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불명 운동회

단상 Vorstelltung 2012. 9. 24. 15:05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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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초등학교의 운동회가 지난 토요일에 있었다. 가보니 지역잔치라고 할 만큼 어른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었다. 운동회라는 건 초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 가본 색다른 풍경이다. 9시 넘어 학교에 도착했을 때 유치원생을 포함해 초등 전교생이 운동장에 사열되어 있는 걸 보고 저런 건 도대체 변하지 않는구나 하면서 욕설이 나왔다. 길게 이어지는 내빈들의 인사말, 도대체 언제까지 아이들은 어른들을 위한 사병인가? 병영문화와 위계구조로 구획된 교육공무원들에게 아이들은 변함없는 먹잇감인 셈이다. 아무튼 시작은 실망스러웠지만 운동회 프로그램은 그나마 구태의연함을 벗어났다. 사실 그들이 건드릴 수 있는 건 이런 부분일테니까. 예를 들어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춘 청백 댄스 대항전은 운동장의 흙먼지까지 자욱히 일으킬 정도였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잘도 흔들어 대는 광경은 미디어가 점령한 거실문화의 일면이기도 하다.  감기에 걸려 이리저리 몸이 안좋은 나날이었다. 이병주의 <지리산>에서 병든 하영근이 우렁차게 떡을 목구멍에 쳐 넣는 두 수재 청년에게 세계를 정복하려해도 일단 건강하고 볼 일이이라고 하듯이, 무슨 일을 하려해도 건강하고 볼 일이다.   

 

                                                       밀, <정치경제학> 중 '정지상태에 관하여'(녹색평론 7-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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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

영화 Film 2012. 9. 14. 13:47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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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김기덕의 <시간>을 본 이후로 나는 더이상 그의 영화적 변신을 기대할 수 없다고 봤다. 복수의식의 구조화란 틀에서. 묘하게도 그 이후로 그는 어수선한 혼란을 겪으며 퇴락의 상태에 빠져 들었지만 다시 일어 섰고, 대작이라고는 할 수는 없으나 그의 영화 인생의 한 획을 긋는 작품을 내놓았다. 이 영화 역시 복수의식의 구조화란 틀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분명한 사회적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점에서 그는 원숙한 변신을 했다. 죽은 자식이 담긴 냉장고가 있는 철물 공작소의 철문 자물통을 툭툭차며 엄마(조민수)가 대부업체 사장을 찾아가 아들의 복수를 하는 장면은 단순한 복수를 넘어 사회적 응징의지를 내포하며,  강도에게 하는 복수는 너무도 비정하면서도 아름답고 서글픈 것이다. 단지 복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김기덕 감독이 구원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의도를 보인다. 강도의 자취방 건물 건너편에 서너 차례 보여지는 단기 목사 양성소인 합동신학교 건물은 현실을 숙주로 삼으면서도 차디찬 현실을 외면한 채 구원을 사업화시킬 뿐임을 보여 주지만 현실에서 버려진 사람들에게서 그는 구원의 가능성을 물은 것이다. 여전히 그의 장난기가 녹슬지 않은 마지막 장면은 그의 상상력이 이제 숭고미의 색채로 채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대 자본의 힘에 의탁하지 않고 외롭더라도 계속 자신만의 영화를 만드는 그는 가장 흔해 빠진 산업의 도구로 전락한 영화를 아직까지 그 이상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예술가다.   

 

*<피에타> 조기 종료에 관해 :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5530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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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께

서술 Beschreibung 2012. 9. 12. 23:1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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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작가 생활의 절반을 기울여 탈고하신 님의 소설을 한창의 유행이 지나고, 그리고 피안으로 가신 지 4년이 넘은 이제야 읽고 이런 편지를 씁니다. 독서는 죽은 작가와 살아 남은 독자의 대화라고도 하는데 죽은 작가와 살아 남은 독자 간에 편지를 못 쓸 것도 없겠지요. 그리고 6년 전인가, 개인적으로 님이 거주하고 계셨던 원주의 토지 문학관에서 우연찮게 주말을 보냈지만 미쳐 뵙지 못한 아쉬움에서 이런 형식의 글을 쓰게 됐는지도 모릅니다.

 

소설을 다 읽고 우선 드는 생각은, 웬지 소설이 서둘러 종결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이미 이 작품을 쓰실 때 어느 시기까지 나갈지 어느 정도 방향은 정하셨겠지만, 그리고 구한말과 해방 시점 사이의 40여 년의 기간이 소설의 서사적 기간으로 그리 길다고 할 수 없더라도, 3 세대로 연결된 시간이 집단과 개인의 생생한 생활사와 시대의 굴곡 사이에서 유유히 흘러간 모습을 보여주는 대하 소설임에 분명하지만, 해방후 또 다르게  험악해지는 한반도의 살풍경을 애써 외면하고 싶어하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소설 말미에서 명희의 막대한 기부로 산채에 모인 사내들의 논쟁 중에 그런 조짐이 이미 드러나죠). 시대의 폭정에 가족의 삶이 당신의 대를 이어 유린되는 상황에서 그 정도의 선을 지키는 것이 나름의 선이겠으나, 저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이병주의  『지리산』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암울한 이 한반도의 역사를 총체적인 시점이 아닌 특정 인물들의 군락과 특정 공간을 통해 가장 은밀하면서도 구체적인 서사를 통해 구한말에서부터 꿰뚫어 보고 싶은 유혹을 님께서 너무도 강렬히 남기셨기 때문입니다.

 

후반부에 비교적 자주 등장하는 상의의 기숙사 얘기는 상당히 자전적인 기억을 옮긴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소설을 극적으로 이끌어가는 긴장과 해소의 힘은 최치수의 몰락과 음모의 발각 부분에서 고조되고 이후의 얘기들은 이 초반부의 극적 구성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딴에는 그 험준한 폭발로 고원이 생기지 않았다면 이 소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밋밋하게 전개될 소지가 있겠습니다.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하동 평사리 마을 사람들을 통해서 님은 소설의 재미가 아니라 시대에 짓눌린 이 땅의 민초들의 애환과 도전의 과정을 보여주려는 것이겠죠. 그러면서도 전염병과 불의의 사고, 전쟁, 노쇠로 일어나는 세대의 교체를 통해 생의 허망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극랄하고 악독한 처신에 대한 분명한 응징을 담담히 보여 줍니다.

   

이 소설을 탈고하시고 노년을 보내신 원주에는 멀지 않은 시기에 가볼듯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제 조준구의 아들 병수를 비롯해 아름다운 영혼들이 살았다는 통영에 내려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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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완독

책들 Bücher 2012. 9. 12. 12:17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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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을 근 6개월에 걸쳐 다 읽었다. 한 달에 3.5 권의 속도로 읽은 셈이다.
 
이 광활한 서사에 관한 서평 내지 감상은 시간을 내서 써봐야 겠다.
 
오전에 외근 다녀오다가 전철 맞은편 자리의 승객이 펼진 신문에서  김기덕의 『피에타』에 관한 글을 발견.
 
중앙일보인 걸로 보아 이런 쓰레기같은 칼럼인줄은 진작 알아봤다.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679/9301679.html(링크 폐쇄)
 
큰 상 받았다고 후다닥 달려가 보고 되는데로 씨부리는 천박성이 물씬 풍긴다.
 
마치 틀면 나오는 분수대처럼 너도 데스크가 시키거나 시키기 전에 알아서 맞춘 거 아니겠니? 대충 써 갈겨도 지면 대줘서 좋겠네, 이 썩어빠진 먹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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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오렌지와 토지

책들 Bücher 2012. 9. 7. 11:4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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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비코 치료에 들어가는 알렉스에게 교도소 관할 신부가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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