고 했다. 아이에게 줄 장남감이라도 살려고 돌아 다녔지만 마땅한 것이 없었다. 온천을 마친 일행들과 오오이타생협동부센터 근처의 유스코란 백화점에서 간신히 논리를 뜻하는 '아르고'란 카드수자게임 패치를 샀다. 뜯어 보니 실망스러웠지만, 아이가 좀더 커서 같이 놀기엔 이런 장난감도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크레인호텔에 다시 여정을 풀고, 일행은 주변의 술집을 찾아 갔다. 8시에서 10시까지 술을 무한대로 마실 수 있는 계약을 했다. 초저녁인데도 지나다니는 사람이 안보인다. 지방 소도시 분위기인데, 가본적 없는 독일과 흡사한 거리풍경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술집에 들어가니 훈훈한 사람 기운이 느껴진다. 생맥주와 정종술을 번갈아 한창 먹으며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도쿠가와 막부 시절 250년간 지속됐던 조선과 일본의 평화시대가 재현되기를 염원하는 성신일 선생의 맺음말도 들었다. 그 전에 나는 성선생과 수에츠쿠씨, 그리고 부산에서 온 최00 씨를 위해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불렀고, 조00 부장이 이어서 이 노래를 일어로 불렀다. 이제 고향으로 갈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에필로그 : 새벽의 라면집

2차는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이 않나고, 한창 취한 상태에서 호텔 맞은편 교차로에 있는 편의점 옆 라면집에서 라면과 아사히 맥주를 먹었다. 한창 취한 상태에서 큰 목소리도 들렸고, 갑자기 사라진 사람도 있었다. 결국 다시 모여 지극히 느끼한 라면을 먹고 호텔 앞을 서성이다 들어갔다. 이번 연수의 마지막 밤을 지킨 사람은 과천의 유00과 대전의 이00이었으며, 나는 이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2007.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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